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0화
시골 마을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비가 선이와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던 그때.
민완은 재영으로부터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메시지 아래에는 SNS 게시물을 캡처한 이미지가 여러 장 첨부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지난번 차세희와 함께 백화점을 갔던 날, 뷔페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가비가 줄을 선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동안, 한걸음 뒤에 물러나 있던 민완과 차세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가비가 누구 닮아 예쁜가 했더니 엄마 아빠가 둘 다 선남선녀더라고요♡]
작성자는 별생각 없이 올린 글이었겠지만, 이는 가비의 오랜 팬들에게 큰 파문을 일으키고 말았다.
[이게 뭐지? 가비 아빠한테 애인 생겼어?]
[헐! 가비에게 새엄마가 생긴다고? 난 반댈세ㅠㅠ]
[누군데? 누구야? 네티즌 수사대 나와 주세요.]
[↳ 찾았음. 이름은 차세희, 연예인이었어.]
누군가가 이름을 언급한 이후에는 차세희가 출연했던 드라마와 영화, 예능 등의 캡처본이 줄줄이 올라왔다.
스크린 데뷔작이었던 <숲의 아이>에서의 신비로운 여인, 웹 드라마 <건드리면 문다>에서 입으로 아몬드를 쏘아내던 광기 어린 신입 사원, 이현과 함께 출연했던 <그림자 짙은 밤>에서 맡았던 털털한 형사 역할까지.
작품마다 이미지가 워낙 달랐기에 댓글의 반응도 다양했다.
[천의 얼굴이네.]
[↳아직 자기 역할을 못 찾은 거 아님?ㅋㅋㅋ]
[솔직히 배우가 이 정도면 엄청 예쁜 얼굴은 아니지 않나?]
[연기력도 쏘쏘.]
[근데 공백이 너무 긴 거 아냐? 배우 접고, 가비 아빠랑 결혼해서 전업할 생각인가?]
[↳미국에서 드라마 찍었더라.(사진 첨부) 시즌 1 촬영이 얼마 전에 끝났대.]
[뭐야, 그럼 미국으로 또 가는 거야? 결혼하면 가비는? 가비도 미국으로 간다고? 그건 안 돼!!!!!]
[사람들 설레발 장난 아니네ㅋㅋㅋ 사진 한 번 찍혔다고 다 결혼이냐? 그냥 아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이거 봐봐라.(첨부: ‘나 혼자 잘한다’에서 민완이 차세희 옷장 컨설팅해 주던 장면)]
[↳아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굳이 주말에 가비까지 함께 백화점 뷔페에서 밥을 먹는다고? 누가 봐도 한 가족 코스프레 아님?]
[이건 그냥 내 뇌피셜인데… 혹시 가비 친엄마가 차세희는 아니겠지?]
[↳놉. 안 닮았음.]
[가비 아빠가 아깝다.]
[↳정확히는 가비가 아깝다….]
[댓글들 웃기네. 가비 아빠는 그럼 뭐 평생 혼자 살아야 하냐?]
[↳나도 이 생각 했음ㅋㅋㅋ 가비 아빠 불쌍.]
[↳가비가 아직 어리니까 걱정하는 마음에 그러는 거지. 솔직히 재혼 가정에서 아이가 행복할 수 있을지 어떻게 장담함?]
[↳웃기네. 너 같은 사람의 편견이 이 사회를 망치는 거임.]
[↳그럼 친부모랑 사는 아이들은 다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 있어?]
[여기서 싸우는 사람들 뭐야, 진짜 싫다.]
[이모 쌈촌들! 예쁜 가비 보면서 진정하세요~(커다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배시시 웃는 가비의 맑고 순수한 미소 짤)]
[↳참회합니다.]
[↳아멘.]
[↳어른들이 미안하다 ㅠㅠ]
[↳다 됐고! 난 그냥 가비만 행복하면 돼.]
[↳응원합니다!]
[↳갑분 응원 뭐냐고ㅋㅋㅋㅋ]
재영이 보내준 댓글들을 확인한 민완은 머리를 짚었다.
‘…큰일 났네.’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면서… 너무 대책 없이 가만히 있었던 걸까?
혹시 차세희도 이걸 봤을까? 상처받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하는 사이, 재영으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일단 만나서 얘기해. 여기로 올 수 있어?]
민완은 두 시간 후에 가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차세희에게 연락을 해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병원에서 가비의 비밀을 털어놓은 이후, 무산되었던 영화 데이트를 하기는 했다.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기 때문인지, 두 번째 데이트는 마음이 참 편안했다.
