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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딸이 너무 귀여워 (260)화 (260/453)

260화

사계절 물산 본사로 회의를 가기 위해 타미의 차량으로 모두 함께 이동하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자연스레 주말에 있었던 가비의 오디션 얘기로 한창 떠들썩했다.

타미가 민완에게 물었다.

“그래서 합격할 것 같습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이게 딱히 심사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요.

1차 놀이 면접에서는 뭘 테스트하는지 정확히 보였는데, 2차 여행 면접은 가서 보물찾기도 하고, 퀴즈도 풀고 했거든요.

만약 더 많은 보물을 찾고, 퀴즈를 잘 푸는 아이가 합격이라면 가비는 제일 먼저 탈락일 거예요.

나이도 제일 어리고, 키도 작고, 글자도 모르고… 무엇보다 경쟁심이란 게 없어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가비는 그 자체로 빛이죠. 귀엽고, 예쁘고, 착하고, 재치도 있고, 용감하고!

가비를 놓치면, 방송국 놈들 땅을 치고 후회할 겁니다. 우리 가비는 월드 스타 감이에요. 한국에만 있기도 아깝다고요.

그, 너튜브에도 가비 영상에만 댓글 다는 외국인들 많이 있잖습니까? 쏘 큐트~ 스위티~ 러블리~

우리 이참에 가비를 글로벌 스타로 만들어 봅시다. 가비를 세계로!”

“하하, 그러게요. 다음 주에 세희 씨 미국에서 오디션 본다는데… 그때 따라가 볼까요?”

“크으, 같이 갑시다! 우리 가비, 비즈니스 클래스에 고이 모셔서 태워 가야지.”

앞 좌석에 앉은 민완과 타미가 호쾌한 웃음소리를 내며 즐거워하는 그때, 뒷좌석에 앉아 있던 국수정이 얼굴을 가운데로 쏙 내밀었다.

“대표님이랑 이사님이랑 미국에 가시면 우리 회사는 누가 지키나요, 네? 다음 주에 줄줄이 면접도 있고, 샘플 촬영도 있고, 네? 너튜크 촬영도 있고요, 네에?!”

또박또박 말을 끊어가며 강조하는 말투에선 누가 들어도 민완과 타미를 꾸짖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아니, 뭔 말도 못 하냐? 농담이잖아, 농담. 우리가 뭐 진짜 미국을 가겠어?”

“당장 다음 주에는 안 가시겠죠. 그러다 좀 한가해지면 두 분만 쏠랑 내빼실까 봐 그러는 거죠. 정동진도 한마디 말도 없이 가셨잖아요.”

“아니, 정동진은 우리가 연차를 쓰고 간 것도 아니었잖아. 일부러 비밀로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얘기하다가 시간 맞아서 간 거라니까?”

“그래도요. 나중에 SNS에 사진 올라온 거 보고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세요?”

“하아… 국수정 쟤가 아무래도 점점 지혁이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아니, 우리 회사 직원들은 도대체 왜 상사랑 못 놀아서 안달일까요?”

“아니지, 도 대표. 우리 잊으면 안 됩니다. 그때 그 핼러윈 준비하면서 말입니다… 저희끼리 점심마다 떡볶이 시켜 먹고 했던 거 기억나죠?”

“아아, 맞다. 그랬죠.”

“지금 떡볶이랑 정동진을 비교하시는 거예요?”

“수정이 네가 먼저 얘기 시작했잖아!”

민완과 타미, 국수정이 티격태격하며 점점 목소리를 높여갈 때, 잠자코 지켜보던 한서현이 한마디 내뱉었다.

“도 대표님, 점점 유치해지시는 것 같아요.”

“내, 내가?”

“네, 수정이랑 타미는 그렇다 쳐도, 왜 도 대표님까지 점점….”

“아니, 잠깐만! 서현아, 나는 그렇다 치는 건 또 뭐야? 어?”

“언니, 이건 유치한 게 아니라 솔직한 거예요. 우리 회사는 모두 한 가족처럼 지내기로 했잖아요.”

“…응? 누가 그런 말을 했죠?”

“일단 저는 아닙니다.”

“저도 아닌데, 우리 회사 대표가 국수정으로 바뀌었나요?”

“우리만 몰랐구나~”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사계절 물산 본사에 도착했다.

지난번 결혼식에서 잠시 인사를 나눈 이후로 공식 미팅은 두 번째 자리였다.

첫 번째 자리에서는 민완과 타미만 동행하여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조율했다.

