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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병주는 얼굴을 구기며 핸드폰에 대고 묻는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흠. 사실 말이지. 너무 목표가 작다는 생각이 들어.-
“그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저번에 자네가 한 번 말했지. 이런 시기에 공세종말점을 함부로 늘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이야.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게. 정말 이런 목표로 공세를 할 생각인가?-
그 말에 병주는 딱 잘라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참모들, 군단 내 지휘관들 전부 검토하고, 토의하여 내린 결론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참모총장님 역시 잘 아시지 않습니까? 더 이상 무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
“무리하게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이룬 목표를 자화자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네... 으음. 알고 있었는가?-
“말 못할 사정이라는 것 누구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또 이번 공세가 대중들의 시선을 국민방위군 사건으로부터 돌리기 위함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량에서 벗어난 목표를 잡지는 말아주십시오. 공세종말점을 넘는 작전을 무리하게 시도하다 공세 시작 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하아. 나도 그건 잘 알고 있지만.-
“압니다. 혹시 참모총장님에게 외압을 넣는 상대가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제 형님과 아우가 그에게 압력을 넣어 참모총장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을 금하게 할 것입니다.”
병주의 말이 끝나고, 한동안 핸드폰으로부터 말이 없었다. 그러나 병주는 인내심을 가지고, 육군참모총장의 응답을 기다린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 육군참모총장의 기나긴 장고가 끝나고, 이윽고 대답한다.
-어쩔 수가 없군. 하지만 자네의 고집을 부린 대가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네.-
“물론입니다. 이번 결정으로 저 역시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무리한 결정으로 다 같이 손해를 더 보게 되는 사태만은 피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알겠네. 그럼 자네의 작전대로 일을 진행하게나. 혹여 보고할 사항이 있다면 보고를 하게.-
“예. 알겠습니다!”
결국 육군참모총장과의 통화를 끝낸 병주는 한숨을 푹 쉰다.
‘미치겠군. 역시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정치의 영역이 더더욱 커진단 말이야.’
병주는 난감하다는 얼굴을 지었다. 사실 이번 공세는 정치적인 요소가 많았다. 아니 정치적인 요소 때문에 이번 공세가 결정되었다. 병주는 앞으로도 이런 것이 많아지리라 생각했다.
‘이거 누구 뒷 똥 닦아주는 것도 아니고.’
병주는 입맛이 텁텁했다. 그러나 그에 대해 길게 생각할수록 기분만 더 더러워진다. 결국 병주는 공세에 생각을 집중하게 된다. 다른 데로 생각을 몰두해야 아까의 그 더러운 기분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선은 계속해서 동쪽으로 또 북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공세를 시작한 제 15 기계화사단은 지금 단천의 점령을 완료했을 정도였다. 이윽고 부대들 하나 둘씩 임무의 목표를 완수한다.
혜산 시 부근에 산악강습사단이 공수작전을 벌이며 후방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중공군의 후퇴는 더더욱 가속화되었다. 몇 시간을 들여야 전진할 수 있는 전선의 깊이를 한 시간 만에 전진할 정도였다.
그렇게 공세는 무리 없이 순탄하게 진행되어 간다. 물론 이에 대항하는 중공군들 역시 그냥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역습을 시도한다. 그러나 역습 징후를 바로 포착해버리는 병주에 의해 역습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무리하게 역습을 한 중공군 부대들은 정교하게 짜인 화망에 갈기갈기 찢겼다. 역습이 실패로 돌아가자 중공군 총사령관 임표는 역습시도를 엄금하고 말았다.
결국 3일이 지나서야 한국군이 계획한 공세는 끝이 났다. 정교하게 계획된 공세 작전을 토대로 한국군의 공세는 별 피해 없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공세에 맞선 중공군은 별 피해를 보지 않았다. 임표가 미리 계획한 철수 계획 덕택인지 질서 있게 후퇴하여 병력을 보존하였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로 그냥 전선만 옮긴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세를 과대하게 포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이번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큰 곤란을 겪고 있던 이 대통령과 그 심복들이다.
부산의 경무대 안, 이 대통령은 측근들과 같이 잔치를 벌이면서 이번 일에 대해 자화자찬을 벌이고 있었다.
“하하. 이 것으로 일단은 국민방위군 사건의 여파에서 한시름 놓게 되는 건가?”
그 말에 서울시장에 역임하고 있던 이기붕이 이 대통령을 보고 아부한다.
“축하드립니다. 전하.”
“오. 서울시장이 아닌가? 요즘 재건 때문에 상당히 바쁘다고 들었는데?”
