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휴식 - 2
“크리스, 기사 봤어? 널 아주 웃기게 만드는 그 녀석이 한 마디를 했다던데?”
“무슨 소리에요?”
“이거 봐봐!”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선배인 시망이 스포츠 신문을 가져와서 호날두의 눈앞에 내밀었다.
[젠나로 가투소, ‘내 플레이가 더럽고 비겁하다고? 내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쫄았던 놈이 기자들 사이에 숨어서 입 놀리는 건 안 비겁하고?’]
대충 읽어보니 결승전에서 치졸한 반칙들을 일삼았던 스스로에 대한 변명거리만 늘어놓는 인터뷰였다.
가만히 있던 호날두에게 팔꿈치를 휘두르고, 볼 경합 시 일부러 위험한 태클을 하는 등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일삼았던 가투소는 UEFA에게 유럽대항전 3경기 출전 금지, 벌금 3만 5천 유로를 선고받았다.
크게 다치지 않은 이상 이렇게까지 엄한 징계를 때릴 건은 아니었지만, 현 세계 최고 선수인 호날두가 그 상대라는 것이 문제.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UEFA는 수많은 대중들의 분노와 언론들의 비판을 감안하여 가투소에게 과한 징계를 때렸고 그것은 밀란과 가투소를 화나게 만들었다.
아무튼 이런 언론전을 통해 호날두와 가투소의 사이는 최악을 달렸고, 호날두는 더 이상 그 인간과 엮이는 것 자체가 싫었다.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다더니 딱 그 꼴인데 굳이 맞상대하면서 심력을 쓸 필요가 있을까.
“크크크, 벌금을 그렇게 처먹었는데도 들이받는걸 보니 이 놈, 진짜 싸움소 맞는데?”
“미친놈한테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죠. 어쨌든 나는 승리했고 그 놈은 패배했는걸요.”
이미 결승전에서, 그리고 뒤따른 징계에서 정의구현은 끝났다.
호날두는 더 이상 가투소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리스본에서 슬로바키아를 상대로 평점 9.5의 대활약을 펼친 호날두.
멀고 먼 지역인 에스토니아 원정에서도 연속골을 뽑아내면서 포르투갈 국대팀의 승점을 또다시 적립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호날두가 대표팀에 가세한 이후, 포르투갈의 경기당 득점은 0.5점 이상 상승했으며, 경기도 훨씬 시원시원하고 화끈하게 전개되었다.
피파 랭킹이 훌쩍 올라간 것은 당연한 일.
클럽에서도 잘하고 국대 경기까지 잘하니, 포르투갈 축구팬들이 어찌 그런 호날두에게 열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결승전 활약으로 유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을 때부터 이미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어갈 재목으로 낙점되었다.
그리고 호날두가 좋은 활약을 보여줄수록, 그에 대한 기대치는 계속 상승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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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흘러 어느덧 2005년 6월 말.
에스토니아와의 경기 이후 휴가를 부여받은 호날두는 오늘 막 05-06 프리시즌의 일정을 통보받았다.
7월 9일에 복귀하라는 구단 측의 이메일에 답변을 하고 인터넷을 껐다.
1달여 정도 되는 휴가 기간 동안, 다른 선수들은 지중해나 대서양 쪽의 휴양지 등으로 떠나 여름과 휴가를 만끽하는 중이었지만, 호날두는 방안퉁수처럼 집에만 틀어 박혀있었다.
지난 시즌 호날두는 많은 경기를 소화하였다.
물론 존 테리, 램파드가 더 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그들은 경기 도중 꾸준히 교체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호날두의 몸은 너무 어린 탓에 한번 경기를 뛰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알게 모르게 호날두의 몸에는 많은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던 것.
때문에 휴가를 떠나지 않고 집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기로 한 호날두.
수면 시간을 늘렸고 식습관을 다시 조정했으며 개인 트레이너가 추천한 스트레칭과 훈련 등은 등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아, 물론 지난 경기 영상들을 돌려보면서 고쳐야할 점들을 모니터링 하는 것은 물론이다.
자신의 플레이스타일의 약점과 개선 방안 등을 분석한 노트가 벌써 10권 이상이다.
이 노트를 바탕으로 호날두는 하나하나 약점들을 제거하고 개선 방안들을 채워나가며 더 빈틈없는, 더 완벽한 선수가 되기 위해 걸었다.
