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전의 뒷면 - 4 >
월드컵에 출전할 국가대표팀 소집일 사이의 자투리 기간에 호날두와 그의 연인 케슬린은 잉글랜드 유명 잡지 겸 브랜드사인 ‘Top Lex'의 표지모델 촬영을 했다.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연인 관계임을 선언하자마자 이 커플은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굉장한 화제를 낳았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와 그의 아름다운 연인에 대해 올라온 기사들의 개수만 하더라도 셀 수가 없을 정도.
이 화제의 연인들을 함께 섭외하기 위해서 Top Lex에서는 거액의 돈을 쏟아 부었다.
“자, 좋습니다. 그 상태에서 턱은 조금 아래로, 시선은 여기 금빛 테두리를 봐주세요.”
찰칵, 찰칵, 찰칵!
“호날두 선수의 살짝 굳어있는데 조금 더 자연스럽게 팔을 올려 주세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찰칵, 찰칵!
“상표명이 살짝 보이지 않는데 음... 위나, 위나가 호날두 선수의 오른쪽 허벅지에 앉으면 되겠네요. 아, 부상이라고 들었는데...”
“괜찮습니다. 지금은 다 나았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위나가 호날두 선수의 허벅지에 앉고 호날두 선수는 위나의 허리에 손을 둘러주세요. 다정한 표정 지어주시고요... 웃는 표정... 좋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호날두와 케슬린은 사진작가의 요구들에 투덜거리는 것 없이 다 따라주었다.
케슬린과의 합동 촬영은 이게 처음이었지만 마치 오랜 파트너처럼 어색하거나 어긋난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촬영의 진도를 착착 진행되었다.
“포즈 취하는 것과 시선처리 같은 거, 축구 선수답지 않게 굉장히 잘하는데요? 호날두 선수는 나중에 모델을 해도 되겠어요,”
“칭찬은 고맙지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이런 촬영은 여러 번 해봤으니까요.”
시즌이 끝나면 스폰서들의 요청에 의한 광고 촬영, 화보 촬영 등을 쉬지 않고 해왔던 호날두.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상징성과 스타성은, 그에게 돈을 안겨주지 못해 안달난 기업들이 줄을 서도록 만들었다.
과거 세계 최고의 스타 선수였던 베컴을 넘어서는 날도 머지 않아보였다.
“크리스는 분명 축구 안하고 전문 모델로도 성공했을 거예요. 음... 패션 센스는 정말 꽝이지만요.”
“맞습니다. 사진작가인 제가 장담해요. 호날두 선수는 스타로서의 아우라가 있습니다. 아마 데뷔하자마자 포르투갈 탑 모델을 찍었을 걸요? 물론 전문 코디는 필수지만.”
“적당히들 해요. 재미없으니까요.”
여자들끼리 죽을 맞춰서 깔깔대며 웃었다.
호날두는 한숨을 쉬어야했다.
“자~! 잠시 쉬었다 하겠습니다~!”
촬영 감독의 말에 촬영장은 밝은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 때 호날두의 전화가 울렸다.
마이클 홀랜드, 호날두의 영화 투자 대리인이었다.
“잠시 나갔다 올게요.”
=
마이클 홀랜드는 필름 투자회사 ‘미론도’의 대표였다.
하지만 미론도의 지분 대부분은 호날두의 것.
그는 회사의 실질적 주인인 호날두를 대신해서 필름 투자회사를 경영한다.
마이클 홀랜드는 조르제 멘데스와의 인연과 추천으로, 호날두가 처음 할리우드 영화 투자에 입문 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제는 호날두와 함께 필름 투자 일을 하면서 연타 석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이었고, 호날두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 중에 한명이기도 했다.
“마이클, 이거 너무 오랜만에 전화한 것 아니에요?”
[하하하, 미안합니다. 크리스. 아시다시피 제가 많이 바쁘잖아요. 하지만 크리스도 지금 한창 여러 가지 일들로 바쁘시죠?]
“안타깝지만 그렇군요. 언제 한 번 우리 집에 오세요. 어머니께서도 마이클을 보고 싶어 하세요.”
[오! 기회가 된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꼭 크리스의 집을 방문해야겠군요. 바쁘시다니 빠르게 본론만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4분의 1분기 미론도의 투자 실적입니다.]
호날두가 지난해 하반기에 투자한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 <킹콩>, <판타스틱 4>, <나니아 연대기> 등.
이 영화들에게 했던 많은 투자는 대성공으로 마무리지어졌고 짭짤한 현금자산이 되어 호날두에게 돌아왔다.
확실히 현금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는 영화 투자만한 게 없다.
한번 투자를 하고 나면 몇 달 뒤, 적어도 2배에서 많으면 수 배, 수십 배까지 돈을 벌어다주기 때문이다.
물론 호날두의 영화 투자가 항상 성공, 백전백승인 것은 아니다.
‘정지우’의 기억은 정확한 투자 대비 흥행 실적이 아닌, 자신이 보았던 영화에 플러스 신문이나 기사에도 나올만한 유명한 영화들에게 쏠려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가 기억하는 유명 영화들이 전부 다 흥행에서 성공한 영화는 아니란 뜻이다.
