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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딸이 너무 귀여워 (154)화 (154/453)

154화

민완이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자, 국수정이 웃었다.

“아하하! 죄송해요. 나쁜 뜻은 아니고, 분위기가 좀 다르다는 얘길 하려던 거였는데… 제 입이 방정이네요.”

제 입을 찰싹 때리며 웃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지만, 그게 또 밉상은 아니었다.

‘스무 살이니까….’

민완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며 스튜디오 안으로 함께 들어섰다.

“와, 채광이 끝내주네요! 여기 통창으로 마당 보이는 거 너무 멋져요. 이 건물은 사장님 거예요?”

“아니요, 저는 세입자예요.”

“호오~ 그렇구나. 이런 곳은 월세도 많이 내시겠다.”

“뭐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앗! 제가 사장님께 음료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가요?”

“네, 아직 출근 전이니까… 손님이라 생각할게요. 커피? 주스? 녹차도 있어요.”

“아아로 부탁드릴게요.”

“아아?”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아아가 뭔지는 저도 알아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침 날씨가 좀 쌀쌀해서 여쭤본 겁니다.”

“제가 얼죽아거든요.”

“…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시죠?”

“알아요, 안다고요.”

민완이 얼음을 듬뿍 담은 아메리카노를 국수정 앞에 내려놓았다.

탁-

그 손길이 좀 신경질적이라 느꼈는지 국수정이 웃으며 사과했다.

“아하하! 죄송해요. 지혁 오빠가 사장님이 좀 최신 언어에 약하다고 말한 게 생각나서….”

“흐음, 지혁이가요?”

“네, 지혁 오빠가 사장님 얘기 엄청 많이 했어요.”

“그 녀석이 제 흉보고 다니는 줄은 몰랐네요.”

“아하하! 흉본 거 아녜요. 오빠가 사장님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헐, 저 좀 소름 돋았어요.”

“아하하하! 사장님 너무 재밌으시다.”

손뼉을 치며 꺄르륵 숨넘어가게 웃는 국수정을 보며 민완은 생각했다.

‘…참, 재밌을 것도 많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나이를 이제 막 지나왔기 때문일까.

민완은 꺄르륵 웃는 국수정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처리해야 될 일이 있어서 일찍 온 거라… 편하게 둘러보세요. 곧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올 거예요.”

“네! 걱정 마세요. 지혁 오빠도 거의 다 왔다고….”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숨을 헐떡거리며 지혁이 들어섰다.

“야! 너 왜 아침부터… 혀, 형?! 일찍 왔네여?”

“어, 왔냐?”

“오빠는 내가 연락한 지가 언젠데 이제 튀어오냐? 집도 가까우면서. 때마침 사장님이 오셨으니까 망정이지. 밖에서 한참 기다릴 뻔했잖아.”

“그러니까 연락도 없이 들이닥치면 어떻게 해!”

“내가 뭐, 못 올 데 왔냐? 나도 다음 주면 직원이거든? 미리 마인드 컨트롤 하려고 온 건데…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지.”

“아니, 그래도… 너 이렇게 오면 민폐지. 형, 죄송해여. 아침부터 놀라셨져? 얘가 뭐 말실수 안 했어여?”

“헐! 오빠, 내가 무슨…!”

“얘가 필터링 없이 말하는 못된 말버릇을 갖고 있어서여. 대신 사과드릴게여.”

지혁이 민완을 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동생 앞이라고 제법 오빠 행세를 하고 있었다.

“괜찮아. 이제 앞으로 같이 일할 사람인데. 네가 잘 안내해 드려. 나는 위에 올라갈게. 할 일이 있어서. 수정 씨, 천천히 보고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커피도 잘 마실게요! 다음 주에는 저한테도 편하게 말 놔주세요!”

“네, 그럼 이만.”

민완이 뒤돌자마자 뒤에서 지혁이 국수정을 혼내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너는 사장님이 뭐냐, 사장님이! 여기가 무슨 식당도 아니고.”

“왜… 그럼 뭐라고 해?”

“대표님이라고 해야지! 그리고 네가 형한테 커피 타달라고 그랬어?”

“사장님… 아니, 대표님이 먼저 물어보셔서….”

“휴우, 진짜 너한테 가르칠 게 한둘이 아니다.”