가끔 놀러오는 첼시 동료들이나 국대 동료 콰레스마 같은 이들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만큼 호날두는 철저하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프리 시즌을 앞두고 자산 관리사 데이빗 젠킨스에게로 부터 받은 보고서를 통해 자신의 재산 목록을 훑어보는 호날두.
일단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페이스북에 투자한 일이다.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2004년 초, 페이스북 사이트를 개설했는데 여기에 대한 서버운영비가 필요했다.
그런데 저 멀리 포르투갈과 잉글랜드에서 축구 하는 사람이 당신네 회사에 투자하겠다니 놀라 자빠질 수밖에.
'좋아요, 영국의 첼시라는 구단에서 뛰고 있는 축구 선수 크리스티안 호날두 선수. 서버비가 꽤 들지만 우리는 그렇게 돈이 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투자 제의를 받아들일게요. 여기에는 조건이 두개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뭐든 긍정적으로 검토하죠.'
'저는 이 페이스북을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에게만 한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일반 사용자들까지도 지변을 확대할 생각이에요. 그 때 당신이 페이스북의 첫 번째 일반 사용자가 되어주세요.'
'제가 홍보대사가 되어달라는 말이군요. 좋습니다.'
'두 번째 조건입니다. 유명한 선수가 되어주세요.'
'?'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선수가 되고, 평생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는 페이스북 만을 사용해주세요. 만약 이 두 가지를 충족시켜준다면 추가로 지분의 4%를 더 드리겠습니다.'
페이스북은 현재 꽃봉오리가 터지기는커녕 이제 막 씨앗의 발아를 준비하는 시기였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역시 세계적인 기업을 키워낼 CEO다운 과감한 수완이 돋보였다.
아주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페이스북을 이용하면 그에 대한 엄청난 홍보효과를 볼 수 있으니 회사의 성장에도 좋고, 지분을 소유할 호날두에게도 좋은 딜.
당연히 호날두는 승낙했다.
현재 호날두는 페이스북의 지분의 약 3%를 보유 중이며 더 점차 투자 금액을 늘려나가는 중이다.
참고로 페이스북은 나중에 상장가치 4000억 달러의 회사로 성장하며 10%만 보유 한다 쳐도 400억 달러다.
미래의 지식들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 100% 적중 투자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인크레더블>,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찰리와 초콜릿 공장>,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배트맨 비긴즈>는 예상대로 굉장한 흥행성적을 거두었고 또 현재 거두고 있는 중이다.
대출을 해서라도 여기에 많은 돈을 투자했던 호날두는 많게는 그 돈의 몇 배까지 돌려받는 짭짤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은행 이자와 원금, 세금까지 모두 내고서도 3000만 달러 이상의 순수익을 올렸고 이 수익금은 또 다시 <판타스틱 4>, <해리 포터와 불의 잔>, <킹콩>, <나니아 연대기> 같은 흥행 예정작들에게 재투자되었다.
그야말로 돈이 돈을 버는 상황.
다음해에 제작 예정인 영화 중에서도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같은 대흥행작을 예의주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 호날두였다.
잠시 휴식 - 3
안 그래도 꾸준히 오르는 미국의 부동산 자산들의 가치와 IT기업 등의 주가 등은 호날두의 전체 자산을 더욱 두껍게 만들어주는 중이었다.
영화 투자에 의한 단기 수익률보다는 떨어지지만 환전할 필요 없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저금리 정책이 종료되었음에도 CDS시장의 크기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주식 시장과 주택 시장의 거품은 지금이 마치 호경기인줄 착각하며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중이고 2006년 말, 미국 주택 시장의 거품이 정점을 찍을 때는 지금의 몇 배의 상승세를 보일 터.
가파른 상승곡선은 2007년 초에 들어서 붕괴가 일어나며 걷잡을 수 없이 와장창 무너지고 만다.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는 호날두는 2006년 마지막 날에 부동산 자산과 여러 금융, IT 기업들의 주식을 모두 매도할 예정이다.
아마 그 때쯤이면 아마 자신이 축구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국인도 아니고 외국인이니 세금은 아마 어마어마하게 나올 거다.
하지만 호날두는 예전의 우상처럼 조금의 탈세 의혹도 지고 싶지 않았다.
속이는 것 없이 전부 다 낼 작정이다.
'근데 그 돈으로 뭘 한담?'
‘정지우’로 살았을 때부터 돈 쓰는 재미를 몰랐던 호날두는, 돈이 있어도 어떻게 쓸 줄 모르는 사람이다.
예전의 호날두처럼 고급 콜걸들을 불러 모아 섹스파티를 벌이지도 않았고 스포츠카, 럭셔리카 등을 모으는 고상한 취미도 없다.
