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성의 출현 - 5 >
[드록바 선수의 강한 전방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바르셀로나 수비진입니다. 올레게르, 골키퍼에게 패스...! 어어어!?]
[크리스티안 호날두!!]
드록바의 전방 압박에 못 이겨서 골키퍼 발데스에게 백패스를 날리는 올레게르.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호날두의 주력과 가속도였다.
올레게르의 위치, 발데스의 위치, 날아가는 공의 속력을 파악한 호날두는 작은 ‘승산’을 느꼈다.
그 즉시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에 폭발적인 힘을 주면서 질주하는 호날두.
기겁하는 올레게르와 발데스가 공을 향해 뛰어갔지만, 호날두는 이들보다 거리가 있었음에도 결국 먼저 공에 닿았다.
기회를 포착한 호날두는 발데스가 몸을 날릴 수 없는 곳으로 공을 가볍게 찼다.
바르셀로나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첼시에게 두 번째 득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호우-!!
우와아아아아!!
2:0
첼시를 상대로 20분 이상을 무실점으로 막아 세웠던 바르셀로나는 10분 만에 실점 두 개를 기록하고 말았다.
아직 전반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첼시는 기세 상으로 완벽하게 바르셀로나를 압도하는데 성공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첼시 팬들 전원은 첼시의 승리와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Shit!"
정말 ‘Shit!’소리가 절로 나오는 태클이 첼시의 왼쪽 풀백, 아시에르 델 오르노에게서 나왔다.
현대 축구에서 백태클은 웬만하면 퇴장이었고 지금은 2006년이었지만 그 규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옆에서부터 들어가는 태클은 백태클만큼은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공을 먼저 따내지 못한다면 옐로우 카드, 심하면 바로 퇴장을 당할 수 있는 행위였다.
호날두는 델 오르노가 공을 먼저 건드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델 오르노의 태클은 충분히 높았으며 공과 함께 메시의 다리도 거의 동시에 걸어버렸다.
메시는 다리를 부여잡고 뒹굴었다.
삐익-!
다리를 높이 세운 위협적인 태클이었기에 반칙이 선언되었다.
첼시 선수들은 주심에게 모두 달려가서 심한 부상이 아니니 한 번만 봐 달라, 절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다, 공을 먼저 건들었으니 반칙이 아니다 등을 어필했다.
당연히 바르셀로나 선수들과 레이카르트 감독은 그 반대의 입장이었다.
그들은 이 정도로 위험한 태클은 무조건 레드 카드가 나와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공을 먼저 건들었는데 무슨 다이렉트 퇴장이야! 미친 소리들 그만 하지!?”
“너희들, 야만인이야? 아예 다리를 향해서 사이드 태클을 날렸는데 그게 퇴장이 아니라고!?”
바르셀로나와 첼시의 선수, 스텝들은 서로에게 얼굴을 붉히는 지경까지 되었다.
경기 진행이 잠시 멈추었고 주심은 이들을 진정시켰다.
선수들, 양 팀 감독과 코치들, 경기장 관중들까지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주심만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주심은 카드를 뽑아 머리 위로 들었다.
카드가 나올 것은 모두가 예상한 가운데, 이제는 색깔이 중요했다.
색깔은 빨간색.
레드 카드, 퇴장이었다.
우우우우우우-!!
이 X같은 심판 새끼야!
바르샤에게 돈 먹었냐! 벌레 같은 새끼!
스탬포드 브릿지의 블루스들은 단체로 주심에게 야유와 욕설, 폭언을 쏟아 부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더 이상 항의를 핑계로 경기 진행을 방해한다면, 너희에게도 카드를 주겠어."
격하게 항의하던 첼시 선수들은 주심의 엄포에 불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아무리 스타 선수들이라 해도 경기의 슈퍼 갑, 주심을 어쩔 수는 없었다.
전반전이 끝났다
스코어는 여전히 2:0이었다.
