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전의 뒷면 - 2 >
섭섭한 것은 섭섭한 것이고 어쨌든 호날두는 2주 간 경기를 뛰지 않기로 결정했다.
클럽의 팀 닥터와 감독인 무리뉴, 서 런던 병원의 전문의, 그리고 개인 트레이너인 장 레쉬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한 판단이다.
“트레이너로서의 소견을 말하자면 그렇게 복귀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육 파열 같은 부상은 완치되더라도 꾸준히 상황을 지켜보면서 재발 여부를 체크해야 되거든요.”
“그렇다면 재활 기간을 늘리고 조금 더 경기를 쉬는 게 좋겠군요.”
“뭐, 첼시가 위기에 빠져있으면 모를까, 어차피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확정 짓고 FA컵은 떨어진 마당에 남아있는 중요한 경기도 없잖습니까? 이 참에 푹 쉬고 월드컵을 준비하는 것이 크리스티안에게는 더 나은 일 일겁니다.”
장 레쉬의 말에 호날두는 동의했다.
재발 위험은 굉장히 낮았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었고, 월드컵 이전까지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오히려 챔피언스 리그에서 일찍 탈락한 게 월드컵 일정을 치르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군요.”
“오,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장.”
“하하, 농담입니다.”
어쨌거나 호날두는 이번 시즌은 프리미어 리그 마지막 경기인 뉴캐슬과의 경기에서만 출전하기로 합의했다.
그 동안 근육이 파열된 왼쪽 종아리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안정을 취하는 중이었지만 그 외의 다른 부위에 대한 운동은 매일 꾸준히 하는 중이다.
부상 이후 경기 감각이나 몸 상태가 떨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 호날두는 최선을 다했다.
“케슬린, 거기 있는 기구 좀 가져다줄래?”
“알았어요, 크리스. 이거 맞죠?”
“고마워, 아! 그리고 옆에 모포 좀 깔아줘.”
부상당하지 않은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운동을 하고 있는 호날두.
그런 호날두를 보며 케슬린은 입술을 삐죽였다.
“부상당했다고 걱정해서 왔는데... 괜히 왔네요. 애인이 왔는데 재활치료만 하고 있는 남자는 크리스 밖에 없을 거예요.”
“하하! 그러니까 다음 주에 만나자니까~”
“이번 주도 만나고 다음 주도 만나면 되는 거죠!”
“알았어, 알았어.”
땀을 흘리면서 전문의와 트레이너가 말한 것 그대로 재활 운동을 반복하는 호날두.
그가 얼마나 중요한 시기에 놓여있는지 알고 있는 케슬린으로서는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즐거웠고 행복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기댄 케슬린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크리스의 이번 월드컵 목표는 당연히 우승인가요?”
“아니, 결승전 진출이 목표야.”
“에? 결승 진출이요?”
“결승전에 진출하고 나서는 져본 적이 없으니까.”
포르투갈 컵, 유로파 리그, 유럽 선수권 대회, 챔피언스 리그까지.
클럽과 국가대표를 가리지 않고 토너먼트 결승전 경기에서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오직 호날두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저는 유달리 감이 좋다고 전에 말했었죠?”
“응? 그래서 뭔가 촉이 왔어?”
“후훗, 이번 월드컵에서 잘 하길 바랄게요.”
“그래, 아일랜드가 탈락했으니 케슬린은 포르투갈을 응원해줘야지.”
쥐고 있는 것을 던지려는 케슬린을 보고 호날두는 기겁했다.
그거 아령이라고!
=
아무리 다른 부위에 대한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해도, 왼쪽 종아리 근육이 다쳤기 때문에 축구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볼을 차고 뛰는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여 그 시간 동안 호날두는 첼시와 포르투갈 대표팀의 여러 대회 경기들에 대한 영상들을 구했고 그들을 돌려보는 중이다.
물론 호날두 자신이 나오는 영상이었다.
스스로의 플레이 영상을 돌려보면서 어디가 미흡했고 부족했는지를 분석했다.
또 그 부분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개선해야 할지를 고쳐나가는 작업은 꼭 필요했다.
호날두는 커다란 종이를 구해왔다.
그리고 그 종이에 무작정 써내려갔다.
포르투갈 크로아티아전 - 11분 21초, 턴 오버를 허용, 드리블을 하지 말고 우측 전방의 데쿠에게 패스할 길이 있었음. 동료 선수들의 위치 파악 필요.
첼시 바르세로나전 - 29분 50초, 중앙으로의 무리한 돌파시도 보다는 측면에서 찔러주는 킬 패스를 노렸어야. 패스 루트를 다양화 시켜야 함.
첼시 토트넘전 - 58분 20초, 상체 페인팅 동작들과 헛다리 짚기 과정에서 유사 습관 발견. 재활 치료 후 반드시 고칠 것.
