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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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7시즌 - 1 >

새 시즌을 맞이하여 무리뉴는 드록바와 셰브첸코의 투톱으로 '빅 앤 스몰' 조합을 내세웠는데, 드록바의 제공권, 몸싸움 능력과 셰브첸코의 스피드, 결정력 등을 조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전술 포메이션이나 세부적인 지침에서 무리뉴가 팀의 조화와 스쿼드의 최적화를 위해 많이 연구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이 전술대로라면 첼시는 이전의 강력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셰브첸코에게 있었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라커룸에까지 통역사를 데리고 와야 했다.  

선수나 코치가 아닌 제 3자가 라커룸에 들어오는 것 자체도 껄끄러운 일인데, 무리뉴나 다른 첼시 코치에게 다이렉트로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닌, 통역을 한번 거쳐서 듣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지시가 힘들었다. 

한번 인테르에 들렀다 온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무리뉴도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했고 결국 이들 사이에는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을 수밖에. 

사실 라커룸에서보다 필드에서가 더 큰 문제였다. 

아무리 골만 넣으면 되는 공격수라도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는 선수들과 소통하면서 획일화된 전술에 따를 수 있어야 하는데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니 그게 가능할 턱이 있나. 

축구는 결국 팀 스포츠였고 아무리 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도 팀에 융화되지 못하면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없다. 

선수들과의 합이 맞지 않던 셰브첸코는 경기에 나올 때마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첼시의 상징이기도 한 조직적이고 빠른 역습? 

말도 안 통하는 셰브첸코에게는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안 그래도 문화권이나 식성 등의 차이로 인한 잉글랜드 적응에 문제를 겪고 있는 셰브첸코.  

경기마다 기대 이하였고 언론과 팬들 역시 그를 욕하기 바빴으니, 그것은 자신의 축구 실력에 자신감마저 꺾여버리는 결과가 된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당하며 첼시 전력에서 이탈한 셰브첸코.  

이번 시즌은 아마 그의 축구 인생 최악의 시즌이 될 성 싶었다. 

‘무분별한 선수 영입이 결국 선수와 클럽, 팬들까지 모두 병들게 하는구나.’ 

호날두와 단 둘이 만났을 때는 그렇게 젠틀하고 화통했던 로만이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참 의문이다. 

같은 선수의 입장에서 셰브첸코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씁쓸한 일이었다. 

=== 

복귀한 호날두는 많은 언론들, 팬들의 주목 속에서도 자기 할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구단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한들 태업? 이런 건 호날두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자신을 응원해준 대다수의 첼시 팬들을 위한 보답인 것이다. 

호날두가 이렇게 아주 모범적인 태도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이슈를 만들어보려던 언론들도 지금은 잠잠해진 상태. 

오히려 매 경기마다 공격 포인트를 착실하게 적립하면서 월드컵 MVP다운 클래스를 입증하며 ‘역시 호날두’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적시장에서 여러 ‘병크’를 저지른 첼시지만, 원래 기초체력이 탄탄한 선수는 불규칙적인 생활 몇 번 한다고 쉽게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 법. 

첼시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5승 1무 1패를 달리며 리그 2위의 무난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중이다. 

이전 시즌들 성적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지 지금도 결코 나쁘지는 않았다. 

승점을 쌓을 기회는 앞으로도 충분히 있다.  

또한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 첼시에는 많았기에 걱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골득실 차이로 맨유의 뒤를 이어 2위에 놓여진 첼시는 리그 8번째 경기, 레딩과의 원정 경기를 가졌다. 

슬슬 1위로 치고 올라가길 바라는 팬들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마데스키 스타디움으로 출발한 첼시 선수단. 

하지만 비극적인 사태가 이들을 덮치고 말았다. 

빠아악! 

"Oh, my god! Oh, my god-!!" 

"What the Fuck!!" 

레딩의 미드필더 스티븐 헌트와의 충돌. 

그 충돌의 결과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선수는 바로 페트르 체흐였다. 

두 선수가 부딪치면서 들려온 소리만으로도 체흐가 당한 부상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호날두는 급히 그에게 달려왔다. 

체흐의 몰골은 끔찍했다.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피가 질질 흐르는 머리, 특히 관자놀이 윗부분이 기형적으로 움푹 파인 것은 한 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꿈틀거리는 체흐.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 경기 주심인 마이크 라일리는 체흐가 당한 부상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았다.  

당장 경기를 중지시키고 앰뷸런스를 부르기는커녕, 경기장 밖에서 쉬고 오라고만 할 뿐이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체흐에게 말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호날두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심각한 부상을 당한 동료를 위해 뛰었다. 

"뭐하고 있습니까!? 빨리 구급차 부르세요! 빨리!!" 

레딩의 홈인 마데스키 스타디움의 안전 요원들에게 구급차를 부르라 소리친 호날두는 체흐의 몸에 손을 대려는 동료 선수들을 저지시켰다. 

