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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어느 방 안, 소파에 앉은 평상복 차림의 노인이 양복 차림의 노인을 바라본다. 양복 차림의 노인 역시 평상복 차림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 때, 평상복 차림의 노인이 양복차림의 노인에게 한 마디 말한다.
“현재 자네가 속한 당 쪽에서는 어떻게 처신하기로 했어?”
양복차림의 노인은 ‘흠흠’ 기침소리를 낸 후 대답한다.
“별 거 있나? 이런 사태는 뻔히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일단 언론에서 터뜨린 것도 있고, 행동이 늦으면 그만큼 사람들에게 욕을 먹겠지.”
“아 그렇겠군.”
그 때, 양복차림의 노인이 영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평상복의 노인을 보며 묻는다.
“그런데 병윤이 상태는 어때?”
그 말에 평상복의 노인 아니 병윤의 아버지인 길남효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자네가 걱정할 필요 없이 이미 일선에 복귀했다네.”
그 말에 양복차림의 노인 장성환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고문을 당했다고 하던데. 금방 일선에 복귀해도 되는 거야?”
“요즘 팔 다리도 재생하는 시대인데. 며칠이면 몸 회복하고도 남겠지.”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그런 험한 꼴을 당했는데도 일선에 복귀한다니. 허참.”
“자기가 일선에 복귀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찌 이 아비가 말리겠는가?”
“그래도 그건 좀 그렇지 않나? 하여튼 병윤이가 그렇게 결정했으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이번 고문 사건으로 인해서 신성모는 자승자박이 된 셈이군.”
길남효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그렇지. 그 작자가 이번 사건에서 빠져나가려고 발악을 하다 된통 걸린 거지. 하여튼 이번 일로 병윤의 족쇄가 될 만한 군부의 세력은 제거가 된 셈이지.”
길남효는 그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말한다.
“애꿎은 사람들만 희생되었군. 그 사람들이 우리 대화를 들으면 멱살을 잡겠지. 내 아들, 남편 살려내라고 말이야.”
장성환은 그 말에 텁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냉정한 말이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지. 그리고 나와 자네 쪽이 이번 사건을 파헤치는 쪽이니 이번 사건의 유족들을 달래기 위해서 철저히 노력을 해야지.”
길남효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장성환은 그런 길남효에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요즘 피난촌 건설은 어때?”
“부산에 모인 피난민들도 슬슬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고, 또 여기에 정착한 인원들도 이제 줄어드니 완급 조절을 해야지. 또 동시에 정부와 협조를 하여 복구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지.”
장성환은 그 말에 ‘끙’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그럴 돈이 있어? 몇 천 명 규모가 아닐 것 같은데 말이지?”
“내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병윤이 대주고 있고, 또 병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일이니 나로썬 별 걱정은 없어.”
“흠. 하기야. 그나마 여기서 세계적 규모의 기업이라 할 수 있는 동협 그룹이 있기에 이런 사업이 가능한가? 그런데 평상시대로라면 이번 기회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거나 아니면 사내유보금(비상시 현금이 필요한 상황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돈.)을 만들지 않겠어?”
“병윤의 말은 어차피 돈을 왕창 벌 기회는 많다고 하더라고. 지금 규모를 줄여도 별 상관은 없다고 전했지.”
장성환은 그 말에 조금 아깝다는 얼굴을 내포한다.
“허참. 어떻게 그런 통 큰 결정을 내리는지 모르겠군. 하여튼 이번 일로 자네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얻을 것 같군.”
“정치에 뜻이 없으니 그 지지가 말짱 헛것이지 않은가?”
“참나 주변 사람이 잘도 놔두겠군.”
“뭘...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자네도 주변 사람이지 않나?”
장성환은 그 말에 하하 웃으며 대답한다.
“그럴 수도 있겠군. 하기야 자네와 의형제지간이라는 것이 의외로 많은 이득을 만들고 있어. 그런데 자네를 따르는 사람들이 자네보고 정치에 진출하라는 말은 하지 않은가?”
“이 사람이 날 정치에 끌어들일 생각인가?”
“흠... 자네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죽산 일파라고 하던데...”
“뭐. 그건 사실 죽산(조봉암의 호)과 감옥에서 같이 지낸 경험 때문에 그렇지. 하여튼 고루고루 지내고 있어.”
“하기야 여당 쪽에서도 야당 쪽에서도 자네를 싫어하지 않지. 다만 동북청년단 같은 극우세력들과는 경원시하는 사이이지 않나?”
‘동북청년단’의 언급에 길남효의 얼굴은 찡그려진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 ‘동북청년단’을 포함한 극우단체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간인 학살을 언급했기에 극우단체들이 할 만한 일들은 그저 정부의 발표에 지지선언을 강하게 내보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밖에 없었다.