그저 누구 말대로 축구, 축구, 축구.
축구밖에 모르는 축구 바보.
“정말 풀 한포기 자라지도 않는 엄청나게 삭막한 삶을 살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여자 친구도 없다.
‘정지우’는 그래도 애인은 있었는데.
물론 전부 짧게 사귀고 헤어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외로움을 타지 않고 밤에 고생하지 않는 것을 보면, ‘축구에 미치는 정신병’이라는 정신질환의 항목이 있다면 가장 먼저 호날두 자신이 그 예시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 남아도는 돈으로 호날두는, 자기가 처음 진지하게 축구를 하게 되었을 때,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뒷바라지 해주었던 부모님과 형, 누나들에게 대한 보답을 해주기로 했다.
호날두의 아버지는 멘데스의 도움과 감시 아래 조기에 알코올 중독치료와 재활치료까지 하며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이제는 정상인과 다를 바 없었으나 자기관리는 필수, 일단 술부터 끊게 했는데 많이 힘들어하는 중이라고.
그래도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듣고 싶지 않은 호날두는 매일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힘이 되어주었다.
참고로 호날두의 어머니는 현재 아버지와 같이 리스본에 있는 호날두의 별장에 있으며 정성을 다해 아버지의 치료를 도왔다.
두 분은 ‘정지우’에게 없었던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주었고 그 따스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고 자신이 주는 돈으로 호강하며 행복하게 사시길 바랐다.
호날두의 집안이 매우 어렵던 시절, 청소부로 일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했던 어머니의 빈자리는 큰 누나 엘마가 메웠다.
그녀는 철이 들고부터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서 했고 또한 호날두의 꿈을 가장 크게 응원해준 고마운 가족이다.
엘마는 디자이너가 꿈이다.
호날두는 그녀의 생일에 그녀의 이름을 딴 부띠끄를 열어줄 생각이었다.
“형과 작은 누나에게도 근사한 생일 선물을 줘야지. 흠... 뭐가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집에 뒹굴거리고 있던 호날두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크리스! 나왔어!”
“하아... 왜 또 왔어요?”
대표팀 동료이자 클럽 동료인 카르발류였다.
소속 두 개가 모두 겹치는데다가 그 역시 에이전트가 조르제 멘데스다.
친해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고 이와 비슷한 조합으로 페레이라도 있었는데 그 역시 포르투갈-첼시-멘데스다.
오자마자 일단 호날두의 옷장부터 열어보는 카르발류.
저게 실례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도대체 왜 생각도 못하는 걸까.
호날두는 뒷목이 뻐근해졌다.
“세상에...! 유니폼이 그대로잖아? 크리스! 너 방안에서 죽으려고 그래? 명색이 축구 선수가 이렇게 활동량이 적어서야!”
“시즌 기간 동안 충분히 뛰었잖아요? 지금은 휴식 중이죠. 히카르두는 그 휴식을 방해한 사람이고.”
“너는 겨울잠 자는 곰이 아니야! 자, 이거나 읽어봐. 나는 너를 끌고 가려고 온 거야.”
파티의 초대장이었다.
첼시 동료인 데미안 더프의 아내가 오늘 생일이라서 파티를 열었단다.
파티에 가봤자 호날두에게는 그림의 떡인 음식들 천지여서 시각적으로, 후각적으로 고통 받을 거 그냥 안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카르발류가 직접 데려왔으니 그 선택지는 글렀다.
“파티장에는 설탕 안 들어간 요거트와 소스 안 뿌려지고 지방이 적은 고기가 있겠죠?”
“그래, 이 병적인 친구야.”
“어쩔 수 없네요. 가죠, 뭐.”
=
더프의 집은 서런던의 해로라는 도시에 있었다.
이곳은 1571년 세워진 퍼블릭 스쿨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경치가 좋고 다른 지역에 비해 한적한 곳이었다.
“아직 휴가지에서 돌아오지 않은 선수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엄청 북적거리네요.”
“흐흐, 삼분지 일이 기자들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카르발류와 함께 시시덕거리며 걷는 호날두에게 더프가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크리스티안! 하하하! 나는 네가 올 줄은 몰랐어! 너는 완전히 냉철한 비즈니스맨이잖아.”
“히카르두에게 억지로 끌려나온 거예요. 답지 않게 멋지게 차려입으셨네요, 데미안.”