차세희가 함께 있으면 자신이 많이 웃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매일 차세희가 보내는 시시콜콜한 메시지에도 익숙해졌다. 아니, 가끔은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
아이들과 스태프들이 탑승한 전세 버스가 마을 어귀로 진입했다.
“와~ 오랜만이다.”
“커다란 나무는 잎이 홀랑 벗겨졌네?! 대머리됐다. 히히.”
“저기 마을 회관 보인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계신다.”
“어디어디?”
창문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아이들을 발견한 마을 어르신들의 주름진 얼굴에도 반가운 미소가 번졌다.
“어이구~ 저 똥강아지들 보소!”
“시상에나, 손 흔드는 게 꼭 강아지 꼬리 흔드는 것처럼 살랑살랑하는구먼~”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열심히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보며, 어르신들도 두 손을 같이 흔들었다.
버스가 마을 회관 앞에 정차하자, 아이들이 내리며 인사를 건넸다.
안경을 쓴 지호가 제일 먼저 내리며, 동생들에게 솔선수범하듯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그간 건강하셨어요?”
“으메~ 니는 안경을 써서 더 똑똑해졌는갑네?”
“감사합니다. 이 안경은 책을 많이 봐서 쓰게 된 거예요. 게임 한 게 아니고요.”
지호는 보는 사람들마다 저의 안경이 책 때문에 쓰게 된 것이라 재차 강조했다.
뒤이어 선이, 민찬이와 민주, 유나, 밤이가 줄줄이 내리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서들 온나~ 버스 타고 오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을꼬?”
마지막으로 가비가 등장했다.
“안녕하심까!!!!! 따섯 살~ 또까비가 왔습니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두 팔을 활짝 벌려 인사하는 가비의 모습에, 어르신들이 껄껄 웃었다.
“아따, 또까비 왔냐? 니는 올 때 혼자서 기차통을 삶아 먹구 온겨? 목소리가 어째 더 커졌구만?”
“끼차통이요? 끄게 몬데요? 까비 그거 먹꼬 시퍼요!”
“으하핫, 그려그려. 김 씨~ 여 와서 기차통 하나 삶아야 쓰겄소? 또까비가 먹꼬 싶다네?”
“으잉? 김 씨 으디로 간겨?”
“아침부터 제일 먼저 일어나서 목이 빠져라 기다린 양반이, 고새 어디로 갔디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두리번거렸다.
“낌씨가 누구예요?”
“수백이 말이여, 수백이. 또가비 니 짝꿍, 초코파이 할배.”
“쑤박 할아부지!”
“그려. 어디로 갔디야?”
“아, 전화 좀 해봐.”
“뒷간에 똥 누러 갔나 보지. 뭘 또 찾아싸, 아가들 춥겠네. 어여 들어가자~ 니들 준다고 아침부터 노란 호박 고구마 구웠어.”
“네에!!!”
아이들이 어르신들을 따라 실내로 들어가는데, 가비 혼자 뒤에 남아 두리번두리번했다.
“꼭꼭 쑴어라? 할아부지 머리카락 보인다?!”
혼자 마당을 기웃거리며 김수백 할아버지를 찾는 가비.
“할아부지!! 까비 왔다요?!”
큰 목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도도, 도도도돗.
종종거리며 이쪽저쪽을 둘러보던 가비가, 저를 찍고 있던 권지웅에게 물었다.
“쌈촌, 뒤깐이가 오디예요?”
“…….”
“흥! 또 말 안 해주는구나? 끄럼 까비 혼자 찾으러 갈 꺼다요?!”
가비가 보란 듯이 열려 있는 대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졸졸졸 따라가는 카메라.
걸어가다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가비가 혀를 쏙 내민다.
“메롱!”
“……?!”
“히히히, 까비 잡아봐라!”
가비가 냅다 달려서 대문 밖으로 나가 담벼락 옆 작은 돌 뒤로 쏙 숨었다.
허둥지둥 쫓아간 카메라가 이쪽저쪽을 둘러보는데, 뒤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오는 가비.
“…워!”
놀란 권지웅의 카메라가 흔들렸고, 그 모습을 본 가비가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으헤헤헤~~ 쌈촌 깜짝 놀라따! 까비 때문에 놀라따!!!”
“…….”
권지웅은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깔깔 웃는 가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두는데.
가비의 뒤로 점점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워!”
가비의 작은 어깨 위로 털이 보송보송한 발이 턱, 하니 올라왔다.
“으에에엣?!?!?!?!?!”
