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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617화 (617/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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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김구와의 면회가 끝이 나고, 병윤은 헌병들의 안내에 따라 어느 방 안으로 향했다. 문이 끼익 열리고, 병윤이 본 방 안의 풍경은 상당히 어두웠다. 방 안 천장 위에 전등 하나만 달려 있었고, 피부에 닿는 공기는 싸늘하고도 차갑기 그지없었으며 방 안 분위기는 어둡고,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그 때, 자리에 앉은 한 군인이 병윤을 쳐다보고는 고저 없는 음성으로 말한다.

“앉지.”

병윤은 조용히 그의 맞은 편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냉정히 바라보는 사람을 쳐다본다. 그의 눈빛 속에는 상당한 증오로 가득 찼다. 하지만 병윤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가슴팍에 달린 이름표를 바라본다.

한자로 ‘吳曛炫’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글로는 ‘오훈현’이라고 되어 있었다. 옷깃에 달린 계급장에는 자신보다 한 단계 위인 대위로 되어 있었다. 오훈현 대위는 병윤의 여유로움이 마음에 안 드는지 한 마디 말한다.

“대단한 인물이군. 군 입대 전에는 기업 그룹의 회장에 독립운동가에 그 외 기타 등등. 그런데 그런 인물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빨갱이 새끼도 아니고 말이야?”

“......”

“국민방위군 사건 터진 곳 다 네가 관리하던 곳 맞지?”

병윤은 그 물음에 ‘피식’ 웃고는 오훈현에게 말한다.

“이거 참 술수 부리지 마라고 했는데 말이지.”

오훈현은 병윤의 말에 팔자 눈썹을 지으며 외친다.

“뭐? 술수? 이 자식이 지금 장난을 치는 거야?!”

병윤은 그 말에 오훈현을 째려보며 말한다.

“꼭 진범으로 취급하고 취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훈현은 그 말에 얼굴을 구기며 병윤에게 외친다.

“그럼 진범이지. 진범이 아니고서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데.”

“허참. 무슨 근거로 말이죠?”

“증거.”

“무슨 증거이죠?”

“흥! 계속 발뺌할 생각이군. 좋아. 한 번 해보자고.”

그 때부터 오훈현은 지속적으로 병윤에게 묻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인적사항부터 최근 있었던 일까지 말이다. 그러나 병윤의 정교한 대답에 오훈현의 얼굴은 점차적으로 굳어진다. 결국 병윤의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실을 캐지 못한 오훈현은 병윤에게 멱살을 잡고 으르렁거린다.

“야 이 개 자식아! 너 자꾸 빠져나가려고 한다!?”

오훈현의 말에 병윤은 냉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사실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듣고 싶은 것은 잘 가공된 거짓이 아닙니까? 그런데 참으로 아직도 술수를 부리려고 하다니.”

“뭐? 술수?! 술수는 네가 부리는 것이지! 너 이 자식아! 넌 군인 아니야!? 군인이 된 사람이 어떻게 거짓을 말하고 있지!?”

“거짓을 요구하는 것은 그 쪽이지. 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을 이렇게 강압적으로 조사하고 싶습니까?”

오훈현은 그 말에 위험한 미소를 짓고,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래. 좋아. 순순히 넘어가지는 않는다. 이 거지? 그럼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해보자고.”

오훈현은 곧 문을 지키고 있던 헌병들에게 시선을 두며 외친다.

“이 자식. 고문실로 끌고 가.”

헌병은 그 말에 놀라며 오훈현에게 외친다.

“예!? 하... 하지만...”

“못 들었어!? 끌고 가라고! 왜? 네 녀석도 저런 녀석과 같은 패거리냐?”

헌병은 그 말에 ‘끙’ 침음을 흘리며 병윤을 붙잡는다. 그리고 병윤에게는 ‘자신은 어쩔 수 없다’라는 시선을 내보일 뿐이다. 병윤은 헌병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오훈현에게 냉소를 지으며 말한다.

“호. 저에게 고문을 시킬 참입니까? 그거 재밌겠군요. 후후후.”

“그래. 어디까지 그런 여유가 나오냐 보자!”

오훈현과 병윤의 눈빛 사이에 강렬한 번개가 오고 간다.

병윤의 양 손은 천장에 달린 밧줄로 꽁꽁 묶였다. 그리고 지금 병윤은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있었다.

-퍽! 퍽! 퍽! 퍽!-

그러나 병윤은 신음을 내지 않고, 그저 참을 뿐이었다. 오훈현이 병윤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말한다.

“다시 한 번 묻는다. 국민방위군 백 OOO부대를 관리 후원하는 업체가 동협 그룹 맞지?”

병윤은 그 물음에 냉소를 지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당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는 없을 거야.”

오훈현은 그 말에 한쪽 입 꼬리를 잔혹하게 올리며 말한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다시 시작해!”

