소설리스트

등급인생-611화 (61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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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주종식과 주홍식을 포함한 장정들은 물자를 받자마자 어느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 일제시기처럼 침상형 생활관이었다. 침상 위에 각 사물함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완장을 차고, 빵모자를 쓴 콧수염의 한 사람은 자신을 따라온 장정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빨리 빨리 안으로 들어가. 그리고 그 후줄 건한 누더기는 집어 치우고, 받았던 군복으로 갈아입어.”

-예.-

장정들은 별 볼 일 없는 음성으로 대답한다. 완장을 찬 남성은 그 음량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의 할 일은 여기서 끝이었다. 대신 속으로 자신의 처지를 욕할 뿐이다.

‘제길. 왜 난 청 부대 쪽으로 떨어져서...’

청 부대든 백 부대든 어느 부대든 간에 자신을 포함한 우익 단체의 사람들이 들어가서 일을 했다. 그저 인원들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것이 주 업무였지만 청 부대와 백 부대에서의 자신들의 위치는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백 부대에서는 아예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백 부대의 군수지원은 자신들 단체가 책임지기 때문이다.

반면 청 부대는 달랐다. 청 부대를 지원하는 쪽은 현재 국군의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있는 동협 그룹 쪽이었다. 그 쪽에서는 자신들의 비리 사항에 대해서 용납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지금도 청 부대 사이에 각 건물마다 기자들이 드나들며 취재거리를 찾기 위해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또 어이없게도 청 부대에서 행하는 모든 업무에 대한 기록들은 외부에 전부 다 밝혀지도록 했다. 결국 청 부대에서 자신들이 떼어먹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뭔가를 떼어먹으면 동협 그룹 쪽에서 그 떼어낸 몫만큼 배상하도록 고소한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청 부대 안에서의 자기들의 할 일은 그저 시키는 일에 대충대충 하는 것밖에 없었다.

물론 여기서 일을 한다고 하여도 봉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대로 못한다는 점에서 불만스러울 뿐이었다.

‘여기서 몇 달 일하면 백 부대로 파견되니까 상관없겠지.’

현재 백 부대로 배치 받은 인원들은 알아서 지원 나온 물자들을 횡령해 자신의 돈으로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완장을 찬 남성은 배가 슬슬 아파왔고, 한숨을 내뱉으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생활관 안으로 들어간 주종식과 주홍식은 자신의 번호에 해당되는 자리에 앉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형님. 군인들은 전부 여기서 생활하는 건가요?”

“나야 알 수 없지. 민식이에게 듣기론 군인들 대다수는 텐트 안으로 잔다고 하던데.”

“이런 엄동설한에 바깥에서 잔다니. 하아. 민식이도 꽤 많은 고생을 하겠군요.”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이거는 어떻게 입더라?”

주종식은 자신의 몸 크기의 군복을 펼치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자신들이 입은 평상복보다 때깔이 좋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주홍식도 자신의 군복을 펼치며 한 마디 말한다.

“이거 집에서 입고 다니면 좋겠는데요.”

“그러게. 옷도 이제 없는데. 이거라도 입었으면 좋겠다.”

주종식과 주홍식은 군복의 품질에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아까 완장을 찬 남자가 왜 자신들이 입은 옷을 가지고, 누더기라 표현했는지 알만 했다. 주종식은 군복을 어떻게 입는지에 몰라서 주변에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살펴본다. 생활관 안으로 들어온 장정들은 여러 유형대로 행동했는데, 첫 번째는 자신처럼 군복을 어떻게 입는지 눈치를 보는 장정들이 있었고, 두 번째는 어떻게든 군복을 입으려고 하는 장정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군복의 품질에 환한 미소를 짓는 장정들이 있었다.

주종식은 어떻게든 군복을 입으려고 행동하는 장정의 모습을 관찰하며 자신도 이내 받은 군복으로 갈아입으려고 한다. 누더기 같은 평상복을 벗고, 받은 속옷을 먼저 입고, 그 다음 군복으로 입는다. 어떻게든 군복으로 갈아입은 주종식은 마지막으로 벨트로 허리춤을 감으며 군복 바지를 고정시킨다. 그렇게 군복으로 갈아입은 주종식은 이후 자신의 동생인 주홍식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너도 슬슬 갈아입지 그러냐?”

주홍식은 그 말에 눈치를 보며 자신의 형처럼 군복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군복을 갈아입는 데에는 그리 큰 불편함은 없었다. 군복으로 갈아입은 주종식과 주홍식은 이내 시선을 주변으로 돌리며 다른 장정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본다.

아까 봤던 장정들의 유형은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군복을 갈아입은 사람들과 갈아입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눈치를 보던 사람들도 이윽고 군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활관 내부에 있는 사람들 전부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그 뒤에 꼼꼼한 장정이 이내 자신의 짐을 정리한 뒤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주종식과 주홍식 역시 자신들의 짐을 정리하고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났을 때, 문이 벌컥 열린다.

“옆 생활관은 개판이고, 여기도 개판이네. 이 씨발 새끼들아. 여기가 도떼기시장인 줄 아나?! 얼씨구. 개판으로 군복을 갈아입은 인간도 보이고, 또 깔끔하게 뒷정리도 안 한 인간도 보이는군.”