전국에 배포되는 룩북의 스타일링과 팝업 스토어에 배치될 전문가의 교육은 ‘스타일 앤 스토리’가 전담하며, 사계절 물산은 이에 대한 홍보로 민완과 타미를 전면 간판으로 내세울 계획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스타일 앤 스토리 쪽에서 기획한 ‘비대면 스타일링 앱’ 개발에 대해 사계절 물산이 투자를 약속한 것이다.

“와… 역시, 대기업은 들어오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라요. 공기청정기를 건물 전체로 돌리나? 서현 언니, 저 여기서 사진 좀 찍어주세요.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모습이요.”

“여기서?”

“네!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대표님, 저 그 가방 좀 빌려주세요. 거기에 서류도 있어요?”

“어, 어… 여기.”

“제가 이렇게 걸어가다가 살짝 뒤돌면… 아니다. 대표님이랑 타미가 먼저 제 앞으로 걸어가는 것처럼 해요. 그러다가 서현 언니가 딱 부르면서 저만 뒤돌아보는? 약간 느와르 영화의 포스터 같은 느낌? 뭔지 알죠, 언니?”

“아, 그래. 거기 서 봐.”

“우리도?”

“네.”

“야, 그래도 여기 사람들 오가는 데서 좀 창피한….”

민완과 타미가 주저주저하고 국수정이 채근하는 사이, 한 남자가 한서현의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제가 찍어 드릴까요? 같이 서세요.”

“네? 누구신데요?”

한서현이 경계하며 물을 때 민완이 끼어들었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합니다. 민완 씨는 얼굴이 더 좋아졌네요?”

처진 눈꼬리에 서글서글한 인상인, 패션IT 혁신본부 황승만 팀장이었다.

“한서현 씨도 얼른 서세요. 회의 늦겠습니다.”

“…저를 아세요?”

“하하하! 너튜브 구독자입니다. 황희정승.”

“…아!”

“와, 금세 알아주시는 걸 보니 열심히 댓글 단 보람이 있네요. 얼른 서세요. 자~ 다 같이 앞으로 두세 발자국 걷다가 제가 찍습니다, 하면 그때 뒤도는 겁니다.”

찰칵, 찰칵.

그렇게 얼떨결에 남의 회사 로비에서 단체 사진까지 찍고 회의로 들어갔다.

회의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사실 규모로 따지면 사계절 물산은 대기업이고, 스타일 앤 스토리는 갓 걸음마를 뗀 신생 스타트업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너튜브 구독자 90만에 육박하는 인플루언서이자, 방송 활동과 광고 출연으로 쌓아 올린 인지도 덕분에 제법 대등한 위치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슬슬 언론에다 기사를 낼 거예요. 홍보 방향은 ‘사계절 물산이 도민완 씨와 타미가 운영하는 스타일링 회사에 투자를 한다’는 게 큰 골자가 될 겁니다.

그렇게 민완 씨와 타미 씨를 좀 띄워놓고, 두 분이 저희와 함께 협업하는 내용을 하나씩 차근차근 흘릴 겁니다.

일단 민완 씨가 제안하는 룩북은 온라인 배포가 될 거고요, 그 타이밍에 맞춰서 찾아가는 스타일링 이벤트도 열고요.

그러니 스앤스 측에서도 너튜브와 SNS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사계절 물산’을 계속 언급해 주시면서, 사람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보도 기사 초안이 나오면 메일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스타일링 룸에 배치될 전문가들 선발에 대해서는 스앤스에서 주관하되, 기본적인 자격 요건에 대해서는 저희와 협상하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회의는 다섯 시간을 풀로 채우고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그럼 나머지는 각 실무진에서 따로 연락드릴 겁니다.”

“네, 저희도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룩북 초안을 준비하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다음에 봬요.”

“네, 감사합니다.”

“서현 씨랑 수정 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자리를 마무리하고 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아구구구구…. 외부 회의가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어요.”

“그래도 오늘 회의 정도는 무난하지, 뭐. 기 싸움 벌일 일도 없고. 사계절 물산 정도면 양반이다, 양반이야.”

“그렇죠. 사실상 우리가 ‘을’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대우해주는 게 흔한 일은 아니죠.”

“아니, 왜 우리가 을이에요! 우리는, 어? 이제 곧 있으면 너튜브 백만 찍고, 어플 개발도 하고 그러면 뭐 이 정도 빌딩 하나는 그냥 세우는 거 아니에요? 대표님? 네?”

