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619화 (619/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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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병윤을 찾아온 가족들은 주민식을 쳐다봤다. 가족들이 알기로 저 사람은 병윤을 따라 다니며 같이 군 생활을 하는 병사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윤이 장난스럽게 ‘처남’이라고 말하는 호칭에 가족들은 뭔가 있나? 라는 눈빛으로 주민식을 바라본다. 그 때, 병윤은 장난을 그만치고, 진지한 얼굴로 주민식에게 물어본다.

“그래. 나 없는 동안 일은 어떻게 되었어?”

주민식은 그 물음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대답한다.

“일이라면 많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장교님이 쉬는 동안 일의 양이 쌓여서 문제지만요.”

“밤 샐 정도냐?”

주민식은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원래 쉬야할 저녁 중 1시간 투자하면 처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병윤은 다행이라는 얼굴을 짓은 뒤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하아. 그 거 참 다행이군. 내일이면 복귀할 테니까 정리를 좀 해둬.”

“예. 예. 알겠습니다.”

그 때, 주민식을 쳐다보던 길남효가 병윤에게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저 청년은 내가 알기로 너를 따라다니던 병사라고 들었는데. 처남이라니. 허참. 나 몰래 약속한 처자라도 있었느냐?”

“하하. 확정지을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으음. 네 나이 이제 스물하고도 여섯이 지났지. 이립까지는 불과 4년 남았다. 이립까지는 어떻게든 네가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

“끙. 꼭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길남효는 그 말에 ‘크흠크흠’ 기침을 해대며 대답한다.

“똑똑한 네가 잘 해주리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억지로 너나 병주에게 여자를 붙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병윤은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내뱉는다. 주민식은 병윤과 길남효의 대화를 들으면서 뭔가 쪼이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또 동시에 누군가를 생각한다.

‘내 동생 미혜가 이런 기분일까?’

오늘만큼은 주민식도 미혜의 기분을 이해했다.

한편 같은 시각, 어느 사무실 안에 양복을 입은 신성모는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핸드폰에 들리는 목소리에 ‘예. 예.’ 대답만 했다. 그리고 통화가 끝나자 신성모는 핸드폰 뚜껑을 닫고, 혼백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끄으으응...”

신성모에게 걸려온 전화는 자신이 따르는 이 대통령에게서 나온 전화였다. 병윤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 대통령이 신성모에게 이번 사건의 책임을 이렇게 마무리하겠다고 통보를 내린 것이다. 한참 혼백이 나간 신성모가 다시 정신을 차릴 시점은 사무실 안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였다.

-끼이익!-

신성모가 실성이 나간 사람처럼 눈빛을 굴려 사무실로 들어온 사람의 모습을 바라본다. 사무실에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자신의 사위라고 할 수 있는 김윤근이었다. 김윤근의 얼굴을 보자 신성모는 아까 이 대통령이 전한 말을 생각했다.

-자네 꽤 재밌는 일을 벌였더군. 발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자네는 정도를 지나치게 했어. 그러니 자네에게도 그 책임을 물어야겠지? 아마 자네는 파면 선으로 끝나겠지만 이 사건의 주요 책임자는... 이런 말하기 그렇군. 똑똑한 자네라면 내 말 뜻을 잘 알고 있을 걸세.-

당연히 이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신성모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목숨을 내놓아라. 이런 것인가? 제기랄. 뒷돈은 자기가 받았으면서...’

사실 신성모는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원래 국민방위군 사건은 이 대통령을 위한 정치자금을 획득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한낱 양민들의 죽음은 당연한 희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나니까 이 대통령은 자신을 아예 버렸다.

사건의 책임을 지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열매는 자기가 쏙 먹고, 일과 또 책임은 자신이 지는 셈이다. 신성모는 이런 결과에 솔직히 너무나도 억울했다. 하지만 이런 일일수록 남에게 뒤집어씌워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일을 벌였지만 그 남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병윤을 고문했던 사실이 들켰고, 결국 이런 파국의 결과를 내놓게 되었다. 그 때, 신성모의 귓가에 조심스런 음성이 들린다.

“저... 장인어른...”

신성모는 연신 불안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 김윤근을 쳐다본다. 김윤근의 얼굴을 보자 신성모는 한숨이 나온다. 신성모는 김윤근에게 나지막히 말한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신성모의 말에 김윤근은 연신 불안한 눈초리로 눈동자를 굴러가며 용건을 꺼낸다.

