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125)

< 동전의 뒷면 - 3 >

도착한 해솔 보육원은 '정지우'의 옛 기억과 다르지 않았다. 

그 장소에 오자 세월에 희미하졌던 기억의 단면이 되살아났다. 

예전에 같이 보육원 생활을 했었던 친구들과 형, 누나, 동생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잊은 줄 알았던 그들의 이름 역시 하나씩 하나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뛰쳐나왔다. 

점심 먹고 쉬는 시간, 남자아이들은 공을 차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시간. 

그들을 바라보는 호날두는 보육원의 울타리 바깥에서 굳어버린 석고상처럼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손이 그의 입을 가렸다. 

그러지 않으면 무언가의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지우야! 우리 같이 공 차자! 저기~ 자리도 맡아놨어!" 

"싫어. 너희는 너무 못한단 말이야." 

"에이~ 그러지 말고 같이 놀자!" 

"놀자아아~!" 

“네가 가르쳐주면 되잖아~!” 

"흥, 그러면 한번 놀아줄게." 

살짝 고집이 있어 보이는 아이에게서 호날두는 눈을 떼지 못했다. 

아아, 저건 나다. 

아니, '우리'의 일부다. 

정지우는 고아다. 

부모가 없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가 불행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의 존재 따위 모르고 알 생각도 없지만, 보육원 지도 선생님들의 따뜻한 애정과 친구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큰 결핍을 느끼지 않았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행복한 얼굴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또래 친구들을 마주할 때, 다른 보육원 동급생들이 전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쳐다봐도 지우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저 꼿꼿하게 행복해하는 단란한 가족들을 보고 지나칠 뿐이다. 

‘나는 엄마, 아빠가 없어도 불행하지 않아. 그런 티도 내고 싶지 않아.’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 자식들에게 정말 잘해줄 거야.’ 

그런 지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바로 축구를 하는 것. 

지우는 축구를 잘한다. 

정말 잘한다. 

얼마나 잘하냐면 상급원생들과 같이 뛰어도 밀리지 않고 오히려 서로 지우와 같이 뛰고 싶어 할 정도로. 

그래서 오히려 동급생들과 공을 차면 시시하고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운동장으로 나서는 지우. 

해솔 보육원은 일남 초등학교와 가까웠고 보육원생 전원이 일남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그곳 운동장이 축구를 하기에는 가장 나은 장소였다. 

주차장에서 공을 차고 놀 수도 있는데 보육원 선생님들이 위험하다면서 금지시켰기에 그럴 수 없었다. 

일요일 아침의 초등학교 운동장은 조깅하는 아주머니들을 제외하고 한산했다. 

가끔 좀 떨어진 중, 고등학교의 운동부가 올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지우와 보육원생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넓은 운동장을 독차지하면서 공을 차고 놀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다가왔다. 

"이 더러운 고아새끼들 또 왔네! 당장 안 꺼져?" 

"여기는 우리 구역이라고 했어, 안했어!? 고아새끼들은 저기 주차장가서 공차라니까!" 

지우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악당들이 왔다. 

"우리가 먼저 왔는데 왜 우리가 먼저 자리를 비켜야 해?" 

"선생님이 우리보고 주차장에서 놀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뭐야!? 이 고아새끼들이!" 

"너는 할 줄 아는 말이 ‘고아새끼들!’ 이거밖에 없냐? 그리고 우리가 고아인데 네가 뭐 보태준거 있어?" 

앞장서서 악당들과 맞서는 지우. 

고아새끼라는 말에 상처받지 않지만 나쁜 의도로 한 말이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다. 

나쁜 말을 들었는데 화나지 않을 리가 없다. 

"고아새끼는 고아새끼답게 거지처럼 구석탱이로 가서 공이나 차라니까!" 

"고아새끼보다 축구도 못하는 게." 

"뭐야!? 이 새끼가!" 

악당들의 선두에 선, 나이답지 않게 험상궂게 생긴 녀석의 이름은 김남현으로, 지우와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는 악우다. 

항상 고아라는 말을 꺼내면서 먼저 건드리고 성질을 긁었는데, 지우의 성격도 만만치 않다보니 만나면 만날 때마다 부딪치고 싸우는 것이 일상. 

멱살을 잡은 손을 주먹으로 내리쳐서 떼어내는 지우. 

김남현은 지우를 노려보았다. 