...중략...
매 경기에서의 실수를 찾았고 그것들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고쳐나가는 호날두.
그 과정을 케슬린이 간 이후에도 계속해서 했다.
몸이 뛸 수 없으니 머리가 뛰고 있는 것이다.
피지컬과 감각, 기술적 능력만으로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은 물론 많았고 그 중에서도 정말 특출난 선수도 존재했다.
하지만 축구의 기본 골자는 팀플레이다.
팀플레이는 하드웨어만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 최고의 선수가 되려면 '머리'가 좋아야한다.
호날두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선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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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에는 작년보다 더욱 압도적인 시즌을 써내려갈 것처럼 보였던 첼시.
지난 시즌의 97점을 넘어서 이번 시즌에는 ‘꿈의 승점 100점’에 도달하나 마나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즌 중반 비교적 약팀들에게 승점을 내주면서 살짝 삐끗했고, 블랙번 로저스에게 또 한 번 어이없게 패배하면서 오점을 남겼다.
그나마 뉴캐슬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출전한 호날두가 지금까지 부상으로 출전 못했던 한을 푸는 듯 2골을 몰아넣으며 역전승을 이끌었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드디어 시즌이 끝났다.
05-06시즌 프리미어 리그
1위 첼시 30승 5무 3패 승점 95점
2위 리버풀 25승 7무 6패 승점 82점
3위 맨유 24승 9무 5패 승점 81점
4위 아스날 20승 7무 11패 승점 67점
5위 토트넘 18승 11무 9패 승점 65점
6위 블랙번 19승 6무 13패 승점 63점
시즌 막판에 다시금 전승을 달리며 2위에 올라선 리버풀.
그렇지만 첼시와 벌어진 승점 차는 너무나도 컸기에 그들은 1위를 넘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필생의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보다 높은 순위로 시즌을 마감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콥들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즌이었다.
옷을 벗어재끼고 리버풀 거리를 뛰어다닐 정도로 리버풀의 팬들을 현재 기뻐하는 중이라고.
다음 시즌에는 우승이 목표라고 베니테즈 감독과 리버풀 보드진들이 말을 하긴 했는데 글쎄.... 과연 그게 가능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슬슬 묵혀온 불만들이 쌓이고 쌓여가는 중이다.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 팀을 자처하는 맨유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3년이나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 그리고 이번 시즌 라이벌인 리버풀보다 순위가 낮은 것은 콧대 높은 레드 데빌즈(맨유의 서포터 집단)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일부 팬 포럼과 지역 일간지에서는 '알렉스 퍼거슨을 경질하라!' 라는 자극적인 글까지 슬슬 올라오고 있는 상황.
퍼거슨의 최대 위기가 다가왔다.
시즌 초 그렇게 삽을 푸던 아스날은 그래도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인 4위까지 꾸역꾸역 치고 올라오는 저력을 발휘하며 '4스날 과학' 시초를 알렸다.
1,2,3,위와 승점 격차는 너무나도 컸다.
그렇기 때문에 아스날의 팬들은 이번 시즌 성적에 대해서 불만을 드러낼 만도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아스날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하여 바르셀로나와 맞붙게 되었기 때문.
북 런던은 현재 가장 열기가 뜨거운 곳이었다.
모예스의 에버튼은 이번 시즌 11위를 기록하며 지난 시즌에 비하면 폭망한 성적을 거뒀다.
구단의 재정적 지원 부족으로 뎁스가 얇을 수밖에 없는 에버튼의 선수단.
여기에 챔스까지 병행하려다 오히려 시즌을 전체를 말아먹었지만 사람들은 모예스를 욕하지 않고 오히려 불쌍하다 동정했다고 한다...
이제 이번 시즌은 마지막 경기, 바르셀로나와 아스날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만 남겨두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고 명예로운 대회가 부쩍 다가와 축구 팬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2006 독일 월드컵!
범세계적인 축구 축제의 열기는 서서히 전 세계를 달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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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호날두의 성적은 33골 20어시스트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스탯이었고 호날두를 세계 최고로 만들었지만 이번 시즌은 그것을 넘어선 역대급 성적이었다.
이번 시즌 호날두는 총 46경기를 출전했다.
챔피언스 리그 조기 탈락과 종아리 부상 때문에 출전 경기수가 지난 시즌보다 적었음에도 무려 46골을 때려 넣으며 경기당 한골을 정확하게 맞추었다.
어시스트 개수는 총 12회.
경기 수가 줄어들었음에도 공격 포인트는 오히려 늘어난, 정신 나간 성적을 세운 호날두는.
모든 언론이 그를 집중 조명하기에 이르렀다.
[EPL의 새로운 왕, 크리스티안 호날두! 프리미어 리그의 신기록을 달성하다!]
호날두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만 총 35골 9어시를 기록했다.