=
.
첼시의 라커룸 분위기는 절대 2:0 스코어를 올린 팀이라고 볼 수 없었다.
"X같은 심판 새끼, 눈이 사시인 게 틀림없어. 어떻게 그걸 바로 레드 카드를 줄 수 있지!?"
“내가 볼 때는 바르셀로나 놈들에게 매수됐음이 분명해. 이건 UEFA에서 조사를 해야 해한다고, X발!”
"아시에르의 태클은 정확하게 공을 먼저 건드렸어! 내가 봤지! 클로드 말대로 심판 놈은 바르셀로나 보드진에게 돈을 먹은 것이 틀림없어!"
분노로 씩씩대는 첼시 선수들은 거친 욕을 멈추지 않았다.
델 아르노는 옆에서 정확히 공을 노리고 태클을 하려했지만 메시의 전진 속도 때문에 백태클 비슷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메시가 넘어지자 당황하는 표정과 모습으로 봤을 때 그는 결코 악의적으로 태클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카드가 나오지 않는 상황은 아니었지.’
한계선을 넘은 거친 플레이긴 했다.
심판의 시야에서는 고의적인 진로 방해와 뒤에서 들어가는 태클처럼 보일만 했으니, 결국 충분히 의심받을만한 행동을 한 델 아르노의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못해도 옐로우, 어쩌면 레드 카드까지 나올만한 반칙이었는데 이번에는 운이 좋지 않았을 뿐.
열이 무척 오른 듯 한 첼시 선수들을 진정시키는 것은 주장인 존 테리, 부주장인 램파드였다.
"자! 다들 진정하고. 아시에르가 퇴장당한 것은 아쉽지만, 아직은 우리가 스코어 상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기억해. 일단 벌어진 일에 대해서 자책하는 것보다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일이겠지?"
"캡틴의 말이 맞아. 우리가 저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여 저들을 꺾는 것이야! 침착하게 스코어의 우위를 지키자! 아시에르의 퇴장을 비웃던 바르셀로나 서포터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고!"
인성은 쉴드 불가능하지만 역시 존 테리는 주장 직에 선임될만한 선수.
존 테리와 램파드의 리더쉽과 영향력은 첼시의 그 어떤 선수들보다 컸다.
들끓던 첼시의 라커룸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주장과 부주장이 진정시킨 자리에는 이제 감독이 나설 차례였다.
"우리는 경기 내내 불합리한 판정을 받아왔다. 방금 사건은 그 꼴통 같은 심판 놈들의 더러운 해코지에 불과해. 우리가 신흥 강호이기 때문에, 우리가 승승장구하는 것이 꼴 보기 싫은 추한 이들의 발악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져서는 안 되는 경기가 되었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수비. 무조건 수비다!"
무리뉴는 과할 정도로 첼시를 피해자로, 바르셀로나와 심판들을 가해자로 몰아붙였다.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는 제쳐두고서라도, 첼시 선수들의 전의를 불타오르게 만드는 데는 더없이 효과적인 일이었다.
또 선수들이 불만스러워 할 만한 텐백... 아니 나인백 플레이 지시를 아무 문제없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하여간 안 그런 척하면서 정말 음흉한 계략들을 서슴지 않는 무리뉴였다.
첼시는 누가 봐도 인정할 만큼 EPL 최고의 선수진을 데리고 있다.
하지만 이 뛰어난 선수들을 가지고 너무 수비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잉글랜드 언론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는 중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잠그는 플레이에 익숙하고 또 잘할 수 있는 팀이 첼시라는 뜻이다.
이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모두 ‘익숙한’ 잠그는 플레이를 펼친다면 바르셀로나가 제 아무리 뛰어난 팀이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텐백 지시도 모자라서 무리뉴는 조 콜을 빼고 제레미 은지타프를 투입했다.
