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딸이 너무 귀여워 (1)화 (1/453)

1화

환한 보름달이 떠오른 깊은 밤.

고급 슈트를 입은 훤칠한 남자가 홀로 산을 오르고 있다.

마침내 절벽 끝에 도착한 남자가 핸드폰을 꺼낸다.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동대문 창업 성공 신화, 맨인블랙 헐값 매각!]

[사업 확장 무리수에 남은 것은 채무뿐!]

[맨인블랙 인수하는 와일드 폭스 그룹, 패션계의 공룡으로 진화하다.]

기사 제목을 넘기던 남자의 손가락이 댓글 창을 열고 말았다.

[wud***: 와일드 폭스가 다 먹어 치우네. 후루룩, 꿀꺽, 꺼억!]

[bes***: 매각 기념 세일 안 하나ㅋㅋㅋㅋㅋ]

[con***: 대표가 넘 어려서 무리수 둔 거지. ㅉㅉ]

[didy***: 맨인블랙 직원들은 개꿀임. 대기업 고고~]

덜덜 떨리는 남자의 손가락이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손에 든 술병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남자의 얼굴에 눈물이 쏟아진다.

“…다 끝났어, 끝났어.”

도민완. 스물일곱.

2030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온라인 의류 쇼핑몰 [맨인블랙]의 창업주였다.

열일곱 살부터 패션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스무 살에 동대문 시장에 발품을 팔아 본격적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쇼핑몰은 조그만 가게에서 시작해 점차 입소문을 타다가,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큰 상승세를 탔다.

이 기세를 따라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해외 진출까지 노렸었다.

그리고 동원 가능한 모든 투자금을 쏟아붓던 중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횡령 사건.

민완이 대외적인 활동에 주력하며 회사 내부 일을 믿고 맡긴 형이 뒷주머니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것도 모자라, 민완 앞으로 막대한 대출을 받은 후에 잠적해 버렸다.

회사로 일면식도 없는 빚쟁이들이 몰려왔고, 법으로 해결하는 과정은 더디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겨우 횡령한 놈을 잡아 경찰에 넘겼지만, 채무는 해결할 길이 없었다.

밀린 임금, 회수된 투자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출 이자까지.

결국 민완은 제 모든 것을 바쳐 성장시킨 회사를 헐값에 매각했다.

‘남은 게 아무것도 없네.’

아니다.

남은 것은 인간에 대한 불신, 스스로에 대한 경멸, 끝없는 우울과 괴로운 불면의 밤뿐이었다.

민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절벽 끝에 선 민완의 눈에 반짝이는 서울 야경이 들어왔다.

“…인생이란 어차피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거다!”

민완은 남은 술을 벌컥 들이마시고 한 발을 내디뎠다.

후두둑.

흙더미가 부스러지며 발이 미끄러졌다.

“어후, 씨. 죽을 뻔했네.”

민완은 본능적으로 옆의 나무를 붙잡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와중에도 조금 쪽팔려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연히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괜히 민망하여 어깨를 휘휘 뒤로 돌리며 목을 까딱거렸다.

평생을 폼생폼사, 멋에 죽고 멋에 살았는데!

마지막에 이런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태리에서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맞춤 슈트인데.”

민완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을 떠올렸다.

‘좋은 옷은 좋은 사람에게로 인도해 준단다.’

인생의 끝을 보겠다는 지금으로선 그 좋은 사람이 저승사자일지라도.

흙투성이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민완은 물끄러미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할 좋은 장소를 찾아서.

깊은 밤인데도 보름달이 환하여 산길이 잘 보였다.

쓰르르. 쓰르르.

조르르. 조르르.

풀벌레 소리와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민완은 달빛 환한 산길을 죽기 위해 걸어가는 스스로가 처연하여 또다시 울컥 감정에 젖어 들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잖아.’

새벽이슬 맞으며 매일같이 첫차를 타던 때가 떠올랐다.

차가 없어서 양어깨에 짐을 멘 채 낡은 카트를 질질 끌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날들.

밤이면 어깨 양쪽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훈장처럼 여기곤 했다.

떠오르는 옛 기억에 민완은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때 민완의 눈에 커다란 나무가 들어왔다.

족히 수백 년은 살았을 것 같은 커다란 나무에는 노랗고, 하얗고, 빨간 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앞에는 켜켜이 쌓인 크고 작은 돌이 저마다의 탑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다, 여기! 도민완이 오늘 여기서 죽는다.”

민완은 높게 쌓은 돌을 딛고 올라섰다.