“답지 않다니 무슨 섭한 소릴! 그래도 이거 히카르두에게 고마워해야겠는 걸! 정말 어려운 손님을 끌어냈으니까!”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니 벌써부터 술을 좀 들이킨 것 같았다.
호날두는 더프의 부인에게 다가가서 인사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미세스 더프. 정말 아름다우시군요!”
“오, 이런! 크리스티안 선수를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는 당신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답니다.”
“그거 정말 영광이군요.”
초록색 눈이 예쁜 더프의 부인이었다.
호날두가 파티의 주인공과 인사를 하는 사이 첼시의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더프의 초대를 받고 온 이들로 갈라스, 조 콜, 브릿지 등이 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과의 해후를 나누는 호날두는 주변이 북적거리면서 시끄럽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모여든 기자들과 언론관계자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인터뷰... 인터뷰를...!’를 중얼거리고 있었기 때문.
호날두는 귀찮았지만 요청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 중에서는 결승전 이후 인터뷰룸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글래머 여기자도 있었다.
“또 뵙는군요.”
“알아봐 주시는군요! 다른 선수도 아니고 호날두 선수가 아는 척을 해주시니 이거 정말 기분 좋은걸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면서 말하는 여기자.
‘글쎄... 그런 차림이라면 알아보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오늘도 역시 가슴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옷차림이었다.
벌써부터 남자들의 시선이 뜨겁다.
“...크리스. 능력 좋은데? 어디서 저런...”
“그런 거 아니니까 이상한 소리 마요.”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더프에게 호날두는 눈을 부라렸다.
그것도 아내의 생일날, 아내를 앞에 두고 다른 여자에게 신경을 쓰다니.
미세스 더프의 눈이 날카롭게 변하는 것도 모르는, 멍청하고 눈치도 없는 더프였다.
잠시 휴식 - 4
여기자의 이름은 린다 힐튼이란다.
호날두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지만, 힐튼이라는 여기자는 막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듯이 블라블라 떠들었다.
인터뷰 기자가 자기소개만 하고 있자 호날두는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고, ‘그래서 질문이 뭡니까?’라고 물었어야 했다.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듯 싶었다.
=
“이 목석같은 녀석이 도대체 뭐가 좋다고 들러붙는 여자들이 저리 많은지, 나 원 참-”
“크리스는 외모가 되잖아. 축구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버는데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여자들이 좀 가만있고 싶겠어?”
“저 얼굴이 뭐가 잘생겼어? 수염도 없고 느끼하기만 하지. 모름지기 남자는 야성미가 있어야해!”
“글쎄요. 파울로의 수염은 그저 더러워만 보이는데요.”
파울로의 수염은 정말 개털 같았다.
동료들은 낄낄거리면서 서로를 디스하면서 웃고 즐겼다.
그런 선수들에게 다가오는 한 여체.
그녀를 바라보는 선수들의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아, 뭔 일인데?”
“그냥 저길 봐.”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에 보석 같은 초록빛 눈동자, 붉은 입술과 잡티 하나 없이 흰 피부를 가진,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걸어왔다.
그 그림 같은 장면에 조 콜은 물고 있던 포크를 떨어트렸고 페레이라와 카르발류는 입에서 침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들을 보며 살포시 웃은 여자.
“안녕하세요. 첼시 선수 분들.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
“젠장! 또! 또! 또! 크리스야! 이건 말도 안 돼!”
“아니 도대체 왜 크리스만 인기 있는 거야? 그 놈은 그냥 축구 바보라고! 여자들의 눈이 단체로 잘못된 것은 아닐까?”
환상적인 여자는 크리스티안만을 찾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날뛰는 페레이라와 조 콜.
“애초에 너희들, 유부남 아니냐?”
한심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브릿지였다.
하지만 이 남자들의 질투심은 꺼질 줄을 몰랐다.
=
린다 힐튼이라는 여자는 아마도 호날두 자신에게 흑심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이렇게 들러붙을 이유가 없으니까.
인터뷰는 끝났는데도 그녀는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파티의 분위기를 느끼는 척하며 호날두에게 팔짱을 끼려했다.
호날누는 살짝 그것을 피했다.
“흠, 린다 리포터님? 당신은 안나 그리스티나가 되려고 하는 건가요?”
“호호, 그런 사람하고 비교는 너무 실례 아닌가요? 저는 단지 혈기왕성한 나이에 만나는 여자도 없는 호날두 선수가 궁금할 뿐인걸요.”
안나 그리스티나는 잉글랜드의 모델 출신으로, 자신이 데이비드 베컴의 원나잇 상대였다고 당당히(?) 밝힌, 이름난 여성이다.
