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25)

04-05시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더니.

공이 오지 않더라도 공을 잡는 동료 선수들이 가장 패스하기 좋은 위치를 언제나 선점하고 있던 호날두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득점으로 연결될 패스 루트를 찾고 있던 구드욘센이 호날두와 그 앞쪽 빈 공간을 흘깃 바라보더니 그쪽으로 롱패스를 날렸다.

좌측 윙 지역으로 날아가는 공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은 호날두는 그것을 헤딩으로 끊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발 아래로 착지시키면서, 간결하고도 매우 완성도 높은 볼 터치를 보여주었다.

관중들이 감탄할 새도 없이 공을 잡은 호날두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X발! 뭐하고 있어? 당장 저 새끼 막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 로이 킨이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호날두는 이미 달리고 있었고 그의 속도는 경기장에 있는 그 어떤 선수보다도 빨랐다.

그렇다는 건 누구도 그를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오직 속도만으로 리암 밀러를 제친 호날두에게 달려드는 포춘과 실베스트레.

개리 네빌과 로이 킨도 아니고 겨우 이 정도 수준의 선수들에게 호날두가 막힐 이유는 없다.

단숨에 수비진들의 무게 중심을 붕괴시키는 ‘라 크로케타’ 를 선보이면서 농락, 그대로 페널티 박스를 향해서 돌격했다.

악귀와 같은 표정으로 그런 달려드는 로이 킨.

과연 스포츠맨 쉽 따위는 팔아치운 ‘인성왕’ 답게 호날두의 다리를 박살내더라도 막아내겠다는 귀기가 드러났다.

하지만 호날두가 더 빨랐다.

그는 맨유 선수들의 상상 이상으로 빠른 타이밍, 먼 거리에서 슈팅을 날렸다.

맨유의 골키퍼 하워드가 몸을 날렸지만, 대포알처럼 날아간 공은 여지없이 골 망을 흔들었다.

이예예예예예!!

첼시 팬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성, 맨유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고함, 원정 맨유 팬들의 분노와 욕설 속에서 호날두는 두 주먹을 불끈 들어올렸다.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에서 멋진 데뷔 골을 넣은 그를 향해 램파드를 비롯한 첼시 선수들이 달려들어서 몸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짐승의 언어를 내뱉는 선수들 사이에서 호날두는 데뷔 골의 '맛'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했다

=

전반전이 끝난 후, 호날두는 교체되었는데 상당히 이른 시간의 교체였다.

이유는 스포르팅에서도 거의 풀 주전을 뛰었고 그 직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도 한 경기도 빠짐없이 출전한 것을 우려한 체력 안배였다.

호날두는 무리뉴 감독의 배려를 거부하지 않았고 들어오는 제레미와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격려했다. 

“아주 훌륭한 활약이었어. 내가 기대했던 그 모습 그대로야!”

“감사합니다, 보스.”

“너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네가 이 팀에 와서 정말 다행이야.”

무리뉴의 칭찬은 사람을 참 들뜨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쨌거나 후반전에는 호날두가 빠지고 제레미가 들어갔고, 무리뉴는 포메이션을 4-4-2 다이아몬드 진형으로 바꾸면서 변화를 도모했다.

퍼거슨이 무리뉴의 4-3-3과 호날두를 막기 위해서 실컷 라커룸에서 지시를 내렸을 텐데, 마치 그것을 조롱하듯 무리뉴는 새로운 포메이션과 전술을 후반전을 들고 나와 테마 자체를 바꿨다.

농락당한 것을 깨달았는지 붉어진 퍼거슨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무리뉴가 왜 퍼거슨과의 전적에서 앞설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무리뉴는 기어코 맨유에게 한 골을 더 박는데 성공했다.

첼시의 승리를 확정 짓는 구드욘센의 발리슛이었다.

삑-! 삐이익-!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무리뉴와 악수한 이후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맨유 선수들에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퍼거슨은 누가 건들면 정말 폭발할 것처럼 보였다.

호날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맨유 선수들이 몸을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그 개차반 로이 킨마저도!

퍼거슨의 '헤어드라이기'는 인성왕 마저도 벌벌 떨게 하는 것이었다.

[무리뉴의 첼시가 퍼거슨의 맨유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선보였습니다! 전술적으로도 완전히 무리뉴가 퍼거슨을 가지고 놀았어요!]

[신인 감독다운 과감함과 재기발랄함이 드러나는 경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주 역동적이고도 선 굵은 축구에요! 잉글랜드에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벌써부터 헤드라인으로 나올 기사들이 궁금합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첼시가 이 기세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죠.]

=

무리뉴의 첼시는 파란, 그 자체였다.

맨유를 상대로 승리한 첼시는 버밍엄을 원정에서 0:1로 때려잡고 크리스탈 팰리스를 0:2로 제압했다.

그 다음 사우스 햄튼까지 꺾는데 성공하면서 파죽의 4연승을 질주, 아스날과 함께 프리미어리그 전승행진을 이어갔다.

여기까지는 그저 신예의 첫 끗발이 좋다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9월이 되고 10월이 되고 다시 11월에 접어들면서 언론뿐만 아니라 현지 팬들 사이에서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껏 11경기를 치른 첼시의 성적은 9승 1무 1패.

승점 28점, 단독 1위로 리그 테이블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있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이것은 절대 단순한 신예의 패기, 초심자의 행운이 아니란 것을.

잉글랜드 언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첼시를 주목했고 그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갓 리빌딩을 마친 팀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조직적인 선수들의 움직임, 프리미어 리그에 새 바람을 가져온 4-3-3 포메이션, 날카로운 심리전과 도발로 빈틈을 노려 승리를 쟁취하는 감독 무리뉴, 마지막으로 압도적인 기량과 역량으로 수비와 공격 스탯에서 리그 톱을 달리고 있는 선수들까지.

현재 2위에 올라있는 아스날과의 승점 차는 3점으로 그렇게 크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위와 같은 지표들을 자랑하는 현 첼시가 얼마나 막강한 포스를 보이고 있는지를.

지금의 첼시는 그야말로 어떤 경기에서건 도무지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무리뉴, 그 이상으로 주목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잉글랜드의 스포츠 매거진 ‘텔레그래프’의 유명 축구 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지금 현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을 다섯 뽑으라면 '첼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주제 무리뉴가 반드시 들어갈 것입니다. 또한 그 돌풍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핵심 선수 역시 반드시 들어가야 하겠지요.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선수입니다. 비록 유로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지만 다들 빅 리그 적응기간이 꽤 걸릴 것이라 여겼죠. 하지만 그 예측을 적은 보고서는 이제 쫙쫙 찢어서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합니다!”

“호날두는 무려 리그 10경기 출전에 6골 4어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공격 포인트를 적립하기 쉬운, 공격수가 아닙니다. 측면 윙어지요.”

호날두는 현재 아스날의 티에리 앙리의 뒤를 이어 크리스탈 팰리스의 앤드류 존슨과 함께 공동 득점 2위에 올라와 있다.

물론 앙리와 존슨은 공격수다.

“그를 영입하려 할 때 회의적이었던 여론은 이제 눈 똑바로 뜨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오퍼를 할까 말까 고민했던 구단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미래의 슈퍼스타는 이미 버스를 타고 블루스로 떠나버렸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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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호날두다!"

"어디? 어디!?"

"와아! 진짜다! 첼시의 그 호날두야!"

"우린 당신의 팬이에요! 사인해주세요! 크리스티안!"

작은 강아지 같은 어린 팬들의 등장에 호날두는 미소를 지으면서 사인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 한 명은 맨유의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서도 당당히 첼시의 팬이라며 사인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그게 귀여워서 특히 더 열심히 해주었다.

프로 선수로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언제나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경기가 안 풀릴 때 때때로 경기장 안에서 난폭하게 굴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호날두지만 그런 호날두도 팬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선수였다.

우상의 안 좋은 점을 배제하고 좋은 점만 흡수한 지금의 호날두가 팬 서비스가 좋은 건 당연지사.

첼시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것도 목표지만, 사실 그보다도 가장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한 호날두였다.

"크리스티안~ 지금 훈련장에 가는 거예요?"

"우와! 훈련하는 거 구경해도 돼요? 시끄럽게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게요."

"오늘은 쉬는 날이란다, 꼬마 친구들. 훈련장이 아니라 단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거야."

"오! 크리스티안의 친구도 축구를 잘하나요?"

"아쉽지만 젬병이지. 같이 축구하면 속이 터지는 친구야."

킥킥킥~

“에이~ 그게 뭐야-! 히히히!”

유쾌한 꼬마 팬들을 뒤로 한 채 호날두는 멘데스가 소개해준 유명 투자 컨설턴트를 만나러 갈 예정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미래에서 왔으니 미래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

호날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돈이 되는' 미래의 지식들을 알고 있었는데 영화보다 훨씬 더 스케일이 큰 사건들도 있었다.

바로 2007년에 터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9월에 터지는 세계금융위기다.

미국의 중산층이 몰락하게 되는 사건이었지만 제대로 대비만 한다면 떼돈을 벌 수 있기도 했다.

스포르팅 시절부터 사치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온 호날두는 지금 첼시에서 약 6만 파운드의 주급을 받고 있었다.

들어오는 수입과 영화 투자 수익금으로 은행 대출금을 갚은 다음, 남은 돈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할 생각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우, 당신은 스스로를 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곳 런던에서 크리스티안 호날두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제 이름은 데이빗 젠킨스입니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펠레를 만났을 때 했던 대화를 인용하면서 하는 데이빗 젠킨스의 말에 호날두는 피식 웃었다.

멘데스에게 호날두의 성격에 대해서 들었던 것인지 젠킨스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호날두는 눈치 빠른 이 친구가 썩 마음에 들었다.

"우선 일차적으로 미국의 금융 기업들과 부동산 쪽에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음? 그쪽이 요즘 잘 나가고 있기는 한데 의외의 선택이시군요. 조금 더 안정적인 투자처도 충분히 있을 텐데."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은 제가 좋아하는 단어죠. 상승률이 빠르니 그만큼 수익도 클 것이고요."

호날두는 축구하기에도 바쁜 몸이다.

단체 훈련이 없는 날에도 지난 경기들을 비디오로 돌려보면서 각 상황마다 어떻게 움직여야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을지를 분석하는 것이 취미다.

또한 영상에서 나타난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단점과 습관 등을 보완하고 공간 이해력, 전술 이해도 등과 같은 축구 지능을 키우는 훈련도 계속하는 중이다.

하여 자산을 직접 관리할 시간이 없는 호날두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세금 문제나 자산 운용, 투자 등은 일단은 전문가들에게 맡겨놓은 후, 큰 분기마다 결정을 내리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아주 건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다음에도 웃으면서 만났으면 좋겠군요."

