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의 출현 - 1
갑작스럽게 생긴 케슬린의 촬영 때문에 약속이 파토 나서 시간이 남았던 호날두.
훈련도 일찍 끝났겠다 집에 가서 쉬려는 호날두를 잡아끄는 사람은 바로 램파드였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조촐한 파티가 있겠습니다. ‘호날두 선수’를 포함해서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자주 도망을 쳤으면 부주장이 저렇게 너를 콕 집어서 말하냐?”
“개인 훈련 때문에 빠진 겁니다....오늘은 할 일도 없으니 가죠, 뭐.”
늘 이렇게 선수들을 불러 모으는 사람은 램파드다.
그는 한국인보다도 더 단체주의 생활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호날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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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만 가득한 파티였지만 나름 즐거웠다.
램파드의 집에는 수영장도 있었고, 펀칭 머신과 플레이스테이션, 홈 시어터 등 다양한 놀거리들이 가득했다.
시즌 중이라 술은 마실 수 없었는데 에시앙이 몰래 와인을 가져와서 마시려다 주장과 부주장의 엄한 눈길에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얘들아, 저널 익스프레스 한다!”
램파드의 말에 호날두를 포함한 거실에 있던 첼시 선수들 몇 명이 홈 시어터룸으로 들어갔다.
잉글랜드 스포츠 전문 채널 'SFT'의 유명 프로그램인 ‘저널 익스프레스’에서는 저명한 축구 평론가들을 페널로 불러놓고 특정 선수나 감독, 팀 등을 조명하곤 했다.
특히 축구에 관심 있어 하는 방청객들을 참가시킴으로서 그들의 반응과 질문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묘미.
상당히 인기가 많아서 이 프로그램을 거르는 잉글랜드 축구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늘 저널 익스프레스의 테마로 등장하는 한 선수.
그 선수의 모습이 호날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30M의 거리를 빨빨거리는 드리블로 돌파, 이후 페널티 박스에서 한 번 접은 후, 감아 차는 슛으로 득점에 성공하는 작고 어린 선수.
앞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바로 그 선수가 드디어 등장했다.
[2005 골든 보이상의 수상자인 리오넬 메시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이 어린 선수는 18살이라 나이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점까지 성공한, 바르셀로나의 초특급 유망주입니다!]
[리오넬 메시. 사실 몇 년 전부터 바르셀로나가 애지중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던, 라 마시아(바르셀로나의 유스시스템) 최고 유망주였죠. 그는 유스팀의 모든 기록들을 다 갈아치우면서 지난 시즌 1군 데뷔까지 성공적으로 끝마쳤습니다. 지울리와 포지션 경쟁중인데 메시의 우위가 점점 굳혀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하죠?]
지울리는 바르셀로나의 오른쪽 윙어였는데 지난 시즌 시즌 아웃을 당했음에도 11골이나 집어넣은 대단한 선수다.
그런 선수와의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정도라면 메시의 실력과 재능은 특별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는 뜻.
“바르셀로나라면 우리의 상대잖아?”
“흥, 그래봤자, 애송이지 뭐.”
[수많은 클럽들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오퍼를 했지만 레이카르트 감독이 단칼에 거절한 일화는 이미 유명하죠. 리오넬 메시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FIFA U-20 월드컵)에서도 골든 볼과 골든 슈를 석권하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한 대회를 씹어 먹은 것이죠!]
[경기 영상에서도 나오듯이 번득이는 천재성과 엄청난 축구 재능을 가진 선수입니다. 괜히 ‘포스트 마라도나’라고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르헨티나와 바르셀로나의 미래, 그 자체라고 저는 이 선수를 평가하겠습니다.]
만담을 나누던 페널들의 화면이 전환되면서 다시 리오넬 메시의 경기 장면들이 보여줬다.
호나우지뉴의 로빙 패스를 받아서 골키퍼의 키를 넘어가는 슛으로 골을 넣는 장면, 사비와의 2대1 패스플레이 끝에 페널티 에어리어 깊숙이 침투하여 득점하는 모습 등.
호날두(정지우)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면서 어쩔 때는 증오스러웠고, 또 어쩔 때는 경이롭기까지 했던 플레이.
최고의 재능과 최고의 노력을 겸비한 호날두가 평생 2인자로 살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바로 그 선수.
