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 독일 월드컵 - 8 >
"통화? 당연히 가능하지! 내 제안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보았니?"
[...호날두 선수가 가신 후에 많이 고민했어요. 제가 그만큼 재능이 있나 하고... 보육원의 선생님들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그 정도는 괜찮죠?]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기에는 지우의 앞날에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잖아. 지우의 미래가 달린 일인데 당연히 괜찮지."
호날두는 정지우에게 같이 잉글랜드로 가지 않겠냐면서 제안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정지우에게 더 넓은 세상과 선진화된 클럽 시스템, 더 훌륭한 선수들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굳이 자신이 터치하지 않아도 정지우는 축구 선수로서의 삶을 살게 될 거고 분명 유럽으로 오게 될 것이다.(성남FC에서 뛰던 21살의 정지우는 많은 유럽 클럽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호날두는 그를 더 잘, 빨리 이끌어주고 싶었다.
조금만 더 좋은 시스템에서, 더 좋은 지원을 받으면서 축구를 할 수 있었다면, 분명히 더 나은 선수가 되지 않을까 라는 마음에서였다.
[보육원의 선생님들은 전부 의심하시더라고요. 납치나 인신매매가 아니냐고요... 그래서 제가 부모도 없는 아이를 납치해서 어디다 쓰겠냐고 말했어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선수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하하하! 내가 직접 보육원에 가서 선생님들을 설득할 걸 그랬네."
호날두는 지우와 같이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지우에게 주었다.
지우는 그것을 보육원 선생님들에게 보여준 모양이다.
호날두는 일단 지우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월드컵이 끝난 다음 그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계획이었다.
어쨌거나 이것은 보육원 선생님들에게는 오해받을 행동이 분명했다.
[보육원의 형동생들과 모두 친해요. 전부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어서 솔직히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보다 더 축구를 잘하고 싶어요. 호날두 선수처럼 되고 싶어요.]
[아직 어리지만 제 가슴이 이건 기회라고 말하네요. 저를 데려가 주세요. 나중에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요.]
호날두는 절대 그 선택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곧 사람을 보내마. 그리고 너는 나에게 은혜 갚을 필요가 전혀 없어! 월드컵 결승전에 내가 나오는 거 알고 있지?"
[당연히 알죠! 호날두 선수는 포르투갈 에이스잖아요. 반드시 우승컵을 들어올리길 기도하고 있어요.]
"정 은혜를 갚고 싶으면 이번 월드컵 결승전에서 나를 열심히 응원해줘. 그리고 내가 경기하는 모습을 두 눈 크게 뜨고 보도록 해. 너는 그런 선수를 후견인으로 둔 아이가 되는 거야. 가슴 피고 언제나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렴.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와 같은 무대에서 뛰었으면 좋겠다."
[...제,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화들짝 놀라는 지우에게 호날두는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이야. 넌 내가 직접 뽑은 재능이야, 지우. 나한테 선택받았다는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아니?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서 넌 인정받은 거다. 너 자신을 믿어! 우리는 반드시 한 무대에서 뛸 수 있을 거야.”
[네! 반드시 그럴게요! 진짜 죽을 만큼 노력해서... 꼭 호날두 선수와 같이 뛰겠습니다!]
"하하, 죽을 만큼은 하지 말고. 그리고 이제는 크리스라고 불어줘, 지우."
정지우와의 통화는 월드컵의 압박감에 잠시 움츠려있던 호날두에게 밝은 웃음과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내 결승전 플레이를 직접 봐라!' 라는 허세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호날두는 자신을 두르고 있었던 무거운 짐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결승전.
지금 이 순간, 왠지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지우야, 고맙다."
[네?]
"네 덕분에 나는 결승전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은 느낌이야."
[그게 무슨...... 정말요?]
"그래! 한국 시간으로는 늦은 밤이겠지만 경기 꼭 보렴. 반드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너에게 구경시켜 줄게."
지우에게 내뱉는 말이, 힘이 되어 돌아온다.
호날두는 그제서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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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의 축구쇼! FIFA 2006 독일 월드컵, 그 대망의 결승전의 막이 올랐습니다! 지난 7월 5일 우리 포르투갈 대표팀은 조국을 최초의 월드컵 결승전에 올려다 놓았습니다. 그 기대감 때문인지 포르투갈 국민 여러분 대다수가 어제부터 잠을 못 이뤘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무려 월드컵 결승전입니다! 유럽 선수권 대회 때도 정말 굉장했는데 월드컵이라면 더 말할 것 없습니다. 당장 저희부터가 두 손을 모으면서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월드컵 결승전의 시청자 숫자는 무려 수억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결승전의 승자를 지켜볼 것입니다. 이 위대한 대회에서 포르투갈 국기가 마지막까지 흔들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UEFA 챔피언스 리그의 규모나 인기는 축구의 상업화의 바람을 타고 점점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월드컵과는 게임 자체가 안 된다.