"하하하! 당신을 실망시킬 일은 없을 겁니다. 나중에 따로 하실 이야기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해주세요. 아무리 바빠도 호날두 선수의 전화를 가장 첫 번째로 받을 것입니다."

영화 산업에서의 무패 행진과 잇따른 경제 위기 속의 환원 이익, 그리고 미래의 우량 가치 기업에 대한 투자까지.

몇 년만 지나면 호날두의 재산은 정말 눈덩이처럼 불어나있을 것이다.

정말 축구선수로 벌어들이는 돈은 '공차기로 버는 돈 따위~'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호날두는 그 날이 기대되었다.

===

첼시는 챔피언스 리그 H조에 배정되었다.

H조에는 파리 생제르망, FC 포르투, CSKA 모스크바가 배정되었는데 언 뜻 보면 가히 죽음의 조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좀 더 나중의 이야기.

이 때의 파리 생제르망은 좋지 않은 성적에 재정 위기마저 찾아와 휘청거리는 중으로 리그앙 독주클럽으로서의 이미지 상상할 수 없었다. 

오일머니가 들어오지 않는 지금은 그저 그런 팀에 불과하다는 소리.

첼시는 지난 원정 경기에서 파리 생제르망을 상대로 가볍게 0:3 대승을 거두었다.

이 당시 파리 생제르망은 누가 봐도 약체 팀이었다.

그리고 오늘 열리는 경기는 바로 '무리뉴 더비'.

포르투와 첼시의 대결이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이자 무리뉴의 친정팀이기도 한 포르투.

포르투의 비토르 페르난데스 감독은 '대단한 성공을 가져온 무리뉴 감독을 존경하지만 승부에 최선을 다해 이기도록 노력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무리뉴 역시 이에 응대하여 '포르투를 매우 사랑하지만 지금은 첼시의 감독으로서 싸울 것.' 이라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EPL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리뉴가 유럽 대항전에서도 통할지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이 두 팀 간의 대결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호날두는 이날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팀, 리그, 컵 가릴 것 없이 우리는 좋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목표는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라. 경기장에서 지켜보고 있을 팬들을 위해 투쟁해라. 승리에 대한 갈망 이외의 불필요한 감정은 배제하겠다." 

무리뉴는 많은 지시 사항들을 요구하지 않았다.

선수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만을 놓고 봤을 때, 솔직히 포르투 정도는 꺾을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홈경기가 아니던가.

"호날두."

찡긋-

무리뉴가 호날두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선수들은 웃음을 터트렸고 호날두는 질색인 표정을 지었다.

"발롱도르를 타고 싶으면 열심히 뛰어라. 나는 그 누구보다도 네가 타야 한다 생각하지만 멍청한 일부 기자들은 네가 최근 경기에 부진한다면 절대로 표를 주지 않을 테니까."

발롱도르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의 눈길이 호날두에게 쏠렸다.

발롱도르(Ballon d'or).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축구 선수 개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롭고 위대한 상.

과거에는 펠레와 마라도나 같은 비유럽 권 선수들이 제외되긴 했지만, 실제로 시대를 이끌어나갔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수들은 모두 이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스포르팅에서 대활약하여 리그 우승과 유로파 리그 우승을 견인했으며, 2004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도 포르투갈 최초의 국가 대항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포르투갈 올해의 선수, 포르투갈 리그 득점왕, 유로 드림팀, 유로 최우수 선수를 석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로 이적한 이후에도 적응기간 없이 대활약을 펼치고 있는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분명 발롱도르를 타도 이상하지 않은 선수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주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었는데 바로 호날두와 같이 발롱도르 최종 3인에 이름을 올린 데쿠와 안드리 셰브첸코다.

그 중에서도 데쿠의 2004년 커리어는 호날두를 능가했고, 발롱도르에 가장 가까운 선수로 평가 받는 중이다.

데쿠는 포르투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루었고 포르투갈 선수로서 유로 우승을 거머쥐며 2004년에 있었던 가장 명성 있던 대회들의 우승컵을 모두 들었다.

데쿠는 분명 국가대표팀의 선배이고 사이도 나쁘지 않았지만 호날두는 그에게 발롱도르를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아직 2004년은 끝나지 않았고, 후반기의 임팩트로 격차가 뒤집어진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 호날두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그야말로 미친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중.

무리뉴의 말은 단지 사기를 북돋기 위한 소리가 아닌 확실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호날두는 2008년에서야 자신의 첫 발롱도르를 타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2004년, 만약 올해 자신이 발롱도르를 받게 된다면 무려 4년의 시간을 앞당기게 되는 것이다.

‘정지우’는 이 몸에 들어오게 된 이후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호날두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걷겠다고. 

그 약속을 위해서라도 이번 발롱도르는 반드시 자신이 가져가야 했다.

최선을 다하겠다 주문한 호날두는 이전과는 달라진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무리뉴의 말은 아주 조금 안주의 마음을 갖던 호날두를 다시금 채찍질하게 만들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선수! 리빙스턴 선수를 제치고 그대로 돌파합니다! 마치 호나우두를 연상케 하는 뱀 드리블!]

[순식간에 포르투 선수 세 명을 제쳐버리는 호날두! 드록바 선수에게 패스합니까!? 아니면 그냥 슛을 날리나요!?]

[호날두 그대로 슈우우웃-! 들어갔습니다!! 골입니다!!]

[굉장한 강슛입니다! 이제는 호날두 선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아주 잘 때린 강력한 슛! 발롱도르 최종 3인에 오른 선수다운 멋진 골이었습니다!]

첼시로 이적한 이후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첫 번째 골을 기록한 호날두는 하늘을 향해 손가락으로 '1'표시를 하였다.

첫 번째 골이라는 의미와 ‘이건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라는 출사표의 뜻이었다.

회귀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의 호날두를 보는 듯한 지금의 호날두의 플레이는, 보는 이들의 눈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호날두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매일 같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가십이 돌 정도였으니까.

[올 시즌 첼시가 호날두를 영입한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짝 스타에게 너무 많은 이적료와 주급을 투자했다 여겼죠. 19살 선수에게 6만 파운드의 주급라니! 동갑인 웨인 루니가 현재 받고 있는 주급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액수지요!]

[하지만 이번에도 무리뉴 감독이 옳았습니다. 저 어린 포르투갈의 특급 선수는 첼시 서포터들의 마음을 쏙 빼앗아버렸습니다. 이대로만 해준다면 첼시의 얼굴은 바로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될 것입니다!]

호날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에 어시스트 하나를 추가로 올림으로써 팀 스코어를 2:0으로 만들었다.

후반전에는 추가 공격 포인트는 없었지만 끊임없이 포르투 수비진들을 괴롭히면서 왼쪽 라인을 초토화시키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호날두..

후반전 60분쯤에 교체되어 풀타임을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당연하게도 MOM은 호날두의 차지가 되었다.

"호날두 선수는 아주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승리하는 것은 가장 기쁜 일이며 제가 선수로 뛰는 이상 그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MVP로 지정되기까지 했으니 그냥 이긴 날보다 딱 두 배는 더 기쁘네요."

"포르투의 감독은 '우리는 호날두를 막지 못해서 졌다. 그는 이미 월드 클래스의 선수이다.' 라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호날두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상대 감독의 칭찬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 혼자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며 아직 월드 클래스라고 불릴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

[아르센 벵거, '첼시는 강한 팀이지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야.']

[주제 무리뉴, '아스날의 홈에서 승리하여 우승 경쟁에 유리한 위치를 점할 것.']

지금 무리뉴와 벵거의 사이는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는 축구계에 둘도 없는 앙숙으로 발전하지만 이 당시에는 퍼거슨과 벵거의 라이벌 관계가 더 대두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두 명감독은 중요한 경기를 맞아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런던 더비’ 인만큼 서포터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라이벌 팀을 꺾는 노력이 필요했다.

현재 첼시는 16경기 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우승권에 가까워졌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13승 2무 1패 승점 41점.

2위, 3위, 4위인 아스날, 에버튼, 맨유의 승점이 각각 34점, 33점, 30점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첼시는 다른 우승 경쟁 팀들을 상당한 격차로 따돌리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스날 원정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면, 역전을 노리는 아스날에게 철퇴를 내림과 동시에 다시 우승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된다.

더비전의 성격도 있는데 경기 자체도 우승을 향한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절대 질 수 없는 경기,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였고, 그렇기에 무리뉴 감독은 베스트 11을 동원하여 아스날의 홈, 하이버리 경기장으로 향했다.

호날두-드록바-더프

램파드-마케렐레-구드욘센

갈라스-테리-카르발류-페레이라

체흐

정석과도 같은 4-3-3 포메이션에서 반 시즌 가까운 경기를 치르는 동안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인 11명의 선수들.

모아놓고 보니 정말 질 것 같지 않은 그런 포스를 철철 풍기는 스쿼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아스날의 선수진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베르캄프-앙리

피레스-비에라-파브레가스-융베리

콜-투레-캠벨-로렌

레만

아스날은 플랫한 4-4-2를 들고 나왔다.

비록 전성기에서 살짝 내려왔지만 베르캄프와 앙리의 조합은 여전히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투톱이었고, 아스날의 전설이나 다름없는 융베리외 피레스, 거기에 현 EPL 최고의 박투박 미드필더 비에라와 눈부신 재능 파브레가스까지.

“이렇게 놓고 보니 맨유보다 확실히 더 강해 보이는데?”

그것은 착각이 아닌 사실이었다.

=

이번 경기에서 오른쪽 인사이드 포워드로 출전하는 호날두는 유로 8강전에서 맞붙었던 애슐리 콜을 적으로써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건 호날두 역시 마찬가지.

전 경기 내내 드리블 돌파 성공을 단 2회 밖에 하지 못했을 정도로 당시의 애슐리 콜에게 철저히 봉쇄당했다. 

다행히 두 번의 돌파가 모두 성공으로 이어졌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포르투갈의 우승은 없었을 거다.

그 때의 기억은 여전히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있었고, 처음으로 무기력감을 느끼게 만든 상대인 만큼, 지금껏 아껴왔던 모든 축구력(?)을 총동원하여 싸워야 할 것이다.

"아스날. 무패 우승을 달성할 당시에는 정말로 강한 팀이었다. 그들은 빠르고 영리했으며 또 단단했지. 하지만 솔직히 지금 그들은 늙고 노쇠하여 한 물 간 선수들에 불과하다. 너희들이 그들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 않아! 사자처럼 싸워라. 우리가 새로운 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어라."

