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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626화 (62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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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이 대통령이 이기붕에 대해 대놓고 칭찬하며 좋아라 하자 이 대통령의 측근들은 이기붕에 대해 질시와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본다.

‘흥. 별 것도 없는 애송이가.’

‘부인 덕으로 이 자리에 겨우겨우 오른 무능한 자식.’

‘으음. 만송(이기붕의 호)에게 줄이라도 대야 하나?’

‘만송이 더더욱 위세를 부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으니 친하게 지내볼까?’

그렇게 이기붕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대통령의 눈에 띄지 않는 자신들의 형편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다음에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이기붕과 이 대통령 사이를 지켜볼 뿐이다.

이기붕은 경무대에서 나오면서 생각한다.

‘그래. 이 것으로 달려보는 거다.’

이기붕은 일생일대의 기회가 자신에게 쏠린다고 생각했다. 현재 이 대통령의 나이는 무척이나 많았다. 평상시라면 정계 은퇴를 해야 할 나이였다. 만약 자신이 이 대통령의 눈에 확실히 든다면 자신은 곧 이 대통령의 뒤를 잇는 후계자 내지는 2인자로 군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기붕의 기분이 고양되었다.

그러나 아직 그 자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엄청 가까워졌다는 것뿐이지. 하지만 이기붕은 마음을 좋게 먹었다. 일단은 권력의 중추에 이만큼이나 가까워진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기붕은 곧 운전기사가 열어준 차 안으로 들어가 좌석에 등대며 이후 운전석에 자리 잡은 운전기사에게 쪽지를 건네주며 말한다.

“이 쪽으로 가게나.”

운전기사는 그 말에 이기붕을 바라본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시장님.”

운전기사는 곧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은 뒤 엑셀을 밟자 바퀴가 회전하며 차는 움직인다. 그리고 이기붕을 태운 차량은 부산 시내의 도로 위를 달려간다.

이기붕은 차창 밖 너머에 있는 부산 시내를 바라보며 감상에 잠긴다. 일단 부산은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은 도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루어져 내려오는 건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도로 중간에 재개발하는 모습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새로 기지개를 켜기 위해 재건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서울도 저렇게 빨리 재건해야 하는데 말이야.’

일단 자신이 담당하는 서울은 조선시대부터 수도로써 확고히 자리를 잡은 곳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 전부터 전쟁에 휘말려 지금은 폐허 치우기에 바빴다. 간신히 예산을 들여 중요한 시설을 재건하는 분위기였다.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기붕은 현실을 생각하자 한숨이 나온다. 이 대통령의 눈에 띄는 것도 좋지만 그에 걸 맞는 능력과 성과를 해줘야 신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부인인 박 마리아가 북한군 전향자들을 등용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수장은 ‘박출환’이라는 작자로 척 보기에도 상당히 교활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를 자신의 부인이 무척이나 아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기붕은 저런 작자들을 자신의 부인이 어떻게 쓸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왈패들은 뒤에서 쓰다가 버리겠지.’

박 마리아의 인성을 잘 알고 있는 이기붕에게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차량은 어느 한 저택 앞에 정차했고, 차를 멈춰 세운 운전기사는 등을 돌리며 이기붕에게 말한다.

“저 시장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흠.”

이기붕은 얼른 차량에서 내리며 저택을 바라본다. 저택은 상상했던 것보다 볼품이 없었다. 원래 이기붕은 대궐 같은 저택을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이기붕은 저택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혀를 차며 한 마디 말한다.

“잘 산다고 이야기를 들어도 저택은 그렇지 못하군.”

그러나 이기붕과 같이 차에서 내려 보좌하고 있는 운전기사의 눈에는 저택의 모습이 충분히 호화스럽기 그지없었다. 이기붕은 운전기사에게 시선을 두고는 한 마디 말한다.

“자네는 차량을 지키고 있게나. 난 여기에 볼 일이 있네.”

그 말에 운전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시장님.”

이기붕은 그 대답을 듣자 운전기사에게 시선을 떼고는 이내 저택의 초인종을 누른다.