미식축구의 슈퍼 볼, 유럽 선수권 대회, 동하계 올림픽, 월드 시리즈 등등...
수많은 스포츠 대회가 있지만 파급력과 인기 면에서 단연 1위, 압도적인 1위는 바로 월드컵이다.
이러한 인기만큼 권위 역시 스포츠의 모든 대회 중에서 가장 높고 위대하다.
전 세계 무수히 많은 축구 선수들이 있지만 누구나, 단 한 번만이라도, 뛰어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꿈의 무대.
가장 영예롭고 가장 빛나는 무대에 오른 포르투갈 선수들.
우승 트로피를 놓고 마지막 단판 승부를 펼칠 전사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드러난다.
그라운드에 밟자마자 어마어마한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수많은 경기와 대회에서 뛰며 큰 무대에 내성이 생긴 선수들조차도 손을 떨고 발을 절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실력 발휘를 못하여 트로피를 놓친다면... 그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 일이다.
“아악! 누누! 너무 손을 꽉 잡았다고!”
“미... 미안!”
남자들끼리 손잡는 것은 이들이 평소 질색하는 행위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터프한 코스티냐와 마니시까지 땀이 날만큼 동료 선수들의 손을 꼭 잡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펄럭이는 포르투갈 국기가 보인다.
호날두는 그 국기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스콜라리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전술적 지시사항들을 통지 받은 포르투갈 선수들.
그러나 몇몇은 목각인형을 보는 것처럼 여전히 딱딱한 모습이었다.
보다 못한 호날두가 직접 나서서 핀잔을 준다.
"나, 참! 왜 다들 이렇게 굳어있어요? 다리에 힘 빼시고! 당당하게 허리도 피시고! 누가 보면 결승전에서 박살나고 꼬리 만 선수들인 줄 알겠네."
“야야!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 부정 탄다고!”
“그런 미신은 안 믿어요. 결과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이 두 개의 다리입니다. 언제나 그래왔고 지금도 그럴 겁니다.”
자신의 다리를 통통 치면서 말하는 호날두에게 동료 선수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강철 멘탈이네, 강철 멘탈이야..... 크리스, 너는 이 무대가 긴장도 안 되나봐?"
"긴장할게 뭐 있어요? 외계인들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필드에서 뛰기 시작하면 똑같은 한 경기잖아요.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오히려 더 힘이 날 것 같은데요?"
지우와의 통화가 없었더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테지만, 지금은 정말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자신을 발견했다.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날에 패배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호날두가 앞장서서 이렇게 자신감을 표하자 포르투갈 동료 선수들도 하나, 둘 조금씩 긴장을 풀면서 나은 얼굴을 띄어보인다.
자기가 조금 실수해도 컨디션 좋아 보이는 호날두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선수들 사이에서 솟아났기 때문이다.
에이스 선수의 발언은 이렇게 팀 전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막내가 잘 말해줬다. 이 자식들아, 사내놈들이 왜 이렇게 떨어? 이건 단지 하나의 경기일 뿐이야."
"캡틴. 손이 떨리는데요?"
"흠흠... 어쨌든 막내가 이렇게 쌩쌩한데 베테랑인 우리들이 쫄아서 이러고 있으면 되겠냐? 다들 힘 좀 팍팍 내보라고!“
“”“넵!”“”
“우리는 4년 전에 이미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최고의 감독 밑에서 이기는 방법을 모두 배웠다. 지난 훈련들을 기억해! 90분 후,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될 테니까!”
카리스마와 권위로 찍어 누르는 성향의 주장도 있지만 피구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대표팀 선수들 두루두루와 친하고 그들의 이야기와 고충을 들어주면서 팀의 화합을 도모한다.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거나 자신이 망가지는 일도 서슴없이 한다.
이런 피구의 리더쉽은 대표팀 선수들을 편하게 만들고 긴장을 풀어주며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벌써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들은 그런 분위기에 녹아, 단단했던 긴장의 끈을 풀고 있었다.
‘이 멤버가 더 오래 지속됐으면 좋았을 텐데.’
클럽에서의 경기 때문에 대표팀 합류를 조금 늦었던 것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죽과 합이 잘 맞는 조합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호날두는 이들 사이에서 ‘골든 제너레이션’이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건너편에 이탈리아 선수들의 모습이 보인다.
잔루이지 부폰, 파비오 칸나바로, 젠나로 가투소, 안드레아 피를로, 프란체스코 토티,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 잔루카 참브로타, 마르코 마테라치, 루카 토니 등.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멤버들.
