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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오훈현은 핸드폰에서 쏟아지는 육군 참모총장의 일갈에 정신없이 ‘네.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고, 통화가 끊기자 오훈현의 얼굴은 마치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병주는 자신의 핸드폰을 거두며 오훈현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한다.
“자네. 대한청년단 소속 간부이군. 내 동생에게 이런 짓을 한 대가는 반드시 받겠네.”
오훈현에게 그렇게 말한 병주는 결국 등을 돌리며 자신의 수행원에게 작게 한 마디 말한다.
“가자.”
-예!-
수행원들이 일제히 대답을 한 뒤 병주의 뒤를 따라간다. 그리고 방 안에 남은 오훈현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털썩 앉으며 ‘헉. 헉.’ 가쁜 숨만을 내쉰다. 오훈현의 부하는 그의 망가진 모습을 바라보고는 속으로 혀를 찬다.
‘쯧쯧. 그러니까 내 말 들으라니까. 하여튼 안 된다고 매번 이야기하는데도 끝까지 가다 인생을 망쳐버리지.’
병윤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훈현은 계속 고문하였기에 오훈현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군부의 유력 인사를 적으로 돌렸으니, 아마 오훈현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훈현의 부하는 ‘헉’ 소리를 낸다.
‘이... 이거... 잘못하다 저 녀석 때문에 나까지 인생 망치는 거 아니야!? 그럴 수는 없지. 내 충고를 무시하고, 일을 벌인 사람 잘못이지.’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결국 방 안에 오훈현을 놔두고 방 밖으로 나가버린다. 결국 어둡고, 암울한 방 안에는 오훈현 홀로 남게 되었다.
한편, 병윤의 겉모습은 고문으로 망가졌지만 그래도 별반 타격이 없는지 자신을 면회한 병주에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반긴다.
“이런. 중위 나부랭이가 이런 꼴이 되어 장군 님을 맞이하다니.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병윤의 말에 병주는 피식 웃으며 침대 옆 의자에 털썩 앉은 뒤 말한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험한 꼴을 당한 거야?”
“신성모가 발악했지요.”
“국방부 장관이 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저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억지 고문을 해댔습니다.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지요.”
병주의 얼굴은 그 대답에 찌푸려진다.
“장난이 아니군. 갈 데까지 가보자 이 것인가?”
“적어도 자리 정도 물러나는 것으로 타협을 봤는데. 이렇게 된 이상 신성모의 가장 아픈 부위를 날려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은?”
병윤은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신성모의 사위에 김윤근이라는 작자가 있더군요. 그리고 그 인원은 이번 국민방위군 사건을 저지른 대한청년단의 핵심인물입니다.”
“허... 그 말은? 이번 사건의 핵심 주모자로 내정해서 사형이라도 시키자 이 건가?”
“그 정도는 되어야 신성모가 길길이 날뛰지 않겠습니까?”
병주는 병윤의 그 말에 편치 않은 얼굴로 대답한다.
“네 녀석도 높은 자리에 있으니까 잔혹해지는구나.”
병윤은 그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전 오히려 이렇게 생각합니다. 각 사람들은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잔혹한 본성은 사회라는 거대한 힘에 억눌려 있지요. 그러나 사회의 위가 되어 버리면 그 본성은 사회의 도움을 받아 더더욱 커지게 됩니다.”
“쯧. 그걸 아는 인간이 그렇게 말하냐?”
“하지만 그런 본성을 억눌리는 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정당한 지는 의문입니다. 마키아 벨리가 지은 군주론에서 군주는 굳이 선만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요.”
“허참. 그래서 네가 군주라도 되는 것 같냐?”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그 군주라는 존재가 반드시 왕은 아닙니다. 단체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또 그 사람들의 유족들은 지금 이 사태에 대해서 매우 억울해하고, 그 억울함은 원한이 되고, 그 원한이 분노가 되어 불타고. 그들의 한을 현실과 타협으로 억누를 수는 없는 법.”
“......”
병윤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 이것이 밖으로 알려지게 된다면 저 역시 잔인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겠지요. 하지만 이 것 또한 제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형님도 어느 정도 공감하지 않습니까?”
병주는 그 말에 씁쓸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나도 그 점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그 김윤근이라는 인간을 군법재판에 넘겨 공정하게 심판할 수 있으면 좋은데. 과연 그렇게 할 수가 있을 지가.”