-띵동!-

그러자 초인종에서 어느 중장년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누구십니까?-

그 물음에 이기붕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현재 서울시장을 맡고 있는 만송 이기붕이라고 합니다.”

-예? 서울시장이라면... 으음... 잠시만요.-

시간이 조금 흐르자 중년 여성이 대문을 열고, 이기붕을 반긴다. 바로 병재, 병주, 병윤의 어머니인 김민숙이었다. 김민숙은 조신하게 이기붕에게 인사하며 한 마디 말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이기붕은 김민숙에게 만연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하하. 부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 집 주인은 계십니까?”

김민숙은 그 말에 ‘으음’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대답한다.

“있기는 한데... 지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입니다.”

이기붕은 그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

“이런 그렇습니까? 원래 미리 연락하려고 했는데, 일이 급해서 몸이 먼저 찾아와 이런 일이 벌어지는군요.”

김민숙은 그 대답에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일단 여기에 서 있기는 뭐하니 안으로 들겠습니다.”

이기붕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민숙을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저택 안 정원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전쟁의 참화와는 딴 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기붕은 정원의 아담한 돌길을 걸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왔고, 김민숙은 이기붕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단 제 남편에게 소식을 알리겠습니다.”

그 말에 이기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먼저 이야기하지 않고, 찾아온 점에 대해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해주십시오.”

김민숙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리고 소파에 앉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호호 아닙니다.”

김민숙의 배려로 이기붕은 거실의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저택 안을 두리번거린다. 이기붕이 볼 때는 이 저택 안은 그리 호화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저택 안은 상류층이 살법할 정도로 장식품, 가구, 전자제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기붕은 저택 안 물건을 보면서 자신의 집에도 물건 하나를 마련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편, 김민숙은 자신의 남편이 있는 방문을 똑! 똑! 두들기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그 곳에는 의자에 앉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이 눈에 보였다. 길남효는 방안으로 들어온 김민숙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묻는다.

“무슨 일이야?”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응? 그 무슨 소리야? 내가 알기로 지금 이 시각에 찾아오겠다는 사람은 없는 걸로 아는데...?”

“그게 저...”

김민숙은 길남효에게 서울시장 이기붕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기붕의 방문에 길남효는 상당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허. 그 사람이 왜 날 찾아왔지?”

그러자 아까 길남효와 이야기를 나눴던 상대방이 한 마디 말한다. 바로 몽양 여운형이었다.

“이보게. 남효. 서울시장 만송이 찾아왔다니 그 무슨 소리인가?”

여운형의 물음에 길남효 역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한다.

“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라면 절 찾을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절 찾아 왔는지...”

여운형은 그 대답에 ‘흠’ 소리를 내며 말한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나 보군. 개인적인 일로 찾아오지는 않은 것 같네.”

“그렇습니까?”

“그래. 개인적인 일이었다면 미리 연락을 하고 찾아왔겠지. 아마 일이 급해서 찾아온 것일지도 몰라.”

그 말에 길남효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운형에게 대답한다.

“흠. 형님의 말씀이 그러하시다면야 일단 그를 한 번 만나봐야겠습니다.”

“아니. 나도 같이 가지. 그의 이야기를 한 번 듣고 싶군.”

여운형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길남효는 당황한다.

“예? 하지만...”

“나도 관심이 생겼네. 최근 만송은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다는 정보가 있어서 말이지.”

“으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운형은 걱정 말라는 얼굴을 지으며 길남효에게 말한다.

“알고 있네. 여기서 여야 간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테니.”

그 말에 길남효는 조금 불안했지만 일단 동의했다. 길남효, 여운형은 방에서 나가 거실로 향한다. 그리고 거실의 소파에 앉아 차분히 기다리고 있는 이기붕을 발견한다. 이기붕 역시 자신을 발견한 두 사람을 본다. 하지만 이기붕은 길남효 옆에 서 있는 여운형의 모습을 보고 ‘음’ 침음을 흘린다.

여운형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이 대통령에게 있어서 꽤 경계심을 가진 상대였다. 몇 년 전에 이 대통령이 여운형의 위세에 경계심을 느껴, 암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때, 길남효는 이기붕의 맞은 편 소파에 앉으며 이기붕에게 인사한다.