기세등등하게 생활관 안으로 들어온 선글라스, 군복차림의 한 남성이 생활관 안 장정들에게 욕을 해대며 어슬렁거리며 군복을 입은 장정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한 사람에게 고정하고는 외친다.

“이 새끼. 뒤에 있는 거 뭐냐?”

그의 박력 있는 외침에 장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예? 그... 제 짐입니다.”

“짐? 넌 씨발 집에서도 정리 안 하고 사냐?”

그 말에 장정은 얼굴을 긁적이며 대답한다.

“저... 그게...”

선글라스의 남성은 장정의 대답을 들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전부 엎드려.”

그 말에 생활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에 선글라스의 남성은 잘 되었다는 듯 이죽거리며 이내 자신이 가진 곤봉으로 침상 끝을 내려친다.

-쾅!-

온 힘을 다해 침상을 부술 듯 내려친 선글라스의 남성은 여러 번 침상을 내려치며 외친다.

“이 시발 새끼들은 전부 눈치가 없군. 그래. 좋아. 한 번 해보자고.”

선글라스의 남성에게서 느껴지는 살기와 분위기에 순간 생활관 안 장정들의 분위기는 바뀐다. 어느 한 눈치 빠른 장정은 이내 선글라스의 남성의 말처럼 엎드린다. 그런 장정을 보고 다른 장정들 역시 따라 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주홍식과 주종식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선글라스의 남성은 그런 생활관 분위기를 보며 만족을 하는지 잔혹한 미소를 짓고는 이내 자신이 처음 지목한 장정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얼씨구? 짐 정리 안 하고, 내 말 듣냐? 넌 귓구멍이 막혀도 한참 막혔구나?”

선글라스의 남성은 손에 든 플라스틱 곤봉으로 장정을 쿡 쿡 찌른다. 그러자 장정은 이내 서둘러 자신의 짐을 정리한 뒤 다른 장정들처럼 엎드린다. 그런 분위기에 선글라스의 남성은 이내 다른 장정들에게 시선을 주며 마음에 안 드는 사항이 있다면 욕을 해대며 심하면 곤봉으로 위협까지 했다. 그렇게 공포의 시간동안 선글라스의 남성은 문지기처럼 문 앞에 서서 말한다.

“내가 하나 하면 너희들은 팔꿈치를 굽히고는 ‘조국’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둘 하면 다시 팔꿈치를 피며 ‘통일’이라고 외친다. 알겠냐?”

-......-

“이 새끼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선글라스의 남성은 손에 든 곤봉으로 침상을 탕 탕 치며 위협을 하자 엎드린 장정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알겠습니다!-

“좋아. 하나!”

-조국!-

“둘!”

-통일!-

“다시 하나!”

-조국!-

“둘!”

-통일!-

선글라스의 남성이 호령할 때마다 생활관 안 장정들은 팔꿈치를 굽혔다 폈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농사일을 한 경험이 있는지 도중에 쓰러지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선글라스의 남성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외친다.

“전부 일어서!”

순간 장정들은 그 외침에 벌떡 일어섰고, 선글라스의 남성은 손에 든 곤봉으로 다른 손바닥을 툭툭 치며 침상 사이 복도를 걸어가고는 전달사항을 말한다.

“아까처럼 개판 오분 전인 상황이 있을 때마다 아까처럼 이런 개 같은 일을 맞이하게 될 거야. 전부 앉아!”

그 말에 생활관 안 장정들은 척 하고, 앉는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민간인이 아니라 군인 신분이 되었다. 너희들은 뭐라고?”

-군인 신분!-

“의지가 없군.”

그 말에 장정들은 더 크게 외친다.

-군인 신분!!-

“좋아. 너희들은 일시적으로 군인 신분이 되었다. 현재 평시도 아닌 전시이다. 너희들은 조국의 명에 따라 징집된 것이다. 다시 너희들은 뭐라고?!”

-군인 신분!!!-

“그래. 상부의 명에는 끝까지 따라줘야 하는 군인신분들이다. 농사가 시작되는 날까지 너희들은 여기서 군사 훈련받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적들이 이 후방으로 침투해가 너희들의 생명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국은 왜노들에게 지배당한 지 이제 막 5년이 지났고, 빨갱이 놈들에게 생명과 재산을 위협받고 있다. 그런 얼빠진 정신으로 어떻게 평화를 영위해나가야 하나?! 다시 한 번 묻는다. 너희들은 뭐?”

-군인 신분!!-

“좋아. 너희들은 군인이다. 그럼 지금 너희들에게 지시를 내려주겠다.”

선글라스의 남성은 곧 주종식과 주홍식을 포함한 장정들에게 전달사항을 말하기 시작한다. 선글라스의 남성의 분위기에 장정들은 그 말에 집중하며 듣기 시작한다. 이윽고 선글라스의 남성은 다시 한 번 말한다.

“혹여 내 말 이해 못한 사람 있나?”