늘 막둥이 같았던 지혁도, 저보다 어린 동생 앞에서는 저런 모습이구나.

민완은 웃으며 제 사무실로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사를 찾아보는 일이었다.

어제, 이현과 차세희의 드라마 제작 발표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자 짙은 밤]

제목부터 미스터리함이 풍기는 스릴러물이었다.

사진 속의 차세희와 이현이 나란히 포토 월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달랐다.

민완은 드라마 스타일링을 위한 캐릭터 분석을 위해 시나리오를 일부 받아서 읽어보았다.

처음엔 좀 쾌활한 느낌의 여형사를 상상했는데, 실제로 읽어보면서는 오히려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차가운 느낌이 강했다.

민완이 읽기에는 실제 차세희의 성격과 갭이 너무 큰 것 같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차이를 극복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제작 발표회 사진 속 차세희는 중단발 머리에 검은 맥시코트를 입었다.

‘숲의 아이’에서는 소년미가 느껴지는 숏컷이었지만, 이번 드라마에서는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한 단발머리로 다듬었다.

풀었을 때는 얼굴을 살짝 가리면서 음울한 느낌을 줄 수 있었고, 묶었을 때는 마른 목선이 드러나면서 날카로운 느낌을 강조할 수 있었다.

하반기 트렌드를 반영하여 고른 검정 맥시코트는 일부러 사이즈를 상당히 오버하게 잡았는데, 마른 체형과 기묘하게 어우러져 특유의 아우라를 만들었다.

반면에 긴 머리를 풀어헤친 이현은 평소의 단정하고 윤기 나는 펌이 아니라, 펑키한 느낌이 나는 부스스한 펌을 했다.

옷은 차세희의 블랙과 대조되는 화려한 패턴과 다양한 색상이 조합된 롱 원피스였고, 커다란 보석이 박힌 액세서리를 많이 활용했다.

이현에게 ‘사이코패스’라고 들었을 때는 굉장히 음울하고 반사회적인 느낌을 떠올렸는데, 직접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도리어 강렬할 만큼 쾌활한 느낌이 강했다.

그러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더욱 화려하고, 남들이 쉽게 소화하지 못할 원색의 옷들을 골랐는데… 역시나 20년 경력의 배우답게 완벽히 소화해낸 모습이었다.

자신이 스타일링을 한 두 배우의 사진을 보니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박 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숲의 아이’를 통해 차세희가 단번에 대배우의 반열에 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인생의 결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듯이 얻어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부단히 쌓아온 것들이 가득 차고 넘쳤을 때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툭- 조금 흘러나올 것이다.

한 방울, 한 방울.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내듯 차세희가 긴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성장해 갔으면 좋겠다.

단 한 번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민완이 스스로를 향한 바람이기도 했다.

쉽게 쓰러지지 않는, 밑바닥부터 단단하게 쌓아올린 성공을 거머쥐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일을 해야지.’

민완은 기지개를 한 번 쭉 켜고는, 쌓인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점심으로는 배달된 샌드위치를 씹어 먹었고, 컨설팅 예약이 없는 사이사이마다 서류들을 검토했다.

이것저것 벌인 일들이 많아서 챙겨야 할 것들은 많았지만, 사업이란, 벌여 놓은 일을 수습하는 것을 넘어서 그다음 한 수까지도 내다보는 것이어야 했다.

요즘 민완의 머릿속에는 막연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비대면 컨설팅.’

방송과 너튜브 덕분에 문의가 꽤 많이 들어오는 편이었지만, 한정된 시간과 정해진 장소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예약은 늘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져갔다.

당장에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니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는 미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미리 공부도 좀 해둬야 할 텐데.

“후우, 눈 아파….”

민완이 잠시 눈을 감고 소파에 목을 기댔을 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빼꼼 열린 문으로 한서현이 얼굴을 내밀었다.

“어? 서현아, 왜?”

“저… 누가 찾아왔는데요.”

“누구?”

“권지웅 씨요.”

“…어?”

면접 봤던 남자였다.

어제 국수정에게는 채용 통보를, 남자에게는 아쉽지만 함께할 수 없게 됐다고 알렸는데,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난감해하는 민완의 얼굴을 보고 한서현이 물었다.

“그냥 가라고 할까요?”