그러자 곤봉을 든 사람들이 다시 병윤의 몸 이 곳 저 곳을 구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분씩 구타하고, 몇 분씩 심문하는 것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쳐가는 것은 오훈현과 병윤을 고문하는 인원들이었다.

오훈현은 질렸다는 듯 병윤을 바라보면서 한 마디 말한다.

“허참. 몽둥이질은 약했나 보군.”

병윤은 그 말에 오훈현을 바라보며 묻는다.

“이거 꽤 안마가 되는군요. 그런데 당신 뒤가 어디입니까?”

“그건 왜 묻지?”

“아니 궁금해서요. 당신이 저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과연 무사할지 궁금하거든요. 뭐 신성모 국방부 장관과 친인척 관계라도 되시는 것인지...”

“뭐? 으음... 이 자식...”

오훈현의 눈빛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기야 오훈현도 병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훈현은 신성모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 동시에 대한청년단 인원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신성모 세력의 일파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을 조금 고문하면 자신이 원하는 의도대로 술술 넘어갈 것 같았는데, 병윤은 상당히 독한 사람이었다.

“흥. 그래서 뭐? 네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거 같아? 사람은 다 똑같아.”

병윤은 그 말에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오훈현에게 말한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당신이 선택한 것은 당신이 책임지면 되니까요.”

병윤의 말에 오훈현의 얼굴은 한층 더 구겨진다. 그 때, 곤봉을 든 사람들도 병윤의 기세에 마음이 나약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오훈현은 선택했다.

“몽둥이질만 있는 것은 아니지.”

오훈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곤봉을 든 사람들에게 외친다.

“어이 이 자식. 전기 맛 좀 보고 싶었나 보다.”

그 말에 곤봉을 든 사람들은 ‘정말 괜찮을까?’라는 눈빛을 오훈현에게 내보이면서도 손은 오훈현의 말대로 행동한다. 병윤의 양 손을 묶고 있던 천장의 밧줄을 풀고 이내 병윤을 의자 위에 앉힌 뒤 결박시킨다. 오훈현은 의자와 연결된 전기고문 장치를 조작하더니 이내 병윤의 머리채를 잡으며 다시 묻는다.

“다시 한 번 묻는다. 국민방위군 백 OOO부대를 관리 후원하는 업체가 동협 그룹 맞지? 그리고 그 사건을 방치한 책임이 있는 것은 네 녀석이지!?”

병윤은 그 물음에 대답대신 오히려 미소를 지을 뿐이다. 오훈현은 그런 병윤을 보고, 이빨을 갈고는 이내 전기 레버를 위로 올린다.

-치지지직!-

짜릿한 교류 전기가 병윤의 몸을 관통한다. 전기는 구석구석 병윤의 몸을 헤집고 다니며 병윤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긴다. 그러나 병윤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입을 절대 열지 않았다.

오훈현은 신음조차 내지 않는 병윤을 보고, 짜증이 났다. 그래서 전기 강도를 더 올리려고 레버를 위로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인원이 오훈현을 말린다.

“여기서 위로 더 올리다간 용의자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뭐!?”

“여기서 저 용의자가 죽으면 대위님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오훈현은 그 말에 자신을 말린 사람의 가슴을 밀치며 짜증을 부린다.

“씨발. 후환을 생각했더라면 여기서 관뒀지.”

그리고는 결국 레버를 위로 올리고 말았다. 병윤의 몸을 헤집고 다니는 전기의 세기는 더더욱 강했다. 이 때만큼은 병윤도 고통을 참기 힘들었는지 입가에 ‘끅. 끅’ 신음소리를 낸다.

그러다 오훈현은 다시 전기 레버를 뚝 내리고, 병윤의 머리채를 잡으며 다시 한 번 말한다.

“또 다시 한 번 묻는다. 국민방위군 백 OOO부대를 관리 후원하는 책임자가 너 맞지? 응 맞잖아?!”

“이거 꽤 안마가 되는군요.”

“쯧. 강도를 더 높여야 되겠군.”

그렇게 다시 전기 레버를 올리려고 전기 장치로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끼이이익! 쾅!-

갑작스럽게 문이 벌컥 열리고, 헌병 한 사람이 급한 얼굴로 오훈현에게 다가가 보고한다.

“크... 큰 일 났습니다.”

“뭐야? 무슨 큰 일?”

“저... 그게... 북부군 총사령관이 용의자를 면회하러...”

“뭐? 북부군 총사령관? 제기랄.”

북부군 총사령관은 병윤의 작은 형인 병주였다. 그는 실질적으로 군부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었기에 만약 이 상황을 들킨다면 자신은 아주 곤란했다.

“뭐해!? 그럼 그 사람을 돌려보내지 않고?!”

“저 그게... 끝까지 용의자를 보겠다고 합니다. 만약 없다고 하면 직접 안으로 들어가 만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헌병의 말에 오훈현은 그 헌병의 정강이를 군화로 까며 외친다.