전의를 고취시킨 무리뉴의 말을 마지막으로 아스날과 경기가 막이 올랐다.

벌써부터 취재진들이 인터뷰 룸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는데 우리에 대한 찬사로 끝날지, 조롱으로 끝날지는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서 갈리리라.

"또 만났네, 친구."

"그렇군요."

애슐리 콜이 이를 드러내며 호날두를 향해 웃었다.

호날두 역시 칼을 숨긴 웃음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좀 다를 거야. 솔직히 그 때는 처음 보는 선수라서 살짝 방심을 했거든."

호날두를 살살 긁는 애슐리 콜.

사실 이런 식으로 도발하거나 승부욕을 자극해서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은, 노련한 선수들이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을 상대할 때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했다.

스포르팅에서 같이 뛰었던 지지라는 선수도 한번 저런 도발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이성을 잃고 중구난방 식으로 덤비다가 약점을 드러내 탈탈 털리고, 경기 끝난 다음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면 괜히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피지컬이나 기술 같은 것이 아닌 ‘정신력’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상대 선수가 유리 멘탈인 경우이다.

호날두는 멘탈은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합금 멘탈이다. 

그 어떤 도발도 그의 부동심을 흔들 수는 없었다.

호날두가 알기에 애슐리 콜은 결국 첼시에서 뛰게 된다.

언젠가 첼시에서 같이 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나 역 도발은 자제하기로 했다.

[베르캄프의 감각적인 노룩 패스! 파고드는 앙리! 앙리-! 골~~~!!]

[첼시와 아스날 전의 선제골 주인공을 바로 티에리 앙리!!]

보기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지는 골 수준 높은 골이 경기시작 2분 만에 터져 나왔다.

첼시의 수비 조직도가 제대로 완성되기 전의 타이밍을 노리고 파고든 앙리가 베르캄프의 멋진 패스를 받아 골을 완성시킨 것이다.

"지금 뭐하는 거야! 다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부주장 램파드가 냅다 호통을 쳤다.

첼시 주장은 유스 출신 존 테리였지만 부주장 램파드의 리더쉽과 위상도 꿀리지는 않았다.

부주장의 호통에 다른 첼시 선수들의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호날두는 보았다.

연승행진, 무패행진을 이어나가면서 1위, 솔직히 첼시는 자만하고 있었고 방금 골은 그 자만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었다.

베르캄프의 터치와 앙리의 돌파를 너무 쉽게 허용했기 때문이다.

앙리의 골과 램파드의 호통은 그것을 일깨운 것이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발끝을 이용한 블로킹으로 파브레가스의 패스를 끊어냅니다! 원 터치로 더프에게 크로스! 정확합니다!]

[깔끔한 태클로 볼을 낚아채는 호날두! 이 선수 수비적으로도 상당히 뛰어난 센스를 보여주고 있는군요!]

호날두의 수비 센스는 첼시에 와서 점점 더 발전하는 중이었다.

필요할 때는 원톱 스트라이커에게도 수비가담을 요구하는 무리뉴에게, 이런 호날두의 플레이는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정신 차린 첼시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은 반격을 준비했다.

램파드의 공이 가장 좋은 위치에 있던 호날두에게 날아오면서 역습의 시작을 알렸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우아한 볼터치로 공을 받은 호날두는 바로 쾌속 진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앞을 막아서는 건 역시 애슐리 콜.

기가 막힌 끊어내기로 호날두의 공을 탈취했다.

"아직 멀었어!"

"......"

도발은 계속되었고 호날두는 대응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애슐리 콜은 호날두를 철저히 봉쇄하며 ‘클래스의 차이’를 알려주는 축구 교습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전반 20분 만에 상황은 반전되었다.

갈라스의 코너킥 크로스를 받은 호날두가 다시 골문을 향해 돌진을 시도했다.

굉장한 속도로 달리는 그를 가로막는 것은 또 다시 애슐리 콜.

자신감 넘치게 덤벼드는 애슐리 콜이었지만 이번 경합의 승자는 호날두였다.

공을 차는 태클을 가하는 순간 터진, 급격한 방향전환의 크루이프 턴. 

절묘한 호날두의 개인기는 애슐리 콜의 표정을 일그러지게, 그의 발이 허공을 가르게 만들었다.

호날두는 무리하지 않고 때마침 골문 가까이에 있던 존 테리에게 킬 패스.

호날두에게 쏠려있던 아스날 수비진들의 시선 바깥에 있던 존 테리는 디딤 발을 이용한 골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나이스, 주장! 완벽한 골이야!"

"크리스, 이건 네 덕분이야. 하하하!"

존 테리에게 안기면서 환하게 웃음 짓는 호날두.

회귀 전이었으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1:1, 아스날과 첼시의 스코어는 현재 동점이었다.

=

동점골로 분위기를 잡나 싶었지만 그 후 10분 만에 아스날이 한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 주인공은 이번에도 역시 '티에리 앙리'.

체흐의 키를 넘어가는 우아한 로빙슛이 첼시의 골문을 갈랐다.

아스날 팬들의 격한 환호성 속에서 앙리가 손가락 세레머니를 선보였다.

역시 현 EPL의 킹, 앙리였다.

'하... 이러면 좀 힘들어지는데. 무승부를 노려야 하나?'

첫 번째 골은 방심해서 먹혔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골은 아니었다.

베르캄프와 앙리의 패스플레이에 완벽하게 농락당한 첼시 선수들, 그것의 결과물이었다.

존 테리, 카르발류 등이 마치 괴물 보듯이 쳐다보는 그런 시선을 즐기며 베르캄프와 앙리는 하프라인 아래쪽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호날두는 깨달을 수 있었다.

첼시는 나중에 최다승점, 최소실점 우승의 신화를 세우게 되지만 지금은 50년 동안 우승 한 번 없었던 그런 구단이라는 것을. 

전반전은 그렇게 끝났다.

차라리 두 골을 먼저 먹히고 그 다음 만회골을 넣은 상태에서 전반전이 끝났다면 라커룸의 사기가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으리라.

자기가 세상에서 최고인줄 알았던 질풍노도의 사춘기 청년이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에게 한 방 크게 얻어맞고 기가 죽었다.

지금 첼시의 분위기는 딱 그랬다.

"베르캄프, 피에스, 융베리, 캠벨! 얘네들이 몇 살인 줄 알아? 다 늙은이들이야! 선수로서 황혼기로 진작 접어든 나이라고! 그런 늙은이들조차도 막아내지 못해놓고 어떻게 우승을 노릴 수가 있어!?"

라커룸의 무리뉴는 호통을 자제하지 않았다.

"존! 첫 골은 정말 좋았지만 오늘 네가 보여준 수비는 정말 실망스럽다! 베르캄프는 몸싸움을 싫어하니 강하게 압박하라고 내가 지시했는데 너는 그것을 따르지 않았어!"

또한 존 테리의 패스미스가 그대로 실점으로 연결된 것을 무리뉴는 꼬집었다.

사실 존 테리가 골을 넣긴 했지만 그의 수비 실책은 비판받아 마땅했다.

지은 잘못이 있는 존 테리는 그저 고개만 푹 숙일 뿐이다.

"페레이라! 오늘 너의 오버래핑은 시의적절하지 않았어! 그리고 도중에 우리 팀이 공을 빼앗기면 빠르게 와서 라인 복귀를 해야지!"

페레이라는 실점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지는 않았지만 뒷공간을 여러 번 털리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풀백들은 속도가 생명인데 페레이라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지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되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계속해서 무리뉴는 선수 한 명 한 명을 지목하면서 그들의 실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윽고 호날두의 차례가 다가왔다.

"크리스, 오늘도 너의 경기력은 준수했지만 내가 바라는 기대치는 그 이상이야. 조금 더 공격적으로 임해라. 네 재능은 수비가 아니라 공격이야!"

"알겠습니다, 보스."

선수들의 수비가담을 중시하는 무리뉴에게 공격하라는 지시를 들은 것은 그만큼 후반전에 득점이 간절하다는 뜻이다.

‘정지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호날두는 이미 스타 선수가 되었지만 언제나 감독에게 공손해했고 선을 넘는 법이 없었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후반전 경기를 위해 나가는 선수들.

전반전이 끝나고 축 처진 것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져 있었다.

마지막에 나가는 호날두의 어깨를 붙잡는 이는 무리뉴였다.

"내가 한바탕 난장을 피웠으니 이제 다들 정신 차리고 수비를 할 거야. 너의 수비 실력은 보기 좋았지만 이제는 진정한 재능을 살릴 때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맡겨주십쇼. 반드시 한 방 먹이겠습니다."

무리뉴와 호날두는 이를 드러내며 서로를 보고 웃었다.

무리뉴 밑에서 뛴 기간은 이제 몇 달에 불과했지만 호날두는 그가 퍽 마음에 들었다.

그건 무리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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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갈고 덤벼드는 애슐리 콜.

제 아무리 현재의 호날두가 회귀 전 04-05시즌의 호날두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었더라도, 세계 탑 클래스의 레프트 백인 애슐리 콜을 자력으로 뚫기는 버거운 일이었다.

호날두를 견제하는 선수가 그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호날두는 전반전보다 영리하게 대처했다.

단순히 승부욕에 휩싸여서 억지로 1대1 개인기 돌파 등을 시도하기 보다는, 적절한 위치의 동료들에게 패스를 하거나 가벼운 방향 전환을 통해 지역방어를 무력화시키는 등 다양한 루트의 볼 전개 방식을 이용했다.

스스로의 개인플레이를 억제하면서 최대한 팀 전체에 녹아들어 움직이는 호날두.

덕분에 아스날의 집중 견제는 인력 낭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반드시 틈은 생긴다. 그 때 뚫고 나가면 돼.’

모름지기 좋은 선수란, 어려운 길을 우직하게 돌파만하는 선수가 아닌, 돌아갈 줄 아는 현명함을 갖춘 선수였다.

호날두는 적어도 안 될 줄 알면서도 들이받는 미련한 선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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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드록바 슛팅-! 하지만 골키퍼 정면! 그대로 잡아냅니다.]

[드록바의 헤더~~! 아쉽게 골대를 벗어납니다! 애꿎은 잔디를 쥐어뜯는 드록바!]

호날두는 열심히 크로스를 날리고 키 패스를 흘림으로서 첼시 공격의 핵심 축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축구는 팀 스포츠.

개인의 활약으로 플러스가 되더라도 동료의 실책이 마이너스가 된다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될 수 있다.

'드록바가 이렇게 못했나? 좀 많이 실망스러운데.'

