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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야당의 움직임은 곧바로 이 대통령의 귓가에 들려온다. 소식을 알려준 비서실장 윤치영에게 시선을 둔 이 대통령은 짜증난 말투로 한 마디 말한다.
“이럴 때는 파리 떼처럼 앵앵 거린단 말이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 이대로 순순히 당해줄 수는 없지. 그런데 국방부 장관은 어떻게 한데?”
“현재 관련 기록들을 지우며 은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살려면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또 없어?”
“그리고 관련 자료들을 위조하여 동협 그룹에 뒤집어씌우려고 합니다.”
이 대통령은 그 말에 ‘흠’ 소리를 낸 뒤 흥미롭다는 눈빛을 내보인다.
“그 쪽으로 뒤집어씌우려고 하다니 신성모 그 작자 간도 크군.”
“그런데 이 사건이 우리 쪽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우리 측도 상당히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이 대통령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뭐 밝혀진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우리 쪽이 아니야. 그 쪽이 죽을 판국이지.”
“신성모 국방부 장관은 각하의 심복입니다. 적어도 그가 하는 행동에 도움을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윤치영의 말에 이 대통령은 잠시 생각을 하다 이내 윤치영에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저 쪽에 티 나지 않게 도움을 줄 수는 있는가?”
“일단 사건이 불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책임 소지를 그 쪽에 돌리도록 인원들을 한 번 움직여보겠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 말에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다가는 그 쪽에서 우리들에게 반감을 표시할 텐데?”
“반감을 표시했다가는 그 쪽에서 죽을 판국일 것입니다.”
“흠. 내가 생각할 때는 아직 그들에게 함부로 행동할만한 입지는 아닌 것 같은데? 자네가 책임질 수 있나?”
이 대통령의 말에 윤치영 비서실장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대답한다.
“적어도 그들은 이번 사건과 연관이 되어 있으니 그들이 이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제안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그들의 기세를 고분고분하도록 하면 어떻습니까?”
“뭐... 잘 해 보게나.”
이 대통령은 영 마뜩찮은 표정으로 윤치영에게 대답할 뿐이었다. 윤치영은 그런 이 대통령의 태도에 속으로 ‘끙’ 침음을 흘린다.
‘그들이 꼼짝도 못할텐데. 왜 각하께서는 뒤로 한 발 물러서는 것일까?’
윤치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이 마음속에 생겼다.
1951년 1월 23일, 사건이 터지고 나서 주종식과 주홍식이 있는 생활관 안의 분위기도 영 뒤숭숭했다. 일단 사건이 집중적으로 터진 곳은 바로 백 OOO부대였다. 주종식이 보기에도 백 OOO부대의 사람들은 박하게 대우를 받았다. 물품 지급은 물론이고, 식사 차별에 지속적인 관리인원들의 구타 및 폭행, 욕설에 훈련은 그 대우보다 더 심하게 받았다.
그리고 터진 사건들. 청 OOO부대의 교관들과 관리원들은 이 사태에 대해 미리 예감을 한 모양이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교관들과 관리원들이 직접 장정들에게 말한 것은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것 그 것뿐이었다.
원래라면 지금 훈련을 해야 할 시간에 생활관에서 그대로 대기를 한 것을 보면 그만큼 사태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생활관 침상에 앉아 있는 장정들 역시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향해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배치 받는 백 OOO부대가 죽을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주홍식이 그렇게 말하자 주종식은 검지로 입을 갖다대며 말한다.
“쉿! 조용히 해. 이런 시기에 그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드는 것 아니야.”
“끙. 예...”
“하여튼 교관님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으니 굳이 먼저 나설 필요는 없어.”
“그건 그렇고, 우리 쪽 부대야 그렇다 치더라도 왜 백 OOO부대에서만 이런 대접을 받는지 좀 그렇습니다.”
주종식은 그 말에 ‘으음’ 침음을 흘리다 이내 주홍식에게 자신이 아는 바를 조용히 말해준다.
“이건 주위에서 들은건데, 원래 청 OOO부대를 지원하는 곳과 백 OOO부대를 지원하는 곳은 다르다고 알고 있다.”
“그거야 집에서 들은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그게 조금 사정이 복잡해. 원래 청 OOO부대를 지원해주는 후원업체가 동협 그룹이라는 곳인데. 그 곳은 현재 국군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그건 누구나 아는 다 사실 아닙니까?”