보통 이럴 때는 스트라이커까지 빼버리고 수비수 한 명을 더 늘리기도 했지만 무리뉴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하긴, 드록바는 공격수임에도 수비적인 능력이 있었다.
"후반전에는 한 골 정도는 내 줘도 된다. 다만... 내주면 반드시 다시 찾아와!"
긍정적인 에너지와 분위기로 15분의 휴식을 끝내고 경기에 임하게 된 첼시 선수들이었다.
=
왼쪽 풀백이 빠졌기에 그 빈자리를 호날두가 어느 정도 메워야했다.
솔직히 이건 무리뉴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이 '호날두 답지 않게' 수비능력까지 탑재했어도, 전문 수비수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법이다.
결국 무리뉴는 중앙 수비와 미드필더, 우측 수비를 강화시키고 좌측 수비를 희생시킨 것.
거기에 호날두가 맞상대할 선수는 무려 호나우지뉴다.
바르셀로나의 레이카르트 감독은 역시 뛰어난 감독으로 첼시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어보았다.
메시와 호나우지뉴의 자리를 바꾸면서 바르셀로나의 우측 측면 공격력을 강화시킨 레이카르트.
호날두는 폐급의 호나우지뉴가 아닌 진짜 외계인 호나우지뉴를 상대하게 되었다.
'날 믿어주는 건 좋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메시는 어찌저찌 막아냈지만 호나우지뉴에게는 얄짤 없다.
예상대로 신나게 털리는 호날두.
그나마 빠른 주력과 피지컬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호나우지뉴를 성가시게 만들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플립 플랩으로 자신을 제치려는 호나우지뉴를 끝내 막아내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에 몸싸움으로 그를 밀어트리는 호날두.
주심에게 구두로 경고를 받았지만 위기 상활을 넘기는데 성공한 호날두는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엎어진 호나우지뉴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아이고, 아파라~ 우리 살살 하자고, 친구. 그나저나 수비수도 아닌데 왜 이렇게 수비도 잘하는 거야~? 우리 팀 곤란하게."
"하! 이게 잘하는 거라고요? 나는 당신을 몇 번이나 놓쳤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요?"
"아까 퇴장당한 녀석... 이름은 생각 안 나지만 아무튼 그 친구보다 훨씬 잘 막는 편인걸? 나는 '호나우지뉴 가우슈'라고."
그 자신감에 할 말이 없었다.
비록 발롱도르를 뺏겼지만 호나우지뉴는 호나우지뉴였다.
"외계인에게 반칙을 써서라도 드리블을 끊은 판단, 아주 좋았어. 크리스! 그냥 넘겼다가는 정말 위험할 뻔했어."
"와우~ 우리 어린 에이스는 수비도 잘하는 걸? 아예 윙백으로 전향해도 될 거 같은데?"
"괜히 보스가 왼쪽 측면을 전부 크리스에게 맡긴 게 아니라니까~!"
첼시 선수들의 칭찬 릴레이가 줄을 이었다.
호날두는 의아했다.
정말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 순간에 문제가 터졌다.
코너 아크 지점에서 공을 몰고 가는 메시.
메시의 드리블 스페셜 영상을 보면 절대 빠지지 않는 바로 그 장면, 그 장면이 터져 나온 것이다.
슬금슬금 공을 몰고 가다가 단번에 무게중심 축을 바꾸면서 공을 왼발, 오른발로 튀기는 팬텀드리블.
첼시 수비수들을 간단히 제치는 그 장면은 보기만 해도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해서 수비진을 벗겨낸 메시의 패스는, 사냥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어슬렁거리던 호나우지뉴에게 닿고 말았다.
지금까지 피지컬이든, 걸레 수비든, 파울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호나우지뉴를 막았던 호날두가 아주 중요한 순간 그를 놓치고 말았다.
엄청난 속도로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파고 드려는 호나우지뉴의 슛을 막은 건 존 테리였다.