또 애꿎은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비난 야유하거나 유력인사의 저택 안에 돌을 던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적으로 보일만한 사람들을 ‘공인 빨갱이’로 낙인하고는 그 사람들을 위협하는 행동을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 정상적인 보수 우익인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백범 김구였다. 백범 김구는 전형적인 민족주의 우익 인사였고, 일반 사람들 역시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극우단체 인원들이 모여서 김구의 저택에 돌을 던지며 ‘빨갱이’로 야유하는 일이 발생했다. 물론 그 사태는 경찰들의 출동과 진압에 의해 금방 끝이 났지만 말이다.
길남효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이 별장에서도 극우단체 인원들이 모여서 시위를 벌인 적이 있었다. 정원에서 놀고 있던 효혜는 극우단체 인원들이 던진 돌에 하마터면 다칠 뻔 했다. 물론 그 인원들은 그 별장 주위에 살고 있는 피난민들에게 붙들려 구타당한 뒤 쫓겨났다. 하여튼 이번 일로 인해 길남효는 이 대통령에게 핸드폰으로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이 대통령은 그런 일은 들은 적이 없다고 하면서도 일단 사설 경비인원들을 별장 밖에 주둔시키는 것을 허락받았다. 그 이후부터는 극우단체 인원들이 이 곳에 모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어린 막내딸 효혜가 다칠 뻔 한일로 인해서 길남효는 극우단체 인원이나 단체이름을 듣자마자 얼굴부터 대놓고 찌푸릴 정도였다.
“그래. 빨갱이 족속들과 그 썩을 놈들을 빼고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있지.”
빨갱이와는 이미 아들들 때문에 경원시하고 있었다. 김일성 일파가 사람들을 보내 병윤의 사업장에 테러를 가하거나 암살을 저질렀던 것 때문에 길남효는 빨갱이라 하면 이빨을 부득부득 갈았다. 물론 길남효가 생각하는 빨갱이는 현재 전쟁을 벌이고 있는 북한 정부 쪽 당사자들에 한해서였다.
“그런데 죽산 그 사람이 예전 공산당 일을 했다고 하던데...”
“그거야 예전 일이지. 지금은 오히려 정부에 협조하지 않은가?”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치인들 시각에선 죽산 그 작자는 전향자라는 시선이 강해. 강경한 인사들에게는 아예 사보타주(내부 폭파범)가 아닌가? 라는 말이 돌 정도로 말이야.”
그 말에 길남효는 조금 기가 막힌 얼굴을 지으며 한 마디 말한다.
“허참. 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연이 있으니 지내는 거지.”
“그러면 그가 정당을 따로 만든다면 자넨 후원할 의사가 있는가?”
그 말에 길남효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이렇게 대답한다.
“전폭적으로 후원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다른 정치단체에 주는 후원만큼은 해줄 용의가 있네. 내가 판단하는 죽산은 나쁜 사람은 아니야.”
“흠. 남들 시선에는 죽산과 붙어 다닌다고 오해를...”
“그 이야기는 그만두지. 아직까지 죽산은 따로 정치 독립을 할 생각은 없나봐. 또 지금은 전시이지 않은가?”
“내가 앞서 나갔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 다른 화제로 넘어가자고.”
길남효는 그 말에 편안한 얼굴을 하고선 고개를 끄덕인다.
“좋네. 자네가 말할 다른 화제는 어떤 건가?”
“이번에 유엔에서 6.25 전쟁에서 발생한 난민에 대한 실상을 알기 위해 사람들을 파견했다고 하더군.”
“그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들었네.”
“하기야 들을 수 있겠지. 그런데 난민 실상을 알기 위해 이번에 나온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길남효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 이내 진지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알지. 전 미국 영부인인 안나 엘리너 루스벨트가 아닌가?”
“그래. 맞아. 그 것 때문에 정부 쪽에서도 난리가 아니더라고. 외무부 쪽에서도 난리가 아니더라고.”
“쯧. 여러 사람들 피곤하게 만들겠군.”
“그런데 그 쪽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일단 유엔 쪽에서도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품을 각자 내주는 편이지. 그러나 그건 각 국가의 잉여 물자들을 배분하는데 지나지 않아. 간단히 말하면 물자만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지.”
“그건 나도 알고 있네. 그런데 왜 자네 쪽으로 가는 건지...”
“뭐긴 뭔가. 내 아들 때문에 그렇지.”
“아들? 아아... 그렇지. 병재가 미국에서 있었지.”
“그래.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가족밖에 더 되겠어? 물론 찾아보자면 정부 인사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나를 찾아가는 것이 더 빠르지.”
“으음. 그렇군. 이해가 잘 되는군. 그런데 자신이 있는가?”
그 말에 길남효는 소파에 등과 목을 기대며 말한다.
“자신은 무슨. 그저 그 사람에게 현재 실상을 보여줄 생각이야. 사실 피난촌을 안내한다고 하면서 멀쩡한 상류층 집을 소개해주면 그 사람에게 기분이 나쁘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 정부 쪽에서 국격 논란이...”
“나라면 아예 형편을 알려줌으로써 세계의 지원을 받아내는 것을 택할 거야.”