서로 마주한 눈빛들이 초등학교 저학년답지 않게 살벌했다. 

또다시 서로 주먹질을 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통-! 통-!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가볍게 공차는 소리가 들렸다. 

지우를 비롯한 아이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커다란 키의 선글라스를 쓴 외국인이 새것처럼 보이는 축구공으로 트래핑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트래핑 기술의 난이도를 높이는 외국인. 

공을 5M 이상 띄웠다가 터치 하나로 가볍게 발 위에 안착시키는 기술들은 아이들의 눈에는 가히 마술처럼 보였다. 

입을 쩍 벌리는 아이들, 그 중에서도 지우의 두 눈은 휘둥그레 커졌다. 

마치 서커스 묘기와도 같은 기술을 관람하며 아이들은 지금이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까먹었다. 

통, 통, 통. 

마지막에 공이 등을 타고 내려와 발꿈치 뒤축 아래 부분에 빨려가듯이 들어오는 것으로 묘기가 끝났다. 

이제는 숫제 입에서 침이 떨어지는 아이들. 

"우, 우와아아! 완전 쩌...쩐다...!" 

"대박 멋지다...!" 

“말도 안 돼! 저게 가능해?” 

저마다의 표정을 지으면서 감탄하고 있는 아이들. 

그러나 아무도 먼저 다가갈 생각을 못했다. 

누가 봐도 외국인의 행색이었기 때문. 

하지만 그 외국인에게서 나오는 유창한 한국말은 간격을 깨트리기 충분했다. 

"너희들, 축구 좋아하니?" 

보육원의 아이들과 나중에 온 아이들까지. 

다 함께 어울려서 그들과 공을 차는 호날두. 

아이들은 신이 나서 그를 따라 다녔다. 

호날두가 잠깐씩 선보이는 묘기와도 같은 기술들은 외국인, 낯선 사람이라는 장벽을 뛰어넘게 만들었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놀지 말랬는데...' 라고 머뭇거리던 아이도 어느새 덤벼들어서 공을 뺏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호날두는 적당히 공을 뺏겨주기도, 또는 패스해서 골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마치... 처음 축구를 배웠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 간 것 같았다. 

30분이 지나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동장과 스탠드에 드러누운 아이들.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아저씨." 

호날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다른 아이들이 전부 공만 쫓아다니며 뛰어놀 때, 이 녀석만은 호날두의 발놀림을 유심히 살폈다. 

정지우, 이 시대의 정지우가 눈을 반짝이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묘했다. 

정말로 기분이 묘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맞죠? 영국에서 뛰는 포르투갈 선수." 

"날 아는구나." 

"선생님들 몰래 프리미어 리그를 보고 있어요. 녹화방송이지만요." 

그러고 보니 자신도 이 맘 때부터 가끔씩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보육원에서 축구 경기 보는 것을 엄청 좋아하는 형이 있었는데 같이 따라보게 되었지. 

처음 본 프리미어 리그 경기는 정말 신세계였다. 

상상도 못 해본 놀라운 발기술들과 거칠고 박진감 넘치는 몸싸움, 동네 축구와 비교가 안 되는 조직적인 플레이, 그리고 수많은 관중들이 이 경기 하나를 지켜보며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모습들까지. 

아마 그 때부터 축구 선수를 꿈꿨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은 08-09시즌부터였지만 말이다. 

"혹시 부모님 중에 한 분이 한국인이거나... 그런 거 아니시죠? 그런데 한국말 정말 잘하시네요." 

"신기하니?" 

"네. 근데 조금 발음이 어색하네요. 노력하셔야겠어요." 

"......" 

오랜 시간 한국말을 거의 쓰지 않았기에 발음이 살짝 이상하긴 했다. 

정지우가 맞나, 옛날의 자신이 저런 성격이었나... 잠깐 의구심이 들기도 한 호날두. 

하지만 호날두는 지금까지 고민해왔던 것이 너무 허망하게 지워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지금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너무나도 편하게 과거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로... 믿기지 않는 상황이다. 

"이름이 뭐니?" 

"지우에요. 정지우." 

"지우... 지우는 축구를 좋아해?" 

"네! 컴퓨터 게임이나 오락실 가는 것보다 더!" 

축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이 반짝거리는 게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정지우'였다. 

“저 애들이 너에게 하는 말을 들었어. 부모가 없다고...” 