이기붕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정부청사를 포함한 정부기관들과 그리고 망가진 기반들을 우선 재건하고 있습니다. 아직 민간에는 손을 뻗치기 힘듭니다.”
“이런 유능한 자네가 꽤 많이 고생을 하는군.”
“하하. 아닙니다. 이 고생이 오로지 제 하나만의 일입니까? 우리 한민족을 여히 보고, 사랑으로 굽어 살피시는 이 대통령 전하도 참으로 고생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이 대통령은 그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나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은 자네밖에 없군.”
“부족한 제가 보필해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기붕과 이 대통령의 대화를 듣다보면 왠지 간신과 폭군 간에 쏟아지는 대화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 대통령 곁에 있는 측근들은 이기붕에 지지 않겠다는 듯 이 대통령에게 아부를 쏟아낸다.
“이번 일도 전하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하의 위세에 저 흉물스러운 빨갱이 녀석들이 절로 겁에 질려 물러나지 않았습니까?”
“현재 우리 군의 사기는 가히 하늘을 찌른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전하가 만드신 것입니다.”
측근들의 말에 이 대통령의 기분은 하늘을 찌를 듯 고양되었다. 요즘 안 좋은 사건이 자신에게 나타났는데 지금은 그 더러운 기분이 없어진 기분이다. 하지만 뒤를 닦지 않고, 화장실에서 나갈 수 없는 법. 이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이기붕에게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국민방위군 사건의 진행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그 물음에 이기붕 서울시장은 즉각 대답한다.
“현재도 사현TV 등 언론사와 야당 측에서 맹렬히 사건을 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걱정하실 것은 없으리라 봅니다.”
이기붕의 호언장감에 이 대통령이 한 마디 묻는다.
“호오? 자네가 준비한 것이 있는가 보군.”
“사건 전체를 못 막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사실 일을 저지른 것은 전하가 아니라 국방부 장관이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이기붕의 말에 이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게 공감한다.
“암 그렇지. 맞아. 국방부 장관이 쓸데없는 짓을 하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곤란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걸세. 그리고 저번에 쓸데없는 짓을 저질렀고 말이야.”
이기붕은 이 대통령의 말에 기억이 난다는 듯 맞장구를 친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이리 박정하게 고문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람을 보실 줄 아는 전하께서 미리 막지 않았으면 다행입니다.”
이 대통령은 그 말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한다.
“그렇지. 나를 위한다고 말을 해놓고선 나를 곤란하게 만든 자야.”
“그렇다면 이번에 국방부 장관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미 마음을 먹은 지는 오래야. 그런데 적절한 후임이 없어서 조금 고민이기는 하지. 과연 누가 좋을지 고민을 하고 있어.”
이 대통령의 말에 이기붕을 포함한 측근들은 눈을 반짝였다. 국방에 관련한 권력을 지기 위한 자리이다. 눈이 홱까닥 돌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 때, 이기붕이 이 대통령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혹여 전하께서는 누구를 국방부 장관 후임으로 둘지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대통령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지. 사실 능력으로 따지나 경력, 인맥으로 따지나 가장 적절한 인물이 역시 철기 이범석이겠지.”
이 대통령의 말에 이기붕은 ‘헉’ 하고 놀란다.
“하지만 그는 군부에서 어느 정도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다 전에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를 다시 국방부 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군부를 등에 업고, 감히 전하께...”
이기붕은 말끝을 흐린다. 차마 이 대통령의 면전 앞에서 말을 못하겠다는 듯 말이다. 그러자 이 대통령 주변 측근들이 이기붕의 말에 동의한다.
“그렇습니다. 전하. 철기 장군은 분명 능력이 뛰어난 사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그에게 군권을 맡기는 것은 위험합니다.”
“앞에서는 충성을 맹세한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군부라는 힘을 가지면 상당히 위험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또 그는 군부 출신이라서 같은 군인사의 비리를 덮어 내기는커녕 오히려 방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자기들끼리 자리를 해먹으려고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측근들의 말에 이 대통령은 ‘으음’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흘린다.
“그렇기는 하겠군. 그럼 누가 좋을까?”
그러자 측근들은 하나 둘 전부 자기 자신이나 혹은 아는 인맥을 불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귓가에 그리 구미는 당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때, 이기붕이 이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이번 국방부 장관을 저에게 맡겨주신다면 각하를 곤란하게 만드는 국민방위군 사건부터 처리하겠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 말에 미심쩍은 눈빛으로 이기붕을 바라보며 말한다.
“정말 잘 처리할 수 있겠나?”
“정치 사회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의 범위 내에서 끝내겠습니다.”
