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616화 (61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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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윤치영은 배신감에 휩싸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끈을 자르는 이 대통령의 말에 윤치영은 한숨이 나온다.

‘그래. 이런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잖아.’

윤치영은 털썩 의자에 앉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맞이하도록 한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한다.

‘개자식.’

자신을 쳐내게 만든 이유는 역시 병윤에게 있었다. 윤치영은 속으로 병윤에 대해 욕을 해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가다간 끈이 떨어진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그 것만은 막아야 했다. 윤치영은 급히 어딘가로 연락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누구십니까?-

윤치영은 말투를 듣고, 긴장을 했고 서서히 입을 뗀다.

“아. 서울시장인가? 나야. 그 비서실장.”

-아. 윤 형이셨군요.-

‘윤 형’이라 부르는 서울시장 이기붕의 말에 순간 윤치영의 얼굴은 구겨진다. 그러나 다시 얼굴을 고치고 사근사근하게 말한다.

“요즘 일은 어때?”

-뭐 서울시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일은 많습니다. 지금도 저와 제 보좌관들이 계속해서 수고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그런가? 혹여 너무 일이 많아서 과로사하는 것 아닌가?”

-후후. 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용건이기에 이렇게 전화를 주었습니까?-

“아 사실 말이야...”

윤치영은 간단하게 아까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이기붕의 대답을 기다린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이기붕이 대답한다.

-거참. 윤 형도 꽤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군요.-

얼핏 자신의 사정을 동의해주는 이기붕의 말에 윤치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런데 말이죠. 솔직히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윤치영의 눈이 튀어나온다.

“뭐... 뭐라?!”

윤치영의 놀란 음성에 상관없이 이기붕의 대답은 차분하고, 냉정하기 그지 없었다.

-남의 실수를 왜 제가 메워야 하죠? 솔직히 말해서 그에게 술수를 부린 것은 전 비서실장 당신 잘못이 있지 않습니까?-

“서울시장. 꽤 많이 컸구나.”

-허참. 전 항상 크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윤 형 당신이 잘린 것으로 고마워해야 하지 않아야 합니까?-

“감히 나에게 충고를 하는 거야?!”

윤치영의 외침에 이기붕은 조롱하는 말투로 대답한다.

-‘감히’라는 단어는 좀 그렇습니다. 만약 일이 잘못 되어 지금 우리들 세력에 받는 정치자금이 끊긴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 같습니까? 솔직히 전 동협 그룹 회장이 이 정도에서 일을 끝낸다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으음. 그래도 나까지 자를 것까지는...”

-윤 형 자리 잘린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사람을 보고 덤비십시오. 굳이 안 건들어야 할 대상을 건드리다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습니까? 하여튼 당분간 푹 쉬고, 머리를 식히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일단 일이 있어서 그만 끊습니다.-

윤치영은 답답한 가슴에 한숨이 절로 나와 핸드폰을 귓가에 뗄 때였다. 그 때, 이기붕의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니 여보. 무슨 전화인데요?-

-뭐긴 뭐야. 윤 형 끈 떨어진 소리이지. 하여튼 잘 되었어. 윤형의 부인이 영부인에게 접근한 것이 워낙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말이야. 하여튼 당신 영어 좀 할 줄 알지?-

-어머. 잘 하고말고요. 하여튼 이번이 기회겠네요. 똥차를 쫓아내고, 우리 같은 새차가 와야 나라가 잘 되지 않나요? 호호호.-

그리고 곧 핸드폰의 통화는 뚝 끊어졌다. 이기붕과 박마리아의 대화인 것으로 추측한 윤치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가슴 속은 활화산처럼 불타올랐으며 증오심으로 가득한 눈빛은 살기를 절로 만들어 냈다.

‘그래. 이 승냥이 같은 것들. 이번 기회에 나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 좋아. 한 번 해보자고. 그래 네 놈 말대로 당분간은 휴식 기간을 가진다. 그리고 그 다음에 네 녀석들을 끝장내기 위해서 모든 힘을 다하겠다. 두고봐라. 날 물 먹인 녀석들아!’

자신을 자른 이 대통령, 이런 사태를 만든 길병윤, 그리고 자신을 조롱한 이기붕, 하지만 그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증오와 분노를 일으켰던 사람은 이기붕이었다. 그나마 기대했던 사람에게 칼을 찔리면 그 기대감이 증오와 분노로 바뀐다. 윤치영이 그러했다.

