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의 출현 - 3
"하하하! 좋게 생각하세요. 그만큼 디디에의 가치가 올랐다는 뜻이니까요."
"그래, 그래! 여기 크리스도 호나우두나 호나우지뉴 등과 질리도록 비교 됐었다고. 결국 이 어린 녀석이 다 압도하고 진정한 최고가 됐잖아? 디디라면 에투 정도는 껌이지!
“크리스는 지금은... 에우제비오와 비교 될려나? 아무튼 대단해."
에우제비오는 포르투갈의 전설적인 공격수다.
램파드의 말에 호날두는 손사래를 쳤다.
"그건 아니에요, 프랭크. 그 분과 비교되려면 저는 아직 멀었죠. 그래도 뭐... 언젠가는 그 분의 위치에 도전할만한 실력을 쌓고 싶네요."
뒤에 한 말은 빈말이 아니고 진심이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선수들까지 다 넘고 싶었다.
"이 녀석처럼 자신감을 가지라고. 흑표범(에투)보다 코뿔소(드록바의 별명)가 못할 게 뭐야? 안 그래? 아프리카에서도 코뿔소가 훨씬 세다고!"
"푸후!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두 사람의 별명은 정말 딱 이네요. 코뿔소, 흑표범."
축구 선수로 살아가면서 누군가와의 비교는 당연한 것.
강철보다 단단한 멘탈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드록바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다.
아프리카에 잘 다녀오라고 드록바의 등을 팡팡 쳐주는 호날두.
그제서야 드록바는 흰 이를 드러내면서 웃을 수 있었다.
이번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서 드록바의 조국인 코트디부아르는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여기의 일등 공신은 대회 기간 동안 무려 3골을 집어넣는 디디에 드록바였다.
=
캘린더의 마지막 글자가 2006이 되었어도 첼시의 무패행진은 깨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런던 연고의 팀인 웨스트 햄을 원정에서 간단히 격파한 첼시는 선더랜드전 승리, 찰튼과 무승부, 아스톤 빌라와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새로운 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무려 53경기 연속 무패!
EPL 최고 무패 기록인 아스날의 48경기 무패 기록을 5경기 초과해서 달성하는데 성공하는 첼시였다.
아직도 EPL 역대 최고의 팀은 무패 우승 아스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역대 최강의 팀은 누가 뭐래도 현재 첼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없게 되었다.
아쉽게도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 패배함으로서 58경기 무패라는 유럽 클럽축구 최다 무패 기록인 AC 밀란의 대기록에 도전하지는 못한 첼시.
이 날 경기에서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체력 안배를 목적으로 출전하지 않았다.
만약 무리뉴 감독이 호날두를 출전시켰으면 무패 기록을 더 이어나갈 수 있었을 거라고 아쉬워하는 첼시 팬들도 있었다.
뭐,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라는 훨씬 더 중요한 경기가 남아있는 만큼 무리뉴의 선택은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그들도 생각하는 중이다.
2월 21일, 현재 첼시는 21승 4무 1패 승점 67점.
한 경기를 덜 치렀음에도 2위인 맨유와 무려 13점차.
또 부상 운까지 잘 따라주어서 주전 선수들 중에서는 부상당한 이들도 거의 없었다.
이제 EPL은 12경기 밖에 남지 않았다.
무리뉴와 호날두가 동시에 암살이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 첼시의 우승은 거의 확정적이라는 분위기였다.
최고조를 달리는 첼시.
하지만 문제는 바르셀로나 역시 리그에서 연승을 달리고 있는 쾌조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빅토르 발데스, 카를로스 푸욜, 판 브롱크호르스트, 올레게르, 라파엘 마르케스, 데쿠, 티아고 모타, 에드미우송, 사무엘 에투, 호나우지뉴, 그리고 리오넬 메시.