“저는 괜찮아요. 그것밖에 놀릴 거리가 없는 한심한 놈들이니까요.” 

의젓하게 말하는 지우. 

호날두는 충동적으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와 같이 잉글랜드로 가보지 않을래?" 

정지우의 눈이 커졌다 

=== 

"첼시 보드진들 사이에서 아주 난리가 났더구나." 

한국에서 포르투갈로 돌아오자마자 조르제 멘데스가 호날두에게 한 말이었다. 

호날두는 넥타이를 풀면서 물었다. 

"제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슨 일은 네가 벌였지! 하하하! 이젠 나보다 더 밀고 당기기를 잘하는 걸?" 

“네?” 

영문을 모르는 호날두가 고개를 돌리며 여전히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제서야 그가 결백하단걸 알았는지 자기 손으로 이마를 탁 치는 멘데스였다. 

"첼시의 보드진들은 네가 포르투갈도 아닌 다른 외국으로 떠난 것이, 재계약에 대한 뜸들이기 술수인 줄 알고 밤낮으로 회의를 반복했단다. 또 나에게 '호날두가 제발 이적할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설득해주세요.' 라며 애걸복걸했었지. 주제(무리뉴)까지 나섰을 정도였다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언론들에게 이 떡밥이 넘어가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겠지. 아니었으면 첼시 전체가 발칵 뒤집혔을 테니." 

결국 자신의 행보에 대한 첼시 보드진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새삼 첼시라는 팀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는 호날두. 

“얼굴에 금칠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지금의 첼시에서 네가 빠지는 것은 복구할 수 없는 치명적인 손해로 다가올 거다. 크리스, 너는 네 가치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어.” 

“그래요?” 

“앨런 시어러를 뛰어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의 나이가 고작 21살. 득점에만 치중되는 선수도 아니고 찬스 메이킹, 드리블, 패스와 크로스, 전술이해도 등 모든 것을 다 잘하는 만능형 크랙. 이런 선수는 얼마를 부르면 살 수 있을까, 한번 상상해 본 적 있니?” 

지금의 호날두는, 회귀 전 맨유의 호날두를 넘어섰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더 발전해나갈 수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새삼...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졌다.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이적시장 매물로 나온다!’ 라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빅 클럽들이 침을 흘릴까? 내가 장담하건대 이적료 1억 유로를 달성하는 최초의 선수가 될 거야.”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니라니! 그 늙었던 지단이 7700만 유로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너는 그보다 훨씬 젊고, 유벤투스 시절 그보다 더욱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물론 유로의 가치가 그 때와 지금은 다르지만 충분히 1억 유로 그 이상의 몸값을 받아낼 수 있다. 내가 장담하지!” 

1억 유로의 가치가 있는 어마무시한 선수의 계약기간이 이제 겨우 2년밖에 안 남았다. 

호날두는 첼시 첫 시즌 겨울에 재계약한 다음, 보드진들의 간절한 요청에도 그 이후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몸이 바싹 달아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조르제의 말을 확실히 알아들었으니 더 이상 저를 비행기 태울 필요는 없어요. 이젠 듣고 있는 것이 고역이네요.“ 

“흐흐, 알았다. 어쨌든 첼시 보드진들은 세계 최고의 주급과 대우를 보장하겠다며 재계약 하자고 난리야.” 

“그래요? 그들이 어떤 조건을 제시하던 지금 저는 재계약할 생각이 없는데 말이죠." 

                                                                                                                        

무리뉴의 첼시는 잘 나가다가 결국에 파행을 맞는다. 

호날두의 기억에 따르면 아마도 그것은 다음 시즌부터. 

그리고 그 조짐은 로만과 보드진의 기행으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다음 시즌 이적 시장에서 그들의 삽질이 보인다... 그러면 호날두는 그 다음 시즌, 팀을 나가고 싶다고 이적 요청서를 던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호날두는 지금 재계약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네가 나가겠다 마음만 먹으면 전 유럽이 들썩일 거다. 딱히 생각해 둔 클럽이라도 있니?" 

"그건 그 때가서 정하도록 하죠. 지금은 첼시의 계약 제안을 차일피일 미뤄주세요. 월드컵에만 전념하고 싶네요." 

"후후, 그거야 내 전문 아니겠니." 

                                                                                                                        

생애 최초의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호날두는 이 짧은 휴가를 조금 더 즐기기로 했다.

< 동전의 뒷면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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