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 독일 월드컵 - 11 >
그 짧은 시간, 호날두는 시간이 무척이나 느리게 흘러가는 감각을 느꼈다.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달려오는 칸나바로와 마테라치, 잠브로타, 가투소.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는 잔루이지 부폰까지.
느리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도 부폰은 천천히 호날두의 공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정말 대단한 선수다.
‘부폰, 전성기의 당신에게서 두 골이나 뽑아낸 것은 정말 커다란 영광입니다.’
튕겨져 나온 공을 부폰이 죽었다 깨어나도 막을 수 없는 방향으로 강하게 차 넣었다.
골대 안에 정확하게 공이 들어찼다.
골, 골이었다.
골이 선언되자마자 호날두는 달렸다.
미친 듯이 달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바로 포르투갈 원정 팬들이 다함께 응원하고 있는 좌석이었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포르투갈 응원단에게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파동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호날두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오만가지의 얼굴 표정들과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흘러내리는 눈물, 그리고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그들의 몸짓과 행동을 보고.
호날두는 거대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에 동화되는 자신을 느꼈다.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된 호날두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흘러내렸다.
=
역전골까지 먹히자 이탈리아는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마테라치였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던 마테라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호날두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무리한 플레이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월드컵 우승이 꿈이 추락하는 것은 33살이나 먹은 베테랑 수비수인 그 조차도 초조해지도록 만든 것이다.
‘초조한 사냥꾼은 단 한 번도 사냥을 성공할 수 없지.’
마테라치가 흔들리는 것을 확인한 호날두는 복수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쫓는 것에 실패하여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그에게 다가간 호날두.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내 마크맨이 누군지는 몰라도 두 번이나 골대를 내줘버렸네. 마크맨 실격이야.”
“너... 이 빌어먹을 개 같은 새끼....!”
“말조심해, 쓰레기 같은 새끼야. 이 사단이 누구 때문에 났는데? 이번에 이탈리아가 우승하지 못하는 건, 바로 변변찮은 실력도 없이 더티 플레이만 일삼는 삼류 선수를 대표팀으로 뽑았기 때문이야. 바로 너 같은.”
이 정도만 도발하고 다시 공을 향해 뛰어가려는 호날두는 갑자기 등 뒤에서 뭔가 싸함이 느껴져서 바로 몸을 틀었다.
무릎을 날리는 마테라치가 보였다.
“이 미친 새끼!”
마테라치가 자신에게 무려 플라잉 니킥을 갈기려 했던 것이다.
바로 경기 중에 말이다!
삐이익!
이성을 잃은 마테라치의 난동을 주심이 보지 못했을 리 없다.
바로 레드 카드를 꺼내들면서 퇴장을 명령했다.
이탈리아 선수들이 분개하여 항의했지만 들어줄 턱이 없다.
그라운드에서 킥복싱을 구사한 마테라치에게는 이후에도 큰 징계가 떨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너, 이 X같은 새끼! 마르코에게 방금 뭐라고 했어!?”
“이 손 놓지? 너도 꼴사납게 퇴장당하고 싶어?”
“네놈의 수많은 팬들이 네 인성이 이렇게 개차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딴 식으로 살지 마라. 다리몽둥이 박살나고 싶지 않으면!”
“아직도 경기 안 풀리면 화부터 내는 그 천박한 버릇, 안 고쳤네. 그래서 네가 우승을 못하는 거야.”
자신의 멱살을 잡는 가투소의 손을 주먹으로 강하게 내려친 호날두.
이 둘이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대립하자, 주심이 두 사람 모두에게 구두 경고를 주면서 떼어놓았다.
가투소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라운드를 발로 퍽퍽 차는 중이었다.
“너희가 거의 이긴 경기잖아. 굳이 그렇게 트래쉬 토크까지 하면서 마르코를 도발했어야 했나?”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장인 칸나바로가 야속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호날두는 한번 입 꼬리를 말아 웃어준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왜 그가 저희 팀에게 더러운 도발을 할 때는 말리지 않았습니까?”
“그건...!”
“몰랐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마세요. 당신도 그렇듯 결국 사람들은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는 법이잖아요. 그에게 인성부터 뜯어고치라고 전해주세요. 12살이나 어린 선수의 도발에 눈이나 뒤집히고, 그 무슨 짓입니까?”
칸나바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것이다.
“크리스!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괜찮아요, 히카르두.”
“진짜 저놈은 정신병이 있는 게 분명해. 이 와중에 나가지도 않고 주심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 봐.”
“이럴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우리죠. 가만히 있자고요. 알아서 자멸하게.”
“....와, .너 좀 무섭다?”
“플라잉 니킥 맞아볼래요?”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도 호날두는 전광판의 시간이 85분을 가리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반칙당하기 전이 83분이니까 벌써 2분이나 끌었다.
“다들 집중해라! 한 놈이 빠졌어도 아주리는 아주리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역전골 내주면 정말 가만 안둘 거야!”
피구의 말이 맞았다.
상대가 10명으로 뛰든 9명으로 뛰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승리한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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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는. 경기 종료 때까지 뒤집어지지 않았다.
경기 끝나기 직전까지는 그렇게 냉철하면서 약한 모습 따위 보이지 않았던 캡틴 피구.
그렇지만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리자마자 가장 먼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선수는 바로 루이스 피구였다.
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포르투갈의 캡틴은 마치 어린 아이처럼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것은 정말 호날두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파울레타, 히카르두, 페레이라, 누누 발렌트, 마니시, 데쿠, 시망, 프티, 코스티냐 등등
포르투에서 그리고 첼시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들 때도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고 희희낙락했던 카르발류는, 이번만큼은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환희의 눈물을 흘리는 중이다.
오직 울지 않는 포르투갈 선수는 호날두 뿐이었다.
