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전의 뒷면 - 1 >
4월 17일,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1골 1어시를 기록하며 MOM을 받은 호날두.
하지만 후반 종료 10분을 앞두고 급하게 달리다가 종아리 근육이 살짝 파열되었다는 진단을 받고야 만다.
그 여파로 22일 날 치러지는 리버풀과의 FA컵 준결승전을 출전할 수 없게 된 호날두.
파열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미한 부상이었기 때문에 붕대로 칭칭 감은 다음에 진통제를 먹는다면 출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나 월드컵 결승전도 아니고 그렇게까지는 하지는 않았다.
호날두는 자신이 없어도 첼시가 리버풀을 꺾고 결승 진출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리버풀과의 상대전적에서 앞서기도 했고, 특히 리버풀은 막판에 갑자기 삐끗거리면서 약점을 드러내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첼시는 패배했다.
"첼시가 이번 FA컵에서 떨어진 것은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이미 확정 지은 선수들의 태만함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아, 태만함이라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입니다! 우리 선수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웠지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갔을 뿐입니다.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과 그것을 이용한 리버풀의 치졸한 플레이만 아니었더라면 경기 결과는 분명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역시 '무리뉴' 다운 인터뷰였다.
그의 인터뷰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기자들은 '역시나!'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셔터를 누르고 타자를 치기 바빴다.
"석연치 않은 판정은 어떤 것을 의미하시나요?"
"분명 마이클(에시앙)이 찬 공은 캐러거의 손에 맞았습니다. 의도 여부를 따라서 이것은 명백한 핸들링 파울이었고 캐러거는 페널티 라인 안쪽에 있었죠! 하지만 심판은 PK 지점을 손으로 찍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휘슬조차 불지 않았죠! 이건 정말 끔찍한 판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리뉴는 오늘 경기 주심을 맡았던 그라함 폴의 판정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이미 무리뉴는 프리미어 리그를 포함한 여러 대회 경기들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판정을 내린 심판을 맹비난했었고, 그로 인해 영국 축구 협회로부터 수많은 경고와 벌금을 받은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고난과 시련은 무리뉴의 모터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정말 누구를 까지 않으면 죽는 사람처럼 굴었다.
"저희 첼시는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언제나, 언제나 심판의 판정에서 이렇게 손해를 보고 있어요! EPL 역사상 가장 압도적이고 가장 완벽한 팀임에도 여전히 돈으로 우승을 샀다는 헛소리만 들으면서 핍박을 받습니다!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있다면 재벌들은 벌써 우승컵을 수십 개 씩 들고 다녀야겠군요!?"
“말씀해주신 마지막 부분은 심판의 판정과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요....?”
“첼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보니 심판들이 작정하고 첼시 죽이기를 하기 편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 팀은 경기에서 지고 있을 때 가장 적은 추가 시간을 받았고, 이기고 있을 때는 가장 많은 추가 시간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정리된 논문까지도 나는 쓸 수 있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 심판들이 조직적으로 첼시를 차별하고 핍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잘나고 존경스러운(비꼬는 어조로) 퍼거슨 경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면 과연 이런 불합리한 판정을 받았을까요? 끔찍하게 수준 낮은 아르센 벵거의 아스날이라면 페널티 신호를 심판이 과연 무시했을까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더 말한다면 FA에서 날 죽이러 히트맨을 보낼지도 모르겠군요!"
웅성웅성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굉장한 폭탄 수십 개를 동시에 터트리는 무리뉴.
이렇게까지 심판과 FA를 강도 높게 비난한 감독이 여태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내일 아침 잉글랜드 신문지 헤드라인은 무리뉴의 인터뷰가 장식할 것이다.
"호날두 선수! 무리뉴 감독의 방금 발언을 들었지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의 망상에 동조하나요?"
“무리뉴 감독에 대한 FA의 강력한 제제가 있을 예정인데 호날두 선수는 무리뉴 감독과 함께 맞서 싸울 예정이신가요?”
"후... 저는 오늘 경기에서 뛰지도 않았던 선수입니다. 인터뷰는 사양하겠습니다."
눈을 빛내며 자신에게 덤벼드는 기자들을 슬쩍 피하는 호날두.
무리뉴를 존중하지만 솔직히 너무 발언들 하나하나가 너무 과했다.
분명 잉글랜드 축구계 최고의 꼰대집단인 FA에서 역대급 제제를 가할텐데, 괜히 여기에 끼어들어서 불똥을 맞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호날두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주제 무리뉴 감독은 언제나 크리스티안 호날두 선수를 첼시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치켜세웠습니다. 호날두 선수가 만약 오늘 경기에 참여했다면 한수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리버풀에게서 탈락하는 불상사는 없었을까요?"