여기까지는 아주 훌륭한 수비였다.
하지만 치명적인 실수가 터져 나왔다.
공을 받아낸 존 테리의 볼 터치가 삐끗하면서 공이 뒤쪽으로 넘어간 것.
골키퍼 체흐가 급히 몸을 날렸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공은 골라인을 넘은 뒤였다.
와아아아아!!
호나우지뉴는 양 손에 키스를 하고 그것을 뿌리는 세레모니를 펼치면서 바르셀로나 원정 팬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의 옆에는 놀라운 키 패스, 어시스트를 만들어낸 메시가 환한 표정으로 어깨동무를 했다.
친동생 같은 메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잇몸을 드러내며 기뻐하는 호나우지뉴.
그들을 바라보는 첼시 선수들의 마음은 매우 착잡했다.
"미안하다. 이번 실점은 나 때문에..."
"아니에요, 캡틴. 그 이전에 제가 호나우지뉴를 막지 못했어요."
"너는 지금까지 굉장히 잘해왔어. 전문 수비수도 아니었음에도, 이건 명백히 내 실수야."
"캡틴..."
"......"
자책골에 머리를 감싸 쥐며 스스로를 힐난하는 존 테리.
호날두는 그에게 더 이상의 위로를 보내지 않았다.
다른 첼시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완벽주의자인 존 테리에게 이번 실수는 너무나도 뼈아픈 일이었다.
씁쓸했다.
=
2:1의 스코어.
비록 바르셀로나에게 원정 골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이 점수를 지키기만 했어도 경기 종료 후 첼시 선수들은 웃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호나우지뉴와 메시가 각기 공격진에서 날뛸 때, 지금껏 별 활약을 하지 못했던 사무엘 에투는 혼자서 칼을 갈고 있었다.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표범처럼 골 냄새를 찾아 첼시의 페널티 에어리어 지역을 이리저리 휘저은 에투.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이자 호날두의 포르투갈 대표팀 선배인 데쿠는 그런 에투를 놓치지 않았다.
날카로운 스루 패스가 에투를 향해 들어왔다.
사무엘 에투는 첼시의 오프사이드 선상을 찢어발기면서 슛, 기어코 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경기 종료 5분 전에 이루어진 동점골이었다.
삑! 삐이익-!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이럴 때는 참 원망스러웠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라운드에 앉아 있는 호날두.
첼시 선수들도 호날두와 같은 표정이었다.
지진 않았지만 진 것과도 같다.
축구 경기를 하면서 언제나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만, 오늘처럼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은 참 쓰고 쓴 일이다.
그런 호날두에게 비치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누군지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던 호날두의 눈이 커졌다.
작은 키가 보였고 그 다음에는 찰랑거리는(...) 머리를 싸맨 고무줄이 보였다.
그는 바로 리오넬 메시.
"......"
"...?"
가만히 호날두를 바라보는 메시는 조용히 자신의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고 다소곳하게 그것을 넘겨주었다.
멍하게 있던 호날두도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얼른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주었다.
등번호 30번이 새겨진 메시의 유니폼.
이거 상당히 유니크한 것을 얻었다.
호날두의 유니폼을 받아든 메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씩 웃었다.
그리고 서둘러 떠났다.
호날두는 그제서야 메시가 사실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나중에 팀의 중심이 된 이후에는 조금 변하겠지만... 여고생 머리에도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수줍음의 정점을 찍을 때였다.
'그나저나 메시가 내 유니폼을 원했다니... 와우....?'
별일 아닌 일인데 왠지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무튼 이 유니크한 메시의 30번 유니폼을 잘 보관하기로 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교환한 유니폼들을 잘 모아놓고 있는데 나중에 은퇴하고 전시한다면,,, 왠지 꽤 근사할 것 같았다.
0506시즌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첼시 2 VS 2 바르셀로나
< 신성의 출현 - 5 > 끝
ⓒ 아이시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