“…아냐. 오시라고 해.”

한서현이 나가고, 잠시 후 권지웅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남자가 꾸벅 인사를 건네고, 민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불편하여 민완이 먼저 질문했다.

“어제 채용이 어렵다고 연락드린 것으로 아는데, 무슨 일로 다시 오셨을까요?”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아, 네. 그때는 몸살기가 좀 있었습니다.”

민완이 머쓱하게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고, 권지웅이 안도하듯 내뱉었다.

“…다행입니다.”

“찾아오신 이유가?”

“아,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안 보이니 괜찮습니다.”

…그때는 보이고, 지금은 안 보인다니.

남자의 말에 더욱 믿음이 가서, 민완이 넌지시 물었다.

“…뭐가 보이셨는데요?”

“제가 미친 소리 하는 것처럼 들리시겠지만… 검은 것을 보았습니다.”

“귀신이요? 권지웅 씨는 귀신을 볼 수 있어요?”

민완이 제법 진지한 태도로 묻자, 권지웅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정확히는… 귀신을 보는 건 아니고요, 기를 보는 거죠.”

“귀요?”

민완이 무심코 제 귀를 만지며 되묻자, 권지웅이 고개를 돌려서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지와 펜을 들고 쓱쓱 한자를 썼다.

“기(氣) 말입니다.”

“아아….”

“보통의 사람들에게서는 은은한 노란빛으로 보이는데… 그날, 대표님 주변으로는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막 혓바닥을 날름거리듯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권지웅이 팔을 휘적거리며 혓바닥을 날름, 이라고 말하니 어쩐지 꺼림칙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어 민완이 인상을 썼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지나쳤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도영이 알아서 다 처리해줬고, 어젯밤 범에게도 물어보니 그들이 민완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할 수는 없다는 확인도 받았다.

가위 눌리고 몸살 난 것이 억울하여 그 부분을 재차 물었는데도, 범은 그것이 민완의 기가 허하여 눌린 것일 뿐이라고 했다.

밥 잘 먹고, 잠이나 잘 자라는 말도 덧붙였지.

민완이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권지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 진짜 그 얘기 하려고 오신 거예요?”

“네, 좀 걱정돼서 와본 거예요. 마음 쓰지 마세요. 지금은 오히려 푸른빛에 가까운 기가 느껴질 정도이니, 좋아 보이네요.”

“…네, 감사합니다.”

“채용되지 못한 건 아쉽지만, 뭐 자주 있는 일이라… 다른 데 알아봐야죠.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민완은 1층까지 내려가서 직접 권지웅을 배웅했다.

거듭 괜찮다며, 들어가시라고 손짓하는 그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채용을 번복할 수는 없는 거니까….

민완이 뒤돌아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자 타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 남자는 왜 온 거래요?”

“아, 제가 좀 걱정됐대요.”

“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여길 다시 왔다고요?”

“네….”

“또 귀신이니 뭐니 헛소리하다 간 거 아녜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히 다 받아주지 마요. 저러다가 갑자기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들러붙으면 어떡해요?”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아이고, 이 순진한 사람!”

타미가 혀를 차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민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할 뿐이었다.

***

“오늘은~ 간식으로 꿀떠기가 나와써. 까비가 마니 먹고 시퍼서 챱챱 하니까 빰이 오빠가 짜기 꺼 줘따?”

“오올~ 밤이 오빠가 자기 떡을 가비한테 줬다고?”

“녜, 빰이 오빠가 뜩별히 주는 거라고 해써. 끄래서 고맙슴다~ 하고 꿀꺽 하고… 또 머꼬 시퍼서 챱챱 하니까… 희쭈니가 줘따?”

“희준이가? 자기 떡을?”

“녜! 까비 배부르고 행보케써!”

“…으음.”

이걸 참, 잘했다고 해야 하는 건지,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해야 하는 건지….

민완이 고민하고 있는데.

“뻠!”

가비가 또다시 도다다다닷 달려갔다.

그런데 전처럼, 가로등 아래에 노란 고양이 범과 무릎 꿇은 여자가 함께 있었다.

챱, 챱, 챱.

여자가 내민 기다란 막대 스틱 같은 것을 핥아먹는 범.

‘데자뷔야, 뭐야….’

민완이 흐린 눈으로 범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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