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125)

< 2006 독일 월드컵 - 7 >

감정의 파동을 이기지 못해 알 수 없는 소리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과연 평생을 살아가면서 이만큼 짜릿한 골이 몇 개나 될까 생각될 정도로, 이 골은 너무나도 값졌고 환상적이었다. 

                                                                                                                      

"우리가 해냈어! 해냈다고!! 으하하하! 동점이라고!!" 

"이번에도 막내가 해내는구나!" 

“너 이 새끼! 누가 이렇게 이쁜 짓을 하래! 앙!?” 

"오, 크리스! 나는 널 너무 사랑해! 오늘만큼은 내 와이프보다도 더!" 

겨우 몸을 일으킨 호날두에게 뜨겁게 엉겨 붙는 대표팀 선수들.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된 호날두는 조금 눈물이 난 것 같기도 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의 월드컵 도전이 여기서 막을 내리나 싶었던 그 상황. 

10분을 남겨놓은 그 상황에서 터진 정말 기적과도 같은 동점골. 

반포기 상태로 무기력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포르투갈 응원단들은 골이 선언된 그 순간,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면서 포르투갈 국기를 정신없이 뒤흔들었다.  

언듯 광기까지 보일 정도의 극한의 환희. 

호날두의 골로 1:1 상황을 만들어내는 포르투갈이었다. 

[호날두! 비에라와 마케렐레를 제치고 박스 안쪽으로 진입합니다! 기회입니다! 호날두 슛! 아...! 튕겨져서... 어어어!? 꼬오오오오올올올-!!! 들어갔습니다! 헤더로 밀어 넣었습니다!! 으아아!] 

[크리스티안 호날두입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이번에도 위기에 빠진 포르투갈 대표팀을 구해냅니다! 영웅입니다! 우리 포르투갈의 영웅입니다!!] 

[이건 위기를 극복해낸 수준이 아니라 거의 낭떠러지에서 최후만을 기다리던 것을 살려낸 정도입니다!! 리플레이 화면이 나옵니다 와아~ 진짜 저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가져다 댑니다! 프랑스 수비진들의 두터운 벽을 깨트리는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믿기지 않는 골!] 

[이번 월드컵에서 4골을 기록하고 있는 크리스티안 호날두! 5골을 기록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의 거리를 1골로 줄이는데 성공합니다! 만약 결승 진출을 이뤄낸다면... 월드컵 득점왕이 정말로 가능할 것 같은 희망이 듭니다.] 

[물론입니다! 이 선수보다 더 자격 있는 선수는 없습니다! 꼭 그 목표를 달성했으면 좋겠네요! 물론 포르투갈을 우승시키면서 달성한다면 더더욱 좋겠죠!] 

1:1의 스코어에서 더는 점수가 나오지 않고 후반전이 종료되었고 짧은 휴식과 함께 연장전이 시작되었다. 

2004년에 골든골 제도가 폐지되어 이제는 누가 먼저 골을 넣건 상관없이 연장전 30분을 모두 치러야했다. 

120분 동안을 그라운드에서 뛰어다니는 것은 아무리 체력적으로 완성된 선수들이라도 벅찬 일. 

투혼을 발휘하여 젖 먹던 힘까지 끄집어내 뛰는 포르투갈 선수들. 

하지만 100분, 110분이 넘어가자, 경기 시작 전보다 한 5년은 늙은 표정들이었고 그건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허억...! 허억...!” 

“일어나세요, 마시니.” 

“그... 그래야지.. 허억! 헉!” 

한번 뛰고 나면 자빠지고 다시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연장 승부는 정신력 싸움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이것은 체력적인 한계를 넘어선 싸움. 

마찬가지로 많이 지쳤지만 그래도 자신들보다는 훨씬 나아보이는 호날두를 보면서 마니시는 혀를 내둘렀다. 

“헉, 헉. 오늘... 네가 가장 많이 뛴 거, 알아?” 

  

“체력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죠. 다들 마지막까지 힘내 봅시다. 저쪽은 더 지쳤어요.” 

[지단 선수가 나이가 있다 보니 연장전 들어서 체력적으로 벅찬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 후반 경기에 비해서 이동반경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우리 대표팀 선수들, 굉장히 힘들겠지만 조금만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피구 선수도 나이가 나이이니 많이 힘들어하는군요. 전 국민들의 바람과 염원이 담기다보니 같은 거리, 같은 시간을 뛰더라도 더 빨리 지칠 수밖에 없죠. 그런데 호날두 선수는 120분 경기에도 아직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젊음의 힘인가요?] 

[하하하, 젊음이 아니라 노력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정말 지독하게 노력하는 선수잖습니까. 자... 공을 끊어내는 호날두. 다시 전진을 시작합니다. 프랑스 선수들의 경계심이 높아집니다. 오늘 어떤 팀이 우승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MOM은 반드시 호날두 선수의 차지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좋은 활약이 저희 대표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경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반전 내내 오버페이스를 보였던 프랑스 선수들 쪽에서 먼저 파탄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프랑스 대표팀의 레몽 도메네크 감독은 가장 많은 활동량과 뛴 거리 기록을 보여준 리베리와 말루다, 앙리를 교체함으로서 전체적인 선수단의 체력적인 안배를 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대표팀 중에서는 몸이 무거워 보이는 선수들이 많았다. 