“끙... 하여튼 그 엘리너 전 영부인에게는 피난촌을 소개해주고 끝인가?”
“뭣하면 자네 지역구를 소개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무... 뭐?! 으음? 아니지. 그 것도 나쁘진 않겠지. 피난민에게 들인 예산을 빼먹지는 않았으니 말이야.”
그 말에 길남효는 한쪽 눈을 높이 뜨며 장성환을 쳐다본다.
“설마... 예산 빼먹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
그 말에 장성환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길남효의 눈치를 바라본다.
“하하하. 그게 말이지...”
“내가 자네에게 섭섭해준 것이 있는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장성환은 그 말에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한다.
“끙. 미안하이. 지역구에 돌아가면 다시 되돌려놓겠네.”
“휴. 내 아들들이 자네 형편을 챙겨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기는 하지만...”
“하지만?”
“휴우. 사실 지역구에서 예산을 책정할 때, 예산이 부족할 때가 많아. 그럴 때마다 일정 부분 예산을 떼어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긴급으로 채워 넣는 경우가 많지. 난 결코 그걸 내 재산으로 배를 채울 생각은 없어.”
“그게 사실인가?”
“무엇하면 아까의 발언 공증해도 상관없다네.”
“공증이라... 그렇게 말한다면 사실이겠지.”
그렇게 길남효의 말을 끝으로 대화가 뚝 끊어진다.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잠시 흐르고, 이내 길남효가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리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에휴. 복잡하다. 그 것보다 자네 등산을 한다는 말을 들었네.”
그 말에 장성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지. 일단 우리들이 산골에서 자라지 않았는가? 역시 등산이 마음에 맞는 것 같아서 말이지.”
“끙. 부럽군.”
“자네도 뭐하면 등산 한 번 해보지 않겠나?”
“그럴 여력이 없어서 말이지. 일단 부산에 있는 피난촌 건설이 끝난 뒤에 병주의 부탁이 있어서 말이지.”
“병주의 부탁? 아아... 그거 말인가? 하아. 아쉽게 되었군.”
병주의 부탁이라는 것은 병주가 자기 아버지인 길남효에게 부산의 피난촌 건설이 끝나면 북부 지역에 재건 부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원래는 동협 건설이 도맡아서 할 일이었지만 길남효가 재단을 통해 피난촌 건설을 주도한 것이 꽤 효과가 좋아서 병주가 이어서 부탁한 것이다. 물론 길남효는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에휴. 자네 아들들은 노인네를 그렇게 부려먹지 못해서 안달이군.”
그 말에 길남효는 농담조로 말한다.
“그래. 그 불효자식들은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흥.”
“우리 평균이도 어서 커서 불효자식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지.”
“그 불효자식들이 자네를 보고 백부님이라고 말한 것 있었나?”
“어이쿠. 그렇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그 후 두 사람은 바둑을 두면서 시간을 보냈다.
같은 시각, 병주는 누군가와 같이 전투 장기를 둔다. 병주는 말을 이리저리 움직이고는 이내 주사위를 굴리며 장기를 진행해 나갔다. 그 후 결과는 나타났다. 당연히 병주의 승리로 게임은 끝이 났다. 병주의 상대역이 된 사람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절 초창기에 박살시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병주는 그 말에 지지않고 대답한다.
“실전에서 정정당당이 있을 것 같아?”
“여기는 전투 장기이지 않습니까? 지금은 실제 작전회의 시간도 아니고...”
그 말에 병주는 상대방을 향해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한다.
“난 여러 번 봐준 것 같은데? 그걸 활용하지 못한 것은 자네 책임이지 않나?”
그 말에 상대방은 ‘끙’ 침음을 흘릴 뿐이었다. 병주의 전속부관 정철회 대위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매번 전패를 당하니 재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러려고 대위 직에 오른 것인지 자괴감이 들고 괴롭습니다.”
“아직도 공부할 시기라는 거지.”
“끙. 전 사령관님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멀었다는 것입니까?”
“아직 한참 멀었지. 그리고 솔직히 네가 나 따라다닌지 몇 개월 채 되지 않았잖아.”
“그건...”
“하여튼 이 것으로 자네의 부족함을 잘 알았겠지?”
“큭... 하아... 제가 감히 사령관님을 이길 생각을 하다니. 아직 멀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국민방위군 사건 터진 것 때문에 정부 쪽에서 난리났다고 하던데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적어도 국방부 장관은 잘리는 거지.”
“끙. 하기야 지금 국방부 장관은 욕을 해도 모자를 양반이기는 하지만. 후임 국방부 장관이 사령관님께 협조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번 사건을 환기시키기 위해 공세를 계획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병주는 그 말에 묘한 미소를 짓는다. 그런 병주의 모습을 보자 정철회 대위는 역시라는 표정으로 병주가 이 사태를 대비하고 있는 걸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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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때문에 늦게 올리게 됩니다. 하아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