이탈리아가 축구의 신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고서는 정말 이런 완벽한 멤버가 나올 수가 없다.
원 역사대로라면 이들이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하지만 그것이 그대로 흘러가게 호날두가 내버려둘 리가.
이미 프랑스를 꺾고 조국을 결승전에 올려놓은 호날두는 마지막 ‘점’을 찍을 생각이다.
'지금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하여.'
너무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케슬린, 지우, 지인들, 그리고 팬들까지.
가슴 떨리는 심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삐이이익-!
호날두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
포르투갈의 포메이션은 지난 경기들과 다르지 않은 4-2-3-1.
반면 이탈리아의 포메이션은 독일의 강력한 주포를 잠재워버린 바로 그 4-4-1-1의 더블 볼란치 전술이다.
중앙에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피를로, 가투소)을 두는 전술에서, 이 두 미드필더의 조합은 정말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라 할 수 있다.
가투소가 들소처럼 싸움을 걸고 볼을 쓸어 담으면 피를로가 그것을 받아 볼 배급, 플레이 메이킹을 담당하는 그런 철저한 분업화 구조.
이것은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AC 밀란의 전술을 유심히 살펴서 이탈리아 대표팀에 맞도록 새롭게 재탄생시킨 결과물이었다.
스콜라리 감독은 이 전술을 공략하기 위해 이번에도 호날두에게 프리롤 역할을 주었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데쿠가 피를로-가투소 조합에 고립되는 것이 대표팀의 공격진들에게 가장 끔찍한 상황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의치 않으면 호날두를 2.5선까지 내려오도록 지시했다.
4-2-3-1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4-3-3처럼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툭, 툭!
와아아아아!
피지컬과 축구 지능이 뛰어난 호날두의 가세로 가투소-피를로라는 역대급 콤비를 상대로 밀리지 않고 볼을 따낼 수 있었던 데쿠.
스콜라리 감독의 변형 4-2-3-1 포메이션은 금방 효과를 발휘했지만 상대 역시 세계적인 명장으로 손꼽히는 마르첼로 리피다.
퍼억!
“크윽...!”
공을 몰고 가다가 가투소의 어깨에 부딪친 데쿠가 쓰러졌다.
포르투갈 선수들은 손을 들며 파울이라고 항의했지만 공을 먼저 따낸 다음, 가속도를 이기지 못해 덮쳐진 모양새였기 때문에 주심은 고개를 저었다.
가투소는 싸움소라는 별명답게 과감한 돌진과 몸싸움으로 적극적으로 데쿠를 괴롭혔다.
대응하는 스콜라리에게 새롭게 내놓은 마르첼로 리피의 전술은 바로 이것이었다.
“2대1 패스가 이러면 힘들어지는데....”
데쿠가 자신에게 패스하기도 전에 볼이 끊기자 호날두는 머리를 긁적였댜.
가투소를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중앙 미드필로 한 칸 전진시킨 리피 감독은 상대적으로 피지컬이 부족한 데쿠를 전담마크하다시피 붙여놓고 끊임없이 괴롭히라고 지시했다.
그 뒤를 피를로가 받치면서 볼 배급, 스루 패스 차단 역할을 맡았다.
데쿠를 붙잡음으로서 오히려 호날두를 고립시키려는 작전.
호날두가 중앙에서 벌어지는 점유율 싸움을 돕고 싶어도, 카모라네시와 토티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상 가담한다면 오히려 왼쪽이 털릴 것이다.
차근차근 스콜라리 감독의 전술을 파훼하면서 포르투갈의 목을 조르는 리피 감독.
이처럼 감독의 전술적인 역량도 이탈리아가 위인데 미드필더 선수들의 역량도 역시 이탈리아가 위다.
마니시와 코스티나가 열심히 압박을 했지만 이미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의 점유율은 65 대 35까지 벌어졌다.
"진정하고 집중력을 잃지 마라! 다 예상한 상황이잖아!"
바람이 불 때는 잠시 몸을 눕히는 법.
이미 프랑스전에서 그것을 철저하게 습득한 포르투갈 선수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의 가장 강력한 공격 수단은 바로 빠른 윙어들을 이용한 역습과 스위칭 플레이.
피구의 말처럼 잠시 말려도 일단 수비 라인을 탄탄히 하면서 팀의 장기를 살리면 되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스콜라리 감독은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는 롱 패스를 지시했다.
수비라인을 내린 상태에서 높게 찔러주는 롱 패스, 그리고 자신에게 전진을 지시하는 스콜라리 감독.
이와 비슷한 과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스콜라리 감독은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호날두를 역시 ‘공격’에 써먹어야 한다는 것을.
< 2006 독일 월드컵 - 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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