멀리서 그것을 지켜본 호날두는 프랑스 감독의 교체를 보고 쾌재를 질렀다. 

지금 프랑스 대표팀에서 가장 시급하게 교체해야 할 선수는 당연히 지단이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그의 체력이 가장 먼저 바닥을 드러냈고 그만큼 활동량과 영향력이 쭉쭉 감소하는 중이다. 

주변 동료들이 그 빈자리를 커버하는 중인데 그게 오히려 팀의 밸런스를 해치고 있었다. 

레볼뢰 군단의 핵심 선수이자 은퇴까지 번복하고 돌아온 지단이기 때문에 끝까지 뛰게 해줄 생각인가 본데... 그런 낭만 따위 호날두는 모른다. 

망가진 밸런스를 후벼 파면서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역습 한방만 제대로 터지면... 승부차기까지 가기 전에 끝낼 수 있겠는데.'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는 승부차기까지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호날두였다. 

포르투갈 대표팀보다 더욱 지쳐있는 프랑스 선수들. 

헉헉 거리면서 숨만 고르는 그들을 제치는 것은 호날두에게 쉬운 일이었다. 

리베리 자리에 들어온 시드네 고부라는 선수는 피지컬적인 약점이 있는데다 속도도 훨씬 느렸다. 

단시간에 그것을 파악한 호날두는 몸싸움을 통해 균형을 무너트리고 그 사이 공을 빼내는데 성공했다. 

교체 선수로 들어온 시망이 호날두의 패스를 받아 장렬한 홈런을 때리긴 했지만... 어쨌든 상황은 완전히 뒤집혀서 포르투갈이 연신 프랑스를 공격하는 중이다. 

데쿠의 실수로 턴 오버(공 뺏김) 위험이 생기자 바로 그 자리에 투입되어서 볼 간수를 도와준 호날두. 

데쿠는 호날두에게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오늘 프리롤을 부여받은 호날두는 정말 넓은 범위, 넓은 공간을 지배하며 공격의 활로를 열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준결승전. 

준결승전의 주인공은 피구도, 지단도 아닌 크리스티안 호날두라는 것을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종료 시간 6분전. 

호날두는 공을 몰고 가면서 빠르게 전방 선수들의 위치를 스캔했다. 

현재 수비하는 프랑스 선수들이 5명, 공격에 가담하고 있는 포르투갈 선수들이 3명. 

이들의 위치와 현재 움직이는 동선을 염두에 둔 호날두는 자신이 상상한 최적의 공격루트를 그대로 시행에 옮겼다. 

툭, 툭, 툭, 툭! 

가볍게 끊어 치는 드리블과 경합 상황에서 터지는 개인기는 가로막는 프랑스 대표팀 수비수들의 압박을 벗어던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금방 코너킥 라인까지 도달한 호날두는 다시 한 번 전방의 상황을 보고 자신의 공격루트가 아직 쓸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비에라와 루이 사아마저 크루이프 턴과 라 크로게타로 제친 호날두는, 갈라스의 밀침에 터치라인 바깥으로 밀려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채찍 같은 크로스를 쏘아 보내는데 성공했다. 

목표 대상은 바로 엘데르 포스티가! 

교체 선수로 들어온 포스티가는 호날두와 그렇게 친한 멤버는 아니었지만, 스콜라리 감독의 명령 하에 치러진 연습경기에서 함께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살려 호날두의 공을 토스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서 있었던 포스티가는, 머리로 공을 받고 바로 왼발 슛을 때렸다. 

아쉽지만 바스케스 골키퍼의 놀라운 선방에 득점은 무산되었고 공은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이 튕겨 나간 볼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루이스 피구였다. 

터치라인 아웃되려는 공을 끝까지 살린 피구는 그대로 슛을 때렸다. 

마치 뱀처럼 경로가 확 휘어지면서 날아간 공은 그대로 골라인을 넘어서고야 말았다. 

골...! 

프랑스 선수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이 현실인지 아닌지 인지하지 못해 그저 눈만 끔뻑였고 피구는 잔디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얼굴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달리는 중이었다. 

경기 종료 5분을 남긴 상황에서, 마지막 골로 2:1 스코어를 만들어낸, 포르투갈의 기적 같은 역전이었다. 

오늘 경기 그 어떤 때보다도 힘차게 포르투갈 국기를 흔들면서 경기장을 떠나가라 응원가를 높이고 있는 포르투갈 응원단. 

그들에게 달려가는 피구는 같이 얼싸안고 서로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쏟아냈다. 

추레하고 추레한 몰골임에도 아무도 비웃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 장면이 내일 독일 스포츠 매거진의 1면을 장식하게 된다. 

“하하... 네가 다했는데 스포트라이트는 캡틴이 다 받는구나.” 

“울면서 웃지나 마요.” 

괴기한 몰골은 데쿠도 못지않았다. 