그 말에 장정들은 서로를 두리번거릴 뿐이다. 그런 장정들의 모습에 선글라스의 남성은 짜증이 났는지 다시 손에 든 곤봉으로 침상 끝을 내려친다.

“너희들이 눈치를 볼 때야!? 이해 못하다 나중에 몰랐다는 대답을 바라지 않아. 다시 한 번 묻는다. 아까 내 말 이해 못한 사람이 있으면 지금 물어봐라. 시간이 없다.”

그 말에 장정 한 사람이 슬그머니 손을 든다. 선글라스의 남성은 그런 장정을 보고 한쪽 입 꼬리를 올린 뒤 입을 뗀다.

“좋아. 정직하군. 이 새끼. 한 번 들으면 알아서 척 들어야지. 겁나 귀찮게 하네. 뭐가 궁금한데?”

그 말에 손을 든 장정은 어버버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까 생각한 질문을 던진다. 선글라스의 남성은 그 질문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을 해줬다. 주종식과 주홍식은 그런 선글라스의 남성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을 팰 거 같은 인간인데. 그래도 말을 들어주기는 하는구나.’

선글라스의 남성은 대답을 끝내자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외친다.

“이제 질문 있는 사람 있나? 이제 없지?”

-예!-

“좋아. 그럼 여기서 마치지. 그리고 너!”

선글라스의 남성은 곤봉으로 주종식을 가리키자 주종식은 헉 하고 놀란다. 선글라스의 남성은 주종식에게 다가가고는 한 마디 말한다.

“그래 너 말이야. 너. 넌 앞으로 11 생활관 책임자다. 넌 뭐라고?”

주종식은 살기어려 보이는 선글라스의 남성의 물음에 즉각 대답한다.

“11 생활관 책임자입니다!”

“좋아. 나와 같은 교관들이 이 생활관에 올 때, 넌 보고를 해야 된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오면 어떻게 한다고?”

“보고해야 합니다!”

“좋아. 하지만 어떻게 보고 요령 하는지는 모르지? 그럼 잘 듣고, 따라해.”

선글라스의 남성은 주종식에게 윗사람이 생활관 안으로 들어올 때, 보고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줬다. 주종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간신히 보고 요령을 터득한다. 선글라스의 남성은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주종식에게 묻는다.

“이제 알아 들었으니 보고 해봐!”

그 말에 주종식은 잠시 멍해지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선글라스의 남성 앞에 서서 경례를 한다.

“쉬어! 충성! 제 11생활관 책임자 주종식. 현재 인원보고 총원 41명 열외 무 현재인원 41명 번호! 하나!”

그러자 주종식 옆에 있던 주홍식이 외친다.

“둘!”

그에 따라 옆에 앉아있던 장정들은 ‘둘’ ‘셋’ ‘넷’ 계속 외치다 ‘사십 일 번호 끝’을 외친다. 그렇게 보고를 끝낸 주종식은 선글라스의 남성을 바라보았고, 선글라스의 남성은 작은 미소를 지은 채 대답한다.

“좋아. 그렇게 보고 하는 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여 이 생활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사무실에 있는 나를 찾아와!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선글라스의 남성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주종식에게 말한다.

“좋아.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생활관 인원 통제해. 다음 지시를 내릴 때까지 대기하도록. 이상!”

“예! 충성!”

선글라스의 남성은 이내 생활관 밖으로 나가고, 생활관 안 장정들은 한숨을 내쉰다. 주종식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끙’ 침음을 흘린다. 주홍식은 살금살금 주종식에게 다가와 한 가지 묻는다.

“민식이는 매번 이런 곳에서 있는 것입니까?”

“나도 몰라. 하지만...”

“하아. 군대가 이런 곳인지는 몰랐습니다.”

“......”

“농사 시작 일까지 여기서 이대로 있는 것입니까?”

“아까 그 사람이 말했으니 그렇게 되겠지.”

주홍식은 그 말에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주종식은 주변을 둘러본다. 생활관 안 장정들은 아직 선글라스의 남성이 남긴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여전히 적응되지 못한 모습들이었다.

그런 장정들을 바라보며 주종식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과연 괜찮을까? 하아...’

주종식은 왠지 불안했다. 아까의 분위기, 공포의 분위기가 남긴 여운은 주종식과 주홍식을 포함한 장정들의 불안감을 한층 더 증폭시켰다. 선글라스의 남성의 말처럼 지금은 전시 상황이었다. 국민방위군에 대해 민식이에게 들은 주종식과 주홍식은 여기서 지내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집에 두고 온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주홍식과 주종식을 포함한 장정들을 채운 생활관 안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 엄동설한에 생활관 안으로 들어온 장정들은 자신이 행운아인 것은 모를 것이다. 백 부대로 떨어진 장정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 지낼지, 그리고 그 곳이 얼마나 지옥 같은 생활을 하는지 주중식과 주홍식은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주종식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걱정이군. 농사 시작 일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다니 말이야. 하아...’

============================ 작품 후기 ============================

편두통 떄문에 소설도 쓰지를 못하겠군요. 그냥 눈만 떳다하면 안구가 눌러지는 고통 때문에 끄으응... 독자 여러분들도 건강 챙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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