“크흠... 아직까지 국방부 장관을 교체하는 것은 시기를 두고 볼 일이야. 하지만 이런 일을 저지른 신성모 국방부장관을 해임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
이기붕은 그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한 마디 말한다.
“공석으로 두겠단 말입니까?”
“어차피 합참의장이 대리로 하면 될 일 아니겠나?”
“합참의장인 지청천은 야당 쪽 인사가 아닙니까!? 그가 자기 발로 굴러온 권력을 놓칠 리가 있겠습니까?”
“아.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게.”
이기붕은 그 말에 한 마디 말한다.
“무슨 생각이 있나 보군요.”
“그래. 날 한 번 믿어보게나. 군부 세력들이 내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이미 조치를 취해놨어.”
이기붕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역시 전하이십니다.”
“후후. 뭘 그러나? 그건 그렇고...”
이 대통령은 뭔가 고심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 대통령의 근심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이기붕을 포함한 측근들은 마치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기붕이 재차 이 대통령에게 묻는다.
“혹여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 말에 이 대통령은 얼굴을 굳히며 한 마디 말한다.
“이번 공세를 마무리 지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원래 전선은 혜산-성진 선까지가 아니라 무산-청진 선으로 목표를 잡아 놓았지. 그런데 그 계획을 아예 축소시킨 사람이 있네. 그게 누군지 자네도 잘 알지?”
병주를 언급하는 이 대통령의 말에 이기붕은 ‘헉’하고 식은땀을 흘린다. 이기붕의 반응을 보지 못했는지 이 대통령은 태연하게 이기붕을 포함한 측근들에게 말한다.
“나의 원대한 계획을 그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축소시킨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벌을 내려야할 것 같아서 말이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기붕은 그 말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답한다.
“저... 그 것은...”
이 대통령은 이기붕의 반응을 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렇군. 자네도 그들을 건드리기는 벅찬가 보군.”
그 말에 이기붕은 즉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의 무능함을 꾸짖어주십시오.”
이기붕의 대답에 이 대통령은 실망한 얼굴을 짓는다. 그리고 다른 측근들에게 시선을 돌리자 측근들 역시 이 대통령의 시선을 피한다. 이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간이든 쓸개든 빼어 내올 정도로 충성심을 보이는 측근들이 길씨 일가 중 한 사람을 처벌하겠다는 말에 전부 다 이 대통령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길씨 일가와 대적하기 싫다는 반응이었다.
이 대통령은 그런 측근들의 모습에 속으로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쯧. 이게 어찌 내 나라란 말인가?! 전부 다 길씨 일가들의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나라가 아닌가?’
물론 이 대통령과 길씨 일가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은 관계였다. 그러나 그건 겉모습에 불과했다. 이 대통령은 길씨 일가들의 힘에 대해서 두려워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고개를 숙이더라도 마음속까지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음에 크나큰 경계심이 들었다.
지금도 자신에게 충성심이 깊은 수하들이 길씨 일가에 대해 언급하자마자 말을 피하는 광경이었다. 이 대통령은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 때, 이기붕이 결심을 했는지 이 대통령에게 한 마디 말한다.
“하하. 전하. 전하의 그 원대한 계획을 멋대로 축소시킨 과는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공을 세우지 않았습니까? 과를 공으로 상쇄시키는 것으로 끝내면 어떻겠습니까?”
“끙... 마음에 들지 않는군. 어쩔 수 없나?”
이 대통령이 병주에 대해 처벌하는 것을 단념하자 이기붕을 포함한 측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들은 이 대통령에게 맹렬히 충성한다고 하지만 이 대통령을 위해 길씨 일가와 맞설만한 힘과 용기가 부족했다. 이기붕은 이내 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일단 기획처 건설이사 자리가 비지 않았습니까?”
“그건 왜?”
“그 자리에 길씨 일가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길남효를 임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흠...”
“아시다시피 그는 재단 자금을 이용해 피난처 건설을 도맡아 했습니다. 또 조만간 그의 활동에 미국 전 영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가 유엔 난민 조사관이 되어 이번에 피난민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온다고 합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그를 기획처 건설이사로 임명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 대통령은 이기붕의 제안에 미심쩍다는 얼굴을 내보인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기붕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 대통령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기붕에게 묻는다.
“그런데 그가 그 자리에 앉겠어? 우리 쪽이 내주는 자리도 마다한 사람이지 않나?”
이기붕은 그 말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 대통령에게 대답한다.
“아까 전하의 원대한 계획을 축소시킨 자가 있지 않습니까? 만약 자리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면 길병주 중장을 그 일로 처벌하겠다고 공표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이 대통령은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기붕에게 말한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군. 자네 밖에 없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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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신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