미론도가 투자한 영화 중에서는 <킹덤 오브 헤븐>같은 영화도 있다.
‘정지우’가 DVD로 재밌게 잘 봤고 전문가나 관람객들의 평가도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들이었다.
오히려 이 때문에 할리우드 관계자들 입장에서 미론도는, ‘무언가의 트릭이 의심되는 회사’가 아닌 ‘억세게 운도 좋고 흥행가치 평가에 유능한 회사’가 될 수 있었다.
투자 세계에서 백전백승은 반드시 의심을 피할 수 없으니까.
이 경우에는 적당한 실패가 오히려 득이 된 경우였다.
[세금을 미론도의 작년 수익 총 결산은 1억 1천만 달러입니다. 여기에 크리스에게 돌아갈 금액은 약 9천만 달러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수익의 파이가 더욱 커지겠지요. 하하! 이 정도면 크리스는 데이비드 베컴보다 더욱 부자일겁니다.]
“베컴은 총 재산만 수억 달러라는데 아직은 그와 비교될 수는 없죠.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 앞으로도 신나게 할리우드의 돈을 벌어야죠? 마이클.”
[하하하!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할리우드 영화계가 크리스의 투자 감각에 찬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돈을 갈퀴로 쓸어 담을 일이 머지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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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투자 정산 금액과 목록은 홀랜드가 따로 보내주기로 했다.
통화를 마치고 촬영장으로 돌아온 호날두는 시끌시끌하면서 살짝 험악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제가 나갔다 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케슬린은요?”
“아! 호날두 선수! 저, 저기...”
촬영 스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케슬린과 한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이 팔짱을 끼고 서로를 노려보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호날두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슈퍼 모델인 테일러 레일리쉬.
케슬린 위나가 진저리치면서 싫어하는 라이벌이었다.
“아일랜드, 그 냄새나는 촌구석에만 처박혀 있던 촌년에 남자 하나 잘 물어가지고 잉글랜드까지 건너오고~ 우리, 위나 많이 출세했네~?”
“글쎄? 북아일랜드 사람인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걸? 얼마 전에 네오나치 기업들의 홍보대사가 됐다는 기사를 봤는데 기자들 눈에 띄면 곤란하지 않겠니?”
안 그래도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람들 간의 갈등은 유럽 내에서도 최악을 달릴 정도로 심각했다.
아일랜드 인들의 북아일랜드 인에 대한 인식은, 한국으로 생각할 것 같으면 일제(아일랜드 입장에서는 잉글랜드)에 엉겨 붙은 친일파들과 같다.
북아일랜드 인 역시 아일랜드 인을 비슷하게 혐오의 감정을 품고 있다.
그래서 양 국가의 스포츠계의 인사들이나 연예계, 정재계 인사들은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형국이다.
케슬린과 테일러도 그 중 한명이었지만 그 외에도 이 둘은 개인적인 이유로 서로를 아주아주 싫어했다.
케슬린의 촬영장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으니 이 상황에서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는 명명백백.
어쨌든 호날두는 케슬린의 연인으로서 싸움을 말려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만들 하죠? 케슬린은 이리오고.”
호날두가 나서자 차마 그에게까지 욕을 퍼 부울 수는 없는지 테일러 레일리쉬는 한발 물러서는 듯.
그러나 그냥 물러나면 그렇게 기가 기세다는 테일러가 아니다.
“호날두 선수는 조금 현명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래요? 뭐에 대해서죠?”
“나는 당신보다 케슬린 위나라는 아일랜드 년에 대해서 더 오래 알았어요. 그만큼 더 잘 알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호날두 선수와 열애설을 발표하고 위나의 몸값이 얼마나 뛰었는지 아세요?”
“이 미친 여자가...!”
케슬린이 험한 말을 내뱉는 것을 호날두는 오늘 처음 보았다.
호날두는 케슬린의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그녀를 진정시켰다.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고 있는 케슬린을 보며 웃어준 호날두는 테일러에게 말했다.
“나야말로 당신에게 충고하고 싶군요. 나는 케슬린의 연인이고 그녀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합니다. 우리의 이야기에 당신은 끼어들지 마세요.”
“내 조언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건 오히려 당신입니다, 호날두 선수. 위나의 성품은 탐욕스럽고 잔인해서 분명 당신의 재산과 명예를 노릴 거예요.”
“그것보다 테일러 레일리쉬라는 여자가 내 연인을 음해하고 매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겠군요.”
“하! 결국 당신도 똑같은 남자였군요! 하긴, 연인은 결국 끼리끼리 만나는 법이라죠? 악마의 한 쌍에게 행운을 빌어요.”
“당신이 뭐라 지껄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 귀는 가치 있는 소리만 듣기에도 벅차거든요. 한마디 경고하자면... 다시는 내 연인을 욕하거나 매도할 생각은 마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오늘 같은 행패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모델 생활을 온전히 이어가고 싶으면 말이죠.”
