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125)

< 2006 독일 월드컵 - 2 >

- 예선전 무패에 조별리그 전승이라... 이거 정말 기대해도 되는 거야? 그런 거지? 

                                                                                 

- 우와우! 이건 지난번(유로 2004)과 같아...! 우리 대표팀이 뭔가 일을 내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야! 

- 경기 결과도 좋았지만 내용 자체도 아주 좋았어! 우리들... 조금 높은 순위를 기대해 봐도 좋은 거지? 

 ㄴ 호날두가 자기한테 부담을 달라고 했잖아! 부담 팍팍 줄 테니 기대할게, 호날두! 

- 지나친 설레발은 금물이야! 앙골라는 피파 랭킹 57위, 이란도 23위에 불과해. 멕시코만 5위로 우리(포르투갈은 4위)와 비슷하지. 진짜 강자들과의 붙어봐야 안다고. 

 ㄴ 하긴, 결선 토너먼트는 단판이니까. 

- 피구가 은퇴하기 전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한번이라도 들어봤으면 좋겠어... 너무 불쌍해... 

- 다른 나라 대표팀이 얼마나 강한지 관심 없어! 우리에겐 크리스티안이 있다고! 크리스티안, 우리는 너만 믿을게! 

포르투갈이 대단한 성적을 거두자 그만큼 이들을 경계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 평론가들이 포르투갈을 우승 후보 중 하나로 뽑는 이유가 있었네. 예선전 경기력도 장난 아니었다는데. 

- 음... 저 녀석들은 토너먼트에서도 잘할 것 같군. 우리 프랑스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꺾어야하는 상대야. 

 ㄴ 어차피 우승은 브라질 lol! 

- 포르투갈의 극 상성 팀은 우리 독일이지! 결승에서 만나자고! >.< 

 ㄴ 하여간 무식한 독일 놈들은 꿈도 커ㅋㅋ 

- 피구니 데쿠니 해도 포르투갈에서 가장 위협적인 건 크리스티안 호날두인데 다른 팀들에게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전략이 있을까? 

- 이 놈들 아주 무서워 보여. 지난 유로를 홈 버프만으로 이긴 팀이 아닌 것 같아. 

- 에이, 거품이야, 거품! 호날두 빼고는 단 한명이라도 월드클래스 선수도 없잖아? 

포르투갈은 이제는 어느 누구라도 주목할 만한 그런 강팀으로 분류되었다. 

실제로 지단, 호나우두, 칸나바로 등 각국의 핵심 선수들은 포르투갈을 주의해야 할 팀 중에 하나로 뽑았고, 그 중에서도 크리스티안 호날두를 가장 경계한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월드컵에 나왔다하면 예선탈락, 조별리그 탈락만 하던 한심한 포르투갈은 이제 없다. 

그들은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강호 속에서도 당당히 우승 후보에 뽑힐 만한 팀이 된 것이다. 

월드컵 모든 조의 조별리그가 끝이 났다. 

아쉽게도 한국은 프랑스, 스위스, 토고가 속한 조별리그를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스위스에게 아쉽게 패한 그들은 승점 4점을 쌓고도 16강 진출을 이루지 못한 유일한 팀으로 남게 되었다. 

쓸쓸히 퇴장하는 한국 대표팀들에게 호날두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16강전 대진표 규정은 다음과 같다. 

A조 1위와 B조 2위가 맞붙고, A조 2위와 B조 1위가 맞붙는 것이다. 

그 규정에 따라서 D조 1위인 포르투갈은 C조 2위인 네덜란드와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역시 세계 최고의 무대 월드컵. 

16강부터 대진 상대가 절대 만만치 않았다. 

베슬리 스네이더, 에드윈 반 데 사르, 로빈 반 페르시, 다르크 카윗, 아르옌 로벤 등 포르투갈 대표팀 못지않은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네덜란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두 대표팀과 그들을 응원하는 각국의 국민들 모두 16강에서의 탈락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실린 2006 독일 월드컵 16강전이 시작되었다. 

[우리 포르투갈 대표팀의 포메이션은 4-2-3-1입니다. 호날두 선수가 왼쪽, 데쿠 선수가 중앙, 오른쪽에는 피구가 배치되어있네요. 이에 맞서는 네덜란드 대표팀의 포메이션은 4-3-3. 로벤과 카윗, 반 페르시의 쓰리 톱입니다. 무리뉴 감독의 4-3-3 혁명이 드디어 국가대표팀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네덜란드 대표팀 입장에서는 핵심 스트라이커인 반 니스텔로이 선수의 부상이 너무 아쉽겠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서는 그런 선수의 존재가 절실하거든요!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일이죠!]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은 지금까지 9번을 맞붙었습니다. 상대전적은 5승 3무 1패로 우리 대표팀이 우위에 있지만 지금 전력에 대한 평가는 누가 이겨도 이변이라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16강에서 만난 것이 서로에게 아쉽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이 반드시 승리하여 8강 고지를 밟을 것이라 믿습니다!] 

