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25)

05-06시즌 - 2

아무리 축구 선수들의 몸값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전이라도, 클래스의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는 적지 않은 금액이 필요하다.

특히 지금 리옹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에시앙은 첼시라고 해도 빼오기가 쉽지 않다.

'램파드와 마케렐레, 에시앙의 조합은 첼시 미드필더진 역사 전체를 따져도 최강일거야.'

완성만 되면 다른 팀 입장에서는 가히 공포스러운 조합.

리옹에서는 에시앙을 팔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뤄낸 첼시에게 반한 에시앙은, 첼시로의 이적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지는 중이다.

소스는 축구계에서 이적 소식에 가장 정통한 곳이라는 에이전트계에서 들려왔으니(멘데스가 직접 말해줬다) 아마 사실이겠지.

그 뿐만이 아니라 바이에른 뮌헨의 발락까지 첼시로의 이적을 원한다는 기사(발락은 찌라시인지 아닌지는 모른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발락은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대표팀의 레전드인 그 미하엘 발락이 맞다.

또 안드리 셰브첸코와 히카르두 카카, 사무엘 에투의 이적설도 스물스물 나오고 있는 중이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후 첼시가 얼마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했다.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고 복잡하기만한 이적시장에 대해 호날두는 더 이상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드디어 05-06시즌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남들이 피서지나 별장에서 휴가를 만끽할 때도 호날두는 오로지 실력의 향상에만 몰두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을 위해서다.

하루라도 더 빨리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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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이적시장이 끝물이 되가는 와중, 드디어 프리미어 리그 05-06시즌 개막이 다가왔다.

마이클 에시앙은 결국 첼시 유니폼을 입었고, 뜬금없던 카카에 대한 이적설은 가라앉았다.

사실 카카가 가려고 해도 그의 재능을 알고 있는 밀란이 그를 보내줄리 없긴 했다. 

하지만 안드리 셰브첸코, 미하엘 발락 그리고 사무엘 에투에 대한 이적설이 계속 잉글랜드, 특히 런던 지역을 달궈놓았지만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힘든 모양이다.

‘발락은 첼시에 와서도 잘하는 선수니 오면 좋고... 에투는 내가 알기로 꽤 늦게 첼시에 올 텐데? 역사가 바뀌는 건가? 셰브첸코는 뭐...’ 

‘무결점 스트라이커’라 불리던 안드리 셰브첸코가 첼시로 와서 ‘무장점 스트라이커‘로 변신, 완전 폭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호날두.

하지만 원래보다 1년 먼저 오는 것이니 어쩌면 잘될 지도라는 희망을 품어보기는 개뿔!

'벌써부터 구단주의 갑질이 시작되는구만!'

로만의 나쁜 버릇이 발동되었다.

무리뉴 감독은 셰브첸코를 원하지 않는다고 직접 언론을 통해 말한 것으로 아는데, 로만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첼시가 원 역사보다 더 이르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해내면서 호날두는 무리뉴 감독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이상으로 보드진들의 힘이 더 강해져있었다.

그것은 지난 시즌 첼시의 성공을 무리뉴의 전술적인 승리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보다, 보드진들의 영입 수완과 마르지 않는 첼시 재정(정확히는 로만의 재산)의 승리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리뉴가 오기 전부터 있었던 첼시의 선수들(램파드, 존 테리, 구드욘센, 더프, 조 콜, 갈라스 등), 그리고 04-05시즌 시작 전에 영입한 선수들(체흐, 카르발류, 티아고 등)은 결국 보드진들이 평가하고 로만이 데려온 선수들이었기에.

-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첼시와 같은 부자 구단이 등장하여 유럽을 휩쓴 전례가 없었어. 하지만 돈만 있다면 누구든 좋은 선수들을 사와서 우승컵을 들 수 있지 않을까?

- 무리뉴는 물론 대단한 감독이지. 그렇지만 첼시의 이번 성공은 결국 구단주가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서 클럽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야.

- 요 2~3년 사이에 첼시가 쓴 돈을 보라고. 레알 마드리드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구단들을 압도할 만큼 엄청나!

- 레알 마드리드도 갈락티코 정책으로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챔스 우승컵을 들었지. 첼시도 그렇고. 결국 어떤 팀이든 많은 돈을 들이부으면 성공한다는 뜻이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하고 글을 쓰다 보니 처음에는 무리뉴의 능력을 폄하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던 첼시 팬들도 점차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커뮤니티 실드에서 아스날에게 패배함으로서 정점을 찍었다.

