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125)

신성의 출현 - 2

첼시 1군 선수들이 램파드의 집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들의 감독인 주제 무리뉴는 자신의 구단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축구 구단을 자신의 스포츠카 모아 넣는 차고처럼 생각하는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시작을 끊었다.

"...로만, 아이두르(구드욘센)가 현재 공격형 미드필더 겸 중앙 미드필더로 뛰고 있지만 본래 포지션은 공격수입니다. 그는 공격수일 때 가장 자신의 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어요. 또 밀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에르난(크레스포)이 복귀했고, 여기에 백업 멤버인 스콧까지 있습니다. 디디에를 포함해서 공격수가 무려 4명입니다. 전술상 원톱 스트라이커의 자리는 단 한 자리인데 말이죠. 과포화 상태에서 또 다른 스트라이커를 영입 하는 것은 선수들의 불만만 커질 뿐입니다. 전혀 팀에 도움 되는 일이 아니에요."

"오, 주제. 그건 나도 알고 있으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첼시를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만드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커다란 야망을 가져야지요! 최고의 클럽에는 그에 걸 맞는 최고의 선수들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안드리는 그 과정에 있다고 나는 자부합니다."

안드리 셰브첸코는 호나우두가 몰락한 지금 앙리, 니스텔로이, 에투와 함께 현 시점 세계 최고 공격수라 할 수 있다.

로만은 AC 밀란에서 보여주는 셰브첸코 플레이에 매료되었고 작년 여름 이적 시장부터 그를 노리고 있었다.

무리뉴는 답답함에 가슴만 두드리는 중이었다.

그는 첼시에 어울리는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만은 자기 할 말만 했다.

"첼시는 유럽의 정상을 정복한 클럽입니다. 그 위치를 유지하려면 지금보다 더욱 스쿼드를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디디에 드록바가 물론 좋은 선수인건 알지만 우리는 그보다 윗급의 스트라이커를 얻어야 합니다. 안드리 같은 선수 말이죠."

"스쿼드의 질적 향상... 좋습니다, 좋아요. 안드리 셰브첸코, 물론 그는 뛰어난 선수지요. 하지만 그 선수, 영어는 할 줄 압니까? 투톱에서 뛰던 선수인데 원톱을 맡을 만큼 포스트 플레이를 잘하고 피지컬도 좋나요? 적어도 선수들끼리 의사소통은 되게끔 영어만큼은 배운 다음에 제의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래도 정 새로운 영입을 하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발렌시아의 다비드 비야가 낫습니다. 그는 스트라이커와 인사이드 포워드 모두 가능한 재원이니까요."

특이하게도 셰브첸코는 미국인 모델인 아내를 가졌지만 영어를 전혀 못했다.

선수들 간의 유기적인 조직력을 중시하고, 터치라인에서 직접 전술 지시하는 것을 선호하는 무리뉴에게, 영어를 못하는 셰브첸코는 정말 바라지 않는 영입이다.

그 때 첼시의 이사인 프랭크 아르네센과 단장인 피터 캐넌이 로만을 대신하여 무리뉴와의 협상 테이블에 나섰다.

"매니저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다음 시즌 여름 이적 시장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드리 셰브첸코를 영입할 겁니다. 백업 선수인 스콧을 팔거나 다른 선수를 정리해서 자리를 만드세요. 뭐, 투톱을 혼용해서 사용하거나 구드욘센을 미드필더로 쓴다면 과포화 문제는 없을 것 같군요."

"하! 스쿼드와 전술을 구성하는 것은 이 팀의 매니저인 내가 할 일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지요. 선수들의 영입 권한은 오로지 저희 보드진에게 있습니다. 매니저인 당신은 여기에 왈가왈부하지 말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하세요."

단장인 피터 캐넌의 말에 무리뉴는 비웃음을 지었다.

왜 보드진이 이렇게 나오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난 시즌 첼시의 놀라운 성적이 오로지 자신들의 성공적인 영입 덕분인줄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감독과 힘 싸움을 하려는 것이다.

본인들을 추켜세우고 감독을 깔아뭉개면서 말이다.

로만은 이것을 방치하고 있고.