찬스를 계속 놓치는 동료 선수에 아주 살짝 짜증난 호날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첼시 역대 최고의 공격수로 뽑히는 디디에 드록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감동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디디에 드록바.

하지만 지금의 드록바는 정말 암 걸리는 골 결정력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그 드록바와 지금의 드록바가 동일인물인지 헷갈릴 정도.

찬스를 계속 놓치는 드록바를 계속 쓸 만큼 무리뉴는 멍청한 감독이 아니었고, 결국 드록바는 구드욘센과 교체가 되었다.

구드욘센은 무리뉴의 지시로 2선에서의 감각을 익히고 있었지만 원래는 톱에서 뛰던 선수였다.

터치라인을 따라 들어가는 호날두와 애슐리 콜과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호날두는 가벼운 상체페인팅으로 애슐리 콜을 드물게 한번 속였고, 달려오는 콜로 투레의 다리 사이로 속칭 '알까기'를 시전 하는데 성공하며 첼시 관중들의 환호성을 받았다.

스스로의 개인기에 심취해서 템포를 끊어먹거나 어처구니없이 공을 뺏기는 맨유 초기 시절 ‘혼자우도’는 이제 없다.

필요할 때 팍 하고 터지는 화려하고 깔끔한 호날두의 개인기는, 이미 첼시 공격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스날과 첼시 관중들의 함성, 고함소리와 함께 대지를 가르면서 쭉 뻗어나간 호날두의 키 패스는 원톱 구드욘센에게 닿았다.

그리고 구드욘센은 드록바보다 노련했다.

[구드욘센...! 아! 골입니다! 골!!]

[구드욘센의 깔끔한 슛! 저 거리에서 저 슛을 막을 수 있는 골키퍼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첼시가 놀라운 역습으로 한 점을 따라붙습니다! 환호하는 무리뉴 감독과 인상을 찌푸리는 벵거 감독이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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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 양면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활약한 호날두.

이번 경기에서 어시 2개를 기록한 호날두는 탄탄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역시 아직 몸이 다 자라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연속해서 풀타임 주전으로 뛰는 것은 힘들었다.

무리뉴는 그런 호날두를 교체했고 그 자리에는 스콧 파커가 들어갔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경기 속에서 더 이상의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경기는 2:2 무승부.

이기고 있다가 동점골을 먹은 아스날 입장에서는 분통터질 일이겠고 첼시 입장에서는 그래도 원정 무승부라는 상황에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결과였다.

조금이라도 아스날 팬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앙리가 MVP를 탔다는 것 정도.

경기 종료 후 무리뉴와 벵거의 신경전도 볼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 무리뉴를 만날 때마다 쥐어터질 벵거에게 호날두는 미리 애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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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는 챔피언스 리그 H조의 앞선 조별리그 5번의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1위 진출을 확정지었다.

리그도 그렇고, 챔스도 그렇고 무패행진이다.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준 첼시에게 세계 각국의 여론에서 찬사가 쏟아져 내렸는데, 바로 다음날 포르투의 홈에서 치른 마지막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2:1로 패배하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마지막 경기는 H조의 챔스 16강 티켓 하나에 대한 승자를 가리는 것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만약 이 경기에서 첼시가 포르투를 꺾었다면 포르투는 1승 2무 3패 승점 5점으로 2승 1무 3패 승점 7점을 거둔 CSKA 모스크바에 밀려 유로파 리그로 가야했을 것이다.

첼시가 포르투에게 졌기 때문에 모스크바와 포르투의 입장이 뒤바뀐 것.

모스크바 팬들은 주제 무리뉴가 친정팀에게 일부로 져줬다며 맹비난하기도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어쨌거나 첼시는 5승 1패로 16강 1위 진출을 이뤄냈고 당연히 더 높은 라운드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 경기의 패배를 화풀이 하듯 첼시는 노리치시티를 4:0으로 대파,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여전히 무패 행진을 이어나갔다.

경쟁 팀인 아스날과 맨유가 삐끗하는 사이 첼시는 쭉쭉 치고 나갔는데 그런 첼시의 앞에 남은 것은 바로 '박싱데이' 일정이었다.

잉글랜드를 비롯한 영연방 국가에서는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경기를 치르는 전통이 있다.

문제는 주말에도 경기를 치르고 26일에도 경기를 치르다보니 일주일 사이에 3번의 리그 경기를 뛰게 되는 것.

이 빡센 일정 속에서 시즌 초반 돌풍을 이어나가거나 깜짝 연승을 하게 되는 팀들은 무너지게 된다.

즉, 내려갈 팀은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축구 평론가들이나 해설위원 등은 인터뷰나 TV에 나와서 ‘첼시가 박싱데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우승의 7부 능선은 넘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떠들기도 했다.

그걸 본 호날두는 '그 정도는 나도 예상하겠다.' 라면서 투덜댔지만 말이다.

[알렉스 퍼거슨, ‘시즌 내내 베스트 11만 가동하는 첼시는 박싱데이 일정을 버티지 못할 것.’]

[아르센 벵거, ‘첼시, 이대로는 우승 못해. 반드시 후반기에 무너져.’]

[라파엘 베니테즈, ‘신흥 강호팀의 무덤(박싱 데이)은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EPL의 명감독들은 앞 다투어 첼시에게 비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신흥강자에 대한 EPL 구단들의 텃세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첼시의 행보가 이들에게 위협적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만약 첼시가 박싱데이 마저 무사히 넘기고 무패행진을 이어나갈 때 이들의 말이 어떻게 바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첼시의 상대는.... 바르셀로나입니다!!]

오오오오-!

04-05시즌 챔피언스 리그 16강 추첨식.

첼시의 맞상대는 바로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라리가 양분하고 있는 바르셀로나로 정해졌다.

바르셀로나와 첼시의 지긋지긋한 악연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라고!? 초장부터 아주 화끈하게 되었는데! 그 놈들을 어떻게 때려잡지?"

“화끈하기는! 우리는 EPL 최강팀 첼시라고! 이기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프리미어 리그 무패 행진을 이어나가면서 첼시 선수들은 자신감이 제대로 붙었다.

여러 번의 위기 끝에 단련되어지고 더욱 단단해진 첼시는 시즌 초반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는 중이었다.

"하긴 지금 바르셀로나는 크루이프의 그 바르셀로나가 아니지! 간단하게 이겨버리자고!“

"외계인만 봉쇄하면 지금 바르샤 정도야 식후 후식 정도지."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예전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나 역대 최강의 팀으로도 뽑히는 펩의 바르셀로나가 아니었다.

바르셀로나는 몇 년 동안 리그나 컵 대회에서 변변찮은 활약밖에 못하며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카르트 감독 부임 이후 서서히 부활의 날개 짓을 선보이며 훗날 유럽을 제패할 최고의 팀으로서의 태동기를 거치는 중이다.

“그쪽에 외계인이 있으면 여기에는 크리스티안이 있다고!”

“크리스가 외계인보다 못할 게 뭐야? 안 그래?”

“당연하죠. 당연히 제가 이길 겁니다. 물론 당신들이 털리지만 않으면요.”

하하하하하-!

호날두는 적당히 농담으로 받아쳤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전성기에 접어든 외계인 호나우지뉴와의 맞대결은 호날두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 관리의 부재와 나태로 인해 급격하게 세계 최고 선수로서의 폼을 잃어버리는 호나우지뉴지만, 전성기 때 보여준 화려한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

1997년생이었던 '정지우'는 아쉽게도 그가 전성기를 구사할 때의 경기를 라이브로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영상들은 남아있었고 그것을 보며 정말 '아무도 막지 못했을 때'의 호나우지뉴가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를 실감했다.

전성기 호날두, 메시가 알고도 막지 못한 선수라면, 전성기 호나우지뉴는 몰라서 못 막는 선수였다.

공교롭게도 호나우지뉴의 진짜 이름 역시 호날두와 같은 Ronaldo.

Il Fenomeno(경이로운 존재)라고 불렸던 첫 번째 호나우두가 몰락하는 와중에 또 다른 호나우두들끼리 최고의 자리를 놓고 다툰다는 스토리텔링을 전 세계 수많은 스포츠 기자들이 놓칠 리 만무했고, 바르셀로나 VS 첼시의 16강전이 확정되자마자 벌써부터 포털 사이트에 도배되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이 호날두는 절대 질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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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 사단'의 스카우트이자 전력분석팀의 팀장인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그는 이곳의 변해버린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었다.

이전까지 첼시의 전력분석팀은 상당히 패배주의적인 색채를 띠었다.

지난 시즌 리그 2위, 챔스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50년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역사는 이들에게 '우리는 아마 안 될 거야.' 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빌라스 보아스는, 이제야 겨우 패배주의를 벗어던진 전력분석팀을 포함한 첼시 스탭진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무리뉴에 대한 경외와 존경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와 함께하는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무리뉴는 박싱데이와 겨울 이적시장을 앞두고 전력분석팀에게 첼시 선수들에 대한 스카우트 보고서를 요청했다.

[페트르 체흐 : 굉장한 반응속도와 운동신경, 안정적인 빌드업 능력, 1대1 상황에서의 좋은 수비 센스, 공중 볼 상황에서는 약간의 미흡함 존재 - NFS(Not For Sale)]

[글렌 존슨 : 더 성장할 여지가 있지만 전체적인 기본기와 전술 수행 능력 많이 부족 - 이적, 임대 가능성]

[클로드 마케렐레 : 놀라울 정도의 활동량과 최고 수준의 태클, 매우 우수한 대인 방어능력, 훌륭한 피지컬, 패스능력은 살짝 부족 - NFS]

[히카르두 카르발류 : 출중한 일대일 방어능력과 태클 실력, 지능적인 수비수, 다만 부상 관리와 거친 태클에 대한 관리가 필요 - 아주 높은 오퍼는 이적 고려]

[프랭크 램파드 : 체력, 활동량, 수비력, 볼 키핑 및 드리블, 창조성, 패싱 능력, 중거리 슛까지 완벽한 육각형 미드필더 - NFS]

[존 테리 : 나이답지 않은 굉장히 원숙한 수비지능, 강력한 피지컬, 후방 빌드업, 탁월한 헤딩 능력, 부상을 잘 안 당함 - NFS]

[디디에 드록바 : 엄청난 피지컬과 체력, 높은 헤딩 타점, 나쁘지 않은 연계 능력 갖춤, 다만 기복이 심하고 쉬운 찬스를 많이 놓침 - 이적 불가, 지켜볼 여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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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빌라스 보아스가 첼시 선수진들의 특성과 이적 여부를 간략하게 요약한 스카우트 보고서를 쭉 읽어보았다.