큰 경기에서 언제나 제 몫을 해주던 반 니스텔로이가 빠진 것은 포르투갈에겐 호재라고 할 수 있다. 

아르옌 로벤이나 반 페르시, 모두 나중에는 엄청난 선수로 성장하지만 지금은 반 니스텔로이가 훨씬 무서운 상대였다. 

삐이익-! 

휘슬소리와 함께 드디어 독일 월드컵 16강전, 네덜란드 VS 포르투갈의 경기가 시작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이번 월드컵 16강전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주목하고 있는 경기였다. 

역사상 최초의 유로 우승에 성공한 포르투갈은 피파 랭킹에서 4위로 평가 받을 정도의 강팀이 되었고 스타 군단 네덜란드는 무려 랭킹 3위였다. 

이렇게 높은 랭킹의 팀들끼리 모처럼 맞붙은 만큼 전 세계 축구팬들은 그에 걸 맞는, 수준 높은 명경기가 펼쳐지길 기대하고 있을 터다. 

하지만 이들의 경기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개싸움, 진흙탕 싸움'이었다. 

삐익! 

주심이 단호한 표정으로 옐로우 카드를 꺼냈다. 

고의로 스네이더의 진로를 방해한 것도 모자라 반 봄멜에게 거친 반칙까지 범한 마니시의 것이었다. 

그 전에 할리드 블라루즈는 호날두에게 거친 태클을 범해 옐로우 카드를 받기도 했다. 

경기 시작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양 팀 옐로우 카드는 2개씩이나 나왔다. 

벌써부터 예사로운 경기가 아니었다. 

퍼억! 

"으악!" 

“X발 새끼야!” 

"X같은 새끼가! 뭐하는 거야! 사람 담그려고 작정했어!“ 

“뭐, 어쩌라고? 미친놈이 생사람 잡고 있네!" 

삐이익! 

이번에도 포르투갈의 반칙이다. 

포르투갈의 미드필더 코스티냐가 팔꿈치로 네덜란드 선수인 필립 코퀴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면서 반칙이 선언되었다. 

피를 흘리며 끄러진 코퀴, 노기와 욕설을 감추지 않고 달려오는 네덜란드 선수들, 그걸 막아 세우는 포르투갈 선수들과 뻔뻔스런 표정의 코스티냐까지. 

경기는 중단되었다. 

심판은 당연히 옐로우 카드를 뽑아들었고 경기장에 모여든 관중들은 다 함께 야유를 보냈다. 

이 새끼들아! 여기가 격투기 훈련장이냐!? 

우리는 저질 댄스가 아닌 축구 경기가 보고 싶다! 

너희들 같은 새끼들은 축구 선수로서 자격이 없어! 

특히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중 어느 한 쪽도 응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욱 큰 목소리로 똥통 같은 경기라며 비난했다. 

이들은 멋있고 깔끔한 스포츠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지 이런 진흙탕 싸움을 보기 위해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한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이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죠?" 

"그래. 적어도 레드 카드 수집가가 각 팀에 한두 명씩 나올 것 같은데?" 

마니시가 수염 난 부위를 긁으면서 말했다. 

시작부터 이렇게 더티 플레이가 판치는 경기는 클럽에서도 본 적이 없다. 

호날두는 고국의 팬들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개싸움은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지만 이미 격해진 분위기는 그의 능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특히 너는 절대 여기에 휘둘리지 말아야 해. 너는 우리 대표팀의 핵심이야. 절대 쓸 데 없는 감정싸움에 욱해서 대응하지 마라.” 

"물론입니다. 그럴 생각도 없었어요. 음... 아무래도 제가 조금 더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오버래핑하면 그 자리를 잘 메워주세요." 

"오케이. 빨리 끝내버리자고. 국민들이 더 실망하지 않도록." 

호날두가 공략해야하는 네덜란드 우측면에는 인사이드 포워드 반 페르시, 측면 미드필더 반 보멀, 풀백 할리드 블라루즈 등이 있다. 

이미 그들과 중앙 선수들 사이의 움직임이나 팀플레이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던 포르투갈 대표팀의 전술코치들은 감독인 스콜라리에게 그것을 전해주었고 스콜라리는 터치라인의 사인으로 호날두에게 전달했다. 

비대칭 진형, 오버래핑과 드리블 자주, 압박과 커버 플레이, 그리고 프리롤. 

그것은 호날두가 따로 생각해둔, 이 경기에서 자신이 해야할 최적화 플레이와 거의 차이점이 없었다. 

‘내가 했던 노력들은 역시 허사가 아니었어.’ 

축구 지능은 종합적으로 선수의 움직임에 대한 효율성을 증가시킨다. 

이미 하드웨어적으로 대단한 경지에 올라서 그것만으로도 다 쓸고 다니는 호날두였지만, 높아진 축구에 대한 지능은 더 효과적으로 상대팀을 박살낼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들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경로와 타이밍이 지금 호날두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이쪽이에요!" 

누누 발렌트와 카르발류가 압박 수비로 카윗의 공을 끊어내기 직전, 호날두가 자신에게 공을 달라고 손을 들며 신호를 보냈다. 