당연히 베컴 측에서 명예훼손으로 엄청난 금액의 고소가 들어왔지만 그녀는 그 유명세를 이용해서 피해보상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잉글랜드 가쉽 언론지가 호날두 선수를 의심하고 있어요. 더 썬의 편집장인 해밀틴은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게이임이 분명해! 만나는 여자들을 추적하지 말고 남자들을 추적해보자고!’ 라면서 벼르고 있을 정도라고요.”
“...그것은 참 끔찍한 일이지만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죠. 당신이 신경 쓸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린다 힐튼은 이해가 안 간다는 식으로 답했다.
“당신 정말 게이인가요? 어떻게 나 같은 여자를 거부할 수 있는 거죠? 아니면 내가 꽃뱀인지 의심하는 것인가요? 걱정 말아요. 나는 그런 천박한 여자가 아니니까요.”
객관적으로 봐도 린다 힐튼은 정말 섹시한 여성이었기에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남성은 이곳에서만 수십 명은 되리라.
하지만 호날두는 코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많은 EPL 축구 선수들이 그녀와 같은 여기자들과 원나잇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호날두는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관점의 차이였다.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은...”
“크리스! 한참 찾았잖아! 왜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파티장을 나온 거야?”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호날두도, 린다도 모두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를 바라보는 호날두의 눈이 커졌다.
“인터뷰 한다고 나갔다더니 돌아오지도 않고, 애인을 혼자 두는 남자가 어딨어?”
그 여자는 대담하게 호날두의 팔짱을 꼈다.
호날두가 화들짝 놀랄 새도 없이 귓속말을 했다.
‘곤란한 상황이시죠? 제가 해결해드릴게요.’
그냥 호날두 혼자 해결해도 된다.
린다라는 여자가 호날두를 완력으로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잠자리든 뭐든 그냥 거부하고 제갈 길 가면 된다.
굳이 이 금발 여자와 엮일 필요 없이.
하지만 호날두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는 그도 몰랐다.
“이... 이 여성분이 호날두 선수의...? 아니 호날두 선수는!”
“애인, 맞는데요? 언론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몰래 만났는데 이런 불상사가 있을 줄은 몰랐군요.”
린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호날두를 흘겨보더니 그대로 자리를 뜨고 말았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호날두가 급히 팔짱을 풀었다.
“아쉬워라~”
“도움은 감사하지만... 당신은 누구입니까?”
“저는 호날두 선수의 열렬한 팬이에요. 케이지(더프의 부인)의 사촌 동생이기도 하고요. 참고로 아일랜드에서 모델 일을 하고 있답니다.”
호날두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과 분이 묻어나올 것처럼 하얗고 깨끗한 피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모델이라는 직업이 아깝지 않다.
...몸매도 상당히 육감적이었고.
팔꿈치에 닿은 가슴의 감촉에 민망함을 느낀 호날두였다.
“방금 뛰쳐나간 여자는 기자입니다. 아마 내 여자 친구라고 주장하는 당신에 대한 신상을 털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은 대단한 가십거리가 될 수 있거든요.”
“호날두 선수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법 유명하답니다. 더 유명해지는 것은 뭐, 상관없어요. 제 이름은 케슬린 위나에요.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잠시 생각에 잠긴 호날두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합니다. 나는 이런 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요.”
“괜찮아요. 지금부터 알아 가면 되죠.”
심상치 않은 발언에 호날두는 자기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반응이 웃겼는지 케슬린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실제로 보니 정말 귀여우시네요. 굉장히 시크하고 쿨하실 줄 알았는데.”
“그거 실례되는 말씀이시군요.”
“말했다시피 저는 호날두 선수의 열렬한 팬이에요. 아일랜드 축구 리그인 코크 시티의 서포터지만 챔피언스 리그나 EPL에서 보여준 호날두 선수의 활약에 반해서 개인 팬을 자처하고 있죠. 특히 결승전에서의 플레이는 정말 너무나도 환상적이었어요! AC 밀란의 거칠고 흉포한 선수가 해대는 비겁한 반칙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플레이를 하는 것이 마치 슈퍼 히어로 같았거든요.”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는 케슬린.
호날두는 아직 그녀를 완전히 믿지 못했고, 그녀에 대해서 아는 바도 거의 없었지만.
신비로우면서도 왠지 친근한 그녀가 싫지 않았다.
...절대 꼴도 보기 싫은 가투소를 까줬기 때문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