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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박헌영이 ‘대가’라는 단어를 꺼내자 박철건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는다.
“흠. 일단 동 일본 정치인들과 소개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확실한 이익이 맞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대가라니. 이건 조금...”
박헌영은 박철건의 말에 당황하지 않고, 말한다.
“일단 들어보게나. 듣고 판단해보게.”
“말씀해보십시오.”
“대가는 역시 그 것이겠지. 솔직히 말해서 이번 전쟁은 우리 북한이 졌어.”
“흠...”
“한반도에 공산 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공산국가를 고집하다 이미 패배한 전쟁을 계속 이어나갈 수는 없는 법이지. 자 이런 상황일 때는 가장 생각나는 것이 뭐 이겠나?”
박헌영의 물음에 박철건은 잠시 생각을 하다 답을 낸다.
“아무래도 가족들을 챙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박헌영은 그 답에 피식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이거 너무 쉬운 문제인 것 같군. 그래. 맞아. 가족이지. 전쟁에 무고한 사람들을 동원한 것은 잘못이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참 이기적이지. 이런 때, 가족이 생각나니 말이야.”
박헌영의 말에 박철건은 과묵한 표정을 지으며 지켜본다. 박헌영의 말은 계속 되었다.
“그런데 김일성이라는 사람은 말이지. 누구도 남을 쉽사리 믿는 사람이 아니야. 북한 수뇌부들 사이에서 이미 망한 전쟁이라고 생각하는데, 김일성이 그런 수뇌부를 억지로 끌고 갈 수 있는 이유가 뭘까?”
그 말에 박철건은 ‘흠’ 소리를 내며 생각하다 이내 답을 떠올리고는 대답한다.
“역시 볼모이겠군요.”
“뭐 정답이야. 내가 너무 힌트를 많이 준 것 같군. 그래. 김일성은 이 전쟁을 무리하게 이끌어가고 있어. 왜냐하면 이 전쟁에서 지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은 끝장이나 다름없거든.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할 대가에 대해서 자네도 예상할 법하지 않나?”
박철건은 그 말에 턱에 손가락을 대고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박헌영을 쳐다보며 말한다.
“흠. 하기야 회장님의 시각에서 북한 수뇌부 중 가장 거슬릴만한 작자는 역시 김일성밖에 없겠습니다. 다만 회장님을 포함해서 한국 사람들은 이번 전쟁을 일으킨 북한 수뇌부들에 대해 이를 갈고 있다는 것은 잘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헌영은 그 말에 침을 꿀꺽 삼키며 이내 이렇게 대답한다.
“그 점에 대해선 할 말이 없네.”
“그리고 회장님이 일부로 당신을 놓아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박헌영은 그 말에 씩 웃으며 박철건에게 이렇게 말한다.
“뭐 자신 있으면 지금 잡아서 자네의 그 회장님에게 넘기면 되는 일 아닌가?”
박헌영의 배짱에 박철건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한다.
“휴우. 밀상을 찾아온 손님을 배신할 수는 없죠.”
“흠. 밀상이 그렇게 자존심과 규칙을 지킬 줄은 꿈에도 몰랐군.”
“흐흐흐. 밀상도 밀상 나름입니다. 적어도 전 밀상 일을 하면서 범죄 행각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제가 밀상이 된 것도 사실 냉전으로 인한 적대 관계 때문이 아닙니까? 평화롭게 무역협상이 이뤄지면 제가 이끄는 밀상도 양지로 올라가겠지요.”
“그거야 그렇겠군.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흠. 이건 저 혼자 판단하기 힘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회장님을 여기에 부르겠다는 말인가?”
“하하. 그럴 리는 없겠고. 뭐 이런 방법이 있기는 하죠.”
박철건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박헌영이 살펴보니 이번 전쟁을 통해 남한에 퍼졌다고 하는 핸드폰이라는 물건이었다. 물론 박헌영은 남쪽에 간첩을 보내 핸드폰을 입수했지만 역시 중계기가 없는 이상 핸드폰은 쓸 수 없는 물건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핸드폰을 꺼내든 박철건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 마디 말한다.
“부수상께서도 이 물건에 대해서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잘 알지. 핸드폰을 만들 기술과 중계기 만들 기술이 없어서 사용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물건이지. 하여간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법한 물건을 현실로 만들다니 회장과 그 송감연 과학자도 대단한 사람들이야.”
“후후후. 회장님 곁에 있는 한 이런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전 옆에서 그저 물건들을 팔아넘기면서 돈만 벌면 끝입니다.”
돈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는 박철건의 모습에 박헌영은 속이 상했다. 그러나 동시에 한숨이 나온다.
‘공산주의라는 것도 탐욕만 부리는 인간들 때문에 태어난 사상이 아닌가? 만약 힘 있고, 재산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살아간다면 공산주의라는 사상은 탄생하지 못했겠지.’
