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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딸이 너무 귀여워-299화 (299/453)

299화

“엄마가 아까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 내가 그런 망신을 당하려고 너를 여기 데려온 게 아니잖아!”

“…죄송해요, 엄마. 다음에는 더 잘할게요.”

“유나야, 기회가 매번 오는 게 아니야. 다음에 잘해야지, 그렇게 마음먹는다고 그다음이 네 마음대로 오는 게 아니라고. 알겠니?”

“…네, 엄마.”

푹 고개를 숙인 유나를 보니 민완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자기 딸한테까지 저런다고?’

평범한 성격이 아니라는 건 처음부터 알아챘지만, 그게 남들한테만 그런 줄 알았다.

민완은 지금까지 주변에서 저렇게 자기 아이를 혼내는 부모를 본 적이 없었다.

숲이랑에서 유별나다던 희준 아빠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있어야겠지? 훈육 상황에서 섣불리 끼어드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민완은 쳐다보지 않으려 애쓰며 가비가 화장실에서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들려오는 소리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유나야,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거야. 그치?”

“네.”

“엄마가 너 억지로 시켰어?”

“아니요.”

“네가 연예인이 꿈이라고 해서, 엄마가 도와주는 거잖아.”

“네.”

“휴우… 정말 이게 네 길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가 걱정이 참 많아….”

유나 엄마의 푸념 소리를 끊은 건 핸드폰 진동 소리였다.

이내 목소리를 바꾸고 ‘여보세요?’ 하면서 유나 엄마의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민완은 그제야 슬쩍 고개를 돌렸다.

복도에 가만히 서 있는 유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겨우 여섯 살.

어른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해서, 어른이 아닐 텐데….

민완은 주머니에 항시 가지고 다니던 가비의 비상 젤리를 꺼내 슬쩍 다가갔다.

“유나야.”

“…네?”

“이거 먹을래?”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왜? 먹기 싫어?”

“엄마한테 허락받아야 해요. 근데 아마… 허락 안 해주실 거예요. 불량 식품이라고.”

“그럼, 이건 어때? 이거 아주 작아서 몰래 먹을 수 있는데.”

민완은 반대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투명한 통을 흔들며 유나 앞에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가비의 새끼손톱만큼이나 작은 알록달록한 별사탕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예요?”

“사탕이야. 입에서 금방 사라져.”

“…….”

유나가 침을 꼴깍 삼키는 것이 보였는데,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민완이 사탕 하나를 꺼내서 유나의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시범을 보이듯이 자신의 입에도 한 알을 쏙 넣었다.

“봐봐. 금방 녹지?”

고민하던 유나는 엄마가 서 있는 먼 복도 끝을 힐끗 쳐다보고는, 얼른 사탕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

“더 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유나가 허리를 숙이며, 꾸벅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망설이던 민완이 입을 열었다.

“유나야.”

“네?”

“가끔 어른들도 틀린 말을 해.”

유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괜한 말을 꺼냈나… 민완은 조금 머쓱했지만, 이내 환한 웃음을 보이며 유나에게 엄지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렸다.

“유나는 멋진 아이야. 그리고 앞으로 더 멋있어질 거야.”

“…네, 감사합니다.”

“유나야, 진짜 멋있는 건,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너무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돼. 그게… 부모님이라도 말이야.”

민완의 말에 유나가 빤히 바라보다가 휴, 작은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 말은 좀 어려워요.”

“아, 그… 그래? 하하하, 아저씨가 좀 말을 잘 못 해서 그래. 하여튼 유나야, 기죽지 말고.

속상한 거 있으면 금방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이 사탕처럼 스르르 녹여버려. 아저씨가 항상 응원할게.”

민완의 말에 유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려다가, 멈췄다. 그리고 커다란 눈에 약간의 경계심을 담아 물었다.

“아저씨, 왜 저한테 잘해주세요?”

“응? 왜냐니. 당연히….”

민완이 말을 고르는 사이, 통화를 마친 유나 엄마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세요? 제 딸한테 볼일 있으세요?”

“아뇨, 그냥 혼자 복도에 서 있길래 인사한 거예요.”

민완은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사탕 케이스를 얼른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유나와 잠깐 눈이 마주쳐서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유나야, 남은 촬영도 잘해. 파이팅!”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바르게 인사하는 유나 옆에 경계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유나 엄마.