머리를 다친 환자에서 함부로 손을 대면 오히려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뛰어나온 팀 닥터들이 체흐의 몸을 살피는 사이 호날두는 주심에게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니 당장 경기를 정지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심 라일리는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그 선수,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거야?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했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선수가 다쳤을 때는 이유 불문하고 경기를 멈추는 게 당신의 소행 아닌가요?“ 

“크...크흠...!” 

“페트르는 지금 아주 위험한 상태입니다! 얼른 구급차가 와서 그를 데려가야 해요!" 

"어이!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스티븐은 충분히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있다고! 괜히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어서 그를 압박할 생각은 말아줬으면..."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내뱉는 레딩 선수에게 호날두는 눈을 부라리며 고함쳤다. 

"그 냄새나는 아가리, 박살나서 평생 수발들기 싫으면 다물어! 지금 내 동료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기나 해? 머리뼈가 함몰됐다고! 스티븐인지 뭔지 하는 네 동료는 거기 숨어있지 말고 페트르가 정신을 차리면 그에게 똑바로 사과해야 할 

거야." 

거울이 없었기에 호날두는 자신의 표정이 보진 못했다. 

하지만 저 괄괄해 보이는 레딩 선수가 입을 쏙 다문 것을 보니 여간 험악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스티븐이라는 레딩 선수와 체흐의 충돌 장면을 보진 못했지만, 원래 골키퍼가 머리를 들이밀면 필드 플레이어들은 일단 물러나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끝까지 들이댄 것을 보면 그의 잘못이 없다할 수 없다. 

첼시 팀 닥터들의 심상치 않은 표정과 주변의 눈치를 본 주심은 헛기침을 하면서 경기 진행을 멈추었다. 

미개한 관중들이 야유와 조롱, 욕설을 퍼부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속으로 한숨을 쉬는 호날두. 

이럴 때는 자신의 명성과 위상이 높은 것에 감사했다. 

무명 선수였으면(EPL에 오른 이상 무명 선수는 없겠지만) 권위따지기 좋아하는 주심에게 나대지 말라며 카드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구급차는 호날두의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도착했다. 

하지만 드레싱 룸을 진입할 수 없어서 난관을 겪는 중이었다. 

스탬포드 브릿지의 넓은 입구와 달리, 마데스키 스타디움의 드레싱 룸은 입구가 워낙 좁아서 구급차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어쩔 수 없이 부상당한 체흐를 들것에 실어서 드레싱 룸 바깥의 구급차에게 후송시켜야 하는데 이번에는 또 들것이 없단다. 

'젠장! 이거 뭐 제대로 된 게 없잖아!? 어떻게 이런 부실한 경기장이 FA의 허가가 떨어진 거지?' 

'정지우'가 뛸 때의 K리그도 지금의 레딩보다는 훨씬 선진 의료체계를 갖췄다. 

심판의 안일한 대처부터 시작해서 상대팀 선수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동료의식, 일단 상대 선수를 때려눕힌 것에 좋아라하는 쓰레기 같은 관중들, 엉망인 이곳 경기장의 안전규범까지. 

정말 최악이었다. 

무리뉴 감독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진 상태였다. 

레딩의 안전요원들이 우물쭈물 거릴수록 그의 눈빛은 더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휠체어밖에 없어 환자를 그것에 태우고 이동시키는 게 어떻겠냐는 레딩의 안전요원들의 말에 무리뉴는 정말 불같이 화를 냈다. 

아니, 세상천지에 머리부상 당한 사람을 휠체어 끌고 후송시키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  

결국 구급차에서 직접 들것을 가져온 다음, 거기에 체흐를 태우고 다시 구급차까지 이동시켜야 했다. 

몇몇 쓰레기 같은 관중들은 경기 지연시킨다며 욕설을 퍼부었는데 호날두를 비롯한 첼시의 선수들과 스텝진들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개만도 못한 인간들은 일일이 상대해봤자 피곤하기만 하다. 

산소 호흡기가 씌워진 채로 실려 나가는 체흐는 이미 정신을 잃은 듯. 

그를 보는 첼시 선수들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레딩 선수들도 동업자 의식은 있는지 비슷한 표정. 

어떤 레딩 선수 한 명은 별 것도 아닌 일가지고 괜히 경기를 지연시킨다며 투덜거렸는데 호날두는 그 면상과 등번호를 잘 기억해두기로 했다. 

삐이익-!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체흐 대신에 서브 골키퍼인 쿠디치니가 골키퍼로 들어왔다.  

체흐가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는지 양 측 선수단의 플레이가 모두 조심스럽다. 

하지만 호날두만은 예외였다. 

공을 몰고 달리는 호날두의 목표는 바로 체흐의 부상을 비웃고 투덜거린 선수 앞이다.  

때마침 그는 수비수였다. 

그에게 다가간 호날두는 마치 관중들에게 보여주듯이 화려한 개인기를 하나하나 펼치면서 철저하게 농락을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호날두는 계속 그쪽으로만 돌파를 시도했다. 