저 노란 천을 목에 감고 뛰어내리면 된다.

“후우…. 후우….”

노란 천의 매듭을 단단히 묶고, 그 동그란 원 안으로 목을 밀어 넣으려는 찰나.

“…근데 목매고 죽으면 똥오줌 지린다던데, 진짠가?”

민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일단은 내려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방법도 아닌 것 같았다.

“아, 어떡하지.”

차를 압류당하지 않았다면 번개탄을 피웠을 텐데.

아니, 약을 샀어야 했다. 근데 수면제는 엄청 많이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걸 처방전도 없이 살 수가 있나?

술기운에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고민하던 그때.

빛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야?”

돌탑 사이에 놓여 있던 그것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단검이었다.

민완은 무엇에 홀린 듯이 그것을 두 손으로 높이 들어 달빛에 비춰 보았다.

고급스런 양각 무늬가 칼집을 촘촘하게 수놓았다.

스릉-

칼집에서 칼을 빼어드니 민완의 얼굴이 잘 닦인 칼날에 거울처럼 비쳤다.

“…예쁘다.”

민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 아름다운 검은, 필시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하늘이 내려준 것일지도 몰랐다.

달빛에 반짝이는 칼날을 바라보던 민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옷소매를 걷어 칼끝을 댔다.

“후우…. 그래, 이제 진짜, 모든 게 끝이다.”

슥-

칼날이 어찌나 예리한지 순식간에 붉은 피가 배어 나왔고, 날카로운 통증에 민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칼을 떨어트렸다.

“어우, 씁!”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평생 제 몸뚱이 하나는 소중하게 다뤄온 삶이었기에, 당혹스러울 만큼 큰 통증이었다.

민완이 제 손목을 붙잡고 발을 동동거리던 그때.

깜빡, 깜빡.

떨어트린 칼에서 푸른빛이 호흡하듯 부풀어 올랐다가 사그라지기를 반복했다.

“…뭐, 뭐야?”

놀라 뒷걸음질 치던 민완이 바닥의 돌탑을 무너뜨렸다.

휘이잉- 휘잉-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색색의 천들이 나부끼며 하얀 연기가 스르르 피어올랐다.

“으아아아악!”

민완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하얀 연기 속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이 월향산의 산신령이었다.

하얗고 긴 수염, 은은한 옥색 도포를 두른 산신령은 어리둥절했다.

“으잉? 뭐 때문에 기절한 거야?”

“귀신인 줄 알았나 보죠.”

산신령 옆에 덩치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제 얼굴을 앞발로 세수하며 심드렁히 말했다.

산신령의 권속 호랑이, 범이었다.

“헛, 참 나. 귀신? 나의 이 아우라를 어디 그런 잡것과 비교할 수가 있어?”

“허여멀건 게 딱 처녀 귀신이나 백여우 같은데요? 크크. 아야!”

산신령이 깐족대는 범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엣헴!”

산신령은 권위를 세우기 위한 헛기침을 뱉어내곤 양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신중한 손길로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거리는 단검을 들어 올렸다.

“…후우. 범아, 나 떨고 있냐?”

산신령의 시답잖은 엄살에 범이 재촉했다.

“어서요, 빛이 다 사라지겠어요.”

산신령은 달달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제 얼굴 가까이에 대어 입김을 불어넣었다.

후우.

산신령의 입김이 닿을 때마다 화답이라도 하듯 단검의 푸른빛이 점점 또렷해졌다.

후우.

마침내 푸른빛이 하나의 덩어리로 엉겨 붙으며 단검의 모습이 사라졌다.

후-우.

마지막 숨을 불어넣었을 때, 신령의 품 안에는 작은 아기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도깨비가 태어났다!”

산신령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아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흐애앵애앵앵!”

시원스럽게 첫울음을 뱉어낸 아이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꼬불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엔 은은한 붉은빛이 감돌았고.

뽀오얀 얼굴에 통실거리는 두 볼과 은은한 복숭앗빛 홍조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긴 속눈썹을 깜빡일 때면 크고 새까만 눈동자가 별처럼 빛났다.

아기는 이내 울음소리를 거두고 조그만 입을 달싹거렸다.

“하-부!”

“그래, 그래. 도깨비야. 잘 왔구나.”

범도 사랑스러운 아기 도깨비의 모습을 보기 위해 고개를 쭉 내밀었다.

“히히, 다른 산신령들이 얼마나 부러워할꼬?”

오래된 물건에 사람의 정 또는 혈이 묻어나고, 신령의 성스러운 숨을 불어넣었을 때 태어나는 것이 도깨비다.