[만약 무리뉴 감독이 호날두와 드록바를 직접 영입해달라고 보드진에 요청하지 않았다면 그의 평가는 지금보다 더 좋지 않았을 겁니다. 그의 전술적인 한계를 오늘 본 것 같네요.]

[맙소사...! 그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감독입니다! 칭찬을 거듭해도 모자를 판에 평가가 좋지 않았을 거라니요!? 물론 오늘 경기는 무리뉴 치고는 실망스럽긴 했습니다만...]

[퍼거슨 경이나 벵거 감독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첼시가, 무리뉴가 우승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우승한 것이다.' 라고요. 첼시의 우승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만약 퍼거슨 경이나 벵거 같은 감독이 첼시에서처럼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았다면 이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을까요?]

[그건 말도 안 되는 가정법입니다. 무리뉴의 전술은 EPL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고 전술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심지어 무리뉴는 재정이 여의치 않던 포르투를 유럽 정상의 자리에도 올려놓았기도 했고요! 그런 그의 능력을 무시하는 발언은 옳지 못합니다.]

[뭐, 이번 시즌을 잘 풀어가야 그런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겠죠. 커뮤니티 실드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만. 어쩌면 올 시즌이 그들에게 소포모어 징크스가 실존한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네요.]

깐깐한 모습으로 첼시에 대해 비관적인 말을 내뱉는 사람은 익스프레스 언론지의 편집장이자 Lodos채널의 축구 평론가인 졸드슨 핫케다.

그의 별명은 '모두 까기 인형'.

특히 연패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분위기가 좋지 못한 팀이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들을 아주 대차게 까는 것으로 유명했다.

얼마나 악명이 높냐면, 잉글랜드 축구 팬들은 졸드슨이 응원하는 팀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365일 욕으로 도배된 엽서를 그 팀에게 쏟아 붓는 테러를 하겠다고 벼르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졸드슨의 헛소리가 의외로 약간 지지를 받고 있는 중이다.

EPL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퍼거슨과 벵거를 끼워 넣어서 첼시를 까는 이러한 태도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많은 팬층을 보유한 맨유, 아스날팬을 끌어들이는 결과가 되었다.

이들은 당연히 첼시를 아주 싫어했다.

'중위권 팀이 리그와 챔스 우승을 거뒀다. 이것이 바로 돈의 힘이다. 돈만 있으면 2부 리그 팀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와 논조의 기사 역시 어느 순간부터 잉글랜드 전역을 휩쓸었다.

EPL의 오랜 전통, '우승팀 흔들기'라고 보기에도 너무 과한 표현이었고 파급력이었다.

첼시가 리그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잉글랜드 전역에서 반감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기도 했지만,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이번 이적 시장에서의 공격적인 행보로 첼시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무리뉴와 첼시 선수들은 그저 ‘로만의 버스’에 탔을 뿐이라며 조롱까지 했으니까.

"전부 10년 후에 평생 이불킥 할 소리들만 해대고 있군."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우스워서 호날두는 코웃음이 나왔다.

로만 구단주는 본인이 원하는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혈안이었고, 보드진들은 클럽의 성과를 자신들의 성과인양 자랑하면서 감독과 힘 싸움을 벌였다.

타팀 팬들은 첼시의 성공을 질투하고 배 아파했으며 언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커뮤니티 실드의 패배를 신흥팀의 한계라며 떠들어댔다.

그야말로 안과 밖에서 내홍을 겪고 있는 첼시였다.

아무리 지원이 빵빵해도 그걸 풀어나가는 것은 감독이었고 선수들이었다.

이 간단한 깨달음을 얻기에는 경험의 부재에 의한 무지가 컸다.

역시 사람은 직접 몸으로 경험해봐야 부재를 깨닫는 법.

나중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오일 머니 클럽, 황사 머니 클럽들이 몇 년간 수없이 돈을 쏟아 부어도 챔스 우승컵 하나를 차지하지 못하는데 그거에 비하면 첼시는 정말 환상적인 스타트를 끊은 것이란 사실은 이들은 알지 못했다.

첼시는 샴페인을 먼저 터트리지 말아야 했고, 언론들은 첼시의 성공이 재정의 승리가 아니란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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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우려와 기대 속에서 첼시의 05-06시즌은 시작했다.

그리고 첼시는 개막전 이후 7연승을 달렸다.

첼시를 물어뜯고 조롱하던 언론들과 타팀 팬들은 아주 조용해졌다.

아주 조용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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