그 선수의 발은 호날두가 굴리는 공의 속도를 절대로 따라 잡지 못하며 계속 허공만 갈랐다. 

이제야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의 얼굴이 서서히 벌게졌다. 

마지막으로 다리사이에 공을 집어넣는 알까기까지 시전하면서 완벽하게 그 선수를 가지고 노는 호날두. 

그 다음 직접 슛을 차, 골을 성공시키면서 마지막의 방점까지 찍는 호날두였다. 

얼굴이 빨개진 채 자신을 노려보는 그 선수에게 호날두는 그저 검지만 까닥였다. 

'멘탈 나갔네. 근데 뭐, 어쩌라고? 아직 멀었어. 지금부터 시작이야.' 

나중에 호날두 스페셜 영상에도 자주 등장하는 '한 선수 울 때까지 농락하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오늘 첼시는 정말 마가 낀 게 분명해." 

"마가 낀다는 게 무슨 말이야? 크리스?" 

"오늘은 우리 모두 몸조심해야 하는 날이라는 뜻이에요." 

에시앙의 말에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호날두. 

체흐가 실려 가고 후반전, 그의 대체자로 나왔던 쿠디치니까지 레딩의 선수인 송코와의 충돌로 기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주전과 백업 골키퍼 두 명이 모두 경기에서 뛸 수 없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무리뉴도, 첼시 선수들도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 실려나간 선수들을 걱정하면서도 참 난감한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죠. 제가 골키퍼 장갑을 끼고 뛰겠습니다." 

나서는 사람은 존 테리였다. 

결국 그가 골키퍼로 출전하게 되었다. 

[모든 골키퍼가 실려나간 첼시... 어쩔 수 없이 첼시의 캡틴이 골키퍼로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부상당한 두 선수가 모두 쾌차하길 바라겠습니다.] 

[모두 끔찍하고 불운한 사고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빨리 부상을 떨치고 일어나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주길 빌며, 첼시의 주장인 존 테리가 골키퍼 유니폼을 입습니다.] 

어쨌든 경기는 경기이니, 레딩의 선수들은 존 테리가 골키퍼로는 초짜라는 것을 이용해서 일단 골문을 향해 슛을 쏘아대기만 했다. 

놀랍게도 존 테리는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보여주면서 레딩의 공격들을 그럭저럭 잘 막아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 골키퍼가 아니다보니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골 하나를 더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캡틴이 조금 허술해도 안심이 되죠." 

"흠... 그러면... 이렇게 하자." 

호날두와 드록바가 작전을 짰다. 

그의 계획을 들은 호날두의 눈이 조금 커졌다. 

"디디에, 방금 거는 정말 좋은 계획 같은데요? 이거 100프로 통합니다." 

"그래? 흐흐흐. 사실 나는 페트르를 부상 입힌 그 자식에게 물을 먹이고 싶었거든." 

스티븐 헌트라는 레딩 선수는 체흐가 들것에 실려 나갈 때까지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호날두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본의가 아닌 부상이라 해도, 선수를 그렇게 다치게 했으면 당연히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짜 축구 선수로 뛰면 뛸수록 인성이 되먹지 못한 선수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만 깨닫는 것 같았다. 

아무튼 오랜만에 드록바의 생각대로 공격을 전개해 나가보기로 한 호날두. 

공을 몰고 뛰면서 맥기디 턴으로 덤벼드는 레딩 수비수들을 제친 호날두는 바로 드록바에게 공을 보냈다. 

가슴으로 그것을 트래핑 하는 드록바. 

레딩 수비수들의 몸싸움을 괴물 같은 그 피지컬로 견뎌내면서 다시 호날두에게 패스하는 드록바.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여러 콤비플레이들을 연습한 성과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호날두는 드록바의 투박한 패스를 우아한 퍼스트 터치로 받아냈다. 

공을 전방으로 살짝 친 다음에 레딩 수비수들의 몸싸움을 견뎌내면서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 호날두. 

다가오는 스티븐 헌트의 모습이 보였다. 

호날두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을 위로 띄웠다. 

사포였다. 

그리고 사포로 공중에 떴다가 내려가는 공은 헌트의 팔에 닿고 말았다. 

“주심! 이거 핸드볼 파울입니다! 저 선수 팔에 공이 닿았어요!” 

“고의로 공의 진로를 막았습니다. 덕분에 제 드리블이 끊겼어요.” 

                                                                                                                   

드록바가 가장 먼저 주심에게 뛰어가 핸드볼이라고 소리쳤고 호날두 역시 스티븐 헌트에 공이 맞음으로써 이쪽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스티븐 헌트를 비롯한 레딩 선수들은 절대 고의 핸드볼이 아니었다고, 오히려 사포 같은 비 매너적인 행동을 한 호날두의 탓이라며 무고를 주장했지만. 

주심의 손은 페널티 킥을 찍은 이후였다. 

드록바는 흰 이를 드러내며 희죽희죽 웃었다.

< 06-07시즌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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