국수정의 큰소리에 민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너… 지혁이지? 군대 안 가고, 국수정의 탈을 쓰고 있는 거 아냐?”

“대표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좀 서운하죠~”

“그러니까, 맨날 그 서운하다고 말하는 거 딱 지혁이 말투거든?”

“하! 참나.”

“어이구, 이제 대표 앞에서 하, 참나? 국수정이 많이 변했다.”

“대표님도 많이 변하셨거든요.”

옆에 있던 한서현과 타미도 국수정의 편을 들었다.

“…그쵸. 변한 걸로 따지면 대표님이 좀 많~이 변하셨죠.”

“음, 그건 나도 인정.”

“제가요?”

“네, 뭐랄까… 좀 유치하고, 치사하고, 말이 많아졌어요.”

한서현의 말에 민완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가끔은 스스로 자각할 때도 있었으니까.

이 사람들이 많이 편안해진 것인지, 아니면 진짜 성격이 변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흠흠, 뭐… 내가 더 유치한 얘기해 줄까?”

“뭔데요?”

“바나나가 웃으면?”

“네?”

“맞혀 봐. 바나나가 웃으면?”

“…….”

“바나나킥.”

“…….”

“하하하하! 또, 또 이거 맞혀봐 봐. 바람이 귀엽게 부는 도시는?”

“…….”

“분당.”

“어우, 도 대표.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어디 머리 부딪힌 거 아니죠? 새해 목표가 뭐, 아재 개그 통달하기 그런 거는 아니죠?”

타미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민완을 바라봤지만, 민완은 굴하지 않고 다음 문제를 냈다.

“자, 이거 맞혀봐 봐. 이거 좀 쉬운 거야. 돼지가 방귀를 뀌면?”

“어우, 대표님!”

“왜 이렇게 되셨어요, 정말.”

“빨리~ 맞혀 보라니까?”

***

여행을 갔다 온 이후 본격적으로 가비의 한글 공부가 시작됐다.

지난번 산타 할아버지에게 소원 카드를 쓸 때 한번 얘기가 나왔지만, 바쁜 연말을 보내며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한글 공부를 시작할 때가 됐다. 아니, 이미 가비는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한글뿐이겠는가? 영어, 한자 등 다방면에 크나큰 관심을 쏟고 있다.

바로 지호가 선물해 준 난센스 책 덕분이었다.

얼마나 보고 또 보았는지 너덜너덜해진 그 책을 오늘도 가비는 품에 꼭 안고 민완을 찾아왔다.

“짜, 아빠. 오늘의 퀴즈 씨작해 쭈세요!”

“오늘의 문제 나갑니다.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돈은?”

“…끄응, 이거슨 처음 보는 문제네. 맞아?”

“어, 이거는 한글이랑 영어랑 합쳐진 거야.”

“힌뚜!”

“어… 음, 사람이야. 할아버지랑 세트인 사람.”

“뻠?”

“아니, 범은 호랑이고. 산신령 할아버지는 평범한 할아버지가 아니야. 둘은 세트…도 아닐걸?”

“끄러면?”

“음, 그냥 정답을 알려줄까?”

“녜!”

“정답은 ‘할머니’야.”

“왜?”

“돈이 영어로 머니거든. 자, 봐봐.”

민완은 종이에 크게 할머니를 쓰고, 영어로 money라고도 썼다.

그 종이를 가비가 두 손으로 양 끝을 잡고 큰 소리로 반복했다.

“할아버지가 죠아하는 돈은 할머니! 돈은 영어로 머니!”

다른 아이들은 학습지를 시작하거나, 거리의 간판을 읽으면서 한글을 뗀다던데…. 갑자기 난센스 퀴즈로 다국어를 한 번에 공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로 다 이해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비가 배를 잡고 깔깔 웃는 모습을 보면 아무렴 어떠냐 싶었다.

미니멀을 추구하던 민완의 거실에는 이제 연두색 커다란 칠판이 생겼고, 한글 포스터가 빈 벽을 빼곡히 채웠으며, 민완이 글씨를 쓴 종이들이 바닥에서 뒹굴었다.

그래, 정말 많이 변했다.

모든 것이….

“아빠, 아빠. 왕이 넘어지며는?!”

그건 어제 민완이 가비에게 냈던 문제였다.

민완이 씨익 웃으며 가슴을 두드리는 시늉을 냈다.

“그것은 바로… 킹콩!”

“아빠는 똑똑이야. 천재야!”

“하하하하!”

이렇게 함께 실없이 웃을 수 있는데 아무렴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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