박헌영은 병윤에 대해서 경원시하면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그가 이념적으로 자신과는 완전히 떨어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가 보이는 행동이나 성과,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신이 이룬 부를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또 그의 아버지인 길남효는 재단 재산으로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들을 구호하기 위해 직접 집을 짓고, 거기에 고용된 사람들에 대해 직접 물건을 베푸는 모습을 보고, 박헌영은 길씨 일가가 꺼림칙하기는 해도 믿음직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박헌영은 사실 길씨 일가에 대해서 포섭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전쟁이 벌어져서 그런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서 박헌영은 솔직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박철건은 이미 핸드폰 뚜껑을 열고, 번호를 눌러 병윤에게 통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여기는 육군본부 군수부 군수장교 길병윤 중위입니다. 누구입니까?-
“하하. 접니다. 회장님.”
-아. 그 목소리는 박철건 사장이 아닙니까?-
“하하. 아직도 복무하고 계셨습니까?”
-나라의 장정들이 국방의무에 의해 병사로 징집되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제가 재산 있고, 힘 있다 하여 국방의무를 안 지어서야 되겠습니까? 뭐 이런 이야기를 박 사장에게 하는 것은 조금 그렇군요. 하여튼 무슨 일입니까?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가 있겠습니까? 현재 전 울릉도에서 시설을 만들고, 잘 장사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렇다고 밀수에 너무 빠지지는 마십시오. 꼬리가 길면 잡히게 돼있습니다.-
“울릉도에서 누가 이 박철건을 잡아간단 말입니까? 그 것에 대해선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여차하면 잠수함으로 몸을 숨겨 며칠간 있다 돌아올 겁니다.”
-흐흐흐. 그런 배짱도 좋기는 하군요.-
“제 칭찬에 엄청 감사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회장님. 저에게 꽤 곤란한 사람이 찾아왔는데. 이건 솔직히 제 임의판단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라서 조금 그렇습니다.”
-흠. 천하의 박 사장이 저에게 결정을 넘길만한 일이라...-
“아무리 천하의 박 사장이라도 회장님을 곤란하게 할 일을 막 정해도 되겠습니까?”
-이런. 절 생각해주는 박 사장의 염려에 제가 마음이 놓이는 군요. 그런데 그 곤란한 사람은 누굽니까?-
“북한의 부수상 박헌영입니다.”
순간 핸드폰에서 병윤의 목소리가 뚝 끊어진다. 박철건의 대답에 병윤이 놀랐는지 둘 사이의 침묵은 조금 오래 걸렸다. 침묵이 끝나고, 병윤이 박철건에게 말하는 투는 꽤 진지했다.
-북한의 부수상 확실합니까?-
“제가 회장님께 거짓말을 해서 이로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거 참 박 사장님의 말처럼 곤란한 상대이기는 하군요. 일단 무슨 일로 박 사장이 있는 곳을 찾았다고 합니까?-
병윤의 직설적인 물음에 박철건은 박헌영과 있었던 대화를 말해줬고, 그걸 ‘음 음’ 거리면서 다 들은 병윤은 이내 박철건에게 한 마디 말한다.
-과연... 박 사장이 함부로 결정하기는 조금 그렇겠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화상대를 그 곤란한 상대에게 바꿔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박철건은 핸드폰을 박헌영에게 조심스럽게 넘긴다. 박헌영은 이내 핸드폰을 자신의 귓가에 붙이며 입을 뗀다.
“길병윤 동협 그룹 회장이오?”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하고 싶은 대가가 있는 것은 같은데. 대가는 무엇입니까?-
“뭐 간단한 일이오. 당신의 형이 남한군 군부의 상당한 실력자로 알고 있소. 그런 실력자라면 내 부탁을 아주 쉽게 들어주지 않겠소?”
-그건 일에 따라서 다른 것은 부수상 본인이 잘 알지 않습니까?-
“후후후. 그건 그렇소만. 일단 말하겠소. 알다시피 북한의 수도는 다시 나진으로 피난 가있소. 내 가족들도 지금 거기에 잡혀 볼모로 있지.”
-부수상의 요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요구를 들어주는 대가가 바로 박 사장에게 동 일본의 정치인들을 소개해주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있소.”
-한 가지 더?-
“사실 이번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우리 북한 수뇌부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오. 하지만 그 중 핵심책임자는 김일성과 그 세력이라는 것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오.”
-......-
“이런 정치 질을 하는 것이 솔직히 나로썬 아주 짜증나고 역겹기 그지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김일성과 그 세력은 그 도를 넘었소. 평화를 모색하기 보다는 그저 자신을 받쳐주는 중공의 세력을 믿고, 전쟁을 일으키는 무모함. 그리고 자신이 책임지는 인민들을 버리며 전쟁을 계속 수행하는 냉혹함, 전쟁이 계속 되는데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악행을 자행하는 탐욕과 악랄함. 마지막으로 전쟁이 지고 있는데도 자신은 책임지지 않고,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겠다는 뻔뻔함까지. 난 솔직히 그 작자와 그 세력에 대해 질렸소.
