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125)

< 2006 독일 월드컵 - 6 >

[프랑스 국가대표팀이 전체적으로 경기장을 폭 넓게 가져가면서 경기를 주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볼 점유율이 34 대 66까지 벌어집니다. 우리 대표팀이 발 빠른 역습으로 이 흐름을 끊어야 할 텐데요.] 

[경기를 보면서 왜 지네딘 지단이 이 시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라고 불리는지 많은 분들이 다시금 알게 되리라고 봅니다. 지단이 있고 없고와 그의 컨디션이 좋고 나쁘고는 정말 공격 전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정말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 지단의 컨디션은 매우 좋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대표팀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어려운 여러 상황 속에서도 결국 승리를 거둬온 대표팀을 믿습니다.] 

2선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적절한 위치의 선수에게 패스를 뿌리거나 개인 돌파를 시도하는 등 찬스를 만드는 능력도 대단하지만, 경기의 흐름을 읽고 공격 전개의 속도나 타이밍 등을 조절하며 선수단 전체를 이끄는 조율 능력은 앞으로도 지단을 따를 선수가 없을 거다. 

그의 나이 34세로 이미 선수로서의 황혼기라 할 수 있었지만 날카로운 플레이 메이킹과 압박을 벗어던지는 탈 압박능력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X! 젠장!” 

“어어!?” 

툭, 툭! 

지단의 날카로운 패스나 드리블이 한 번씩 터질 때마다 상대하던 포르투갈의 선수진들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호날두의 시선, 수준에서도 은퇴를 앞둔 선수라 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각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번에는 창조적인 패스로 포르투갈의 수비진을 뚫고 침투하는 말루다에게 볼을 연결하는 지단. 

말루다의 슛이 살짝 빗나가면서 골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이처럼 지단으로 하여금 벌써 몇 번의 위기가 찾아왔는지 모른다. 

“저 인간, 완전히 날라 다니는데?” 

“브라질 전에서 폼이 올라왔나봐. 우리는 전술대로 할 것만 하자고” 

프랑스의 맹렬한 기세에 살짝 눌린 포르투갈. 

스콜라리 감독은 호날두를 비롯한 포르투갈 선수들에게 라인을 내린 채, 최대한 수비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역습 전개는 가능했다. 

그래서 침착하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프랑스는 지금 오버 페이스를 하고 있어. 침착하게 실점만 내주지 않는다면 주도권은 다시 넘어온다.' 

호날두는 리베리와 사뇽의 오버래핑을 적절히 막아주면서 스콜라리 감독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따랐다. 

지단은 충분히 늙었고 심지어 은퇴했다가 그것을 번복하기도 했다. 

체력이나 몸 상태가 현역 시절에 비해서 약해진 게 당연하다. 

실제로 16강전, 8강전 후반부에서는 그런 체력적인 부담을 드러내기도 했었고. 

포르투갈 선수들은 그것을 노리는 것이다. 

지단이 파탄을 드러낼 때의 타이밍을. 

팍! 팍팍! 

호날두와 리베리가 공중에서 날아오는 공을 두고 불꽃을 튀며 경합했다. 

피지컬적으로 우위에 있는 호날두가 결국 공을 따냈지만 리베리는 포기하지 않고 몸싸움을 걸었다. 

억센 몸의 부딪침과 신경전을 속에서 호날두는 뒤에 있던 코스티냐에게 패스했다. 

이후 리베리와 눈을 마주한 호날두. 

프랑스어로 뭔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올랭피크 마르세유에서 뛰고 있는 프랭크 리베리는 호날두보다 2살이 많았음에도 이제야 겨우 프랑스 대표팀에 합류했을 정도로 국가대표 경력이 짧은 선수다. 

선수로서의 재능을 늦게 개화한 편이지만. 그만큼 길게 빛나면서 앞으로 화려한 전성기를 구사하게 된다. 

전성기의 프랭크 리베리는 제 2의 피구라고 불릴 정도로 만능형 윙어였지만, 아직 잠재력이 다 개화되지 않은 이 시기의 리베리는 폭발적인 주력으로 먹고 사는 선수였다. 

'하지만 속도는 나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이번에는 리베리의 공격이다. 

비에라의 패스를 받자마자 바로 공을 몰고 달리는 리베리를 보며 스퍼트를 올리기 시작한 호날두. 

호날두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식이요법으로 선수로서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했고, 모든 훈련 중에서 체력과 각력 훈련을 가장 중요시하면서 피지컬에 신경을 썼다. 

덕분에 원래 이 시기의 호날두보다 더 빠른 주력, 더 빠른 가속도를 갖추게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호날두. 

