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 독일 월드컵 - 3 >
호날두의 선제골이 터지고 경기는 갈수록 거칠어졌다.
침착함을 잃은 네덜란드 대표팀은 그야말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거칠게 싸움을 걸었다.
이미 한껏 열을 받은 포르투갈 대표팀이 그에 응수하지 않을 리가 없다,
점점 경기 플레이들이 더러워졌고 그에 따라서 주심이 휘슬을 부는 횟수도 늘어만 갔다.
더티 플레이들이 집중되는 선수는 각 팀의 핵심 선수들이었는데, 당연히 호날두는 그 중에서도 가장 고된 경기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Bull Shit! 너, 방금 날린 태클! 그거 무슨 의미로 날린 거야!?"
아무리 그의 인내심 임계점이 높다 해도, 공이 아닌 발목을 정통으로 노리고 들어온 태클을 보고도 가만있을 수는 없는 지.
분명한 악의가 느껴지는 태클을 받자마자 호날두는 위협적으로 블라루즈에게 달려들어 따졌다.
하지만 블라루즈 생각보다 훨씬 뻔뻔한 선수였다.
"Fucking ass! 증거 있어? 어디서 X같은 말부터 배워가지고 !"
"어?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발목 태클 걸어 놓고 욕까지 쳐해!?"
“헐리웃 액션을 하는 너에게 욕을 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어린 애새끼가 이른 나이에 발롱도르를 쳐 받더니 자기가 왕인 줄 아나보군!”
“그래? 내가 발롱도르를 두 번 받는 동안 너는 그 나이 되도록 뭘 했지? 어디 촌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 네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는 걸?”
금방이라도 서로를 패버릴 것처럼 달려들더니 인신공격까지 하면서 서로를 헐뜯는 호날두와 블라루즈.
양 팀 선수들이 달라붙어서 둘을 애써 말렸지만 한번 불이 붙은 이들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주심이 달려와서 이 둘 사이를 떼어놓자 상황이 조금 진정되는 듯 싶었다.
주심은 거친 태클을 범한 블라루즈에게 구두 경고를 주었다.
하지만 호날두는 그 판정에 항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제 발목 쪽에 스터드(축구화 밑쪽 부분) 자국 보이시죠? 저 빌어먹을 놈이 공이 아니라 발목을 노리고 태클을 걸었다는 증거입니다. 구두 경고는 너무 봐주는 판정이에요.”
“으음.... 알겠네.”
호날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주심.
원래는 그냥 구두 경고만 주려고 했지만 호날두의 말을 듣고 블라루즈에게 판정을 번복, 옐로우 카드를 꺼냈다.
블라루즈는 전반전 8분경에 이미 옐로우 카드를 받았다.
그것 역시도 호날두에게 난폭한 태클을 날림으로써 받았던 것.
주심은 곧바로 레드 카드를 다시 꺼냄으로써 블라루즈의 퇴장을 명령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이런 경기에서 퇴장이라뇨!”
“한번만 봐 주십쇼! 아니, 태클 당한 호날두는 멀쩡하잖아요!”
“한번 내린 판정을 이렇게 바꾸는 법이 어딨습니까!?”
네덜란드 대표팀 선수들은 득달같이 달려와서 판정에 항의했다.
포르투갈 대표팀도 똑같이 더티 플레이를 일삼는데 왜 우리만 퇴장당해야 하나면서 소리 지르는 선수도 있었다.
이들이 아무리 떠들어봤자 주심의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경기가 지연될수록 손해 보는 것은 1점 뒤쳐진 네덜란드였다.
포르투갈 대표팀의 팀 닥터들은 호날두의 발목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 대표팀 동료인 메이라가 다가와서 평소 온순(?)하던 호날두가 불 같이 화를 낸 이유를 물었다.
"헤이, 크리스. 아까는 뭐 때문에 그렇게 화를 냈었던 거야? 조금만 더 심했으면 주심이 경고를 줄 뻔했다고."
"저 미친놈이 제 발목을 향해서 태클을 걸었거든요. 만약 살짝 방향을 틀지 않았으면 발목이 뒤틀렸을 거예요."
"뭐라고!? 아니, 그런 또라이 새끼가 다 있어? 그런 놈을 가만 놔뒀어? 그냥 뒤지게 패버려야지!"
"에휴, 그러면 저까지 퇴장입니다."
자기 일보다 더 분노하는 메이라.
그가 왜 이러고 있는지 호날두는 잘 알고 있다.
바로 자신이 분노 때문에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대신 화내주는 것이다.
그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사실 호날두는 그렇게 화나지 않았다.
‘내가 그때 가만있었으면 태클을 날린 그 놈은 퇴장당하지 않았겠지.’
반칙과 폭행이 반복되다보니 주심도 이제 카드 들기를 주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반 보멀이 데쿠의 옷을 붙잡고 잡아끌면서 진로를 방해했음에도 카드를 주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블라루즈는 시종일관 달라붙어서 더티 플레이를 일삼았고, 이것은 호날두에게 참 성가신 일이었다.
때마침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고 그 덕분에 확실하게 퇴장시킬 수 있었던 호날두였다.