난 그를 믿고 전쟁을 계속 수행할 생각이 없소. 차라리 내 세력을 이끌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오. 물론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하지만 난 지금 그 책임을 지고 싶지 않소. 언젠가는 지겠지만 난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오. 이 점에 대해서 길병윤 회장 당신 역시 날 김일성과 같은 작자가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래도 이번 전쟁을 주도한 것은 김일성 그 작자이오. 그 녀석과 그 세력들을 전범으로 처리하도록 협조하겠소.”
-흐음. 부수상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결국 부수상의 가족들을 구출한다면 김일성과 그 세력을 전범으로 처리하도록 약속합니까?-
“이 일에 길병윤 회장이 승낙한다면 얼마든지 약속하오.”
-하하. 이거 남이 들으면 전 이적행위로 붙잡혀 총살당할 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말을 들어보면 이것만큼 달콤한 것도 없고, 하아... 결정했습니다. 역시 받아들이는 것이 저에게 이득이 남는 길이겠군요.-
“흠. 나중에 생각하고 다시 전화한다거나 아니면 거절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제 생각으로는 김일성 그 작자가 부수상 당신과 여러 세력들을 미끼로 삼고, 자신이 도망갈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허어. 김일성에 대해 그리 판단했소?”
-그 사람 성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뭐 이 대통령이나 우리 정부의 정치인들이 이 것을 들으면 길길이 날뛰겠지만 적어도 김일성을 놓치는 것보다 낫겠지요. 하지만 이 것으로 적대감이 완전히 해소된다는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 적대감 해소는 길병윤 회장 본인의 감정이오? 아니면...”
-제 감정보다는 역시 이번 전쟁을 일으킨 북한 수뇌부에 대한 한반도 민중들의 적대감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흠. 나의 부탁을 들어주어서 감사하오.”
-그 쪽에서 배신하지 않는 이상 나 역시 굳이 부수상을 건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약속에 대해선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병윤과의 통화는 끝이 났다. 박헌영은 핸드폰을 박철건에게 다시 넘기면서 한 마디 말한다.
“다행이군. 이 부탁을 길 회장이 받을 줄이야.”
“회장님의 허가가 떨어진 이상 일단 부수상님이 말씀하신 것부터 들어줘야 되겠습니다.”
박헌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박헌영은 그렇게 말하며 박철건을 어떻게 동 일본으로 안내할지에 대해 고심한다.
한편, 박헌영과 통화를 주고받았던 병윤은 씁쓸한 웃음을 하면서 이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한 마디 말한다.
“녹화기 꺼.”
그 말에 병윤을 따라다니는 병사인 주민식은 얼른 녹음기를 끈다. 병윤은 녹음기를 바라보고는 이내 주민식에게 한 마디 말한다.
“잘 녹화되었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까 그 전화는...”
그 말에 병윤은 입가에 검지를 딱 대며 말한다.
“쉬이이잇! 처남이 이걸 아는 것은 손해나 다름없는 일이야.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지. 지금은 후자 쪽을 선택해야 옳겠지.”
“으음...”
“하여튼 이번 일에 대해서 입 밖에 꺼낼 생각도 하지 말게나. 이거 잘못하면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자네도 같이 죽을 지도 모르네.”
그 말에 주민식은 몸을 가늘게 떨면서 병윤에게 하소연한다.
“아니. 그런 일이 왜 저에게 닥치게 했습니까? 전 앞으로 불안에 떨어 어떻게 삽니까?”
“최면이라도 걸어줄까?”
“최면? 그게 뭡니까?”
“뭐 사람을 홀려서 일정부분 기억을 무의식으로 감추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지. 어떻게 생각해?”
“사람을 홀리다니... 하지만 그 체면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으으음... 저에게 해주십시오!”
그 말에 병윤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이내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밖으로 내뺀다. 목걸이에는 이상한 모형이 달려 있었다. 그 때, 병윤이 주민식에게 사근사근 말한다.
“자 당신은 이제 슬슬 눈이 감겨 옵니다. 슬슬 눈이 감겨 옵니다...”
병윤의 살가운 목소리에 주민식은 병윤의 말에 빠져들었다. 이내 주민식은 힘이 빠졌는지 바닥에 풀썩 앉지만 시선만큼은 병윤에게 집중했다.
“자 당신은 이제 눈을 감았습니다. 이제 뜹니다.”
그 말에 주민식은 눈을 번쩍 뜬다. 그런 주민식의 반응에 병윤의 최면은 계속 되었다.
“자 이제 감습니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아까 기억한 것은 뭡니까?”
“그 길병윤 중위님이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 그 기억에 대해서 장막이 내린 것처럼 기억이 사라집니다. 점차 사라집니다. 떠올리기 힘들어집니다. 자 이제 다시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하나 둘 셋 하면 눈을 뜹니다. 하나 둘 셋!”
주민식은 다시 눈을 감았다가 병윤이 셋을 부른 순간 눈을 떴다. 그리고 주민식은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았다. 병윤은 주민식에게 박헌영과 있었던 통화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주민식은 얼버무릴 뿐이었다. 최면은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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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까지 하며 잘 노는 병윤과 민식이. 그런데 지금 무척이나 졸립니다. 휴우. 올리고 바로 자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