테일러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당신에게 그럴 능력이 있을까요? 자의식이 너무도 과하군요. 나를 적으로 만들 생각이라면 아주 훌륭한 개소리라고 하고 싶네요.”
“내 말은 진심입니다. 그리고 촬영장에 방해가 되니 이만 나가주시겠어요? Top Lex에게 고소를 당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요.”
테일러는 호날두와 케슬린을 째려보더니 이내 자신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케슬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크리스, 그녀의 애인은 북아일랜드의 젊은 상원의원이에요. 대대로 정치 집안인데다 잉글랜드에도 영향력이 꽤 있지요. 괜히 그런 식으로 척을 졌다간 좋을 게 없어요. 애들 싸움은 애들끼리 해야지 어른이 끼어들면 일이 커질 수 있잖아요.”
“걱정할 것 없어. 그들은 나와 케슬린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못할 거야. 저 정신 나간 여자가 또 다시 행패를 부리면 나에게 말해줘. 약속해 줄 수 있지?”
“...알았어요.”
“좋아! 촬영 후딱 끝내고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고. 그리고... 감독님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두꺼운 안경을 쓴 감독이 이들의 싸움을 구경하다 호날두의 말에 얼른 다가왔다.
“아, 네. 말씀해보세요. 호날두 선수.”
“이곳 촬영장은 분명 외부인들의 출입을 금지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어떻게 테일러 같은 여자가 경호원들까지 끌고 올 수 있었죠?”
“아... 저... 그, 그것이...!”
“모델들은 신변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만약 그녀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한번만 더 이런 사태를 만든다면 당신과 Top Lex에게 소송을 걸겠습니다.”
“헙! 죄, 죄송합니다!”
촬영 감독을 한심하게 쳐다본 호날두.
많은 촬영을 해온 호날두에게 저렇게 현장 장악력 없는 감독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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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데스는 현재 자신의 고객(무리뉴)과 구단(첼시), 양 측 사이에서 전화기를 든 채로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하는 중이다.
바로 화두로 떠오른 호날두의 재계약 문제 때문이다.
"주제, 우리 사이가 고객과 에이전시의 사이, 이상으로 매우 가까운 건 사실이지만 크리스도 내 중요한 고객입니다. 에이전트로서 당연히 선수의 의사와 이익에 가장 부합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그것을 존중하여 지금은 계약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나는 주제가 크리스 없이도 충분히 대단한 커리어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그 말뜻은 제가 에이전시의 이익을 위해 선수를 팔아먹고 있다는 것입니까? 발언에 조심하세요, 캐넌 단장. 우리는 에이전트입니다. 구단이나 클럽이 아닌 오로지 선수 개인과 커리어를 위해서만 일합니다. 재계약을 미루는 이유는 그것이 선수에게 더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월드컵이에요. 크리스는 이번 월드컵에서 누구보다 밝게 빛날 것입니다. 제대로 된 그의 가치 평가는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 가서 해도 늦지 않아요."
"혹시라도 계약에 관련된 일을 언론에 풀었다가는 우리의 사이는 되돌릴 수 없는 관계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요. 정말 재미없을 거예요. 언론을 통해서 선수를 압박하는 일은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라는 것만 되새겨 주십시오."
벌써부터 축구계의 슈퍼 에이전트라고 불리는 그 별명답게 멘데스는 양 쪽의 압박으로부터 아주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선수까지 보호하는 유능함을 보였다.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조르제 멘데스가 가장 중요시하는 고객이었고, 그 고객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불쾌할 수 있음에도 이렇게 엄포를 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전부 내 직통으로 돌려. 혹시라도 잉글랜드의 주요 언론이나 팬 포럼 등지에서 이상한 반응이 온다 싶으면 곧바로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보스. 포르투갈 쪽도 주시할까요?"
“으음... 거기는 일단 보류하도록 하지.”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앞으로가 더욱더 기대되는 별이다.
그런 별이 더 밝게, 화려하게 빛나도록 도와주는 일이 바로 에이전트가 해야 할 일.
그 전에 누군가 손을 대서 퇴색시키거나 망가트리려 든다면, 전력을 다해서 복수해줄 의향이 멘데스에게는 있었다.
에이전트는 단순히 돈을 쫓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자신과 선수들을 건드리면 절대 재미가 없을 거라는 것을 한번쯤은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멘데스의 행동은 과거 다른 선수들을 대상으로 거래했을 때보다 더 감정적이었다.
'아직도 나에게 이런 면이 남아 있는걸 보니... 나도 축구인이긴 한가 보군.'
단순히 이익을 쫓는 에이전트가 아닌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같은 포르투갈 사람으로서.
자신과 만나지 않았을 때의 호날두보다, 자신을 만나 잘 가꾸고 보호해줬을 때의 호날두가 선수로서 더 성공할 수 있다면.
조르제 멘데스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 호날두는 존재 자체로도 빛나는 그러한 선수였다.
언론이나 팬들, 그리고 클럽의 시달림을 받지 않고 그가 온전히 축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호날두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 나아갈 수 있도록 멘데스는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줄 것이다.
< 동전의 뒷면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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