민완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때마침 화장실을 다녀온 가비와 하지영이 나란히 손을 잡고 오는 것이 보였다.

폴짝폴짝, 콩콩콩!

흔들흔들, 콩콩콩!

둘이서 나란히 스텝을 밟으며 춤추듯 걸어오는 모습에 민완은 속절없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 둘이 뭐 하는 거예요?”

“아빠! 하찌영 이모가 땐스를 가르쳐 줘써. 이거 뽜봐라~”

가비가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스텝을 밟으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제가 예전에 취미로 스윙 댄스를 좀 배웠었거든요. 가비에게 스텝 조금 알려줬더니, 금세 따라 하네요. 가비는 진짜 못 하는 게 없나 봐요!”

“스윙 댄스요? 못하는 게 없는 건… 매니저님 같은데요.”

민완의 말에 하지영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아무래도 그렇죠? 제가 딱 하나 못하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힘들어요. 하하하.”

“아빠, 아빠도 같이 쭈자. 이로케 쏜잡는 거또 있대.”

“아빠는 춤 못 춰.”

“아니야, 아빠 춤 잘 추자나! 하찌영 이모, 우리 아빠가요. 가수 해써따요.”

“가, 가비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진짜요? 가비 아버님, 가수 하셨었어요?”

“아니에요. 가비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빠가 언제 가수를 해!”

“아빠 이고 해짜나. 어깨를 으쓱으쓱~ 방땅아째단!”

“…아, 그, 그거는!”

하여튼 뭐 하나도 까먹는 법이 없는 도가비!

민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고 꺄르륵 웃는 가비.

“우리 아빠가 뿌끄러움이 마나요. 얼굴이 싸과가 돼써요! 아주 예쁘지요?”

“가비야, 너 자꾸 아빠 놀릴래? 응?”

“놀릴래, 놀릴 꺼야! 헤헤헤….”

“도가비! 아빠가 아주 혼쭐을 내주겠다.”

“꺄아아앗! 하찌영 이모, 까비 쑴겨쭈세요.”

웃음이 끊이지 않는 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유나에게 잔소리가 돌아왔다.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아, 아니에요.”

“허리 펴고, 시선 똑바로.”

“네.”

“엄마가 그 자리에 있건 없건, 항상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알았지?”

“…네, 엄마. 잘할게요.”

“그래, 엄마는 우리 딸 믿어.”

그제야 다정하게 미소 짓는 엄마를 보며 유나도 웃었다.

짧았던 쉬는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다시 스튜디오로 모였다.

한송이 피디, 심아영 작가와 함께 앞서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복기하였고, 한 명 한 명 개별 인터뷰를 촬영했다.

“자, 첫 인터뷰는 제일 어린 가비부터 진행할까?”

“녜!”

“대답 참 씩씩하네! 이쪽 의자에 앉고, 카메라 말고 여기 질문하는 작가님 봐주세요.”

“끄러겠슴다!”

동글동글한 눈을 빛내며 야무지게 대답하는 가비를 보고, 스태프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자, 가비야. 심심이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을 했어?”

“…움, 쩌음에요. 씸… 씸… 해, 이로케 목쏘리만 들려짜나요?

끄래서 유나 언니가 뀌신인 줄 알고 깜짝 놀래써요. 그래서 까비는 쌩각해서요. 뀌신도 가치 놀 쑤가 있나?”

“…응? 귀신도 같이 논다고?”

“녜, 목쏘리만 들리니까… 같이 놀 쑤 있는지 업는지 모르짜나요. 왜냐하며는 우리는 얼음땡 하고 이써거든요.”

그렇게 대답하던 가비가 갑자기 퍼뜩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짝! 두 번 쳤다.

“쌩각나따!”

“…무슨 생각?”

“몸이 업써도, 목쏘리랑 놀 쑤 이써요. 나중에 진짜 뀌신 만나면 같이 놀아야지, 헤에헷~”

생각만 해도 좋다는 듯, 가비는 의자에 앉은 채로 발을 까딱거리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귀신이랑 같이 놀 생각에 신이 난다고?

심아영 작가는 자신이 잘못 이해했나 싶어서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그러니까, 가비는… 귀신이랑 같이 놀겠다는 뜻이야?”