“이번 사건. 과연 잘 마무리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신성모는 말이 턱하고 막혔다. 신성모가 김윤근의 물음에 침묵을 하자 김윤근은 불안한 눈빛이 한층 더 증폭된다. 김윤근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한다.

“저... 저... 살 수 있는 것입니까?”

“나가보게.”

“장인어른!”

신성모는 답답한 표정으로 김윤근을 일갈한다.

“나가보라고!”

김윤근은 신성모의 일갈에 ‘힉’ 소리를 내며 금방 사무소 바깥으로 나간다. 신성모는 그런 한심한 사위를 보고 한숨을 내쉰다.

‘미치겠군.’

신성모는 검지로 책상 위를 두들기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동시에 무슨 방법을 찾기 위해 맹렬히 생각을 한다. 그러나 대처방법은 없었다. 결국 사건을 마무리하려면 이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처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책임에 병윤을 비롯한 동협 그룹을 포함시키고자 했지만 얄궂게도 동협 그룹이 지원하는 부대는 관리와 지원을 잘 했는지 오히려 그 부대 사람들은 처음 들어올 때보다 살이 더 쪘다는 정보를 들었다.

결국 신성모는 시간을 들여 맹렬히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1951년 1월 31일, TV의 화면 속에서 사현TV의 보도자인 백현국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예.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도 국민방위군 관련 희생자 유족들이 군부대 앞에서 시위를 하고 나섰습니다. 지금 그 곳에 취재하고 있는 기자와 연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준휘 기자.-

그러자 TV 화면은 바뀌어 어느 군부대 앞에서 사람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 장면에서 옷을 두툼하게 입은 박준휘 기자가 손에 든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대며 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예. 박준휘 기자입니다. 오늘도 여김 없이 국민방위군 소속 부대 앞에서 유족들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유족 몇 명은 아예 군부대 앞에서 천막을 치면서 시위에 돌입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화면은 백현국 보도자로 바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치 대화를 하듯 양 쪽에서 백현국 보도자와 박준휘 기자의 화면이 동시에 나타난다. 백현국 기자가 먼저 물었다.

-군부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현재 국민방위군 군부대에서는 책임자들이 유족 앞에 나서서 설명을 했지만 격앙한 유족들의 계란세례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곤욕을 치르기는 했지만 다행히 양쪽 다 부상자는 없었습니다.-

-현재 희생자들의 시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유족들의 요구대로 군부대에서 시신을 인양해주었습니다. 어느 한 유족이 시신을 들고, 오열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갔던 내 아들이 빨갱이의 총탄에 숨을 거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군 인사들이 괴롭히다 가냐’며 그렇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후에 유족들이 모여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되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원래 국민방위군 내부에 청 OOO부대와 백 OOO부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선 원래 국민방위군 설치 법안이 가결되었을 때, 국민방위군의 관리와 보급 줄이 둘로 나뉘어져 있었기에 따로 부대를 설치하였습니다.-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예. 먼저 청 OOO부대는 현재 국군에 군 물자를 납품하고 있는 동협 그룹에서 물자 지원과 관리를 하는 부대이고, 백 OOO부대는 대한청년단에서 물자 지원과 관리를 하는 부대였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그 백 OOO부대에서만 일어났습니다.-

-청 OOO부대에서는 그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오히려 청 OOO부대 사항을 외부로 공개를 해서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청 OOO부대가 어떻게 운영 관리되었는지 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 OOO부대의 사정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사건의 정보를 그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은 동협 그룹이 작성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관리 내역과 물자 내역 기록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현재 청 OOO부대의 관리내역은 감찰관들이 먼저 조사를 해봤지만 문제가 없었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흠. 사건이 터진 곳이 백 OOO부대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백 OOO부대의 관리내역부터 살펴봐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원래 그 것이 맞는 순서이지만 그 백 OOO부대를 관리, 지원하는 대한청년단 쪽에서 우리의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왜 그렇죠?-

-정식적인 허가를 받지 않은 정부의 인사가 아니라는 답변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감찰관이 그 쪽을 파헤치고 있겠군요.-

-예. 국방부 쪽에서 그 백 OOO부대로 감찰관들을 파견하여 사정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감찰을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확인된 정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감찰관과 취재를 해보지 않았습니까?-

-시도를 해보았지만 거절을 당했습니다. 아직 조사 초창기라서 답변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대한청년단이 현 국방부 장관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괴소문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아직 확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만 현재까지 대한청년단 간부와 현 국방부 장관과 접촉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괴소문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판별하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유족 한 분과 취재 가능합니까?-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화면은 완전히 박휘준 기자 쪽으로 넘어갔고, 박휘준 기자는 군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유족들을 만나며 그 중 한 사람을 취재에 응하는데 성공했다. 박휘준 기자의 취재에 응한 사람은 한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었고, 중년 여성은 매우 격앙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휘준 기자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년 여성에게 질문을 던진다.