“그럼 몸으로 직접 막아! 나 바쁜 것 안 보여!”

“끄으응. 그게...”

“막지 못하면 넌 내가 죽인다.”

오훈현의 말에도 헌병은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참혹한 모습의 병윤을 발견하고는 ‘힉’ 소리를 낸다. 병주가 찾는 사람이 이 모습 이 꼴이라면 분명 여기는 핵폭탄이 터지는 것이 되기에 그렇다. 헌병은 순간 판단해야 했고, 결국 마음을 정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막겠습니다.”

“가봐. 여기는 바쁘니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헌병은 문을 닫고, 오훈현의 말처럼 이 곳에 찾아온 병주를 막기 위해 방 밖으로 나간다. 오훈현은 상당히 곤란하게 되었다는 표정으로 병윤의 머리채를 잡으며 으르렁거린다.

“너 이 자식! 무슨 짓을 한 거야!?”

“가족이 가족을 면회하는 것도 안 됩니까?”

“빌어먹을... 그런다고 네가 무사히 빠져나갈 것 같아?”

병윤은 그 말에 오히려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 당신 가족들이 당신의 모습을 보면 어떨까요?”

“뭐... 뭐야?!”

“그 것보다 당신 대한청년단 소속 맞지요?”

오훈현의 얼굴은 아주 일그러진다. 그리고 병윤을 노려보며 외친다.

“너 이 자식.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지!?”

“머리 좋은 당신으로썬 갈피가 안 잡히는 것 같군요. 제가 대신 말을 하지요. 신성모 그 자식 끝났어. 그리고 당신도 그 작자를 따르고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 이런 짓을 하면서 사건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이런 짓을 작정하는 것 같은데. 한 번 해보자고.”

병윤은 그렇게 말하고는 오훈현에게 살기를 폭사시킨다. 오훈현은 마치 맹수를 대하는 쥐처럼 머릿속에 본능적인 공포로 가득 찼다. 병윤의 머리채를 붙잡은 오훈현의 손은 스르르 풀어졌고, 이빨은 공포감으로 인해 딱딱 거린다.

그리고 문은 다시 끼익 하고 열린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온 이는 아까 병주를 막으라고 한 헌병과 또 그 헌병 뒤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었다. 병윤은 문을 열고 들어온 여러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작은 형님. 여기까지 무슨 일입니까?”

여러 사람들 중 한 사람인 병주는 자신의 동생 병윤의 몰골을 보고, 굳은 얼굴을 지으며 묻는다.

“이게 무슨 꼴이지?”

병윤은 그 말에 ‘흐흐흐’ 웃으며 여유롭게 대답한다.

“안마라도 받았습니다. 곤봉 찜질과 전기 찜질 말이죠.”

“고문을 그렇게 순화시키는 인간은 너밖에 없는 것 같구나. 어이.”

병주는 병윤에게 그렇게 말한 뒤 자신들을 안내한 헌병에게 시선을 두고 외쳤고, 헌병은 병주의 부름에 급히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예. 부르셨습니까?”

“저기 고문 받은 사람 풀어줘.”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헌병과 몇 몇 사람들이 병윤을 전기고문 의자에서 풀어준다. 그리고 병주는 성큼성큼 다가와 이내 이런 짓을 벌인 오훈현에게 다가가 한 마디 말한다.

“흠. 대위이군. 그런데 무슨 명목으로 내 동생을 이런 꼴로 만들었는지 이유를 듣고 싶은데.”

그 말에 오훈현은 벌벌 떠는 얼굴로 병주에게 대답한다.

“저 그게...”

“군인이면 제대로 대답해야지. 다시 한 번 대답해봐. 무슨 이유지?”

오훈현의 얼굴은 이미 끝났다는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병주는 그런 오훈현에게 한숨을 내쉬며 이내 군복 안주머니 안에 있는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누구신가?-

“충성! 북부군 총사령관 길병주 중장입니다. 육군 참모총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길 중장. 이 시간에 무슨 전화지?-

“시간을 내어 제 동생을 면회하러 가봤는데. 꽤 신기한 광경을 봐서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 동생 길병주가 고문을 받고 있더군요.”

-무...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직접 제 눈으로 봤습니다. 뭣 하면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게 사실이야! 누가 자네 동생에게 이런 끔찍한 일을!-

“그 짓을 한 당사자를 직접 바꿔드리겠습니다.”

병주는 핸드폰을 오훈현에게 건네줬고, 오훈현은 혼백이 나간 얼굴을 짓는다.

============================ 작품 후기 ============================

겉보기엔 정의 구현처럼 보이지만 얼핏 보기엔 부정과 권력으로 이뤄진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서 병윤의 행동은 그저 자신의 권력으로 자신의 고문을 무력화시키는 행위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게 현실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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