‘이런 경기에서는 화를 낼 때도 똑똑하게 내야해.’
항상 판정에 불만을 보이거나 화를 내는 선수는, 주심도 반감을 가진다.
‘아, 얘는 판정이 옳건 그르건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억울했다고 성질만 부리는 선수구나.’ 라는 판단이 서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주심의 실수로 벌어진 옳지 못한 판정을 항의했을 때는 주심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양 팀 선수들이 거의 난투극을 벌이는 와중에도 호날두는 반칙을 하지 않았고, 파울을 당해도 화를 내거나 카드를 달라며 떼를 쓰지 않았다.
또한 늘 주심의 판정을 존중한다는 제스쳐를 보내왔다.
그런 호날두가 이번 한번 만큼은 격렬하게 화를 내고 판정에 항의를 하자 주심은 그것을 인정한 것이다.
주심도 결국 자신을 존중해주는 이에게 존중을 표하는 사람이었다.
‘쯔쯧,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네가 경기를 망쳤다, 임마.’
퇴장당한 이후에도 억울한 표정으로 씩씩거리는 블라루즈를 보면서 호날두는 고개를 설레 저었다.
네덜란드 측 플레이어가 한명 줄어들었으니 경기는 급속도로 포르투갈에게 기울 것이라 호날두는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
한 명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음에도 이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마치 격투기 경기를 보는듯한 미친 분위기는 진정되지 않았다.
이제 포르투갈 대표팀 숫적 우세와 스코어 우세를 살리면서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나가면 승리를 쉽게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전반전에서 팔꿈치를 휘두르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주심에게 이미 옐로우 카드 하나를 받은 코스티냐.
이 미드필더는 중요한 순간에 그 괄괄할 성정을 또 억제하지 못했다.
볼 경합 과정에서 어깨로 상대 선수 면상을 찍어버리는 파울을 저지르는 코스티냐.
주심은 당연히 그에게 옐로우 카드를 꺼내들었고 경고 누적 퇴장을 명령했다.
다 이긴 경기를 다시 어렵게 꼬아버리는 코스티냐였다.
코스티냐의 퇴장은 힘이 조금씩 빠지는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결과가 되었다.
경기 분위기가 반전될 상황이 보이자 스콜라리 감독은 오히려 호날두와 파울레타를 빼고 시망과 프티를 투입했다.
“수고했다, 크리스. 오늘 네가 넣은 골은 정말로 환상적이었어.”
“저... 감독님, 감독님의 지시에 반발하는 건 아닙니다만 왜 저를... 경기 상황은 아직 모르는 게 아닌가요?”
남은 시간은 추가 시간 포함해서 대략 15분 정도.
하지만 네덜란드 선수들은 계속 기회를 노리며 몰아치는 중이었는데 한 골만 터져도 경기는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빠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 자원인 자신을 교체한 것에 의문을 품는 호날두였다.
“너에게 너무 많은 반칙이 집중되고 있어.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날 것 같아서 뺐다.”
“하지만...”
“앞길 창창한 선수 인생, 큰 부상 하나 때문에 지옥으로 변하는 거, 이 세계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네가 조국을 위해서 경기를 확실히 결정짓고 싶어 하는 건 알겠지만 남은 경기가 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야.”
“후- 알겠습니다. 감독님.”
“그래. 내가 비록 이 시대 명장이라는 양반들에 비해서 부족한 감독은 맞지만, 이런 상황에서 질 정도로 허접한 감독은 아니다. 네가 없어도 지지는 않아.”
웃으면서 말하는 스콜라리 감독에게 호날두는 고개를 숙이고 교체선수들의 좌석에 앉았다.
코치들이 그런 호날두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널 교체시킨 건 우리 모두의 뜻이야. 저 놈들, 지금 제대로 열 받았는데 이러다가 정말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무슨 일 날 것 같아서 말이야. 특히 너에게 더티 플레이가 집중적으로 노출되다보니 어쩔 수 없었어.”
“플레이가 갑자기 더 거칠어진다는 느낌은 받았는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축구가 아닌 깡패 짓을 하고 있어. 뭐... 우리 팀도 마찬가지지만...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경기로 기록될 거다. 물론 네가 넣은 골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로 남을 거고.”
“네, 고맙네요.”
=
스콜라리 감독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호날두가 빠지고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마니시의 시원한 중거리 슛이 다시 한 번 네덜란드의 골문을 울리는데 성공한 것.
필드 위의 9명의 네덜란드 선수들은 너무 과하게 라인을 올렸고 그것이 결국 역습의 빌미를 제공했다.
스코어는 2:0, 남은 시간은 약 11분, 포르투갈의 승리는 거의 확정적이었다.
하지만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들의 탈락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또는 그에 대한 울분을 몸으로 푸려는 듯.
네덜란드 대표팀들의 더티 플레이와 몸싸움을 가장한 폭력은 후반 종료 시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해졌다.
당연히 그에 대응되는 포르투갈 대표팀의 플레이 역시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마찬가지.
우우우우우우-!!
짐승 같은 새끼들아! 당장 축구화 벗어!!
