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6시즌 - 5
압도적인 첼시!
난항이 될 것으로 예상된 리버풀 원정 경기를 완벽한 경기력으로 잡아낸 첼시는, 홈에서 볼턴 원더러스까지 압살하며 리그 9연승의 기록을 세웠다.
당연히 이 기록을 첼시 역사상 최다 연승기록.
참고로 프리미어 리그 최다 연승 기록은 14연승으로, 아스날이 01-02시즌과 02-03시즌에 걸쳐서 세웠다.
지금까지 아무도 넘보지 못했던 이 연승 기록에 도전하는 것도, 현 첼시의 기세와 포스라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나올 정도로, 첼시는 도무지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지금 현재 첼시를 제외한 다른 모든 EPL 팀들이 첼시가 자빠지기를 간절히 빌면서 제사지내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첼시의 활약은 프리미어 리그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챔피언스 리그의 조별리그에서도 2전 1승 1무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는 첼시.
완벽했다.
이제 아무도 첼시가 한 시즌 반짝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없었다.
가장 경계해야할 팀, 가장 무서워해야할 팀, 가장 싸우고 싶지 않은 팀.
명단 가장 높은 곳에는 반드시 첼시가 있었다.
2005년 10월 23일, 결코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첼시의 연승은 깨졌다.
에버튼의 홈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1:1로 아쉬운 무승부를 거두게 된 것이다.
이 경기에서 호날두는 골을 넣지 못했고, 첼시의 연승 기록과 함께 호날두의 연속골 행진도 깨졌다.
하지만 연속골 행진이 이제야 깨진 것이 더욱 놀랄만한 일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주제 무리뉴, ‘연승행진이 깨진 것은 전혀 아쉽지 않다. 첼시는 기네스북 도전자가 아니다. 시답잖은 기록보다 우승 트로피, 그 자체를 원한다.]
바로 다음 경기인 2005년 10월 29일, 블랙번과의 경기를 다시 승리로 이끌면서 연승행진은 깨졌지만 무패행진은 이어가는 첼시.
지난 시즌의 29경기 연속 무패 기록이 남아있었는데 올 시즌의 무패 성적까지 더해진다면 총 40경기 연속 무패다.
프리미어 리그 최다 연속 무패 기록은 49경기 무패였고, 이것 역시 보유 팀은 아스날이다.
아스날의 49경기 무패에 도전하기까지 이제 첼시는 9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11경기 치른 시점에서 첼시의 성적은 10승 1무, 승점은 무려 31점!
2위인 위건과는 승점 9점 차이, 3위 토트넘과는 11점의 차이가 났다.
지난 시즌 2,3위 팀인 맨유와는 13점, 아스날과는 무려 14점으로 격차는 가면 갈수록 쭉쭉 벌어지는 중.
역사상 가장 빠르게 우승을 확정짓는 기록을 세우네, 마네를 두고 시끄러운 첼시는.
영원한 숙적,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를 갖게 되었다.
과연 맨유마저도 첼시에게 무너질 것인지, 아니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주목이 집중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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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이던 호날두는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유로 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바로 국가대표팀 차출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포르투갈은 이미 조 1위로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렇기에 남은 예선전 경기들은 사실상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려웠고, 때문에 이번 국대 차출 여부를 주전 선수 개인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말.
다만 포르투갈 대표팀에 합류하긴 했지만 기존의 스타 선수들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도 있으니 이 점을 생각해달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는 스콜라리였다.
한마디로 다른 선수들을 위해 A매치 출전권을 양보해달라는 뜻.
호날두는 쿨하게 허락했다.
그는 이미 포르투갈 대표팀 부동의 핵심 선수였고 A매치 한두 경기 출전 안한다고 그 순위가 밀릴 일은 절대로 없다.
국대 경기 출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서 무조건 뛰려는 선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호날두는 그렇지는 않다.
후배들(이라고 해봤자 다들 호날두보다 나이가 많다)에게 출전 기회를 주고, 그 기간동안 휴식을 취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호날두였다.