EPL에서 가장 탄탄한 스쿼드를 보유했다는 첼시지만 후보 선수들 중에서는 수준 미달인 선수가 많았다.

하지만 이건 이번 겨울 이적시장이나 다음 시즌의 여름 이적 시장동안 천천히 정리 하면 될 일.

무엇보다도 첼시의 1군 주전 선수들이 어딜 가던 한 클럽의 에이스가 될 만한 역량을 갖춘 선수들이라는 게 중요하다.

이들만 지킬 수 있다면 이번 시즌 우승은 물론 다음 시즌에도 우승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영입해 온 선수들이 하나같이 포텐이 터져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보면 볼수록 첼시가 얼마나 재능 넘치고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이런 멤버로 우승 못하면 진짜 감독, 코치들은 다 때려 쳐야 한다.

"어디보자... 우리의 어린 에이스는...?"

하지만 역시 가장 궁금한 것은 호날두에 대한 보고서다.

자신이 직접 보고서를 감수했음에도 이보다 더한 말은 찾기 어려웠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 최정상급의 주력, 순간 가속도, 드리블 능력, 개인기, 최고 수준의 골 결정력과 중거리 슛, 피지컬의 발전 가능성 매우 큼, 좋은 수비 센스, 프로페셔널한 훈련 태도, 기복이 거의 없으며 특히 큰 경기에서 강함 - NFS]

단순한 NFS란 단어 하나로 그의 이적 가능성을 정의내리기에는 오히려 아쉬울 정도.

윙어로서 모든 면에서 완벽했고 무엇보다도 대단한 것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 

이런 선수는 아무리 많은 돈이 있더라도 절대 구할 수 없다. 

나가겠다고 해도 발을 붙잡고 늘어져야한다.

‘안 그래도 발롱도르에 가장 근접한 월드 클래스의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다라...’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옛 '전설'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빅 클럽들이 군침을 질질 흘리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물론 절대 내줘서는 안 되겠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또 오퍼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6000만 유로로..."

"지네딘 지단이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왔던 금액(7500만 유로)을 질러도 안 된다고 해. 이미 보스가 선 그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호날두의 이적료인 2800만 파운드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싼 금액이다.

첼시의 구단 레코드를 달성한 금액이 싸게 느껴질 정도로 호날두는 값비싼 선수였다.

"크리스티안는 최대한 오래오래 우리 팀에 붙잡아둬야 해. 주급 협상은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고. 절대 그들이 불만을 갖지 않게끔 대우에 최선을 다해야 해."

그 기간은 적어도 무리뉴와 빌라스 보아스 본인이 첼시를 떠나기 전까지. 

그 때까지 호날두를 첼시에 최대한 묶어둬야 한다고 빌라스 보아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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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싱 데이 첫날, 첼시는 아스톤 빌라를 1:0으로 꺾으면서 프리미어 리그 무패 행진을 계속 이어나갔다.

경쟁 팀인 맨유, 아스날, 에버튼도 모두 각자의 상대와 승리하여 승점 3점을 얻는데 성공했지만, 서로 승수가 쌓이면 1위 고지를 먼저 점령한 첼시로서는 순위를 굳힐 수 있어 나쁘지 않은 일이다.

3일 뒤에 이어진 박싱 데이 두 번째 경기.

첼시, 아스날, 맨유 모두 승리하며 레이스를 이어갔지만 에버튼이 찰턴에게 패배하여 4위로 밀려났다.

이렇게 탑4 중 가장 먼저 낙오되는 클럽은 에버튼이 되었다.

호날두는 이 경기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쐐기 골을 넣으며 리그 12골을 기록, 앙리, 존슨과의 득점왕 경쟁을 이어나갔는데 이것이 바로 2004년 마지막 득점이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2004 발롱도르 수상식의 날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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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발롱도르 수상자는-! 크리스티안~~! 호날두-!!"

와아아아-!

짝짝짝짝짝짝-!!

찰칵! 찰칵찰칵! 찰칵!

함성과 박수 소리,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시상식장을 가득 울리면서 새로운 제왕의 탄생을 축복했다.

타 리그 적응기간 따위 씹어 먹으면서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대활약한 호날두가 결국 후반기 임팩트로 데쿠와 셰브첸코를 제쳐 발롱도르 수상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특히 호날두와 2위인 데쿠의 기자단 투표수 차이는 단 8표!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이후 데쿠의 성적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첼시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호날두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결국 이 차이가 역전을 이뤄낸 것이다.

데쿠에게는 매우매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003년 골든보이 상에 이어 2004년 유로 우승, 그것도 모자라 축구 선수 최고의 영예라는 발롱도르까지 연이어 수상.

그야말로 '왕도'를 걷고 있는 호날두에게 쏟아지는 부러움과 질시의 시선은 매우 뜨거웠다.

이것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가 견뎌야 하는 부담감이었다.

단상 위에 올라온 호날두는 그러한 시선들을 오히려 즐겼다.

발롱도르 트로피에 키스한 호날두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저에게는 믿는 신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축구’라는 신입니다. ‘축구’는 올 한해 저에게 커다란 영광들을 선물해주었고 나를 이 자리에 오르게까지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에 대한 신앙이 더욱 신실해짐을 느꼈으며 더욱 열심히 공을 찰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호날두의 소감에 이곳 취리히에 모인 많은 축구 관계자들이 웃음을 토해냈다.

“저는 올해 리그 우승과 컵 대회 우승을 이뤘고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뛰고 있는 첼시는 현재 프리미어 리그 가장 윗 테이블에 올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 아주 만족합니다."

"축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저 혼자만의 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함께 뛰면서 헌신적으로 플레이해준 동료들이 아니었으면 제가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아직 열아홉 살입니다. 그리고 이전까지 최연소 발롱도르 자리에 있었던, 저의 우상이기도 한 호나우두의 기록을 15개월 넘게 경신하여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세계 최고의 선수가 아닌,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되어 축구 사에 이름을 깊게 남기고 싶습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하고 성장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젊다고 하기에는 어린 선수의 패기 넘치는 발언.

호날두의 이 발언은 그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최고를 노리는 선수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를 넘어서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시선들을 호날두는 감사히 받았다.

그는 먼저 정상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강력한 경쟁자들이 등장하는 것을 제왕으로서 지켜볼 것이다.

그 날을 생각하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호날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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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올해의 선수상은 호날두도, 데쿠도, 셰브첸코도 아닌 호나우지뉴 가우슈에게 돌아갔다.                                                                                

발롱도르가 축구 기자단들의 투표를 통해 한 해의 최우수 선수를 뽑는 것이라면, FIFA 올해의 선수상은 각국의 국가대표 감독, 주장들의 투표를 집계하여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는 상이다.

발롱도르 보다는 명성이나 대중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그래도 권위적인 측면에서는 그에 못지않다고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호나우지뉴는 잇몸을 훤히 드러내 웃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난 시즌, 호나우지뉴는 우승컵 하나 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나우지뉴가 올해의 선수에 수상된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보여준 그의 묘기 같은 플레이들이 얼마나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2004 UEFA 올해의 팀

안드리 셰브첸코 - 티에리 앙리

(AC 밀란)         (아스날)

데쿠 - 호나우지뉴 - 마니시 - 크리스티안 호날두

(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포르투)(첼시)

애슐리 콜 - 히카르두 카르발류 - 알렉산드로 네스타 - 카푸

(아스날)     (첼시)               (AC 밀란)        (AC 밀란)

잔루이지 부폰

(유벤투스)

감독 : 주제 무리뉴(첼시)

인터넷 팬 투표를 통해 정해지는 UEFA 올해의 팀에 호날두는 오른쪽 윙어 포지션으로 이름을 올렸다.

인기상에 가깝지만 전 세계 축구 선수 중에서 최고만을 뽑아 베스트 11을 꾸리는 올해의 팀은 충분히 영예로운 자리였다.

살짝 의외인 것은 2003 발롱도르 수상자이자, 유로 2004에서 체코를 거의 혼자 힘으로 준결승까지 올려놓은 파벨 네드베드가 빠져있다는 점.

그는 클럽에서도, 국대에서도 정말 대단한 활약을 보였지만 결국 트로피가 없었고, 그래서 포르투의 챔스 우승, 포르투갈의 유로 우승을 견인한 데쿠, 마니시에게 밀린 듯 했다,

네드베드로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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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는 것은 그 해, 당 포지션 최고의 선수였다는 가장 확실한 증표였다.

당연히 선수에 대한 평가의 지표로도 쓰일 수 있는 것.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아주 많은 호날두는 앞으로도 계속 선정될 수 있기를 바랐다.

내년부터는 FIFA에서 선정하는 월드 베스트 11을 뽑는다고도 하니 그 때도 자신은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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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발롱도르, 포르투갈의 초신성 크리스티안 호날두에게 돌아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발롱도르 시상식이 끝이 났다.

발롱도르에 선정된 이는 가장 유력한 세 후보 선수 가운데 가장 어린 크리스티안 호날두에게 돌아갔다.

호날두는 지난 시즌 스포르팅에서 포르투갈 리그 우승과 컵 대회 우승을 견인했고, 유로 2004에서는 포르투갈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번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첼시로 이적, 리그에서만 12골 7어시를 쌓으며 굉장한 활약을 하는 중이다.

유로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주인공인 바르셀로나의 데쿠는 호날두와 단 8표 차이로 2위에 머물렀고 3위는 AC 밀란의 셰브첸코가 차지했다.

또한 2004 발롱도르 수상자인 호날두는 현재 19세 10개월로 발롱도르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고, 호날두 이전 최연소 발롱도르 선수는 브라질의 호나우두다.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2004 UEFA 올해의 팀에 포함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최연소의 기록이다.

댓글

- 19년 10개월!? 믿기지가 않는군... 조지 베스트가 22세 6개월, 마이클 오언이 21세 11개월, 호나우두가 21세 3개월에 발롱도르를 받았다고!

ㄴ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혼자 15개월을 단축했구나... 이건 뭐...

- 최연소 기록이란 기록은 다 깨고 있네. 포르투갈 펠레의 등장인가?

- 크리스티안 호날두우우우우우!!

- 사실 발롱도르 배당률에서 탑독은 챔스, 유로 둘다 우승한 데쿠였는데 바르셀로나 이적 후 성적이 별로다보니 결국 호날두가 받았네.

ㄴ 데쿠가 바르샤에서 못하지는 않았어. 다만 호날두처럼 센세이션하지는 않았지.

ㄴ 사실 데쿠가 탑독이라서 의외였지. 유럽 선수권 대회 최우수 선수는 호날두였고 준결승, 결승전에서 캐리한 것도 호날두였는데.