첼시의 스쿼드 역시 EPL 최고, 아니 유럽 최고를 다투는 수준인데 왜 이상하게 바르셀로나가 더 강해 보이는지...?
그나마 경계 대상, 사비 에르난데스가 부상으로 빠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호날두였다.
"작년, 우리는 그들을 만났을 때 행복했었지. 올해도 그 행복이 반복되길 나는 바라고 있다. 2년 연속 우승은 아직 멀어 보이는 목표이지만 그래도 16강은 넘어야지 않겠나? 우리는 챔피언이니까 챔피언의 품격을 지켜야지!"
"물론입니다, 보스!"
"한물간 지 오래인 바르셀로나 놈들에게 지는 건 말도 안 되죠!"
'그 한물간 놈들이 이번 시즌 챔스 우승컵을 듭니다...'
물론 속에 있는 말을 꺼내 놓지는 않은 호날두였다.
주제 무리뉴는 이런 식으로 선수들을 띄워서 자신감을 고취시키거나 또는 자존심을 건드려서 승부욕을 자극하는 대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팀 분위기가 좋을 때 이런 식의 선수단 관리는 더없이 효과적이었다.
경기 시작 전, 중앙선을 중심으로 마주한 바르셀로나 선수들과 첼시 선수들.
페어플레이 정신을 다지기 위한 요식 행위였지만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뜨거운 승부욕은 가려지지 않았다.
특히 지난 시즌 첼시를 만나 16강 탈락이라는 쓰디쓴 고배를 마셨던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이를 잔뜩 갈고 나온 듯.
언제나 히죽히죽 웃고 다니던 그 호나우지뉴마저도 청동상처럼 굳은 얼굴로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리오넬 메시.
‘정지우’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보다는 훨씬 앳되고 작은 얼굴.
아직 그 재능을 온전히 만개하지 않았음에도 메시는, 오른쪽 윙 자리 부동의 주전인 지울리를 밀어내고 이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다.
이것만 보아도 바르셀로나가 이 어린 선수에게 품고 있는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분명 지금 이 시점에서 첼시 선수들이 가장 경계해야할 선수는 호나우지뉴가 첫 번째, 데쿠가 두 번째, 에투가 세 번째다.
하지만 리오넬 메시의 빛나는 재능과 창창한 앞날을 알고 있는 호날두는 절대 그를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메시와 호날두가 시선을 마주했다.
메시의 눈빛은 마치 불길 같았다.
유순한 얼굴 속에서 이글이글한 눈을 품고 있다.
호날두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저 빛나는 재능을 가진 선수에게... 지금 이 시점 누가 최고인지, 누가 정점인지.
한시라도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
[바르셀로나와 첼시 모두 자신이 속한 리그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리미어 리그와 라 리가의 지난 시즌 우승팀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 두 팀이 16강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첼시나 바르셀로나 팬들 입장에서는 애석한 일이지만, 중계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대가 되는 일입니다.]
[지난 시즌에는 첼시가 바르셀로나를 꺾고 8강에 진출했었죠. 하지만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는 지난 시즌보다 훨씬 정교하고 조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레이카르트 감독 체제에서 라 리가의 우승을 이뤄내고 리오넬 메시 같은 재능 있는 선수들의 수급도 착실히 해냈습니다. 훨씬 더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바르셀로나. 자만하지 않고 첼시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펼쳐지는 16강 1차전! 바르셀로나의 선축으로 드디어 시작했습니다!]
Blue is the colour, football is the game!
푸른색이 제일이고, 축구가 최고라네
We're all together, and winning is our aim!
우리는 다 함께하고, 승리는 우리의 목표지
So cheer us on through the sun and rain!
그러니 해가 뜨나 비가 오나 우리를 응원하자
Cause Chelsea, Chelsea is our name!
첼시, 첼시는 우리의 이름이니까.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가득 울려퍼지는 블루스들의 응원가를 기점으로 첼시와 바르셀로나간의 경기, 그 격전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