그런데 요즘엔 통 오래된 물건이 사람과 만날 일이 없었다.

조금만 오래됐어도 죄다 버려지거나 박물관 속 유리 상자에 갇혀 버렸으니까.

더욱이 온갖 산들이 개발이란 명목으로 파헤쳐져 신령 없는 산도 허다했다.

그러니 도깨비가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도 수만 배 어려운 게 요즘 시대였다.

“우리 산에서 도깨비라니~ 삼백 년 만에 도깨비라니~ 얼쑤! 지화자, 좋구나~!”

산신령은 어화둥둥 아기를 흔들며 즐거워했다.

천계의 극심한 고령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옥황상제도 이 소식을 들으면 큰 상을 내릴지도 모른다.

“음하하하하하핫!”

이런저런 장밋빛 상상으로 신이 난 산신령이 어깨춤을 들썩이는데.

범이 한마디 던졌다.

“그런데 도깨비는 어떻게 키워요?”

산신령이 멈칫했다.

인간계에서 태어난 도깨비에게는 운명의 과업이 있었다.

그 과업을 이루기 전까지는 천계에 올라갈 수 없으며, 신격을 부여받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은 아기인 도깨비가 제 과업을 찾아 이루기까지는 성장의 시간이 필요한 법.

“그, 뭐시냐! 인간에게 키우라고 하면 되지.”

“인간이요?”

“그래, 너무 오래된 얘기라 넌 잘 모르겠지만, 예로부터 이런 애들은 죄다 인간이 키웠어.”

“아, 저도 알아요. 그 바구니에 넣어서 강물에 띄우거나 알에 넣어서 깨어나게 하는 그런 거!”

“그치그치, 그러다가 때가 되면 다 능력을 발현하면서 좋은 일 하고 천계로 휭~ 승천하는 거지!”

신령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기 도깨비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걱정 말아라, 아가. 인간은 애를 정말 잘 키우거든! 어디 보자~ 이 애를 어디다 넣어서 보낼… 응?”

산신령의 눈에 쓰러져 있는 민완이 보였다.

“오호라! 아빠가 요기 있네?”

“합뺘?”

범이 성큼성큼 민완에게 다가가 숨소리를 확인했다.

“깨울까요?”

“크흠, 살살 깨워라.”

범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곤 입을 쩍 벌리고 혀를 내밀어 민완의 얼굴을 느리게 핥아 올렸다.

“…으, 윽!”

까칠한 감촉.

구리구리한 냄새.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난 민완은 눈앞에 나타난 커다란 호랑이의 사나운 눈과 마주쳤다.

“으아악!!!!!”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치던 민완은 툭, 무언가와 부딪혔다.

돌아보니 새하얀 머리의 노인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은 민완에게 산신령이 손을 내밀었다.

“반갑구만, 젊은이. 나 이 월향산의 산신령이네.”

“사, 사… 산신령이요?”

“그래, 어떤가. 산신령은 처음 보지? 어허허허헛!”

호쾌한 산신령의 웃음소리에 아기 도깨비가 바동거렸다.

“호야호홋!”

“어, 그렇지. 자, 젊은이. 이리 와서 안아 보게.”

얼떨결에 바동대는 아기를 안아 들었다.

스물일곱 인생에 처음으로 안는 아기였다.

몰랑몰랑하고 뜨끈뜨끈한 감촉.

형언할 수 없는 달큼한 냄새.

“자, 이제부터 자네가 이 애를 키우는 거네!”

“…네?”

“자네는 참 복 받은 거야. 이 아기로 말할 것 같으면, 삼백 년 만에 태어난 아기 도깨비. 장차 천계의 미래를 짊어질 이 시대의 희망이고! 빛이네!”

“하-부!”

민완은 품에 있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도깨비?

제 얼굴이 고스란히 비치는 맑은 눈망울. 보기만 해도 쫀득거리는 새하얀 찹쌀떡을 연상케 하는 통통한 두 볼. 윤기가 흐르는 검붉은 곱슬머리.

털이 수북하거나, 뿔이 달리지도 않은 평범한.

아니, 좀 특별하게 예쁜 아기일 뿐인데?

“그, 그런데 왜 제가?”

민완의 질문에 산신령이 대답했다.

“그 애는 자네의 피로 태어난, 자네의 딸이라네!”

“…딸이요?”

“그래, 자네가 이 도깨비의 아빠야!”

산신령의 해맑은 대답에 민완의 사고가 정지되었다.

…내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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