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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딸이 너무 귀여워 (52)화 (52/453)

52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동업이라니?”

황당해하는 타미의 반응.

민완도 예상은 했다.

하지만 민완의 사업 구상에서 타미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얼마 전에 더블제이를 인수할 생각이 있냐는 제의를 받았거든요.”

“그럼 혼자 해야지, 갑자기 나는 왜 끌어들여요? 난 옷가게에 관심 없어요.”

“더블제이 자리에서 다른 사업을 해볼까 하고요.”

“다른 사업 뭐요?”

“스타일 컨설턴트요.”

“스타일 컨설팅을 하겠다는 겁니까? 누굴 대상으로? 연예인이요?”

“보다 일반적인 사람들을 타깃으로 하고 싶어요. 물론, 연예인도 와주면 땡큐겠지만.”

“…그게 되겠습니까?”

“되게 만들고 싶어요.”

재영에게 인수 제안을 받고, 민완은 더블제이에서 간판만 바꿔서 그대로 편집숍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봤다.

물론 민완이 오고 나서 단기간에 좋은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더블제이는 이미 다 익은 열매와 마찬가지다.

언젠가 내 사업을 해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지금 당장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무엇’을 고민해야 한다고 초조해하던 때쯤, 주말에 운동회에서 만난 부모들과 나눈 대화가 좋은 힌트가 됐다.

“사업이란 게 결국은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것을 한 발 나아가서 보여줘야 하는 거니까요.

저는 사람들의 욕구가 점점 더 개인화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것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나의 스타일로 소화할 수 있는지, 또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나의 이미지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보게 되는 거죠.”

“그건 동의합니다. 유행이라는 게 더이상 의미 없어진 시대이기도 하죠.”

“네, 오히려 유행되는 아이템을 기피하는 현상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스타일 컨설턴트가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특화된 서비스를 더욱 원하게 되죠. 이건 패션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모든 산업이 결국 퍼스널화(개인화) 되는 건 세계적인 흐름이죠.”

민완의 설명을 들으며 타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흐음…. 근데 왜 나랑 하겠다는 거예요?”

“헤어는 스타일의 기본이잖아요. 저는 컨설팅에서 끝내지 않고,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옷은 기성품을 골라 입는 것이지만, 헤어는 디자이너의 손길에 따라 같은 디자인도 다르게 나오잖아요? 이런 스타일로 하세요, 추천만 해주는 건 무책임해요.

그걸 실제로 고객의 니즈에 맞춰 구현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타미처럼요.”

민완은 타미에 대한 신뢰를 명확히 드러냈다.

“어, 흐흠….”

그러자 타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쑥스러워했다.

“개인 고객들을 받는 것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까 <아이코닉 코리아> 이서윤 에디터의 협찬 제안 메일을 받고 떠오른 생각이다.

개별적으로 컨설팅을 의뢰받는 것뿐 아니라, 기업 의뢰를 받아 역으로 신청자를 받고 스타일링을 해주는 것 또한 좋은 사업 모델이 될 것이다.

더블제이에서의 스타일링 이벤트에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뜨거운 관심은, 기업에도 좋은 홍보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흐음….”

타미는 이미 민완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민완에게 기울어진 몸과 어서 더 말해보라는 듯 채근하는 손짓,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말해준다.

“타미, 제가 더블제이 이전에 맨인블랙이라는 온라인 쇼핑몰 대표였다는 걸 말했던가요?”

“…네에? 맨인블랙이요?”

표정을 보니 맨인블랙은 알고 있지만, 그 회사 대표가 민완이었다는 건 전혀 몰랐던 모양이다.

“뭐, 결국 와일드 폭스에 넘겨 버렸지만요. 제가 이 얘길 하는 건, 타미에게 하는 동업 제안이 가볍게 찔러보거나 헛바람이 아니라는 걸 얘기하고 싶어서예요.”

“흐음, 알겠습니다.”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지금 타미가 원하는 건 돈과 명예가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차세희의 스타일링을 만들어 가면서, 타미는 늘 새로운 것에 눈을 빛내고, 돌발 상황을 즐길 줄 아는 순수한 면이 있었다.

“타미가 왜 그 지하 헤어숍에서 이런저런 핑계로 사람을 가려서 받고 있을까 생각해 봤거든요? 제가 볼 때 그건 권태예요.”

타미가 피식 웃었다. 긍정의 신호다.

“돈은 넘치도록 많아졌는데, 뭘 해야 될 지 모르겠죠? 평생 해온 건 남의 머리 만지는 일이었는데…. 그렇다면 매번 새로운 사람들 머리를 만지면 재밌지 않겠어요? 뭐든 해본 것보다 안 해본 게 흥미로운 법이잖아요.”

“…민완 씨는 원래 그렇게 자신만만해요?”

“네?”