당연히 이번 시즌 득점왕이었고 2위 앙리를 8골 격차로 따돌릴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였다.
문제는 이 득점 기록이 프리미어 리그 한 시즌 최다골인 앤디 콜과 엘런 시어러의 34골을 넘어선 기록이라는 것.
역대 최다 골 득점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잉글랜드 전역은 현재 그에 대한 말들만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선수입니다. 이번 시즌의 그의 활약은 절대적입니다! 누구도 그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호날두는 인사이드 포워드 또는 윙어로 분류됩니다. 스트라이커도 아닌 선수가 리그에서 무려 35골을 넣었고 시즌 통틀어 46골을 넣었지요. 이건 정말로 축구계의 상식과 한계를 깨트리는 일입니다. 심지어 그는 부상 때문에 몇 경기를 빠지기도 했거든요!]
[이건 분명히 역사에 남는 일입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EPL 역사상 가장 압도적이고 가장 뛰어난 시즌을 보냈던 선수로 기록될 겁니다. 벌써부터 역대 프리미어 리거 베스트 11의 한 자리를 차지했어요! 물론 그는 지금보다 더 발전하는 중이라는 게 더 공포스러울 따름이지요.]
[명백하게 그는 이 시대 최고의 선수입니다. 이제는 ‘최고의 선수’라는 표현이 오히려 그를 낮추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그가 정말 역사의 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수가 될 수 있을까요?]
[잉글랜드에도 이런 선수가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데이비드 베컴, 프랭크 램파드, 스티븐 제라드, 웨인 루니, 존 테리, 애슐리 콜 등과 함께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볼 수 있었겠죠. 그것은 아쉬운 일이군요.]
프리미어 리그에서 호날두가 무자비한 폭격을 가하는 중이라면 현재 라 리가에서는 호나우지뉴가 외계인다운 활약으로 스페인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이름은 모두 ‘Ronaldo’가 들어간다.
유럽 데뷔시즌부터 엄청난 임팩트를 보였던 원조 호나우두가 추락하고 새롭게 나타난 두 명의 호나우두들.
이 자체만으로도 축구팬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 이야기 거리가 대량으로 양산되기 충분했다.
지난 시즌에는 첼시의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리그와 챔스를 모두 우승하는 기쁨을 누렸고, 이번 시즌에는 바르셀로나의 호나우지뉴 가우슈가 리그 우승컵과 챔스 우승컵을 들며 평행 이론이 완성했다.
비교 좋아하는 건 어느 나라 사람이건 다 똑같은 듯.
현 세대 최고의 선수인 호날두와 호나우지뉴를 비교하는 칼럼들은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서 축구팬들의 싸움을 붙이기도 했다.
이렇게 의도치 않게(?) 유럽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호날두.
월드컵 시작 전까지 약 2주간의 휴가를 부여받은 그는 지금 유럽에 있지 않았다.
그의 행선지는 바로 한국이었다.
===
호날두 그리고 ‘정지우’는 항상 고민해왔다.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고 그것도 모자라서 존경하던 선수인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몸에 들어왔다.
그 때 ‘정지우’는 어린 호날두와 기억이 겹쳐지는 현상을 겪었다.
초현실적인 일을 겪은 다음 패닉 상태를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포르투갈어를 무리 없이 구사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
다만 호날두와 ‘정지우’는 둘 다 축구에 미쳐있었기에, 축구에 몰두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무뎌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가시지 않은 의문.
'정지우'가 회귀해서 호날두의 몸에 들어왔다면... 원래의 정지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정지우는...?
전자는 확인할 방법 자체가 없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후자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한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인천공항에 들어선 호날두.
비공식 방문이기 때문에 수행원 하나 없다.
귀찮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라스와 몸을 많이 가릴 수 있는 옷을 입은 호날두.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쓰면서 게이트를 나선 호날두는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성남 해솔 보육원으로 가주세요."
"어? 아, 예예."
“한국말 가능합니다.”
누가 봐도 외국인이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자 놀라는 택시 기사였다.
출발하는 택시 좌석에 몸을 맡긴 호날두는 한국에 도착하고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중이다.
경기 뛰기 전보다 훨씬 떨렸다.
'그를 만난다면... 아니 그가 아니지.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쩌면... 지금의 정지우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나하면 ‘정지우’는 지금 자신이니까.
만약 해솔 보육원에 정지우가 없다면... 호날두는 상상 이상의 충격을 받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 도착했습니다, 손님."
"예, 고맙습니다. 여기요. 잔돈은 필요 없습니다."
택시비로 내는 금액이 상당했는지라 택시 기사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허허... 외국분이신데 한국말을 참 잘하시네요."
호날두는 웃으면서 답했다.
"많이 노력했거든요."
< 동전의 뒷면 - 2 > 끝
ⓒ 아이시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