이승만은 사실상 존경하기에 배신감과 서운함이 공존했고, 길병윤은 원래부터 자기가 견제했던 사람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기붕은 아니었다.

‘내 기필코 이 치욕과 원한을 갚고 말 것이다.’

그렇게 윤치영은 이기붕-박마리아 부부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침대에서 이불킥을 해댄다.

1951년 1월 24일, TV에서 국민방위군 사건에 대해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병윤이 말한 대로 사현TV에서 먼저 사건을 터뜨려버렸다. 전쟁 도중에 이런 사건이 터진 것에 대해서 대중들은 거리를 걷다 멈추며 TV에서 시선을 둔다.

원래 8시 뉴스의 보도자인 백현국이 지금 자리에 앉아서 ‘속보’를 전한다. 속보의 소식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국민방위군 사건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한 백현국의 모습에 대중들은 허탈하고, 분노에 찬 얼굴을 짓는다.

“이게 무슨 일이야...”

“허참... 나라를 위해 끌고 간 사람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대중들은 한탄과 그리고 한숨을 지으며 거리를 걸어 나간다. 어떤 사람은 별 신경 쓰지 않는 표정으로 다시 걸어간다. 사실 국민방위군 사건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결국 전쟁피로감이 사람들의 마음을 억눌린 것이다.

한편, 신성모와 대한청년단 간부들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보도를 보자 ‘허’라는 소리를 연신 낼 수밖에 없었다. 신성모는 곧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예 여기는...-

핸드폰 너머 목소리를 듣자마자 신성모는 대뜸 욕을 해댄다.

“야 이 자식아! 이런 것을 막지 못하고 뭐 하고 있는 거야?!”

-으음... 저 그게...-

“이 자식아! 이 사건을 파헤치는 인간들은 빨갱이로 몰고 가면 되지 않나!? 빨갱이로! 그런데 이런 것이 TV에서 흘러나올 정도로 터진 거면 나도 죽지만 너도 죽는다고!? 왜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야?!”

-하...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야?!”

신성모가 대노한 듯 목소리를 드높이자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음성을 드높인다.

-제가 모든 조치를 다 했지만 동협 그룹 쪽에서 모든 자료를 언론에서 넘겼습니다. 이걸 어떻게 막으란 것입니까!?-

신성모는 그 말에 이빨을 뿌드득 갈고는 외친다.

“빌어먹을! 길병윤! 이 자식! 나랑 한 판 해보자는 거야!? 그리고 그 조작 자료 어떻게 되었어?”

-저 사실... 윤치영 비서실장님이...-

“비서실장이 뭐?”

-조작 자료를 억지로 만들어 그 동협 그룹 회장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수를 했습니다만...-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비서실장님이 오히려 사퇴했습니다.-

신성모는 그 말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 외친다.

“뭐... 뭐야!? 그 무슨 말이야!?”

-술수를 부리면 정치 자금을 끊고,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동협 그룹의 회장의 발언에 이 대통령께서 직접 비서실장님을 교체했습니다.-

“으으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그래서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어!?”

-지금 상황은 TV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순간 신성모는 격노했는지 핸드폰을 순간 집어던지고, 핸드폰을 발로 연신 밟으며 외친다.

“이런 빌어먹을! 빌어먹을!”

핸드폰을 밟으면서 쌓인 화를 푼 신성모는 조각난 핸드폰을 보고, ‘하아’ 한숨을 쉰다. 지금 중요한 것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고, 빨리 이 사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구멍을 만들어야 할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닥쳐온 위기는 그만큼 크고도 컸다. 신문은 물론이고, TV에서 터진 이상 지금까지의 위치가 송두리째 무너질 것이다. 신성모는 연신 생각하다 이내 자신을 향해 모여있는 대한청년단 간부들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너희들도 빨리 생각해. 이건 나뿐만 아니라 너희들의 생사도 달려 있는 문제야.”

그 말에 대한청년단 간부들은 두려운 눈빛과 얼굴로 연신 생각을 하지만 솟아날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잘하는 것이 그나마 남을 빨갱이로 몰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특기들이 도리어 자신들의 목을 조르게 하자 어떻게 사태를 극복해나가야 할지 그랬다.

그 때, 한 사람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신성모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저 장관님.”

“뭐?”

“이런 방법은 어떻습니까?”

신성모는 기대를 하지 않는 눈빛이지만 일단은 듣는다는 표정을 짓고는 되묻는다.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난 거야?”

“예. 이번 사건의 원흉을 그 쪽으로 지목한다면...”

그 말을 들은 신성모는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화난 음성으로 외친다.