“아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늘 확신에 찬 태도로 그러는 거… 좀 신기합니다.”

“타미를 설득하고 싶으니까요. 내가 불안해하면서 제안하면, 타미가 퍽이나 내 말을 듣겠어요?”

“하긴.”

“저도 나름의 계획과 비전을 갖고 제안을 드리는 거예요. 진지하게 생각해 봐주세요.”

“흐음, 근데 민완 씨는 나를 믿어요? 우리 안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믿어요. 그러니까 동업하자는 거죠.”

“흐음, 왜죠?”

“저는 이미 동업자에게 당해봤던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날 믿는다고요?”

“음, 타미도 믿지만 저 자신을 더 믿어요. 사람 보는 눈이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스스로 믿는 거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 보셨으면서.”

“아,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긴 해요.”

“……?”

“가비요.”

“가, 가비요?”

“저랑 사이가 틀어지면 두 번 다시 가비 못 만나게 될 거란 건, 잘 아시죠?”

“헐! 이건 협박 아닙니까?”

“아, 덤으로. 저랑 같이 일하게 되면 가비 머리는 타미에게 전적으로 맡기게 되겠죠?”

“…채찍과 당근입니까?”

“하하, 조건을 명확히 하는 거죠.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이제 일어날까요?”

민완과 타미가 식사 자리를 정리하고 음식점 밖으로 나갔다.

홀에 있던 이선아가 문 앞까지 따라 나오며 배웅해 주었다.

“안녕히 가세요. 가비 아빠, 언제든 또 오세요.”

“네, 잘 먹고 갑니다.”

그렇게 서로 인사로 마무리하고 돌아가려던 찰나, 타미가 붙잡아 세웠다.

“어차피 답은 정해졌으니 서로 확실히 하는 게 좋겠죠.”

“벌써 마음을 정한 거예요?”

“그래요. 해봅시다.”

민완과 타미가 악수를 나눴다.

***

“형, 우편 왔어요.”

더블제이로 들어가니 지혁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짧은 메모와 함께 여러 장의 티켓이 들어 있었다.

“…잇츠락 페스티벌?”

봉투를 살펴보니 두 번째 스타일링 이벤트를 받았던 티키타카의 매니저 이시은이 보낸 것이었다.

“우와! 잇츠락 페스티벌이다! 형, 저 한 장 가져도 돼요?”

“어, 그래.”

민완은 티켓을 지혁에게 넘기고 메모를 확인했다.

[도민완 님께.

지난번에 너무 감사했어요.

그날 처음엔 좀 상처라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오빠들이랑 솔직하게 얘기 나누면서 풀 수 있었어요.

다 함께 그룹 티키타카의 색깔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제 부담도 줄어들었고, 오빠들도 더 신난 것 같아요.

여러모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거는 아니지만, 잇츠락 페스티벌 초대권을 보내드려요.

음악을 좋아하시지 않으셔도~ 섬 전체가 축제 분위기라 나들이 삼아 오셔도 넘 좋을 거예요.

오시면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이게 뭐예요?”

어느새 한서현도 관심을 갖고 다가왔다.

“잇츠락 페스티벌 초대권이요!”

“…저도 가도 돼요?”

“어, 그래. 티켓 많으니까 두 장씩 가져.”

“한 장이면 돼요.”

“누나, 같이 갈 사람 없어여? 저랑 갈래여?”

“…너랑 가느니 혼자 갈래.”

“아우, 진짜! 됐어여! 형은 안 갈 거예요?”

“글쎄, 난 시끄러운 건 별로라.”

“다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민완은 시무룩해진 문지혁의 등을 팡팡 두드려 주었다.

***

민완이 어린이집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마당에서 아이들과 있던 올챙이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핫바, 핫바!”

“안녕하세요, 올챙이.”

“저기… 혹시 가비에게 무슨 일 있었어요?”

“네? 왜요?”

“가비가 하루종일 기운이 없어요. 좀 시무룩하다고 해야 하나….”

“아아….”

아직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은 걸까?

세상에 그 많고 많은 동화책 중에 왜 하필 혹부리 영감님이었을까.

공주와 왕자 나오는 동화가 얼마나 많은데, 하다못해 호랑이랑 개, 고양이, 여우가 나오는 전래 동화도 있을 텐데….

당장 집에 가서 침대 밑에 처박아둔 동화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민완의 어두운 표정을 보며 올챙이가 한마디 덧붙였다.

“게다가, 간식까지 남겼다고요!”

“…간식을요?”

“혹시나 해서 체온도 재봤는데, 열은 없었거든요. 그래도 병원에는 데려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먹깨비 가비가 간식을 남긴 일은 처음이라 올챙이의 표정은 심각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민완은 애써 웃으며 올챙이에게 인사를 하고 실내로 들어갔다.