“여기서 뵙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이기붕 역시 길남효의 인사에 응대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서울시장인 이기붕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한창 재건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대통령 각하의 신임을 깊이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이 부족한 몸을 전하께서 알아주셔서 무한한 영광일 따름입니다.”

이기붕과 길남효는 가볍게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본격적인 이야기에 돌입한다.

“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여기에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기붕은 드디어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인지 조금 진지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길 회장께서는 국가의 사업에 수많은 도움을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시국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하하. 길 회장님의 마음가짐을 가지신 분들이 많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아직까지 길 회장께서 민간에 머무르는 것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상당히 안타까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길 회장님의 아드님들은 전부 나라를 위해 활약하고 있습니다. 길 회장님도 한 번 나라를 위해 나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길남효는 ‘으음’ 소리를 내며 생각을 하다 이내 대답한다.

“다른 훌륭한 분들도 많으신 것 같은데. 이 늙은이를 굳이 등용해도 되겠습니까? 오히려 이 늙은이가 정당한 분이 앉아야할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길 회장님의 말씀도 이해는 갑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 역시 길 회장님의 염려를 생각하여 적당한 자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말에 여운형이 한 마디 말한다.

“적당한 자리?”

“이런 몽양께서도 계셨군요. 하하.”

여운형은 일부로 자신을 무시하는 이기붕의 태도에 속으로 조금 부아가 치미지만 여기서 다툴 수는 없었다.

“만송도 알겠지만 여기 있는 길 회장은 정치적으로 번거로운 자리는 피하고 싶다는 것은 잘 알 것이오.”

이기붕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 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길 회장님의 명성에 비해 말씀드릴 자리가 상당히 보잘 것 없겠지만 그 자리는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만한 자리는 아니니 여기 계시는 몽양도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기붕의 호언장담에 길남효는 살짝 관심이 동했다.

“흠흠. 어떤 자리이기에 그리 뜸을 들이는 것입니까?”

이기붕은 그 말에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대답한다.

“기획처 건설이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건설이사?”

“예. 기획처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기획처는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하지만 그 중 국토 개발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대답에 여운형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 마디 말한다.

“기획처의 국토 개발 부문은 상공부나 교통부, 체신부 등 여러 부처들과 역할이 겹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여러 부처들과 다툼으로 인해 꽤 난감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소?”

이기붕은 그 말에 조금 식은땀을 흘리다 이내 이렇게 대답한다.

“아 물론 그런 부분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회의를 열어 어느 정도 조정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획처 건설이사라는 자리가 사실상 실권은 별반 없고, 그저 명예직에 불과한 자리입니다. 유명한 교수를 초청하여 자문을 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그 말에 길남효는 ‘흠’ 소리를 내며 이기붕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실권이 없다면 그리 정치적인 논란에 휩싸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럼 원래 제가 하던 일을 건설이사의 자격으로 계속 수행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기붕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런 점에 대해선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정부에서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으음. 그런데 그런 지원 자체를 남들 눈에 특혜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이기붕은 그 말에 손사레를 치며 대답한다.

“남들 돕는 일에 특혜다라고 말하는 인간들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있어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또 비난과 지탄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기는 한데...”

“또 활동 내역에 대해서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외부에 보여주니 이미 외부 사람들 눈에서 신뢰도가 높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애산재단 측에서 비리관련 의혹이나 사건이 터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기붕의 대답에 길남효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는 여운형, 길남효 두 사람이 속삭이며 이번 일에 대해 의논하기도 했다. 이기붕은 길남효의 결정을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여운형의 상담을 받은 길남효는 이제 결심이 섰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기붕에게 대답한다.

“그 건설이사라는 자리가 정치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확실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만약 그 것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서울시장의 요청에 받아들이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전편 댓글에서 슬슬 소재가 고갈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슬슬 소재가 고갈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댓글로 떡밥들을 던져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헤헤헤헤헤.

이럴 때만 발휘되는 구거어어어어어얼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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