깜짝 놀란 가비가 펄쩍 뛰어오르며 돌아서자, 고양이 두 마리를 안고 있는 김수백 할아버지가 보였다.
“으하하핫! 또까비 고놈, 놀라서 펄쩍 뛰는 모습이 아주 개구리 같구만!”
껄껄 웃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가비가 저도 따라서 배를 잡고 웃었다.
“으헤헤~ 아고, 깜짝이야! 아이고, 째미이써라! 까비 아주 배꼽이가 도망가게따요.”
“깜짝이라는 놈이, 웃기는 왜 웃어?”
“깜짝 놀라는 거 재밌어. 심장이 콩닥콩닥 뛰니까! 헤헤헤.”
가비가 제 작은 가슴 위에 두 손을 얹으며 제자리에서 콩콩, 뛰었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가 귀처럼 팔랑이는 모습에 김수백 할아버지가 또다시 웃었다.
“니가 강아지여?”
“멍멍! 헥헥헥.”
가비가 혓바닥을 내밀고, 두 손을 얼굴 아래에 붙였다.
“또야, 까비야. 이 언니야랑 친구 하면 되겠다.”
“냐아-!”
“이옹, 이옹!”
김수백 할아버지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던 고양이 두 마리가 그제야 버둥거리며 목소리를 냈다.
“으에! 얘네들이 또와 까비예요? 왜 벌써 어른이가 돼써요?”
“니양- 냐양-!”
“이요옹, 이용!”
김수백 할아버지가 바닥에 내려주자, 고양이들은 가비의 다리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며 몸을 비벼왔다.
“으헤헷! 안녕, 또까비야. 나도 또까비란다? 썰마 나를 기억하고 있니? 혹시 또랑 까비가 또까비를 보고 싶어한 거신가? 아이참~ 히히, 깐지러워~~”
가비가 쪼그려 앉아 또와 까비랑 손장난하는 모습을 보며 김수백 할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모습을 보고 싶어서 저 멀리 버스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가서 고양이들을 안고 온 것이었다.
“…보람이 있구먼.”
중얼거리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권지웅의 카메라가 화면 가득 담아냈다.
“크흠! 흠!”
김수백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눈을 부라리며 소리부터 치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김수백 할아버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안주머니에서 하얀 종이에 싼 뭔가를 부스럭거리며 꺼냈다.
“또까비야, 이거 내가 특별히 니한테만 주는 거다.”
“이게 몬데요?”
“곶감이다, 곶감. 내가 지난가을에 하나하나 다 따서, 말린 것이여. 아주 달고, 몸에는 보약이여. 하나 물어봐라.”
할아버지가 주름진 손으로 천천히 곶감을 감싸고 있는 하얀 종이를 벗겨냈다. 그리고 가비의 입 가까이 붙여주었다.
앙!
순순히 곶감을 한 입 물어뜯는 가비의 모습에 김수백 할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또까비 니는 두 손으로 안 받고, 입으로 받아묵냐?”
“으헤헤, 까비는 똥깡아지니까요. 멍멍!! 아주 맛있다, 멍멍!”
오물오물하며 곶감을 씹어 삼킨 가비가 다시금 입을 아~ 하고 벌렸다.
김수백 할아버지가 가비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남은 곶감의 꼭지를 따고, 먹기 좋게 손으로 잘라서 가비의 입에 쏙 넣어줬다.
오물오물, 냠냠냠.
쏙.
오물오물, 냠냠냠.
그렇게 서너 번을 잘게 잘라서 나눈 곶감을 다 먹은 가비가 헤헤 웃으며 입 주변을 쓱쓱 닦았다.
“이제 들어가자.”
김수백 할아버지가 일어나려는데, 가비가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와 수백 할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뭐 하는 거여?”
할아버지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다.
저를 꼭 끌어안은 가비를 떼어내지 않고 등을 토닥토닥 쓸어내려 주며 물었다.
“곶감이 그렇게 맛났냐?”
“네, 할아부지. 꼬마워요.”
“…그랴, 맛있으면 됐다.”
꼭 안고 있는 가비와 할아버지.
그 주변을 맴돌며 냥냥거리는 고양이 두 마리.
한 폭의 그림 같다고 생각하며 권지웅이 카메라 앵글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담아내는 그때였다.
가비가 또르륵 검은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핀 후에, 김수백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쑤박 할아버지…!”
“응?”
“끄런데 꽂깜이 또 업써요?”
“…욘석 봐라?”
할아버지가 꼭 안고 있던 가비를 살짝 떼어내며 눈을 흘겼다.
헤헤헤, 웃는 가비의 얼굴은 그저 해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