- 나이가 깡패다. 19살짜리가 벌써 발롱도르를 타다니! 앞으로 축구 선수를 하면서 몇 개의 발롱도르를 수집할까?

ㄴ 오버 좀 하지마라. 호나우두도, 오언도 그 소리 들었는데 지금 어떻지?

- 그야말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재능. 왕년의 호나우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 윗사람 말대로 엄청난 재능이 그에게는 있어보이는군. 프로페셔널한 태도만 유지한다면 역사상 최고에 도전할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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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를 타자마자 호날두가 한 일은 개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사실 아이다스와 나이키는 올해 초부터 스타 선수로 성장할 것이 분명한 호날두와 계약을 맺고 싶어 했다.

잘생긴 외모에 스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물론, 뛰어난 실력에 플레이 스타일도 유니컬해서 모델로서 아주 적합했기 때문.

하지만 조르제 멘데스는 일부러 두 회사를 경쟁시키며 스폰서 계약 제의를 계속 연기해왔는데 이것은 지금 신의 한 수가 되어 돌아왔다.

호날두는 승승장구하면서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로서 발돋움했고 2004 발롱도르 수상은 인지도와 명성, 영향력, 스타성 폭등의 정점을 찍었다. 

이제 전 세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졌고 당연히 몸값은 미친 듯이 상승했다.

그 결과, 아디다스와 나이키는 더욱 달아오른 몸으로 호날두에게 고액 스폰서 계약을 제의하게 되었다.

아디다스는 연간 1000만 유로의 5년 계약을 제안했고, 나이키는 연간 1300만 유로의 8년 계약을 제시했다.

누가 봐도 나이키의 계약이 좋아보였지만 호날두가 택한 것은 아디다스였다.

'내 몸 값은 하루가 다르게 뛸 텐데 8년은 너무 길다.'

누가 봐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는데 사실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앞으로 축구는 상업화를 거치면서 자금판이 무지막지하게 확대된다.

10년도 이후 미친 듯이 폭증하는 이적료, 주급 인플레이션이 바로 그 반증.

그 때 다시 초고액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5년 계약이 딱 적당했다.

뭐 그 이유도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스폰서가 아디다스인 점도 크게 작용했다.

언젠가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로 갈 것이다.

그런데 개인 스폰서가 나이키, 팀 스폰서가 아디다스라면 여러모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아디다스를 선택한 것에는 위와 같은 복잡한 계약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싫어하는 호날두의 성격도 한몫했다.

“첼시에서 재계약을 제의해왔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적 요청을 하지 않을까 불안한 모양이야.”

멘데스의 말에 따르면 첼시에서 지금보다 대폭 상승된 주급과 인센티브 계약을 제시했단다.

불과 반 년 만에 뒤바뀐 입장을 생각하면서 호날두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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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의 외국인 선수가 이전 팀에서 아무리 잘했다 한들, 주급 6만 파운드의 계약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어마어마한 자본력이 깃든 첼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계약이다.

호날두의 이 계약에 처음에는 첼시 팬들조차도 너무 과하다며 불만을 드러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서둘러 재계약을 하라고 아우성이었는데 그의 가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첼시 측에서 제안한 상향된 주급은 약 8만 파운드로 매년 주급 인상 10%, 그리고 초상권 50%다.

초상권이란 선수가 따로 얻는 부대 수익, 예를 들어서 광고를 찍거나 스폰서 계약을 맺을 경우, 그 금액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호날두에게 주어진 초상권은 이전까지는 25%였고, 이는 선수가 광고나 스폰서 등으로 100만 유로를 벌었을 시, 선수에게 떨어지는 수익은 25만 유로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첼시는 이걸 50%까지 올려주겠다고 제안을 한 것.

주급은 그렇다 치더라도 초상권의 권리 비율이 올라간 것은 새로운 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호날두에게 무척 달가웠다.

“협상을 한다면 주급은 9만 파운드까지도 올릴 수 있을 거다.”

멘데스나 호날두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길만한 딜이다.

하지만 문제는 계약기간.

첼시는 호날두에게 5년 이후 추가 연장기간 1년까지 총 6년 계약을 제안했다.

첼시에서 뛰어본 결과 첼시가 생각보다 매력적인 구단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미래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알고 있는 호날두로서 첼시와의 장기 계약은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또 매 시즌마다 기록을 경신하듯 기량을 만개시킬 자신이 있는 호날두였기에, 지금 당장은 저 조건이 후해보여도 나중가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재계약에는 찬성입니다. 저는 실력만큼 돈을 받고 싶고, 솔직히 지금 주급은 활약에 비하면 적으니까요. 하지만 구단 측에서 제시한 계약기간은 너무 깁니다."

"오케이. 계약기간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최대한 줄여보도록 하마. 나도 솔직히 이렇게 긴 계약은 반대다."

하긴, 나중에도 '근본이 없다, 역사가 짧다.' 라면서 타 팀 팬들에게 까이는 첼시인데 프리미어 리그 우승도 없는 지금은 그야말로 족보 없는 신흥 강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절이다.

로만 구단주의 재산이나 무리뉴 감독의 명성 등이 첼시라는 클럽의 이름값보다 클 때.

선수들의 수입을 극대화시켜야 하는 멘데스 입장에서는, 첼시보다도 호날두를 더 큰 스타로 키워줄 구단을 바랬다. 

애초에 그는 호날두를 첼시에 오래 두게 둘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주급이나 인센티브 등이 깎여나가도 좋으니까 초상권 비율은 유지하되 계약기간만 삭감시켜 주세요. 조르제의 협상 기술을 기대해보죠."

"후후. 날 믿어라. 실망하지는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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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첼시의 소식에 정통한 기자, 언론사들을 통해서 호날두의 재계약 소식이 들렸다.

계약 기간은 4년으로 2008년 6월까지.

주급은 첫 제안인 8만 파운드에서 약간 깎인 7만 5천 파운드에 매년 인상률 10%, 초상권은 50%였다.

호날두와 악수하고 있는 첼시 단장 피터 캐넌의 만족스러운 얼굴 사진이 런던 스포츠 일간지의 1면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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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싱데이 이후로 첼시는 단 한 경기도지지 않고, 심지어 비기지도 않으며 연승행진을 이어나갔다.

우승 경쟁 팀인 아스날, 맨유, 에버튼이 가끔 미끄러질 때도 첼시는 전혀 흔들림 없이 게걸스럽게 승점을 먹어치웠다.

2005년 2월 6일,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비기며 연승행진을 끝마친 첼시는 무려 8연승의 기록을 세우면서 2,3,4위와의 격차를 쭉쭉 벌려버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리그 4위에 올라있는 에버튼과의 경기에서도 승리한 첼시는 이후로도 상승세가 꺾이지 않았다. 

2월 중순을 넘은 현재 시점에서 첼시가 쌓은 승점은 70점!

2위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1점차, 3위인 아스날과 13점차였다.

역대 EPL의 그 어떤 팀들보다도 가파른 상승세다.

스포츠 도박 업체들이 평가한 이번 시즌 첼시의 우승확률은... 무려 92%.

경험이 적은 신흥 강호답게 후반기에 삐걱거릴 거라고 예상한 스포츠 매거진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첼시의 대 질주였다.

한 가지 흠이라면 리그컵과 FA컵에서 조기 탈락한 것인데 그래도 블루스들은 너그럽게 그것을 이해해 주었다. 

이 두 컵 대회의 중요성은 리그와 챔스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

- 우리가 지금 꿈을 꾸는 것은 아니지? 오, 맙소사! 내 팀이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아!

- 얘들아! 첼시가 리그 우승을 차지할 확률이 무려 92%래!

ㄴ 제발 침착하게 이 기세를 이어갔으면 좋겠어... 퍼거슨, 그 망할 영감탱이의 언론 플레이에 자멸해버린 뉴캐슬처럼 되지 말고.

ㄴ 주제는 케빈 키건과는 다를 거야. 그는 이미 리그 우승과 챔스 우승도 해봤잖아.

- 우리 할아버지는 오랜 첼시 팬인데, 첼시의 우승을 보고 죽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어...

ㄴ 오... 그건 너무 슬픈 이야기 같아. 너희 할아버지는 첼시의 세 번째 우승, 네 번째 우승, 다섯 번째 우승까지 볼 수 있을 거야.

ㄴ 고마워!

- 방심은 금물! 하지만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어...!

서 런던 블루스들은 팀의 성적과 경기력에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무려 50년 동안 단지 춘몽의 꿈으로 담아두어야 했던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 눈앞에 다가왔으니 제 정신을 차리는 게 힘든 일이었다.

리그 폐막까지 남은 경기는 단 10경기.

매직 넘버를 세면서 다가올 그 날을 위해 첼시 팬들은 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들뜬 모습으로 설레발을 자제하는 중이었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법.

프리미어 리그의 양강 구도(맨유-아스날)를 깨는 첼시의 등장을 이전의 터줏대감들인 맨유와 아스날 팬들이 반길 리 없다.

지금 첼시는 석유 재벌의 투자를 받아 벼락부자가 되어버린 이미지가 강했다. 

족보 없는 가문이 하루 만에 족보를 돈으로 사고 양반인 척 하는데 축하할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맨유, 아스날, 리버풀뿐만이 아니라 EPL 클럽 팬들 대다수가 첼시에 대해 커다란 질투심을 가졌다.

심지어 경기에서 박살나기까지 했으니 첼시에 격렬한 반감을 가질 수밖에. 

팬 포럼에서는 이러한 혐오의 감정을 쏟아내는 중이다.

- 망할 놈의 퍼랭이 놈들 신나하는 꼴을 보는 건 정말 역겨워! 돈지랄로 우승컵을 사는 행위에 대해서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나봐!

- 이 놈들이 우승하는 꼴 보느니 차라리 맨유가 우승하는 게 낫다!(아스날 팬) 꼴같잖은 놈들!

- 블루스(첼시)가 강한 건 인정해. 하지만 이 놈들은 근본이란 게 없어. 더럽고 천박하며 남에 대한 배려가 없지.

ㄴ 맞는 말이야. 겨우 한 시즌 반짝이면서 자기네들이 EPL 최고의 팀이라고 콧대 높이는 꼴이 아주 가관이야.

-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는 역대 시즌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시즌이었다. 누구 한 명이 머니 치트를 치고 게임하니 볼 맛이 안 난다.

- 돈으로 처발라서 산 우승컵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러운 자본주의가 잉글랜드 축구의 긍지를 망치는구나.

훗날 잉글랜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구단에 첼시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것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 아닐까 싶었다.

이후 벼락부자가 될 구단에는 맨시티도 있었지만 이들은 그렇게까지 크게 욕을 먹진 않았다. 