“딴죽 걸 것은 나중에 걸고, 일단 내 말부터 들어봐. 일단 이 국민방위군 자체가 그 동협 그룹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만든 것이 아니라 저 백 OOO부대를 후원해주는 곳 있지? 거기서 주도적으로 한 거야.”
“예? 그 말씀은?”
“하지만 그 쪽에서는 일반적인 군수물자를 생산할만한 것이 없어서 그런지 일부로 동협 그룹을 끌어들였다고 하더군.”
“예? 그건 어디서 들었습니까?”
“민식이가 알려줬어.”
“......”
“그래서 이 쪽에 소집되기 전에 백 OOO부대가 죽을 자리란 것을 알았던 거지. 하여튼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 백 OOO부대를 후원하는 단체가 그 ‘대한청년단’이라고 불린다고 하더군. 현재 국방부 장관 사위가 단체장으로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
“그... 그렇다면...”
“민식이가 알려줬는데, 이 국민방위대라는 것 자체가 그 대한청년단, 그리고 국방부 장관이 나랏돈을 횡령하려고 일부로 만들었다고 하더라.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지만 그리고 백 OOO부대의 관리를 그 대한청년단에서 전부 한다고 하더라. 우리 부대는 그 동협 그룹에서 관리를 하는 거고.”
주홍식은 그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말한다.
“끙. 결국 관리하는 후원단체가 달라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입니까?”
“현재 알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그런 거지. 그리고 이건 그냥 마음속에만 생각해. 어차피 우리가 아는 것을 세상에 고한다고 우리만 다칠 거니까.”
“예에!? 형님. 이건...”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라고 민식이가 전했어.”
“끙. 어쩔 수가 없네요.”
결국 이 사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만 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넘었갔고, 그렇게 시간이 흐를 때였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그 틈 사이로 누군가 생활관 안으로 들어온다. 익숙한 군복차림, 익숙한 얼굴과 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은 선글라스, 바로 선글라스의 교관이 굳은 표정으로 이 안으로 들어왔다. 주종식은 곧바로 그를 발견하자마자 일어선 뒤 다가와서 외친다.
“쉬어! 충성!”
“그래 충성. 현재 인원 변동사항 없지?”
그 말에 주종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생활관 안 장정들의 모습을 대충 본 뒤 대답한다.
“현재 그대로 있습니다.”
선글라스의 교관은 그 말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군. 지금도 그대로 앉아 있나?”
“예? 예. 그렇습니다.”
“일단 인원들 모인 것 같고, 그대로 있고. 딱 좋군. 전부 침상 끝에 걸터앉아라. 전달사항 있다.”
선글라스의 교관의 외침에 순간 생활관 침상 위에 앉아있던 장정들은 곧바로 일어서서 침상 끝에 걸터앉은 뒤 선글라스의 교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교관은 자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는 흠흠 기침을 하고는 이내 입을 떼기 시작한다.
“여기에 있는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번에 사건이 하나 터졌다. 우리 쪽을 상당히 싫어하는 백 OOO부대에서 말이야. 너희들도 봤지만 그 쪽 상황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아마 사건이 터진 것도 오히려 당연하다는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
그 말에 생활관 장정들은 전부 조용해진다. 그리고 그 장정들의 눈빛 속에 일렁이는 불안의 감정을 느낀 교관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우리 부대에선 사건이 터지지 않았지만 지금 저 쪽에서는 사람들이 죽었다. 현재 외부에서도 이번 사건을 알고, 기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리고 너희들에게도 기자들이 올 텐데. 기자들이 여기에 오면 기자들의 물음에 솔직히 답변을 했으면 좋겠구나. 혹여 궁금한 것이 있는가?”
선글라스 교관의 물음에 장정들은 조용한 반응을 보이다 그 중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다. 바로 선글라스 교관에 의해 생활관 책임자로 내정된 주종식이었다. 선글라스 교관은 주종식에게 시선을 두며 말한다.
“그래. 물어봐라. 무엇이 궁금한가?”
“여기에 기자가 온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로 대답을 해야 합니까?”
의표를 찌르는 주종식의 물음에 선글라스의 교관은 당황하다 이내 감정을 다잡고 대답한다.