"무리뉴 감독의 발언에 대해서 사전에 교감한 내용이 있습니까!? 오프 더 레코드라도 좋으니까 한마디 좀...!"
요즘 참 찌라시 언론 기자들이 늘어난 것 같았다.
객관적인 사실관계나 선수의 이미지는 전혀 생각지 않고 일단 어떻게 해서든지 이슈몰이를 하고 싶어서 막 던지는 기자들.
이들과 얽혀서 좋은 꼴 보는 것을 못 봤기에 호날두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귀에 매우 거슬리는 ‘소음‘ 하나가 들려왔다.
"만약에 호날두 선수가 오늘 경기에서 진통제를 먹고 뛰었으면 분명 이길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게 심한 부상도 아니라던데 사랑하는 클럽에 소속된 선수로서 좀 이기적인 판단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을 듣는 즉시 어이가 가출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한 뚱뚱한 남성 기자 한명이 아니꼬운 눈빛으로 호날두를 바라보았다.
그가 쓰고 있는 모자는 ‘카익피플’ 이라는 언론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제가 진통제를 먹고 뛰어야 했다고요?"
"아니 뭐...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희생쯤은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큰 부상을 당한 조지 베스트도 팀을 위해서 꾹 참고 뛰었는데 말이죠."
잠시 동안 호날두는 이 사람을 그냥 무시하고 나갈까 했었다.
하지만 이런 자기중심적이고 끔찍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앞으로 피해를 입는 선수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스스로의 사명감을 이기지 못 했다.
내가 나중에 조금이라도 욕먹을지언정, 저 뚱뚱한 기자의 오만한 발상을 까지 않고는 못 배긴다.
"축구 클럽과 선수들 간의 계약은, 그 계약 기간 동안 해당 클럽 유니폼을 입고 뛰라는 것이지, 클럽을 위해 뭐든지 희생하라는 뜻입니까? 우리는 축구를 하는 사람이지 희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당신은 직무도중 상해를 입었을 때, 당신의 언론사를 위해서 병가를 반납하고 일할 수 있습니까?"
"아니, 무슨 예를 그런 식으로...."
"희생은 선수가 진정으로 바랄 때 해야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겁니다. 나는 매 경기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그만큼 축구를 할 수 있는 지금의 내 몸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타닥타닥타닥
타자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리는 것을 보니 이것도 백 퍼센트 기사화 될 듯.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릴 수도 있겠지만 선수들의 희생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저런 부류들에게 꼭 한 마디하고 싶었다.
희생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다.
=
[첼시의 크리스티안 호날두, '선수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라.' 분노!]
[호날두, '진통제 맞으면서 뛰라고? 웃기는 소리.']
[팀의 성적보다 개인의 커리어가 더 중요하다는 호날두! 이기적인 스타의 뒷면!]
[선수들의 몸은 소모품이 아니야! 희생을 요구하는 축구계에 일침!]
무리뉴의 어마어마한 어그로 때문에 묻히는가 싶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 종류의 기사는 마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듯 같이 화제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호날두의 기사들 중 몇 개는 참 의미심장했는데...
기사들의 제목이 마치 호날두가 첼시나 무리뉴를 겨냥하는 것처럼 나간 것이다.
특히 세 번째 기사처럼 아예 음해를 목적으로 기사를 싸재끼는 곳도 있었다.
“조르제, 나에요.”
[오, 크리스-! 부상은 괜찮니?]
“거의 다 나았아요. 그건 그렇고 요즘 참 시끄럽죠?”
호날두의 말에 그저 웃는 멘데스였다.
“아무래도 이대로 참고 넘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나는 상관없지만 사랑하는 내 가족들,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팬들이 있으니까요. 그들을 지켜야죠.”
아버지 주제 디니스는 아직도 자식에 대해 칭찬하는 기사들을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신다.
어머니인 마리아 역시 호날두에게 찬사를 보내는 감독과 평론가의 발언들은 절대 잊지 않고 반복해서 외우시기도 한다.
이들을 상처 입히게 하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
호날두는 리스본의 집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잉글랜드 언론지 중 ‘카익피플’에 대한 투고를 끊고 관련 신문들을 싹 없애도록 시켰다.
부모님이 볼 수 없도록 말이다.
[잉글랜드는 언론의 자유가 과하게 보장된 곳이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더라도 큰 효과를 보기 힘들 거야.]
“상관없어요. 그들을 성가시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일단 만족이니까요.”
호날두는 지금껏 사용하지 않았던 ‘자본’의 힘을 쓰기로 했다.
미국에 있는 재산들을 일부 정리해서 카익피플지에 광고비를 주는 기업들이 거래를 끊도록 할 방법을 찾을 생각.
멘데스는 그런 호날두의 생각을 읽은 것 같았다.
오히려 그가 먼저 제안했다.