공을 빼앗은 발렌트는 그런 그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지만 이내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공을 찬 발의 힘이 너무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눈이 곧바로 커졌다.  

공이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정확히 질주하는 호날두가 보였기 때문이다. 

엄청난 스피드로 수십 미터를 질주해서 멀리서부터 떨어지는 공을 받아낸 호날두. 

베르캄프를 연상케 하는 부드럽고 깔끔한 터치로 공을 왼발 옆에 안착시키는 호날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튀어나온 벼락같은 역습에 네덜란드 선수들은 분명히 흔들렸다. 

자신을 향한 압박 수비를 펼치는 그들로부터 이미 당황하는 기색을 느낄 수 있어 호날두는 속으로 웃었다. 

반 페르시와 스네이더까지 급격히 뛰어오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아웃이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턴! 와우-! 마르세유 룰렛입니다! 마치 지네딘 지단의 전성기를 보는 듯한 호날두 선수의 놀라운 개인기!] 

[블라루즈 선수와 요리스 선수가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환상적인 돌파! 이것은 기회입니다, 포르투갈!] 

중거리 슛을 쏘아낼 타이밍과 각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호날두는 슛을 쏘지 않고 한차례 접었다. 

각도는 나왔지만 이미 골키퍼 반 데 사르를 비롯한 수비수들이 빠르게 달려와서 슛이 나올만한 경로에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네덜란드 대표팀도 호날두 자신에 대한 대비를 확실히 한 모습.  

여기서 호날두는... 다시 한 번 더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다. 

볼을 잡은 호날두의 두 발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호날두 선수! 슛 쏘지 않고 한차례 접습니다! 파울레타나 데쿠 선수가 패스하나요? 아, 그대로 돌파!] 

[툭 치고 달리고...! 오 마이 갓-!!] 

뒤에서 쫓아오는 스네이더의 태클을 라 크로게타로 가볍게 피해내는 호날두. 

이어서 반 보멀과 블라루즈의 압박을 맥기디 스핀으로 벗겨낸 다음 다리를 뻗는 오이여르에게 '알까기'까지 성공시키는 호날두. 

‘이거 정말 판타스틱한데!’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넬 만큼, 이번 드리블 돌파는 환상적이었다.  

공식 경기 전체를 따져보아도 이번만큼 대단한 드리블 움직임을 해낸 것이 과연 몇이나 될까. 

와아아아아! 

오오오오-! 

그의 드리블 돌파를 지켜보는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경악과 탄성을 터트렸다. 

굉장한 속도로 뛰어 올라가서 누누 발렌트의 장거리 패스를 우아하고 품격 있는 터치로 받아낸 것과, 공을 툭툭 가볍게 차더니 전신 페인팅과 기가 막힌 개인기로 네덜란드 수비진들 단신으로 뚫어버리는 호날두. 

앞선 난투극 비슷한 양 팀의 더티 플레이에 실망하고 지루해하는 사람들은 이제 없었다. 

네덜란드 축구 팬들을 제외한 모두의 기대를 짊어진 호날두만이 그들의 시야에 가득 담기는 중이다. 

헛다리짚기로 반 데 사르를 포함한 네덜란드 수비수들의 무게 중심을 잠시 흔드는데 성공한 호날두. 

지금이 기회라고 느껴지자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슈팅을 때렸다. 

호날두의 페인팅에 잠깐 흔들린 반 데 사르는 그 반대편을 향해 날아간 공을 허망하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출렁거리는 것은 바로 네덜란드 팀의 골 네트였다. 

우와아아아아아-!! 

                                                                                                                        

[판타스틱! 판타-스틱한 원더 골!! 골을 성공시킨 선수는 바로 크리스티안 호날두! 무려 5명의 네덜란드 수비수들을 전부 뚫어버리고 환상적이고도 예술적인 골을 성공시킵니다! 으아! 중계마이크를 잡으면서 이렇게 판타스틱한 골을 정말 처음입니다!!] 

[전성기 시절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나폴리에서 이런 멋진 골을 넣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호날두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 그 마라도나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너무나도 완벽하고 소름끼치는 그런 돌파와 슈팅이었습니다!] 

[리플레이 화면이 다시 나옵니다! 와아아...! 다시 봐도 이건...! 할 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저 감탄사만 나옵니다!] 

역대급 골을 성공시킨 호날두.  

껑충껑충 뛰다가 몸을 반 바퀴 돌아 팔을 내뻗으면서 소리 지르는, 그의 전용 골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면서 이번 득점에 대한 환호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호우-! 

                                                                                                                    

그런 호날두에게 데쿠와 피구, 마니시, 카르발류 등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들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는 그들에게 무참히 깔아뭉개지는 호날두.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짜릿한 기분을 도무지 달랠 길이 없었다. 

환상적인 골은 정말 마약과도 같다! 

온 몸을 쥐어짜는 듯한 이 쾌락을 도대체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벌써부터 은퇴한 뒤를 걱정하고 있는 호날두였다. 

1:0으로 앞서가는 포르투갈 대표팀이었다.

< 2006 독일 월드컵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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