뭐든지 첫 빠따(?)가 가장 눈에 띄는 법이니까.

그렇게 첼시 팬 이외의 온갖 사람들에게 욕이란 욕, 저주를 얻어먹으며 첼시는 2005년 2월 23일, 바르셀로나와의 원정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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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이상의 클럽(Mes Que un Club).

머지않은 훗날, 펩 과르디올라의 지휘 아래 축구 역사상 길이 남을 헤게모니를 구축하며 유럽을 제패할 FC 바르셀로나.

이들이 얼마나 강했는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그 역사에 몸을 담가 리오넬 메시를 비롯한 당대 세계적인 선수들과 같이 뛰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여기에 호날두 자신까지 더해지면, 반박이 불가능한 역사상 최강의 팀이 만들어질지도...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축구 철학은 나와는 맞지 않아.'

바르셀로나는 ‘크루이프이즘’이란 철학에 맞게 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철학에 맞는 선수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활약하며 팀에 녹아들 수 있다.

하지만 크루이프이즘에 맞지 않는 선수들은 바로 바르셀로나에 적합지 않은 선수들로 판명 받아, 대게 방출당하거나 자신의 실력보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예를 따지자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세스크 파브레가스, 야야 투레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전술적인 이해도가 뛰어나고 얼마든지 이타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호날두는 그 철학에 녹아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호날두의 여러 장기들인 누구보다 빠른 속도와 강력한 피지컬, 절제된 개인기, 넓은 활동반경, 강한 중거리 슛 같은 것들 중 일부를 포기해야만 하고 그것은 호날두에게 손해다.

자신은 이미 세계 최고의 스타 선수 중 한명이고 발롱도르 수상자이기도 했으며 역사상 최고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그런 호날두가 뭐가 아쉬워서 스타일, 스탯, 개인 커리어 등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바르셀로나로 가겠는가?

호날두는 호날두일 뿐이다.

"지난 전술 회의에서 우리는 아주 좋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고 이것을 결과로 도출해 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무리뉴 감독은 언제나 강팀들과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코칭 스탭 뿐만 아니라 선수들까지 모이게 한 다음 그 팀의 파훼법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때 다양하고 자유로운 의견들 속에서 해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침체기에 있을 때도 바르셀로나는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는 팀이었다. 그건 그곳에서 일해 본 내가 잘 알지. 그리고 지금 바르셀로나는 이전의 강력함을 되찾았다. 호나우지뉴, 에투, 데쿠, 지울리, 푸욜 등 뛰어난 선수들도 많아."

""......""

"하지만... 솔직히 너희들에 비할 바냐? 너희는 이미 잉글랜드의 왕이야! EPL 최고 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 왕이라고!"

무리뉴는 선수들의 자신감을 자극시켜 포텐을 터트릴 줄 아는 감독이었다.

"누 캄프 원정은 그것 자체로도 고난이다. 좌석을 꽉 채운 꾸레(바르셀로나의 서포터 별칭)들의 응원은 원정팀들에게 지옥을 선사하지. 이건 정말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몰라. 하지만 우리가 더 뛰어나고 더 강하다! 결국 골을 넣는 팀이 이기는 게 축구야!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어!

“우리의 목표는 골을 넣고 무승부를 만드는 것! 이기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무승부만 해도 우리가 이긴 거다. 잊지 마라, 무승부다!"

그렇다.

무리뉴의 목표는 바로 '원정 골 이후 텐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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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시즌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바르셀로나 대 첼시의 경기 드디어 시작했습니다. 두 팀 현재 모두 각 리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팀인데요. 그런 팀들이 16강전에서 만났습니다.]

[토너먼트는 조별리그처럼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닌, 상대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자신이 쓰러지는 외나무다리죠. 유럽 챔피언의 트로피를 얻고자 한다면 생대가 아무리 강적이라도 꺾어내야 합니다. 

[바르셀로나의 선축으로 경기 시작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선발진들의 면모를 쭉 살펴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빅토르 발데스, 카를로스 푸욜, 데쿠,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사비 에르난데스, 사무엘 에투, 그리고 호나우지뉴까지.

교체 멤버로 있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도 있다.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호화 선수단이 아닐 수 없다.

“저들이 너를 노려보고 있어, 크리스.”

구드욘센의 말이었다.

호날두가 이들을 경계하는 것처럼 저들도 호날두를 경계하고 있었다.

호날두는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저 놀라운 선수들보다 더 대단한 선수는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주목을 받을수록 더 잘해지는 것이 나죠.”

지금의 바르셀로나도 침몰시키지 못한다면, 그 어떤 것도 자신은 바랄 수 없을 것이다.

=

발데스가 굴린 공이 사비에게 닿았다.

사비 에르난데스.

지네딘 지단과 함께 금세기 최고의 미드필더로 남을 이 선수는 과연 아직 포텐이 터지지 않았음에도 위협적이었다.

작은 키와 균형감각, 탈 압박능력을 이용하여 끝끝내 공을 내주지 않고, 최적의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보내는 패스는 참 깔끔하다.

그의 패스를 받은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가 각 잡고 중거리 슛을 날렸지만 골대에는 살짝 빗나가면서 첼시 선수들의 심장을 들었다 놓았다.

사실 지금의 사비, 이니에스타보다 더 유명한 선수는 알베르티니로, 밀란 제너레이션의 주역인 바로 그 알베르티니다.

분명 그는 훌륭한 중거리 슛과 수비 능력을 가져서 무리뉴가 잘 마킹하라고 신신당부한 선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호날두에게는 사비 에르난데스가 훨씬 더 위협적인 선수로 느껴졌다.

“공 좀 잘 지켜! 패스도 똑바로 하고!”

존 테리의 호통이 울려퍼졌다.

주장인 존 테리가 짜증낼 만큼 첼시는 중원 싸움에서 바르샤에게 압도당하는 중이다.

태클과 볼 경합에서 뛰어난 역량을 지닌 알베르티니가 공을 따내면, 데쿠와 사비가 그 공을 받아 안정적으로 공격진들에게 배급한다.

이 과정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깔끔하게 맞물려 들어갔고, 덕분에 호나우지뉴와 에투는 시종일관 위협적인 모습으로 첼시의 골문 주변에서 날뛰었다.

점유율에서 너무 밀리니까 불안하고 화도 난 드록바가 반칙을 범해 옐로우 카드를 받기도 했다.

경기시작부터 약 25분간은 완전히 바르셀로나 페이스.

수비진들의 활약과 체흐의 신들린 선방이 없었다면 적어도 무조건 한 골은 먹혔을 것이다.

보다 못한 호날두가 잠시 전방 압박을 접고 직접 볼 따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지울리에게 가는 패스를 끊어내는 호날두 선수! 내려와서 적극적으로 볼 점유 싸움을 도와줍니다.]

최대한 많은 경기 영상들을 보면서 각 상황에서의 패스 동선이나 오프 더 볼 움직임 등을 파악한 결과물이 여기서 드러났다.

사비 에르난데스의 쭉쭉 뻗는 패스를 긴 다리를 이용하여 잡아채는데 성공한 호날두.

공을 잡자마자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첼시의 전매특허 역습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크리스! 받아!"

역습상황. 

가장 전방에 있던 드록바가 먼저 달려와 좋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본 호날두는 정확히 그의 머리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이제 드록바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포스트 플레이를 보여줄 차례.

하지만 드록바의 헤딩은 아쉽게도 골키퍼 발데스의 손에 맞고 아웃되었다.

첼시의 코너킥.

뻥-!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날아간 코너킥.

그걸 보고 짐승처럼 달려드는 첼시 선수들과 바르셀로나 선수들.

공은 바르셀로나 수비수인 줄리아노 벨레티에게 닿았다.

하지만 그에게 매우 불행스러운 굴절이 일어나면서 닿은 공은 바르세로나 골문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벨레티의 자책골이었다.

와아아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누 캄프 경기장.

그 구석탱이에서 첼시 원정 팬들의 옅은 함성만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나이스! 코너킥 좋았어요, 더프!"

"좋아! 이대로 아예 이겨버리는 거야!"

“방심하지 말고! 침착하게!”

머리를 감싸 안고 좌절하는 벨레티를 뒤로한 채, 첼시 선수들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자책골은 상대 선수들의 멘탈을 부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효과적이다.

어쨌든 선제골!

축구는 역시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였고, 호날두는 지는 스포츠를 할 생각이 없었다.

=

전반전 종료 후 첼시의 라커룸.

방심하여 경기를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무리뉴의 신신당부를 들은 첼시 선수들은 들뜬 감정을 내리눌렀다.

이곳은 누 캄프, 조금만 방심해도 원정팀을 아작 낼 수 있는 바르셀로나의 대지였다.

무리뉴는 지나칠 정도로 그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보스는 너무 잔걱정이 심한 것 같아.”

카르발류가 툴툴댔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들 역시 그에 동의하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무리뉴의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선제골을 넣으면서 유리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던 첼시.

하지만 그런 와중에 터진 한 가지 사건은 첼시를 뒤흔들었다.

세트피스 공격 도중, 드록바가 벨레티에게 반칙을 범한 것.

이미 하나의 카드를 받았던 적이 있는 드록바는 이렇게 두 번째 옐로우 카드를 받아 퇴장당하고 말았다.

드록바의 퇴장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누 캄프의 꾸레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질러댔다.

무리뉴가 심판에게 크게 항의하고 선수들 역시 너무 과한 판정이라고 소리쳤지만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냥 구두 경고만 줘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걸 카드 꺼내네.”

심판들도 사람인지라 경기장의 분위기에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던데 지금이 그런 경우 같았다.

어쨌든 1점차 점수를 어떻게 해서든지 지켜내고자 했던 첼시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인 알베르티니가 빠지고 이니에스타가 들어옴으로써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바르셀로나.

그 기세를 타고 호나우지뉴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호나우지뉴가 공을 잡았습니다! 오 마이 갓! 환상적인 드리블입니다! 첼시 선수들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기가 막힌 플립 플랩!]

브라질의 민속춤 쌈바를 연상케 하는 움직임으로 첼시의 수비진들을 제대로 흔들어놓는 호나우지뉴.

전반전에서의 부진을 갚겠다는 듯 호나우지뉴는 첼시의 두 줄 수비를 뚫은 다음, 경계가 옅어진 반대편 사이드로 공을 보냈다.

기다리고 있던 데쿠가 원터치 패스로 막시 로페즈에게 공을 주었고 로페즈의 발에서 나온 슛은 체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공을 밀어 넣었다.

바르셀로나의 동점골이었다.

누 캄프의 함성과 응원가는 더욱 커졌다.