“야 이 자식아! 그거 하다 뽀록나서 이런 사태를 불러일으켰지 않냐!? 씨발 좀 제대로 생각하고 말해라. 어?!”

그 말에 기껏 제안한 사람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 마디 말한다.

“저... 그게... 차라리 이 사건의 주범이 자신이라고 동협 그룹 회장의 입에서 나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허. 참나 잘도 그러겠다.”

“그거야 평상시에는 그렇지만 사람은 고문에 이기질 못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신성모의 얼굴이 바뀌었다. ‘고문’이라는 단어에 뭔가 조금 희망이 떠오른 듯 했다. 고문이라는 방법이 생각나자 왠지 돌파구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현재 그 길병윤의 소재는 우리 군 쪽에 확보되어 있지?”

“예. 그렇습니다.”

“좋아. 그 방법 아주 좋아. 그래. 생각하면 이렇게 방법이 나온다니까.”

그 말에 제안을 한 사람은 헤헤 웃으며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신성모는 이내 속으로 흐흐 웃으면서 생각한다.

‘고문에 장사 없지. 굴 안에 들어온 것 환영한다.’

한편, 아직까지 용의자로 분류되어 있었기에 군내 구치소에 수감 중인 병윤에게 면회가 찾아왔다. 병윤은 헌병들의 안내에 따라 면회소 안으로 들어간다. 맞은편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바로 한정당 당수 백범 김구였다.

김구는 병윤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꼴이 말이 아니군.”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한 번쯤 구치소나 감옥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거참. 말을 들으면 완전 여유로운 범죄자인 것 같은데.”

“하하. 그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 구치소에 있는 소감은 어떤가?”

병윤은 그 말에 미소를 띠며 대답한다.

“별 거 없습니다. 아마 일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보금자리인 것 같습니다.”

“허참. 그런 곳에서도 그런 여유가 나오다니. 하여튼 자네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해명하고, 또 우리들의 활동을 도와주고 있으니 아마 금방 나오겠지. 그리고 윤치영 비서실장이 사퇴했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사퇴할 만 했으니 사퇴했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저에게 조작된 자료를 건네주더군요. 사건이 터진 부대의 후원과 관리를 동협 그룹이 했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자료였습니다만...”

“그 일을 저지른 것이 비서실장이다. 그런 말인가?”

“국방부 장관을 굳이 보호하려고 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로 저에 대한 원한과 질시가 한층 더 증폭하겠지만요.”

백범 김구는 그 말에 조금 안타깝다는 얼굴로 병윤에게 말한다.

“사람을 너무 짐승으로 취급하는 것 아닌가?”

“후후후. 평상시의 사람은 사람대로 행동하지만 권력에 취하면 사람은 짐승으로 서서히 변하는 법이거든요.”

병윤의 대답에 김구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한 마디 말한다.

“그거 참... 그 말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가?”

“저도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그렇군. 그런데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이번 사건을 결과를 그저 신성모 국방부 장관을 자르는 선으로 끝낼 생각인 건가?”

병윤은 그 말에 즉시 눈빛이 바뀐다.

‘흠. 이번 기회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시는군.’

“물론 더 파헤칠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선 정도가 제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타협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더 파헤친다고 하여도 전 말릴 생각이 없지만 한 가지 알려드리면 더 파헤치면 역풍을 맞을 것입니다.”

“으음...”

“선택은 당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쯧. 알겠네. 그런데 자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 자네의 가족들이 다 알고 있는가?”

병윤은 씁쓸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알고는 있습니다. 형님들이야 다 이해하고 있으니 그저 건강하라는 말뿐이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연신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뭐 구치소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말이죠.”

“흠흠. 알겠네. 그리고...”

김구는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리며 병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헌병 한 사람은 거물들의 대화에 침을 꿀꺽 삼키며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화내용이 바깥으로 유출되는 일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원역사에서도 윤치영이 이기붕을 엄청 증오를 했습니다. 이기붕 부통령 떨어뜨리려고 윤치영이 직접 나서서 방해한 일화도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원역사에서는 그 이전부터 사이가 악화되었지만 여기서는 국민방위군 관련하여 사이가 악화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참 내년에 발췌개헌 내용이 들어갈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직선제로 후보들이 나올 것 같은데. 그렇게 된다면 이승만, 김구, 안재홍 이 삼파전으로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야기상 이승만이 당선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이승만의 승리가 되는지 이야기 꾸미기가 참으로 거시기합니다. 뭐 좋은 방법들이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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