속도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는 호날두는 이를 악물고 뛰며 끝까지 쫓아가 리베리와의 거리를 좁혀냈다. 

통! 

“어어!?” 

리베리의 뒤에서 치고 나온 호날두는 발로 공만 툭 건드리는 수비 센스로 그의 드리블을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연습 경기에서도 거의 나온 적이 없는 굉장한 수비. 

호날두가 찬 공은 포르투갈의 왼쪽 풀백인 발렌트의 발아래로 들어갔다. 

발렌트가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고 호날두는 픽 하고 웃었다. 

공을 놓친 리베리는 자신을 마치 괴물 보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호날두는 그에게도 씩 웃어주고 그라운드 중앙을 향해 천천히 뛰어갔다. 

[프랭크 리베리와의 속도 싸움에서 승리하는 호날두 선수입니다! 리베리도 속도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그런 선수이지 않습니까? 공을 몰면서 달리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정말 크리스티안 호날두 선수의 속도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군요!] 

[속도도 대단하지만 그 속도를 유지하면서 리베리의 공만 쳐내는 동작은 정말 대단한 클래스가 느껴지는 수비였습니다. 방금 리베리가 우측 깊숙이 침투하면서 지단, 말루다, 앙리까지 모두 전방으로 달려 들어왔거든요. 만약 호날두 선수가 그 공을 걷어내지 못했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을 수도 있었습니다! 호날두 선수가 그것을 품격 있는 수비로 막아냈네요!] 

[정말 이 선수를 볼 때마다 대단하고 기특하면서도 또 경이롭습니다. 충분히 세계 최고 반열에 올랐음에도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수비가담을 해주는데, 또 그 수비능력도 대단하거든요! 그를 지도하는 무리뉴 감독이 ‘호날두는 풀백으로 뛰었어도 세계 최고가 되었을 것.’ 이라며 칭찬했었는데 그게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닫습니다!] 

공을 끊은 호날두가 코스티냐에게 패스했고 코스티냐는 다시 데쿠에게, 그 데쿠가 파울레타에게 공을 전달했지만 프랑스의 수비진들에게 공을 뺏겨버렸다. 

호날두가 그렇게 고생해서 공격권을 찾아왔는데 1분도 안 되서 적에게 내주는 포르투갈 대표팀.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아무리 지단의 경기조율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아무리 프랑스 선수진들의 조직력이 단단하다 해도.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점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승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 팀에게도 적용되는 법칙이라는 것을 호날두는 잠시 망각했다. 

[카르발류 선수가 앙리의 침투를 막습니다. 태클! 공을 끊어내는데 성공...! 어!?] 

[주심의 손이 페널티 지점을 가리킵니다! 아아.... 페널티킥! 페널티킥입니다!] 

[아, 이럴 수가! 카르발류 선수가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습니다!] 

앙리의 침투를 막기 위해 카르발류는 깔끔한 태클로 앙리의 드리블을 막아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공을 따라 우측으로 움직이려는 앙리가 카르발류가 내뻗은 발에 걸려 넘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페널티 박스 안쪽에서...! 

‘너무 명백한 페널티킥이라서 항의할 생각도 안 드네.’ 

호날두처럼 생각하는 선수들이 많았는지 포르투갈 대표팀은 그저 허리에 손만 올려놓고 있었다. 

“다들 미안해...! 내가 진짜 바보 같은 짓을 해버렸어! 

“후우- 괜찮아. 히카르두.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거야.” 

피구는 이렇게 말하면서 위로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있었다. 

위험한 순간들을 대표팀 선수들이 모두 힘을 합쳐 으쌰으쌰 넘겨왔는데, 이렇게 어이없이 치명적인 실점 기회를 내준 것이 피구로써도 허탈했다. 

그 분위기 속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카르발류를 위로해주는 호날두였다. 

 프랑스 측에서 키커로 나선 이는 당연히 지단. 

지단이 찬 공은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골을 만들어냈다. 

1:0으로 뒤지기 시작하는 포르투갈. 

프랑스 응원단의 함성과 응원가에 포르투갈 응원단은 이미 잠식당했다. 

전반전이 끝난 후 라커룸 상황. 

스콜라리 감독은 모든 선수들에게 라인을 올려서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1:0으로 지나 2:0, 3:0으로 지나 패배는 같은 것. 

적어도 역전의 기회는 만들어야하지 않겠는가. 

"크리스티안! 전반전 너의 플레이는 아주 훌륭했다. 하지만 이제는 멀티 플레이어가 아닌 득점력이 중요한 순간이 되었어." 