“혹여 이번 사건이 우리 쪽과 강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물어보는 기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 부대는 별반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책임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 말에 주종식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하기야 백 OOO부대보다는 여기가 훨씬 낫기는 하지.’
물론 여기서 지내면서 어느 정도 불만스러운 사항은 있기는 했지만 백 OOO부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선글라스의 교관의 말은 청 OOO부대가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대답을 하라는 것이다.
“책임자 넌 눈치가 빠르니까 아마 적절히 대답해주리라 믿고 있겠다. 그럼 또 다른 질문은 있나?”
그 물음에 장정들은 손을 들지 않는다. 그렇게 전달사항을 전파한 선글라스의 교관은 이내 장정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이 쪽에 사람이 오기 전까지 그대로 가만히 있기를 바란다. 그럼...”
교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주종식은 그런 그의 뒷모습에 속으로 말한다.
‘이 쪽이나 저 쪽이나 이 사건 때문에 쫄리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군.’
주종식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내 자신의 자리에 앉고, 주홍식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시간을 보낸다.
같은 시각, 주민식과 같이 일을 하러 돌아다니던 병윤은 핸드폰을 통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단 그렇게 대처를 하고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작은 형님.”
-너도 참 고생을 하는 구나. 하여튼 이번 사건으로 신성모 그 작자 이제 완전히 나가리 신세가 되었어. 생각이 있든 없든 이 일을 수습하기는 전혀 불가능해.-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파면 조치를 내리는 것이 한계일 것입니다.”
-흠.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냐?-
“이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이 사건이 확대되기를 원하지 않으니 하는 소리입니다.”
-허. 그래? 하기야 그 쪽에서는 그게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과연 그렇게 될 지는...-
“꼭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가능성은 높습니다. 아마 신성모 국방부장관이 해임되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대한청년단 단체 간부들 몇 명이 군사재판에 넘겨 처형당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수습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국민방위군을 지원하는 곳에 동협 그룹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조심해라.-
“하하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다 대비책을 마련해놓았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일단 이것으로 통화를 끊지. 나도 일을 해야해서 말이야.-
“예. 조심하십시오. 작은 형님.”
병주와의 통화를 끊은 병윤은 핸드폰을 안주머니에 넣고, 손에 든 서류를 가슴 팍으로 올리며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 병윤의 태도에 주민식은 한 마디 말한다.
“끙. 장교님은 태평하기 그지없습니다.”
병윤은 서류에 시선을 둔 채로 대답한다.
“그리 걱정할 만한 사항은 아니지 않나? 처남?”
“허. 매번 처남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리고 솔직히 아직 그 녀석이랑 결혼한 것도 아닌데...”
“차후에 그리 될 것 같으니까 하는 소리인데. 왜 싫어?”
주민식은 그 말에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한다.
“그건 아니지만 솔직히 주위 사람들 눈치가 조금...”
“아 하기야 너도 병사였지. 참.”
“끙. 어째 장교님 스스로 특출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민식의 말에 병윤은 싱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나만큼 특이한 인간 있어?”
그 물음에 주민식은 떫은 표정으로 힐난조로 대답한다.
“참으로 자랑이십니다.”
“일단 그 이야기는 그만두고, 일부터 처리하자고.”
“예.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류를 처리하고, 물자 재고를 확인하면서 맡은 일을 열심히 처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병윤을 향해 사람들이 찾아온다.
‘헌병(憲兵)’이라고 새겨진 방탄헬멧을 쓴 병사들과 그 병사들이 주위에서 지키는 군법무관이 병윤에게 다가온다. 병윤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군법무관의 얼굴이 익숙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넌...”
군법무관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병윤에게 말한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작년에 고등 사법고시에 합격하고는 그대로 군법무관에 취임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기엔 어쩐 일인가? 전혁환 중위.”
전혁환 중위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얼굴로 병윤에게 상황을 전달한다.
“상부의 지시로 길 중위를 구속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눈을 지그시 감고는 이내 전 중위에게 묻는다.
“이유는?”
“국민방위군 사망 사건과 관련한 조사입니다.”
“흠. 민식아.”
“예. 장교님.”
“난 좀 어디론가 갔다 와야겠다. 일은 너 혼자 처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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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모 :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네가 순순히 혐의를 뒤집어씌워라.
병윤 : 용 쓴다. 내가 그렇게 쉽게 갈 거 같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