분명 얼굴은 웃는 얼굴인데 두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들을 응원해 준, 조국의 국민들 역시 다르지 않으리라.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태도에 실망했다. 내가 확실히 장담컨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 빌 샹클리 

호날두는 오늘따라 왠지 그 명언이 떠올랐다.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저렇게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만드는 스포츠, 축구. 

호날두는 축구를 한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다. 

2006 독일 월드컵 준결승전 

프랑스 1 VS 2 포르투갈. 

2006년 7월 5일, 포르투갈 대표팀은 사상 첫 월드컵 결승전 진출을 이뤄냈다. 

=== 

[2006 독일 월드컵의 종착역은 '골든 제네레이션 VS 아주리 군단'] 

다사다난했던 월드컵이 종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월드컵의 꽃이자 마지막 전쟁,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승자를 가리는 결승전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세계 유수의 강팀들, 그런 강팀들을 모두 뚫고 올라간 단 두 개의 기사단만이 맞붙을 수 있는 이 전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명경기와 이변을 만들어냈다. 

2006년, 신으로부터 선택받아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꺾으며 끝끝내 살아남은 두 팀은 바로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다시 한 번 독일에게 자신이 천적관계임을 밝히며, 독일의 심장에서 그들을 쓰러트리고 먼저 결승전에 진출했다. 

더블 볼란치 전술과 카테나치오의 조합은 엄청난 화력을 보이는 독일의 득점포들을 완벽하게 침묵시키는데 성공했고 이것은 이탈리아가 얼마나 위대한 팀인지를 말해준다. 

지단의 그림자에 가려져 늘 2인자 취급을 받았던 피구는 이번 월드컵에서만큼은 지단을 뛰어넘었다. 

호날두 등의 도움을 받아 연장 후반에 넣은 기적과도 같은 결승골은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값진 골로 기억될 것이다. 

이탈리아가 적을 숨 막히게 몰아붙이는 ‘군단’이라면 포르투갈은 무수한 스토리와 감동이 있는 ‘모험대’라는 모 언론사의 평가가 떠오르는 경기들이었다.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의 대결에 대한 평론가들이나 언론사들의 예측은 50 대 50으로 굉장히 첨예하다. 

이탈리아는 카테나치오가 어떻게 조직되는지, 핵심 선수들의 당일 컨디션이 어떨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반면 포르투갈은 무엇보다도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활약이 중요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4골 3어시를 기록 중인 호날두는 이미 월드컵 MVP는 따 논 당상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팀을 위기 때마다 구원한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포르투갈의 영웅이다. 

네덜란드, 잉글랜드, 프랑스 같은 강팀들을 모두 깨트리는데 성공한 호날두가 과연 역대 가장 완벽한 카테나치오를 구사한다는 이탈리아를 어떻게 상대할지가 무척이나 주목된다. 

이탈리아는 지금까지 총 3번의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 월드컵의 명가, 하지만 포르투갈은 이번이 첫 월드컵 결승 진출이다. 

과연 이 전쟁의 끝에서, 마지막에 웃게 되는 쪽은 어느 팀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포르투갈 대표팀 숙소의 분위기는 아주 고요했다. 

선수들의 말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축구 선수로서 가장 영예롭고 가장 위대하면서 가장 값진 자리. 

바로 월드컵 결승전. 

그것이 주는 압박감과 부담감은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있는 포르투갈 선수들조차도 짓눌러버릴 정도로 무거웠다. 

그리고 그것은 호날두 역시 마찬가지다. 

"후....월드컵 결승전은 정말 차원이 다르구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유럽 선수권 대회 결승전을 모두 겪어본 호날두지만 지금은 정말 달랐다. 

멘탈만큼은 튼튼하다 자부했지만 월드컵 결승전으로부터 오는 압박감과 부담감은 그런 호날두조차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미 지난 월드컵인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했던 경력이 있는 스콜라리 감독은, 남은 시간동안 선수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휴식할 것을 지시했다. 

다른 선수들은 각자 취미 생활이나 가족과의 통화 등을 하면서 긴장을 푸는 중이었고, 피구는 절친한 동료인 베컴, 지단 등에게 ‘자신들을 이겼으니 반드시 우승해라!’ 라는 독려를 받았다고 한다. 

호날두는 이탈리아의 경기들을 돌려보면서 이들의 전술에 대한 분석이나 공략법을 찾는 훈련을 하는 중인데 마음이 심란하여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 ’정지우‘가 짬뽕된 호날두가 아닌 진짜 호날두가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보고 나니 궁금했다. 

과연 그의 우상이 이 자리에, 21살의 앳된 모습으로 결승전에 출전한다면 어떤 경기를 보여줄까? 

잘할까? 못할까? 

“에휴~ 씨. 진짜 별 생각을 다하네.” 

                                                                                                                        

머리도 안 돌아가고 쓸데없는 생각만 나는데, 그냥 호텔 침대에 누워서 시간이나 보내기로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신인을 확인한 호날두는 서둘러 그것을 받았다. 

                                                                                                                      

                                                                                                                        

[호날두 선수...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국제전화가 가능한 이 핸드폰은, 호날두가 어린 지우에게 준 것이었다.

< 2006 독일 월드컵 -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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