“녜!”

“뭐 하고 놀 건데?”

“말하면서 놀찌요~ 노래도 부를 쑤 이꼬, 넌땐스 퀴즈도 내고, 끝말잇기도 할 쑤 이써요!”

“가비는 귀신이 안 무서워?”

“녜!”

“왜?”

“뀌신 왜 무써워요?”

가비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자 심아영 작가가 오히려 당황했다.

“음, 다른 친구들은 다 무서워하잖아. 눈에 안 보이고… 또 죽은 사람이….”

심아영 작가가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그래도 네 살 아이한테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된다며, 산 사람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둥…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흠흠, 아니야. 이건 패스.”

“패쑤?”

“응, 다시 다시. 원래 질문이 뭐였냐면… 심심이를 처음 만났을 때 어땠냐고. 그러니까, 귀신이 아닌 거 알았을 때는 어땠어?”

“후와, 옴총 크다! 꺼대한 싼이다! 새하얀 싼이다! 영짜, 영짜, 올라가고 싶다! 그랬는데….

갑자기 눈, 코, 입이 뿅! 나타나서 안녕~ 하고 인싸하니까 까비는 아이코 깜짝이야 그래꺼든요?”

어느새 가비는 의자에서 폴짝 뛰어 내려와 손짓, 발짓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표정까지 시시각각 바꿔가며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심아영 작가는 인터뷰 중이란 사실도 깜빡 잊고 가비의 말에 점점 빠져들었다.

“…끄리고 배를 똥똥! 뚜드려떠니 요기서 티브이가 나와써요. 까비도 끄거 하고 시퍼요. 똥똥! 나와라, 얍! 그러면 까비 째미이썼던 일 따른 사람들도 가치 볼 쑤 이쓸 텐데….”

그렇게 말하던 가비가 갑자기 또 짝짝! 박수를 쳤다.

“아, 마따. 까머근 거 하나 이써요!”

“까먹은 거? 어떤 거?”

“까비가 오늘 아침에 옴총 째밌는 거 아라서, 찐구들이랑 카메라한테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이코, 깜빡이다 해써요. 찌금 해도 돼요?”

“지금? 뭔데?”

“헤에헤… 목또리또마뱀이다요.”

가비가 배시시 웃음을 흘리면서, 작은 두 손을 활짝 펼쳐 목옆에 붙였다.

카메라 감독이 본능적으로 가비의 전신을 담기 위해, 카메라가 고정된 삼각대를 번쩍 들어 점점 뒤로 후진했다.

“…우, 와! 우, 와!”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다리를 번쩍번쩍 들면서 전진하는 가비.

심아영 작가는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지만, 가비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말릴 수가 없었다.

결국 가비는 목도리도마뱀 흉내를 내며 스튜디오를 두 바퀴 돌고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헤에… 이고 띠브이에 나가면 죠케따. 끄러면 옴총 재미써 할 텐데. 끄쵸? 웃음이 하하하! 나오게쬬?”

천진한 가비의 말에 심아영도 따라서 하하, 웃다가 정신을 차렸다.

“흠흠… 잠깐만, 다음 질문이 있었는데 말이야.”

“끈데요, 자까님. 제가 이고 누가 가르쳐 쭸는지 아라요?”

“응? 목도리도마뱀?”

“녜! 이고 하찌영 이모가 알려줘써요. 하찌영 이모는~ 마음 머그면 다 하찌영~ 한다면~ 하찌영♪ 헤에헤, 옴총 머싰는 이모예요.”

“아, 그, 그래?”

“끄리고 아까는 쭘도 알려줘써요? 뽀여주까요?”

“…춤?”

심아영 작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가비가 또다시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이로케, 이로케. 쏜잡고 가치 출 쑤도 이써요. 자까님 가치 출래요? 이고 아주 쒸워요!”

어느새 가비의 손을 잡고 폴짝, 폴짝 춤을 추고 있는 심아영 작가.

왜지, 왜 내가 얘랑 춤을 추고 있는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여기서 멈춰야 하는데… 이상하게 자꾸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도가비, 얘. 너무 이상하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입 밖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하….

꺄하하하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두 사람을 따라 카메라 감독도 카메라와 함께 빙글빙글 따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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