적아가 명확히 구분되자 무리뉴의 독설가적인 면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오, 당신이 해야 할 말은 아니지요, 피터 캐넌. 맨체스터에 있을 때의 '실수'때문인지 당신이 온전한 영입 권한을 갖겠다는 말은 나에게는 전혀 믿음직스럽게 들리지 않는군요."

2003년 여름, 맨유는 '외계인' 호나우지뉴 영입에 3000만 유로를 제시했고 이는 바르셀로나의 2500만 유로보다 큰 금액이었다.

PSG와 호나우지뉴는 바르셀로나를 거절하고 맨유의 이적제의를 수락했고 계약은 순항을 탔다.

하지만 이적 결정의 날, 맨유의 단장 피터 캐넌은 구두합의를 무시한 채, 계약서에 3000만 유로를 2800만 유로로 고쳐 PSG로 보냈다.

단단히 뿔난 PSG는 손해를 감수하고 바르셀로나로 호나우지뉴를 이적시키고 말았다.

분노한 퍼거슨이 피터 캐넌을 비난했는데, 적반하장인 피터 캐넌은 오히려 퍼거슨을 해임시키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쫓겨나듯 첼시의 단장으로 오게 된 것이다.

자신의 치부를 들추는 조롱에 피터 캐넌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무리뉴를 노려보았고, 무리뉴 역시 피터 캐넌을 노려봤다.

분위기가 점점 더 싸늘해지려는 순간, 로만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주제, 나는 안드리 셰브첸코의 팬입니다. 그리고 그가 첼시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반드시 그를 영입할 거예요."

“......”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주제. 당신은 아주 특별한 감독이니 그가 밀란에서 했던 만큼 첼시에서도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무리뉴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숨을 쉬어야 했다.

왠지 다음 시즌부터 자신의 미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 같았다.

=

"잉글랜드... 아니지. 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은 다들, 하루라도 비교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병에 걸렸음이 틀림없어."

드록바는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네이션스 컵 시즌이 도래함 따라, 아프리카 특급 공격수인 사무엘 에투와 디디에 드록바 간의 비교 기사가 끝을 모르고 도배되는 중이다.

경기에서 조금만 못해도 맹비난과 ‘넌 에투(드록바)에게 안 된다.’는 조롱이 쏟아지니, 드록바나 에투 입장에서는 거의 노이로제 걸릴 수준일 것이다.

드록바는 3일 후인 1월 10일부터 2월 10일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축구 대항전인 네이션스 컵을 치른다.

왜 아프리카만 시즌 중에 대륙 대항전을 치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프리카 지역의 특수성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더운 대륙인 아프리카의 여름은 40도씨를 넘어서는 폭염의 시기다. 

이 온도 속에서 축구 경기를 열면 선수들이 더위를 이기지 못해서 일사병으로 죽어난다.

그래서 다른 대륙 대회처럼 6~7월이 아닌 겨울시즌인 1~2월에 대륙 대항전을 치르는 것이다.

아무튼 드록바와 에투.

나이는 드록바가 3살이나 더 많았지만 1부 리그 데뷔는 오히려 드록바가 5년이나 더 느렸다.

‘정지우’의 기억 속에는 커리어, 개인 실적, 평가 등을 따져봤을 때 드록바보다는 단연 에투가 더 나은 선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첼시는 리그와 챔스 두 개를 동시에 먹었고, 드록바는 그 팀의 주전으로 뛰었다.

적응 문제로 고생을 했건 말건, 그런 드록바에 대한 평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

지금의 에투는 트레블은커녕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해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은 거의 대등하거나 오히려 드록바를 위로 치는 전문가들도 있을 정도로 위상 차이가 거의 없었다.

비슷한 레벨의 아프리카 선수 둘이 네이션스 컵과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도 연이어 만나는데 이걸 가만 놔두면 언론들이 바보 등신이다.

물론 계속되는 비교질로 드록바와 에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겠지만.

“카메룬과 코트디부아르가 결승전에서 만난다면 정말 볼만하겠는데요?”

“크크크, 그야말로 에투 대 드록바의 싸움이 되겠네.”

선수들의 농담에도 드록바는 머리를 움켜쥐면서 뒹구는 중이다.

“비교 당하는 선수는 햄보칼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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