“뭐 좋은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병윤은 이내 병주의 손에 든 핸드폰을 낚아채고는 이내 어딘가로 전화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지금 나에게 전화를 건 이가 누구인가?-
“하하. 통화로 엄청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허. 이 목소리는 우리나라에 꽤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동협 그룹 회장이 아닌가? 그런데 이 시간에 나에게 직접 전화를 주다니.-
“원래하면 비서실장을 통해 각하께 전화를 드려야하지만 지금은 공석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직접 전화를 드렸습니다.”
-으음. 하기야 자네 정보망이라면 내 비서실장이 잘랐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겠군. 그런데 무슨 용건으로 이렇게 전화를 주었나?-
병윤은 이 대통령의 말에 한 쪽 입가를 올리며 말하기 시작한다.
“혹시 각하께서도 이번 사실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어떤 사실?-
“간단하게 말해서 국방부 장관이 이번 사건의 책임을 남에게 뒤집어씌운다는 그런 정보 말입니다.”
-...... 그거 좀 자세히 이야기해보게.-
“예. 알겠습니다.”
병윤은 아까 있었던 일을 이 대통령에게 설명했고, 설명을 다 들은 이 대통령의 반응은 이러했다.
-자네의 말이 사실인가?-
“제가 거짓말해서 얻을 이득이 뭐가 있습니까? 거짓말이면 오히려 제가 여론의 역풍을 얻어먹지 않겠습니까?”
-하기야 그렇겠군. 그런데 고문을 당했다면서 자네의 말투는 여유롭군.-
“몰골이야 엉망이지만 그래도 전화를 할 정도는 됩니다.”
-끄으응. 알겠네. 그래서 자네가 바란 것은 무엇인가?-
“예.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사건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파면으로 사건을 무마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으음... 그 거야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아예 공개적으로 군사재판을 열어 대중들에게 낱낱이 재판 과정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애꿎은 사람을 잡아다 고문했습니다. 각하라면 이에 대한 뒤처리를 잘 마무리할 방법을 잘 알 것이라 여깁니다.”
-요구는 그거 하나뿐인가? 그러나 국방부 장관을 희생시킬 수는 없네.-
“저도 그 정도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신성모의 사위인 김윤근만큼은 꼭 책임지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흠. 신성모 그 작자가 나에 대해서 엄청 실망을 하겠지만 좋아. 자네에게 억지로 잘못을 뒤집어씌우려고 고문한 것도 있고 하니. 이 정도에서 이번 사건은 조절하자고.-
“예. 만수무강하십시오. 언제 몸을 회복하면 한 번 가족들이랑 같이 찾아뵙겠습니다.”
-후후. 그래. 아 고문 건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하네. 그럼...-
이 대통령과의 연락이 끊어졌고, 병윤은 한숨을 지으며 이내 핸드폰을 병주에게 다시 돌려줬다. 병주는 병윤의 얼굴 위아래를 쳐다보면서 말한다.
“너 일부로 고문 받았지?”
“제가 마조히즘입니까? 일부로 고문 받게?”
“그런 것 치고는 각하와 통화하는 것이 상당히 여유로워서 말이지. 마치 이 의견을 제안하려고 일부러 고문을 받은 것처럼 말이지.”
병윤은 그 말에 코웃음을 치며 대답한다.
“신성모 그 작자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발악을 하는 것이 생명의 본능이지만 발악도 적당히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병주는 한 마디 대답한다.
“미친 놈.”
“뭐 여기서 이런 딱딱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다른 화제로 넘어가봅시다. 요즘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병주는 그 물음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
“아니. 그 작은 형님이 만나시는 분 있지 않습니까?”
“흥. 그 딴 데 신경을 쓰냐? 신경 꺼라. 어차피 내 일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너 역시 좋아하는 여자 생겼다며?”
“우욱. 좋습니다. 한 번 까봅시다.”
병윤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병주는 당황한다.
“아니... 이런 일에 굳이 까볼 필요는...”
병주의 말에 병윤은 당당한 얼굴과 몸짓을 하며 외친다.
“예. 선언하겠습니다. 저 좋아하는 여자 생겼습니다. 그 여자 바라보면 헤롱헤롱 거릴 정도로 말입니다. 이번에 휴가 나면 얼른 그 여자 집에 가서 또 만나고 싶을 정도입니다.”