주심은 거의 손을 놓은 상태였다.
공만 있다 뿐이지 이것은 축구가 아닌 난투극이었다.
프리킥 찬스 때 킥을 차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다가 끝내 몸싸움까지 벌인 데쿠가 옐로우 카드 누적으로 퇴장 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빠진 티아구를 밟고 지나간 반 브롱크호르스트도 옐로우 카드 한 장을 더 받고 퇴장 당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두 선수는 모두 바르셀로나 선수였다.
결국 종료 직전 양 팀에서 또 한 명씩 나가리 되면서 경기가 끝났다.
아주 대~단한 경기였다.
정말로 역사에 남을 경기였다.
"상처뿐인 승리네. 외신들이 얼마나 까댈지 벌써부터 상상이 간다."
그래도 ‘같은 멍청이면 이긴 멍청이가 되어라.’ 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이겼으니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호날두였다.
분명 오늘 경기에 대한 어마어마한 혹평과 비판이 뒤따를 테니, 오늘 일은 그냥 다 잊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스콜라리 감독의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어쨌거나 포르투갈 대표팀은 네덜란드 대표팀을 2:0으로 꺾고 8강전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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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경기장 내에서의 경기를 위장한 난투극이 벌어지다!]
[역대 월드컵 역사상 가장 많은 카드가 나온 경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이 자랑스러운 두 나라가 월드컵의 새 역사를 쓰다!]
[천박한 축구의 본질을 보여준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승리는 그래도 포르투갈.]
[FIFA 블래터 회장, ‘오히려 이런 경기를 만든 심판에게 카드를 주어야.’ 뚱딴지 같은 소리하며 파문.]
[스포츠 정신을 망각한 축구가 얼마나 저질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경기!]
[역대 최악! 부끄러운 얼굴로 퇴장하는 선수들!]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원더 골! 하지만 그것을 퇴색하게 만든 두 나라의 승부정신.]
예상대로 월드컵이 치러지는 독일 전역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치열하고 추잡한 경기에 대한 혹평들이 줄을 이었다.
독일의 유명 축구 스포츠 매거진인 ‘키커’지에서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16강전을 '축구 스타들의 너저분한 3류 패싸움' 이라면서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이런 진흙탕 속에서도 좋은 플레이를 보여준 호날두와 마니시 같은 선수들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더럽혀진 경기 전체를 정화시킬 수 없었다.
그나마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응원단 사이에서 난투극이 벌어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듯 싶었다.
데쿠와 코스티냐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서는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승리하긴 했고 8강에 진줄 했으니, 포르투갈 대표팀의 분위기는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았다.
스콜라리 감독은 이번 사태를 선수단 기강이 무너진 것이 아닌 단순한 실수로 여겼다.
어쨌거나 핵심 선수인 데쿠가 빠졌으니 전술적인 수정은 불가피한 일이다.
“네, 지금은 아무 문제없어요. 다친 곳도 없고요. 어머니는 괜찮으시죠?”
[마리아는 괜찮다. 후우...! 어찌 그렇게 몰상식하고 폭력적인 인간들이 국가대표 선수로서 뛰고 있는 거냐!?]
호날두에게 집중적인 견제와 반칙이 집중되는 것을 본 주제 디니스는 불같이 노했고 동시에 아들인 호날두를 걱정했다.
호날두는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아버지를 진정시켰다.
[축구가 그렇게 위험한 운동인줄은 처음 알았다. 그 놈들 처벌은 어떻게 된 다더냐?]
“그건 잘... 모르겠네요. 저희 팀도 반칙을 저지른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아마 월드컵 기간이기 때문에 솜방망이 징계가 내려지지 않을까요?”
[아무튼 그런 몰상식한 놈들하고 일일이 맞붙을 필요 없다. 바로바로 심판에게 알리고 감독이나 클럽 관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라.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하는 법이야.]
“알겠습니다, 아버지.”
[바빠 보이니 이만 끊으마.]
“네. 케슬린에게도 안부전해주세요.”
케슬린은 현재 리스본에 있는 호날두의 집을 들락날락 하고 있는 중이다.
호날두와 케슬린은 이미 양가 부모님을 여러 번 만났다.
알았다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는 주제 디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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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경기, 훗날 경기가 진행된 지역 이름을 딴 ‘뉘른베르크 전투’라고 불릴 사건이, 독일 전역 그리고 해외에서도 신나게 가십거리로 씹혀질 때에도, 월드컵 경기들은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16강전에서의 치열한 승부를 뚫고 8강에 진출하게 된 여덟 팀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독일,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브라질, 프랑스.
포르투갈과 프랑스에게 밀려서 떨어진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살짝 아쉽지만, 최근에 이렇게까지 강팀들이 많이 살아남아서 각축전을 벌이는 월드컵은 없었다.
하나하나가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팀들.
올라온 8강의 명단을 보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은 이번 월드컵이 역대급 월드컵이 될 거라며 설레발을 떨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8강전 대진이 공개되었다.
포르투갈의 상대는.... 바로 잉글랜드였다.
< 2006 독일 월드컵 - 3 > 끝
ⓒ 아이시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