-전 사현TV 박휘준 기자라고 합니다. 현재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중년 여성의 모자이크된 얼굴과 가명의 자막이 뜬다. 그리고 음성변조된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내 자식이 죽었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소집장에 내 아들을 끌고 와놓고는 이렇게 죽은 사람처럼 변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

-......-

-나라에서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내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전투하다 죽은 것이 아니라! 훈련받다 죽은 것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억울해! 얼마나 애지중지하게 키운 내 자식인데! 왜 내 자식이 희생되어야 하냐고!-

중년 여성의 격앙한 반응에 박휘준 기자는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중년 여성을 진정시킨다.

-그 아들 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제 취재에 협조해주지 않겠습니까?-

-... 그래서 댁이 물어볼 사항은 뭐야?-

-혹시 그 아들 님이 국민방위군에 들어간 직후부터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없어. 죽었다는 소식만 처음 들었어.-

-혹시 그 죽었다는 소식 중간에 면회를 갈 생각은 없었습니까?-

-당연히 있었지. 그런데 그 군부대에서 거절을 하더라고.-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봤습니까?-

-군부대에서 기밀사항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하더라고. 그 말을 들으니 얼마나 답답한지 모르겠어.-

-알겠습니다. 혹시 처음 아들 님이...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해?! 내 아들이 죽었어! 내 아들이 죽었다고! 지금 이렇게 저 썩을 곳 앞에서 외치고 있잖아!-

-예. 알겠습니다. 현재 유족 분께서 사정을 알고 있습니까?-

-자세한 것은 몰라. 다 신문이나 TV에서 찾아보지. 군부대에선 전혀 안 알려줘. 아니 그 썩을 놈의 백 OOO부대의 정보만 안 알려줘! 내 아들이 희생된 곳이 그 곳인데. 알려주지 않는 것이 말이 돼!?-

-으음. 그 외에는 없습니까?-

-그리고 그 대한청년단 사람들이 찾아와서 우리들을 보고 빨갱이로 몰은 적이 있어.-

-예?! 그게 사실입니까?-

-어제인가 그 쪽에서 사람 몇 명이 몽둥이를 들고 찾아와서 다른 유족들과 같이 합동으로 치른 제사상을 부수고, 우리들을 빨갱이로 몰아 구타하려고 한 적이 있어.-

-혹시 그들이 그랬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뭐야!? 그 놈들이랑 한 패야!?-

-아니 그게 아니라. 증거가 있어야 그들이 그랬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겠습니까?-

-몇 명 사람들이 몽둥이에 맞고 병원에 갔어. 그리고 그 인원들은 군부대 쪽에서 몇 명 찾아오더니 끌고 갔더라고.-

-그게 언제입니까?-

-그... 난 잘 모르겠어. 점심과 저녁 사이라는 것은 아는데.-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유족들과 취재를 했고, 박휘준 기자는 다시 촬영기 앞에 서서 백현국 보도자에게 말한다.

-예.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어제자로 유족들에게 대한청년단이 찾아와 구타를 하고, 제사상을 부쉈다는 정황이 여러 차례 확인되었습니다.-

백현국 보도자가 놀란 얼굴로 박휘준 기자에게 묻는다.

-그게 정말입니까?-

-현재 유족들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똑같이 주장을 하였으니 신뢰도가 놓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에 대해서 정교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그 쪽에 새로운 소식이 나오면 꼭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박휘준 기자였습니다.-

-군부대 앞 유족들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현재 군부대 안에 취재하는 기자를 연결하겠습니다...-

그 이후에 백현국 보도자는 이번 국민방위군 사건에 대해서 상세히 보도를 하였고, 그 TV화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TV가 놓인 방 안에서 한 노인이 굳은 얼굴을 하고선 옆에 있는 같은 나이 대의 양복을 입은 노인에게 말한다.

“이거 참으로 난리군. 그래서 그 쪽으로 가는 거야?”

“뭐 그렇지. 요즘 그 것 때문에 상당히 바쁘거든.”

============================ 작품 후기 ============================

국민방위군 사건도 이제 몇 편 남지 않았군요. 아마 재판 과정은 몇 개월 뒤에 일어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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