[내가 힘을 쓰도록 할게. 그 찌라시 언론지는 함부로 펜대를 굴린 죄값을 받을 거다.]
“그래주시겠어요? 고맙습니다, 조르제.”
[뭘, 내 고객을 내가 지키는 일인데.]
멘데스의 웃음을 들으니 안심이 된다.
호날두의 대박 성공 때문에 멘데스의 회사는 원래의 흐름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장을 했다.
벌써부터 슈퍼 에이전트라고 불릴 정도로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내에서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었고 그것은 꼭 축구계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었다.
특히 언론계에 대한 멘데스의 입김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카익피플에 칼을 댈 수 있을 것.
호날두는 그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기사에 대한 반응들은 봤어?]
“아직 안 봤어요. 이제 보려고요.”
[흠... 크리스, 나는 네가 그것들을 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데...]
“? 이유가 뭔가요?”
[글쎄... 그냥 보지 않았으면 해.]
“......”
호날두는 멘데스가 뭐 때문에 이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위 기사들에는 다양한 댓글들이 달렸는데 그것을 결국 읽는 호날두였다.
- 그의 말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데 FA컵 준결승전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는 참고 뛰어도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ㄴ 와... 역시 근본 없는 첼시 팬 수준! 선수가 부상당한 상황에서 진통제 먹고 뛰는 건, 후유증 감당하고 선수 생활 깎아먹는 일이야. 그걸 하라고?
ㄴ 언제 내가 하라고 강요했어? 그랬으면 어땠을까 가정하는 거지. 그리고 경미한 근육 파열 정도로 후유증은 무슨...
ㄴ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지 않은 게 좋아. 네가 첼시 팀 닥터들보다 더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ㄴ 근육 파열 안 당해봤나? 아무리 경미하다 해도 그 상태에서 심한 운동하면 후유증 심각하게 올 수도 있는데...?
- 같은 첼시 팬인데 내 의견은 위에 사람과는 정 반대야. 호날두는 우리 팀의 보물이야. 그런 선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이럴 때 오히려 더 아껴줘야지.
- FA컵에서 떨어진 첼시 팬들이 화나 있는 건 알겠는데 조금은 진정하는 게 어떨까 싶네. 진통제 먹고 뛰는 건 선수 개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 아닌가? 그걸 왜 팬들과 언론이 왈가왈부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네.
ㄴ 무리뉴 말이 딱 맞았어. 첼시라서 사람들이 일단 까고 보는 거야.
ㄴ 글쎄... 댓글의 첼시 팬들 보면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 요즘 선수들은 참 근성이 없어. 옛날에는 부상이건 뭐건 감독이 뛰라면 뛰었는데. 조지 베스트나 보비 찰튼 같은 선수들이 왜 위대했는데? 그들은 희생을 할 줄 알았기 때문이야.
ㄴ 정작 무리뉴 감독은 호날두 보고 경기 뛰라고 하지 않았다던데?
ㄴ 미안하지만, 그건 내 알바 아니야.
ㄴ -_-;;
ㄴ 질러놓고 모른 척 하는 건 그쪽 집안의 특기인가? 저런 인간들이 탄생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기 때문인가...
ㄴ 아스날 팬들의 종특인 것 같네요. 이 사람 링크 들어가 보니 아스날 팬 페이지가 나오는걸요.
- 그냥 꾹 참고 뛰지 참... 리버풀 같은 팀에게 우리 첼시가 져야만 했나?
- 와... 생각보다 진통제 먹고 뛰었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좀 있네. 특히 첼시 팬들이 더 그런 주장을 할 줄은 몰랐어. 그들은 팀 성적만 소중하고 선수들은 소중하지 않나봐.
- 근육 파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구나. 저 상태에서 걷는 것조차 상당히 고통스러운데 경기를 뛰라고? 자기들의 몸은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면서 왜 선수들의 몸은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는 거지?
- 블루스로써 호날두 보고 경기 뛰라는 위에 놈들이 제발 같은 블루스가 아니길 빈다.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호날두의 예상보다 '진통제는 쯤은 먹어도 괜찮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호날두에겐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닌 나쁜 의미로.
'외국도 마찬가지네. 과거로 갈수록 팀을 위한 선수들의 희생을 미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구나.'
특히 첼시 팬들이 더 그런 경향을 보이는 것이 호날두 입장에서는 많이 섭섭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첼시에게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호날두 덕분에 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근육 파열을 당했는데도 약 먹고 뛰라고 한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이 훨씬 많았고 다수의 첼시 팬들 역시 호날두가 진통제를 먹고 뛰었어야 한다는 주장을 개소리 취급했다.
하지만 원래 사람은 보기 싫은 것들이 먼저 눈에 띄는 법이었다.
< 동전의 뒷면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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