병주의 얼굴은 심하게 구겨지며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 때 만난 이후부터 잘 되고 있다. 이야기 끝났지?”
“어허. 그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면 시시하지 않습니까? 어디까지 진도 나갔습니까? 키스 했습니까? 아니면 스킨십이라도...”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아 이런 일이 있군. 난 여기서 가봐야겠다. 하여튼 잘 지내라.”
그 때, 병윤은 병주를 붙잡으며 한 마디 말한다.
“형님. 핸드폰은 주고 가십시오. 이번에 참고인 신분으로 불려가 핸드폰을 압수당했습니다.”
“흥. 왜 내 껄 달라고 그래? 일단 압수조치 한 물건 전부 다는 그렇다치고, 핸드폰만은 풀어주마. 그 것으로 되었냐?”
“예. 예. 감사합니다.”
그 것으로 병주와 병윤의 이야기는 끝이 났고, 병주는 자신의 수행원들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간다. 방의 침대 위에 있는 병윤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한다.
‘이럴 때, 그 미혜가 보고 싶네.’
병윤의 머릿속에는 온통 미혜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1951년 1월 27일,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병윤의 고문으로 망가진 겉모습은 어느 정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그런 그의 곁에 몇 사람이 찾아온다. 바로 길남효, 김민숙,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인 효혜, 마지막으로 자신을 따르는 주민식이었다.
길남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병윤에게 묻는다.
“요즘 몸은 어떠냐?”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내일쯤에는 일선에 복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으음’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꼭 군에 있어야 되는 건가? 하아. 잘못하면 귀중한 아들 초상치를 뻔 했다.”
병윤은 그 말에 하하 웃으며 대답한다.
“아버지의 심기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래도 전쟁 중인데 저 혼자만 내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 작은 형님도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주지 않으셨습니까?”
길남효는 그 말에 혀를 차며 말한다.
“쯧쯧. 어째 하나같이 태평하기 그지없냐?”
그 때, 김민숙이 병윤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한다.
“우리 병윤이. 많이 다쳤지. 그래 몸은 괜찮고?”
“어머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어머니 남겨두고, 세상을 떠날 인간입니까?”
“난 상당히 걱정스럽다. 해방 전에도 우리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더냐? 난 그런 꼴을 다시는 보기 싫다.”
김민숙의 말에 병윤은 씁쓸한 얼굴을 짓는다.
“어머니...”
“고슴도치도 제 새끼만은 함함하지 않으냐. 내 말이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 이런 꼴을 당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말에 병윤은 어머니 김민숙의 손을 꼭 잡은 뒤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제가 누구 아들입니까? 어머니 걱정은 다시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아들 믿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김민숙은 병윤의 그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쉰다.
여동생 효혜는 새해를 맡아 여덟 살이 되었다. 아이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분별이 가능한 나이였다. 효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병윤을 바라보며 묻는다.
“막내 오빠. 많이 아프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병윤의 손을 만진다. 병윤은 아빠의 미소를 지으며 효혜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대답한다.
“지금 안 아파. 요즘 효혜 우리 아빠 엄마 말 잘 듣고 있지?”
효혜는 그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외친다.
“응! 엄마, 그리고 아빠, 큰 오빠, 작은 오빠가 말해주는 거 다 하고 있어. 그리고 피난처의 아이들이랑 같이 놀고 있어.”
“그랬어요? 우리 효혜. 장하네.”
“히히히.”
효혜가 함박웃음을 짓자 병윤 역시 절로 미소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민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병윤에게 말한다.
“휴. 장교님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어이쿠. 내 처남 왔는가?”
‘처남’이라는 단에 순간 길남효와 김민숙의 눈빛이 번뜩인다. 그리고 효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병윤과 주민식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주민식은 갑작스런 시선의 집중에 ‘끙’ 침음을 흘리며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병윤은 주민식의 당황스런 표정에 큭큭 웃는다.
============================ 작품 후기 ============================
오른 쪽 귀가 갑자기 통증이 오더군요. 휴우. 편두통, 이통, 비염, 진짜 짜증 나는 것들 뿐입니다. 아 그리고 아마 6.25 전쟁은 1951년 중반 혹은 말에 마무리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