홈팀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바르셀로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키는 호나우지뉴.

첼시의 풀백인 윌리엄 갈라스를 농락하다시피 하여 벗겨내고 마케렐레의 노련한 태클마저 기가 막힌 개인기로 피해내는 호나우지뉴.

후반전의 호나우지뉴는 그야말로 외계인 그 자체였다.

마지막 노룩 패스로 카르발류와 페레이라의 시선까지 분산시키면서 에투에게 공을 보냈는데 성공했다. 

흑표범 사무엘 에투는 올 시즌 물 오른 골 결정력을 오늘 경기에서도 증명했다.

강력한 슛으로 다시 한 번 첼시에게서 골을 뽑아내는데 성공한 것.

골을 넣은 에투의 포효 속에서 경기장은 엄청난 함성으로 가득 찼다.

2:1 

바르셀로나의 역전이었다.

이 일련의 사건은 몇 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일어난 것.

두 골을 연속적으로 헌납한 첼시 선수들은 넋이 나간 표정이다.

언제나 강한 리더쉽으로 선수들을 잘 제어했던 램파드마저도 지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으니까.

무리뉴 역시 침중해진 표정으로 터치라인에서 큰 발언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패색이 짙어지면서 ‘그냥 이 스코어만 유지하자.’ 라는 생각이 첼시 선수들에서도 팽배했다.

하지만 단 한 명. 

단 한 명만은 불꽃을 꺼트리지 않고 움직이는 선수가 있었다.

"클로드!"

데쿠의 공을 끊어내는 마케렐레의 태클.

자신에게 공을 달라는 호날두의 외침을 들은 마케렐레는 즉시 그에게 공을 패스했다.

중앙에서 측면으로 달려나온 사비 에르난데스와 경합하는 호날두.

하지만 강력한 피지컬로 그를 누르고서 볼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호날두가 공을 잡자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눈에서 불이 켜졌다.

그 쟁쟁한 선수들이 오직 호날두 하나만을 노리고 달려들고 있는 상황. 

그런 압박감 속에서도 호날두는 멈추지 않았고 달렸다.

그리고 뚫었다.

[어마어마한 속도입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공을 차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제치고 있는 호날두.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가장 빠른 선수라는 이명을 차지한 호날두의 질주는, 이미 가속이 붙은 이상 따라잡을 수 없었다.

[첼시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이번 공격이 마지막이 될 수 있는데요! 과연 골을 넣을 수 있을지!]

현재 시간은 89분.

추가 시간이 2분이니 3분 정도 남은 상황.

아무리 넉넉히 생각해도 공격 기회는 앞으로 한 두 번이 전부일 것이다.

이런 부담감 속에서도 단단한 정신력을 가진 호날두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머리의 지시를 몸은 100% 따랐다.

[가로막는 로페즈와 푸욜! 이 둘까지 벗겨내나요!?]

[아, 호날두! 잠시 멈추고...! 바로 슛!?]

골문까지 약 18, 19M 거리가 남은 상황.

뒤로 백패스를 날리거나 조 콜에게 크로스를 올려도 되지만 호날두는 중거리 슛을 선택했다.

탄성을 제대로 받은 강력한 슛에 회전이 걸려있지 않다.

무회전 슛이다.

공은 발데스의 손 너머로 날아가 그물을 흔들었다.

[고오오오올~~~!! 들어갔습니다!! 크리스티안의 버저비터 골!]

[골을 넣은 사람은 바로 크리스티안 호날두!! 첼시를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우와아아아!!

연속으로 두 골을 얻어맞으면서 분위기 축 처졌던 원정 첼시 팬들.

그러다가 보는 것만으로도 숨 가쁜 동점골을 호날두가 넣었으니 이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은 선제골을 능가했다.

정신없이 내지르는 이들의 함성소리가 누 캄프에 다시 한 번 울려퍼졌고 바르셀로나 서포터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막판에 넣은 극적인 동점골에 괴성을 늘어놓으면서 호날두에게 달려드는 첼시 선수들.

하지만 호날두는 그들을 뿌리치고 뛰었다.

호날두는 터치라인에서 주먹을 내지르며 환호하고 있는 무리뉴 감독에게 달려갔다.

"보스!! 내가 골 한 번 더 넣는다고 했죠!? 봤어요? 넣었다고요!"

“넌 언제나 내 기대를 부숴! 잘했어! 정말 잘했어!!”

남자들만의 격한 포옹.

그리고 그 위에 덤벼드는 첼시의 선수들과 스텝진들까지.

누가 보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한 줄 알 정도로 이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여기가 어딘가? 

바로 누 캄프다.

원정팀들의 지옥이라고 불리는 누 캄프에서 무려 버저비터 동점골을 넣은 그 짜릿함과 희열은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서둘러 경기 진행을 해야 한다고 소리를 질러대며 항의했고 주심 역시 세레머니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미 남은 시간은 약 1분 정도.

바르셀로나의 공격은 첼시의 전원 수비를 뚫지 못했고 결국 그대로 경기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누 캄프에서 펼쳐진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2:2 무승부.

하지만 웃는 이는 당연히 첼시였다.

아니, 마지막 골을 넣은 호날두였다.

=

[프랑크 레이카르트 :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정말 탐이 나는 선수다. 그리고 그는 바르셀로나와 함께 한다면 더 발전할 수 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의 레이카르트 감독이 했던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호날두의 활약에 대한 순수한 찬탄이기도 했지만 이것은 많은 감독들이 즐겨 사용하는, 상대팀 핵심 선수를 흔드는 심리전이기도 했다.

무리뉴의 성격상 그걸 가만 놔둘 리가 없었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둔 이후에는 보살이 되는 그의 특성 때문인지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으며 ‘호날두는 첼시에서 나와 함께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 이라는 정상적인 말만 하고 말았다.

하긴, 아무리 무리뉴라 해도 자신의 친정팀 감독을 욕할 수는 없겠지.

레알 마드리드 감독시절처럼 바르셀로나와의 사이가 극도로 나빴던 것도 아니고.

(원래 이 시기에 무리뉴의 첼시는 바르셀로나에게 2:1로 패배했고, 무리뉴는 바르샤 감독과 주심이 하프 타임에서 대화하는 걸 목격했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2:2로 제법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었기에 입을 놀리지 않았다.)

"크리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절대 꾸레 놈들에게 가지 마세요!"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티안!"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네 유니폼을 더 살 테니 제발 떠나지 말아줘!”

공항에서부터 반겨주는 블루스(첼시의 서포터)들의 환호는 거셌고, 그 중에서도 첫 골에 관여하고 두 번째 동점골까지 넣은 호날두에게는 거의 광적인 수준이었다.

서포터들만큼이나 바글바글 몰려온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인터뷰하려는 것을 코칭 스탭들이 겨우겨우 제지해냈다.

원정에서 대승을 거둔 것도 아니고 고작 무승부에 왜 이리 호들갑인지. 

잉글랜드 언론은 포르투갈과 달리 정말 극성이라고 생각하는 호날두였다.

"호날두 선수! 레이카르트 감독의 발언에 대해서 한 말씀만...!"

"경기 종료 2분을 남겨놓고 터진 중거리 슛 골이 아주 화제인데요. 유난히 높은 중거리 유효 슈팅률에 대해서 호날두 선수의 비법이 있다면..."

"70분 동안 철벽 수비를 하다가 3분 만에 2골을 먹혔는데 여기에 대해서..."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서 역대 최연소 MOM을 선정받은 선수가 되었는데...”

"드록바 선수의 퇴장..."

"자, 자! 지난 경기에 대한 기자회견은 누 캄프에서 충분히 했던 것으로 압니다. 선수들은 원정 경기를 치르고 지쳐있습니다. 인터뷰는 사양입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정식으로 구단에 인터뷰 신청 해주세요."

역시 언론 통제의 달인 무리뉴답게 기자들을 깔끔하게 제압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열심히 했는데 너무 크리스만 주목받는 거 아니야? 버저비터 골이라도 넣어야 하나?"

"억울하면 경기에서 잘하세요. 맥주 좀 그만 먹고."

"흐흐. 아쉽게도 그건 멈출 수 없지."

호날두는 조 콜과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훈련장으로 갔다.

일단 찌뿌둥한 몸을 가볍게 풀고 다시 내일부터 훈련받을 수 있을만한 폼을 만들기 위해서다.

한 경기에서 잘했다고 그것에 자만하면 선수는 어떠한 성장도 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건 간에 끊임없는 트레이닝의 루틴을 이어나가는 것.

물론 어렵고 의지가 필요한 일이지만 호날두는 단지 그것을 지킬뿐이다.

무리뉴는 그런 호날두를 가리키며 첼시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도 발롱도르를 받고 싶으면 크리스처럼만 해라. 절대 몸에 해되는 음식 먹지 말고, 하루도 훈련 거르지 말고, 경기 전후에 영상 보면서 반드시 분석하고! 왜 이 쉬운 것을 안 하는 거냐?"

"그게 가능했다면 진작에 했지요. 저희는 터미네이터가 아니라고요!"

"크리스티안은 외계인입니다. 저런 지독한 사이클을 돌리는 놈이 사람일리 없지요.."

"오, 물론 그는 최고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와 뛰게 되어서 기뻐요. 다만 그처럼은 도저히 못합니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지독하게 노력하는 호날두.

그의 집념과 끈기는, 이제 겨우 20살인 프로 선수로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말들 하곤 한다.

어린 나이에 이적 온 지 겨우 반년 차의 선수가, 어떠한 텃세 없이 팀의 에이스 소리를 들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타고난 재능에 취해서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으면?

첼시 선수들의 반 이상은 호날두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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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포드 브리지에서 벌어진 바르셀로나와의 2차전은 치열하게 흘러갔다.

이 경기에서 패하게 되면 챔피언스 리그 16강 탈락이다.

첼시와 바르셀로나 모두 챔스 우승을 노릴만한 강팀들이었고 16강 탈락의 불명예를 떠안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맞붙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 초반은 첼시에게 웃어주었다.

구드욘센, 램파드, 더프가 한 골씩 박아 넣으면서 순식간에 경기를 3:0으로 만들었다.

램파드의 모습이 특히 눈 부셨는데 타고난 피지컬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미들라인을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1차전에서의 부진을 완벽하게 씻어냈다.

이니에스타의 공을 따내고 사비의 패스를 끊어내는 램파드는 틀림없이 첼시 선수들 중 전반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확실히 지금 이 시기에는 램파드의 기량이 사비, 이니에스타보다 우위였다.

이 때는 모두 첼시가 8강에 올라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호나우지뉴가 잇몸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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