[장합니다... 너무도 장합니다...! 우리 대표팀...! 크리스티안 호날두 선수... 이 선수가 해낼 줄 알았습니다! 저는 이 선수가 에우제비오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거든요....!]
[저희가 살면서 이런 날이 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우승했습니다! 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포르투갈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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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FIFA 월드컵 최종 우승팀은...! 포르투갈입니다-!!]
우와아아아아-!!
오늘 결승전을 지켜본 포르투갈 응원단들은 선수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했다.
그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과 환호 소리가 이곳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을 가득 적시는 가운데, 아직도 눈물기가 가시지 않은 표정의 피구가 대표팀의 대표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서 뛰면서 영광의 날을 자축했다.
더 이상의 말과 표현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늘은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쁘고 가장 거룩한 날이다.
하늘에서 포르투갈의 우승을 축하하는 금박지들이 쏟아져 내렸고, 동시에 터져나가는 여러 개의 폭죽들이 어두워진 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감격스러웠다.
'정지우'가 우상의 몸에 들어간 이후, 오늘만큼 북받쳐오는 행복과 환희를 껴안은 날은 없었다.
단언컨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크리스티안, 여기... 네 차례야."
"아니, 저는..."
"누가 뭐래도 오늘의 영웅, 아니 이번 월드컵의 영웅은 너야 크리스. 나는 네가 캡틴 다음으로 이 트로피를 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대표팀 부주장, 파울레타의 강권에 결국 호날두는 두 번째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
피구에게 미안하게도,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크고 높은 함성이 울려퍼졌다.
그 목소리에 주인공으로는 포르투갈 응원단들과 독일의 관중들도 있었으며 잉글랜드의 원정 관중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대표팀을 멋지게 격파한 호날두의 포르투갈에게 경의를 표하는 잉글랜드 관중들이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첼시 팬들이 상당수였다.
이 월드컵의 영웅이 누구인지, 주인공이 누구인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호날두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2골을 넣었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호날두 인생을 송두리 채 바꿔버릴 수 있을만한 대 사건이 분명했다.
앞으로 그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테지만... 오늘과 같은 달은 두 번 다시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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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해보지 못했던 나라.
아니 우승은커녕 50년 전 에우제비오의 활약으로 기적적으로 올라간 4강이 최고 성적인데다가 월드컵 본선 진출 횟수도 고작 3번이 전부인 나라.
유로에서 정말 극적인, 첫 번째 국가대항전 우승을 이뤄냈지만 그건 개최국의 여러 버프가 포함된 것이었다.
포르투갈을 다크호스로 생각하면서도 브라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잉글랜드 등에 비해서 쳐지게 평가한 것은 바로 위와 같은 기록들 때문이었다.
그런 포르투갈이 유럽의 강호들을 모두 뚫고 올라가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전 세계의 국민들이 여기에 박수를 아낌없이 쳐주었다.
축구팬이 아닌 사람들도 언더독의 승리, 이들의 첫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고 주목했다.
당연히 포르투갈 현지는 발칵 뒤집혔다.
".....여기가 내가 알던 그곳이... 맞나?"
리스본 공항에 도착한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공항은 물론이거니와 그 주변 거리와 상가, 대로변에 잔뜩 밀집한 사람들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백의 공간을 조금도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
빽빽하게 공간을 메운 인해(人海)의 구성원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Nosso Grande Os Navegadores(우리들의 위대한 항해사)! Um Tributo Ao Grande Navegador(위대한 항해사에게 경의를)!!]
대항해시대.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빛났던 시기.
그 시기에서 따온 Os Navegadores(항해사)는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의 국가대표팀인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칭이 되었다.
2006 독일 월드컵은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더없이 큰 선물, 아니 구원이자 축복이었다.
1000만 국민이 가슴 졸여가면서 그들의 경기를 보았고 16강, 8강, 4강... 단계별로 올라갈 때마다 기적을 염원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결승전, 우승.....
가장 거룩하고 성스러운 기적을 선사해준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포르투갈 국민들의 감정은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할 것이다.
이들에 대한 존경, 애정, 경외, 사랑은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영원할 것이다.
"내 평생...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선수로써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피구.
그러나 요즘은 참 눈물이 많아졌다.
포르투갈의 홈 유니폼 색인 붉은색으로 물든 물결들이 넘실거리는 광경을 보며 피구는 또 다시 눈물을 적셨다.
터미널에 들어서는 선수들에게 어마어마한 카메라 플래쉬 세례가 작렬했다.
타임지, BBC, 뉴욕포스트, 키커, 스카이스포츠 등등 전 세계의 이름 있는 모든 스포츠 언론지가 집결한 것 같았다.
떡대 좋은 경호원들이 온 몸으로 가로막고 있음에도 그걸 뚫어내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미는 이들도 보였다.
"이번 월드컵 대이변의 주인공이 된 소감을......"
"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은 호날두 선수......."
"피구 선수는 국가대표 은퇴 마지막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결승전 두 골로 골든 슈를 수상하였고 골든 볼 수상도 확정적인데 이에 대해서......"
그들의 벽을 뚫고 터미널을 지나가는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수많은 포르투갈 국민들은, 대표팀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열화와 같은 함성과 환호, 그리고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포르투갈에서 이런 대우를 받은 이들이 과연 있었을까?
“헉! 저.....저기!”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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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이 기겁을 하며 놀라는 가운데 호날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단상 위, 그 한 가운데에는 호날두도 잘 아는 사람이 무수히 많은 경호원들과 함께 인자하게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두 팔을 벌리면서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포르투갈의 진정한 영웅들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당신들의 헌신과 열정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가장 큰 보배입니다."
포르투갈의 대통령, 아니발 카바쿠 실바였다.
< 2006 독일 월드컵 - 1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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