“후반전에는 조금 더 공격적으로 득점을 노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널 믿는다. 우리는 지금껏 잘해왔어! 비록 실점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체력적으로 우리는 프랑스보다 우위에 있다. 다들 그 점을 살려서 경기에 임해주길 바란다. 이 한 번의 경기에 모든 것을 걸어라! 우리는 반드시 역전할 수 있다!” 

[측면에서 볼을 잡았습니다. 부드러운 턴으로 사뇽을 제치는 호날두! 그대로 공을 몰고 달려갑니다! 그대로 슈팅! 아쉽지만 골문을 벗어납니다. 슈팅 직전 동작에서 살짝 균형을 잃었던 호날두 선수입니다.] 

[전반전에 실점을 했기 때문인지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공격적으로 나가면서 많은 기회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역시 호날두 선수가 가장 활발하게 프랑스 수비진을 휘저으며 위협하고 있는 모습이죠?] 

[계속 두드리다보면 결국 열리게 됩니다. 호날두 선수의 공격전개가 전반전보다 더 눈에 띄고, 지금도 점점 더 좋아지고 있거든요. 우리 대표팀을 믿습니다!] 

호날두는 첼시의 무리뉴나 포르투갈 대표팀의 스콜라리를 포함한 전 세계 감독들에게 시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받았을 때,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라고 말이다. 

그 예로 수비 가담이나 크로스, 패스 플레이 위주의 제한적인 역할에서의 호날두보다, 지금의 거침없이 수비벽을 뚫어내는 지금의 호날두가 훨씬 창조적이면서 임팩트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중이다. 

하지만 후반전 45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중이었다. 

“결국 우리는 저 놈을 막아야해.” 

“수비를 단단히 해! 한순간도 방심하지 마!” 

지단을 비롯한 프랑스 선수들이 자신을 노려보면서 경계를 강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돌파가 어려워졌음에도 호날두는 웃었다. 

이들의 압박감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 들 때, 호날두는 반드시 무언가 한 방을 만들어냈다. 

남은 시간 12분. 

상체페인팅 이후의 몸싸움으로 비에라의 볼 경합에서 승리한 호날두는 클럽 팀의 동료, 마케렐레의 다리 사이에 공을 집어넣었다. 

네덜란드 전에서도 보여줬던 일명 ‘알까기’로 마케렐레를 침몰시킨 호날두. 

미드필더와 수비진 사이에 파고든 호날두는 마치 프랑스 선수들에게 고립당한 형세였다. 

                                                                                                                   

“젠장! 뭐하고 있는 거야!?” 

“태클이라도 걸라고!” 

                                                                                                                        

남은 시간 11분. 

여전히 공을 지키고 있는 호날두를 향해, 전방에서 달려오고 있는 지단과 앙리가 고함을 쳤다. 

몇 초만 지나면 이들까지 가세하며 슛을 찰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골문까지 약 15M 거리가 남아있었지만 이미 피지컬 짱짱한 프랑스 수비진들이 골대를 몸으로 틀어막고 있는 중. 

이럴 때는 정확하고 강력한 슈팅이 필요했다. 

약간의 도움닫기, 한 번의 생각, 한 번의 심호흡 끝에 밀집된 수비진들이 없는 공간을 향해. 

자신이 원하는 경로를 상상하며 슛을 갈긴 호날두. 

프랑스 수비진들의 빈틈 사이와 골키퍼 바스케츠가 막을 수 없는 위치로 쏘아져 나간 공. 

하지만 그것은 아비달의 다리에 맞고 튕겨져 나왔다. 

공의 궤적을 정확히 읽고 다리를 내민 아비달의 미친 수비, 그야말로 정신 나간 수비였다. 

포기하지 않았다. 

뛸 힘이 남아있고 공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세컨 볼을 노리며 뛰어나가는 호날두. 

몸으로 벽을 세워 자신을 막아 세우는 프랑스 수비진들과, 자신의 유니폼과 몸을 끌어당기면서 방해하는 비에라, 마케렐레를 뚫고, 끝끝내 머리를 들이민 호날두는. 

튕겨져 나온 공을 머리로 밀어 골대 안으로 집어넣는데 성공했다. 

‘무슨 미식축구도 아니고....’ 

이 생각을 마지막으로 호날두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경기 종료 10분을 남긴 상황에서 터진 동점골이었다. 

                                                                                                                        

"으아아아아아!!" 

누군가의 함성이 호날두의 귓속에 들려왔다. 

온 몸의 진이 빠져서 꼼짝도 못하던 호날두는, 그 함성소리가 촉매제가 되어 밀려오는 쾌감과 환희에 전율했다. 

해냈다.

< 2006 독일 월드컵 - 6 > 끝

ⓒ 아이시루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