리오넬 메시.
그가 드디어 세계무대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이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굉장히 민첩한 신체, 그리고 환상적인 드리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에고 마라도나와 비슷할 정도로 작은 체형이지만, 통뼈에다가 골격 자체가 튼실하여 마치 탱크 같던 마라도나와는 좀 다릅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 마치 어망을 피해가는 작은 물고기와도 같다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하하하! 조더슨의 말에 따르자면 메시는 물고기 같은 선수이군요.]
사회자가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웃었다.
[뭐, 그렇지요. 다만 한 방에 상대팀 수비진 그물을 찢을 수 있는 그런 물고기입니다. 메시의 드리블은 아주 특별합니다. 공을 들고 뛸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속도 차이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자, 이 장면을 보시죠.]
공 없이 침투하는 메시와 공을 받으면서 전진하는 메시의 속도는 거의 비슷했다.
그를 애송이 취급하던 첼시 선수들도 감탄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또한 그가 드리블을 할 때 발과 공 사이의 거리가 거의 벌어지지 않죠. 메시가 공을 잡으면 유독 상대 선수들이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위와 같은 볼 간수 능력 때문입니다. 정말 경이로운 재능이죠! 저는 이 선수가 반드시 월드 클래스가 될 거라고, 아니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조더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 선수는 뭔가 달라요... 그래요. 마치 몇 년 전의 크리스티안 호날두를 볼 때와 같습니다. 그와 거의 대등할 정도의 특별함이 있어요.]
[오우, 호날두까지 언급될 정도 인가요!?]
갑자기 등장한 자신의 이름에 동료들이 시선이 호날두에게 쏠렸다.
호날두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
나와서 떠드는 사람들은 조더슨과 캠릴이라는 축구 평론가들인데, 전직 스카우터 출신답게 과연 선수 보는 눈이 있다.
리오넬 메시가 지금까지의 그저 그런 유망주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알아챈 듯 했다.
'말년에 커리어로는 거의 따라붙었지만 솔직히 실력적으로는 끝내 메시를 넘지 못했지.'
아무리 호날두 열성팬이었어도 아닌 건 아닌 '정지우'는 쿨하게 인정했다.
호날두보다 메시가 위였다.
하지만 지금의 호날두는 다를 것이다.
“에이~ 어딜 그 애송이를 크리스에 비교하나? 저 인간들 또 신인 띄우기에 여념이 없네!”
“너한테 무슨 악감정 있는 거 아니야? 재작년 발롱도르도 데쿠가 받았어야 한다면서 지랄했잖아.”
“사실 그 때는 데쿠나 나나 둘 중 누가 받아도 상관없었죠.”
호날두는 어깨를 으쓱했다.
[미스터 캠릴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어... 일단 저는 호날두 선수의 팬임을 밝힙니다. 리오넬 메시라는 선수가 매우 재능 있는 선수인 것은 알겠으나 호날두 선수와 대등한 비교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마이크를 받은 방청객의 한 사람이 일어서서 평론가 캠릴의 의견에 반박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를 해주었다.
[호날두 선수는 최연소 발롱도르 기록을 갈아치운 것도 모자라서 포르투갈과 첼시를 이끌고 유럽을 정복한 현 시대 최고의 선수입니다. 청소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정도로는 호날두 선수와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 정말 날카로운 반론이군요. 맞습니다. 메시가 정말 대단한 유망주는 맞지만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지금 메시보다 더 어릴 때부터 포르투갈 최고 유망주소리를 들었고 리그와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했죠. 하지만 그만큼 메시의 재능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니 지금 마이크를 쥐고 계신 남성분을 포함한 호날두 선수 팬 분들은 너무 기분나빠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하하하, 캠릴이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군요. 방청객 분께서는 아주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세계에서 최고의 재능을 보여주는 유망주들은 많고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재능을 온전히 터트리며 진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그것이죠. 메시의 재능은 대단하지만 그가 진정 호날두 같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과정과 시련들이 너무나도 많죠.]
그래, 그런거다.
지금 호날두 자신과 메시의 차이는 '정지우'가 기억하는 그 어느 시절보다도 현격했다.
절대 그에게 따라 잡힐 생각이 없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는 오직 자신이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호날두의 이름을 짊어진 것이니까.
"바르셀로나전이 기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