거실에서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저마다의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사이 어디에도 가비는 없었다.

두리번거리던 민완은 목소리가 들리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슬근슬근 톱질하세~ 어기여차~ 당기어라! 그러자 첫 번째 박이 열리면서~ 번쩍번쩍 금은보화가 우르르 쏟아졌어.”

“우와아아! 조케따.”

교사 빙봉이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올망졸망 앉아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가비가 보였다.

입까지 헤벌리고 앉아 이야기에 집중한 모양새다.

민완은 조금 기다릴 참으로 문 옆에 앉았고, 빙봉의 실감 나는 동화 구연이 계속됐다.

“그 소식을 들은 놀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제비집을 짓고 기다렸어. 며칠 후에 제비가 날아왔지.”

“…헉!”

“놀부는 제비 다리를 똑! 부러트렸어.”

“으으! 나쁘다!”

“놀부 혼나야대!”

아이들이 분노에 몸을 들썩이며 씩씩거렸다.

“그리고 제비 다리를 고쳐서 보내주었어. 제비야~ 꼭 박씨를 물어오너라! 하고 말이야.”

“제비 오지 마!”

“안 돼!”

“그리고 다시 봄이 왔어. 제비가 박씨를 물어왔겠지? 놀부는 그 박씨에 거름을 듬뿍 주면서 애지중지 키웠어. 마침내 가을이 왔고 박씨가 이만큼 커졌어. 놀부가 신이 나서 커다란 박을 톱질했어.”

꼴깍.

잔뜩 긴장한 채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아이들.

빤히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빙봉의 실감 나는 목소리 때문에 민완도 덩달아 집중하고 있었다.

“슬근슬근~ 톱질하세! 첫 번째 박에서는… 거지들이 나와서 놀부네 집에 있는 밥을 모두 다 먹어버렸어!”

“와아아아아!!”

“슬근슬근~ 톱질하세! 두 번째 박에서는… 누런 똥이 쏟아져서 놀부네 집은 똥 바다가 되어버렸어!”

“와하하하하하!”

“아, 디러워!”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기뻐했다.

가비도 조그만 손을 짝짝 맞부딪히며 활짝 웃었다.

“슬근슬근~ 톱질하세! 세 번째 박에서는… 뿔 달린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들고 나타났어!”

“…깨비?”

가비가 벌떡 일어났다.

“무시무시한 도깨비들은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끄만!”

가비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민완이 얼른 들어가 가비를 안아주었다.

“흐아아아앙앙!”

울음을 터트리는 가비.

동화책을 읽어주던 빙봉이 몹시 당황했다.

“아, 가비가 도깨비 나오는 이야기를 무서워해서요.”

민완이 서둘러 변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소리 높여 말했다.

“가비야, 언니가 도깨비 혼내줄까?”

“도깨비 안 무서워~ 도깨비 내가 이러케 때려주께!”

“흐아아아아아앙아앙!!!!!”

가비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

“자, 가비 좋아하는 갈비다!”

“…히끄.”

퉁퉁 부은 눈으로 식탁에 앉은 가비는 포크로 고기를 콕콕 찔러만 볼 뿐 좀처럼 입에 대지를 않았다.

전 같으면 두 손으로 붙잡고 고기와 사투를 벌이며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었을 텐데.

“가비야, 도깨비 나오는 이야기 때문에 속상했어?”

힘없는 끄덕끄덕.

“그림책에 도깨비가 좀 무섭게 나오긴 했는데, 사실은 좋은 일을 한 거야. 왜냐면 놀부는 제비 다리 부러뜨린 나쁜 사람이었잖아? 그래서 도깨비가 혼내주는 거였고…

그리고 혹부리 영감님이 혹을 안 좋아했는데, 그 혹도 가져가 줬잖아. 그치?”

울망울망한 눈으로 가비가 민완을 바라보았다.

“…힝, 깨비 아 나뺘?”

“그럼, 도깨비는 나쁜 애들이 아냐.”

“…깨비 시러.”

가비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민완은 가비를 품에 꼬옥 안아주었다.

“아냐, 가비는 예쁜 도깨비야.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착하고. 그치? 아빠가 가비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속상하지.”

“…녜.”

“우리 가비는 사람들한테 행복을 주는 도깨비야. 그치?”

“해뽀?”

“응, 지혁이 삼촌이랑 서현이 언니가 가비를 보면 엄청 행복해진대. 재영이 삼촌도 가비 보고 싶어 하고, 타미! 타미 삼촌도 무섭게 생겼는데 가비만 보면 막 웃잖아. 그치? 가비는 행복을 주는 도깨비야.”

“…아냐, 깨비 시려.”

가비의 축 늘어진 눈썹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뭐라도 해야 한다!

“그래! 우리 삼촌들이랑 언니랑 다 같이 놀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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