[고맙네, 크리스. 시즌 경기 잘 치르고 내년 6월에 다시 보세나. 자네 위주의 전술을 준비할 테니 몸 관리 잘해야 해.]
"네, 감독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이번에 한번 큰일을 내보자고.]
스콜라리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큰일은 역시 월드컵 우승이겠지.
작년의 유로는 홈에서 치른다는 이점이라도 있었지, 이번 월드컵은 원정이었고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유럽 이외 강호들도 참가한다.
포르투갈 월드컵 최고 성적은 에우제비오가 이끈 4강인데 스콜라리 감독은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호날두 자신도 그것이 불가능하다 생각하지 않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슈퍼스타가 되었음에도 호날두는 조금도 자만하지 않았고 건방을 떨지 않았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과거 '정지우'였을 때도 부당한 요구를 당연하게 하는 감독들을 제외하고는 조금의 트러블도 없었다.
축구는 감독들만의 세계가 따로 있다.
월드 클래스 감독들에게 얻은 호감이 나중에 자신의 미래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지, 이 때의 호날두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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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은 첼시의 무패 기록을 깨주겠다 호언장담했다.
강아지도 자기네 집 앞에서는 한 수 먹고 들어간다지만, 현재의 맨유와 첼시는 어느 정도 격차가 있는 상황.
지금 맨유는 리그 6위를 겨우겨우 수성하며 휘청거리는 중인 반면, 첼시는 40경기 무패 끝에 2연속 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다.
이들의 기세가 워낙 맹렬했는지라 제아무리 퍼거슨이라도, 맨유라도, 올드 트래포드라 해도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이 중론.
하지만 퍼거슨은 뻥카를 치기 위해서 호언장담한 것이 아니었다.
대 첼시전을 맞이하여 확실한 대응책, 확실한 전술을 그는 몇 경기 전부터 준비해놓고 있었다.
"자, 다들 내 말을 똑바로 들어라. 딴청 피우다가 실전에서 멍청한 짓 하면 그 새끼는 나한테 뒈질 줄 알아."
단단히 엄포하는 퍼거슨에게서는 항거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흘러나왔다.
박치성을 포함한 맨유 선수들은 긴장감 속에 귀를 활짝 열었다.
"첼시의 핵심 축이 누구냐... 요즘 제일 잘 나가는 호날두? 최고의 미들라이커 램파드? 다 아니야! 바로 이 놈이야, 이 놈!"
퍼거슨이 가리키는 선수는 클로드 마케렐레.
첼시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지금 첼시는 전부 스타병에 걸려있어. 궂은일을 하면서 똥을 치워줄 놈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예전에는 호날두가 볼 배급과 커팅을 도왔지만 지금은 알다시피 골을 노리는 측면 공격수가 되었지. 그렇기 때문에 현재 첼시의 빌드업은 오직 한 명, 마케렐레에게 의존하고 있다."
무리뉴나 벵거 같은 감독들에 비해서 전술적인 면이 두드러지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온 퍼거슨.
하지만 그것은 퍼거슨이 감독으로서의 다른 능력들이 워낙 뛰어나서였지 절대 전술적으로 부실한 감독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첼시의 핵심 키 플레이어가 누군지, 그에 대한 공략법과 취해야할 전술적인 변화는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이 놈, 꽉 잡아. 죽을 둥 살 둥 달라붙어서 절대 볼 배급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 흑인에다가 피지컬이 대단하다고? 이 놈 올해로 32살이야. 이제 선수로서 관 짝에 들어갈 시기라고! 들러붙어서 최대한 체력을 갉아먹어. 여기에는 특별히 거친 반칙도 용인해주겠다."
맨유의 핵심 타겟, 퍼거슨의 핵심 타겟은 바로 마케렐레였다.
마케렐레를 지워버리면 첼시의 숨통을 막을 수 있다.
노장의 직감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