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125)

< 06-07시즌 - 4 >

"페트르! 나 왔어! 재활치료 열심히 하고 있지?" 

"하아... 왜 또 찾아왔어... 이제 난 다 나았으니 그만 와도 된다니까." 

"우리 집이 여기서 가까운 거 알잖아? 겸사겸사 열심히 치료 받나 검사도 좀 하려고. 여기, 네가 좋아하는 과일 푸딩." 

“가끔은 네가 우리 엄마보다 극성스러운 것 같아. 푸딩은 잘 먹을게.” 

말은 저렇게 했지만 체흐는 이미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다. 

호날두는 첼시 선수들과 두루두루 친했지만 너무 과묵한 체흐와는 아주 살짝 거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체흐가 크게 부상당한 레딩에서의 사건 이후로 그와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체흐는 자신이 끔찍한 부상을 당했을 때 호날두가 취한 행동을 크게 감동했고 '호날두가 내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이라며 인터뷰하기도 했다. 

"음... 이제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번 전력 질주 어때?" 

"허허허, 농담하지 마. 크리스. 그러다 죽어." 

“하하하!” 

하지만 체흐의 몸 상태는 점점 나아지는 중이다. 

부상당한 체흐의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들은 당연히 시즌 아웃을 선언했다. 

하지만 수술 이후 경과가 상당히 좋았고 재활 훈련 등으로 체흐의 몸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었다. 

의사들은 슬그머니 시즌 중의 복귀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며 말을 바꿨다. 

                                                                                                                       

이것은 당연히 체흐의 단단한 복귀의지 때문이었다. 

호날두가 올 때마다 체흐의 체육복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수술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하게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선수로서 복귀가 가능해진 것은 그가 흘린 땀방울의 무게 덕분이다. 

"빨리 일어나서 우리의 골대를 지켜줘. 쿠디치니는 분명 좋은 선수지만 너만큼의 안정성은 없더라." 

"그건 정말 고마운 말이지만... 쿠디치니 앞에서는 하지 않는 게 좋아.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거야." 

"물론이지." 

헤드기어를 쓴 체흐가 다시 첼시의 골문을 지키게 될 날을 호날두는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첼시의 선수들과 팬들마저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널 부상 입힌 놈한테는 아직도 연락이 안 왔어?” 

“깜깜 무소식이야. 처음에는 그래도 경기 중 상황이니 이해하려고 해봤는데... 사과하러 오지도 않는 것은 좀 너무한 일인 것 같아.” 

“너무한 일 정도야? 그 새끼는 완전 쓰레기새끼야.” 

잘잘못을 떠나서 사람이 크게 다쳤으면 사과하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닌가. 

호날두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우리 팬들에게 살해협박을 받고 있다는데 그래도 싸다고 봐.” 

“크리스... 그건 좀...” 

“사람이 되지 않은 놈들에게는 사람처럼 대우해줄 필요가 없는 거야.” 

=== 

한편 한국에서 잉글랜드로 넘어온 지우는 하루하루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요리사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은 지우는 바로 영어 회화수업을 받았다. 

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지우가 영어를 잘할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지우는 보육원 선생님들로부터 칭찬받아온 성실함과 끈기로 차츰차츰 그것을 극복해나갔다. 

지우는 호날두가 붙여준 회화 선생님으로부터 착실하게 영어 수업을 들었고 어느새 원어민과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영어에 익숙해졌다. 

회화수업이 끝나면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된다.  

잉글랜드의 초등교과과정에 대해 가르치는 개인교사로부터 착실하게 수업을 듣는 지우. 

나중에 잉글랜드의 학교를 다닐 때 헤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데... 

솔직히 지루했지만 호날두의 부탁을 그가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열심히, 열심히 공부했다. 

런던에 온 뒤로 지우에게는 매일이 새로운 일상이었다. 

특히 1대1로 축구의 기본기부터 지도해주는 축구 선생님의 존재는 정말 최고였다. 

점심을 먹고부터 지우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수업을 받았다. 

지우에게 축구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은 지우에게 매일 하나씩 숙제를 내줬다. 

슛을 찰 때의 움직임이라던 지, 발을 굴려서 공을 흔드는 방법 같은, 호날두가 뛰고 있는 프리미어 리그 선수들이 자주하는 동작들. 

그가 내준 숙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갈 때마다 발전하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세계였다. 

축구 교습의 매력에 지우는 푹 빠졌다. 

‘반드시... 호날두 선수와 같이 뛰고 싶어!’ 

자신에게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호날두에게 지우는 은혜를 갚고 싶었다. 

첫 번째는 같이 그라운드를 뛰면서 호날두의 골을 자신이 어시스트 하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숨이 차오르게 뛰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 치면서 지우는 깊숙한 곳에 있었던 자신의 재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지우가 공을 차는 모습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바로 지우의 후견인이기도 한 호날두. 

지우의 발전 속도를 보면서 호날두는 감탄했다. 

"정의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재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이 아주 강합니다. 성실성 있는 태도 역시 굉장히 훌륭합니다. 이런 아이들은 클래스 있는 축구 선수로 성장한 다음에도 쉽게 나태해지지 않지요.“ 

"지우가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오랜 기간 뛸 수 있을까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코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유소년 시절에는 크게 유망하다가 막상 성인 무대에 데뷔하고 나서는 성장을 멈추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이죠. 정의 나이가 이제 겨우 9살인데 그 편차는 더욱 클 수밖에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동 나이 대에서 '정'만큼 정신적인 부분에서 성숙한 아이들을 찾기 힘들다는 것 입니다. 기본기나 피지컬 등은 식단과 훈련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축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멘탈적인 부분은 

고치기 어려운, 그야말로 타고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정의 재능은 진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정신적인 부분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팀에 제대로 녹아들어서 이음쇠 역할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제가 어찌 호날두 선수 앞에서 그걸 부정하겠습니까? 그러나 정의 심성과 태도라면 충분히 단체생활에도 적응하여 진정한 축구에 대해서 배울 수 있을 겁니다." 

호날두는 지우가 누구보다도 잘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원래 그를 한국에 그냥 두었어도 지우는 자연스럽게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다. 

두 번째 삶을 살면서 호날두가 깨달은 것은,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서 예전보다 더 잘될 수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 

불확실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날두가 지우를 데려온 것은 이유가 있다.  

지우가 국가대표 선수로 커나가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한국 축구의 병폐와 가혹행위 등에 고통 받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돈도 빽도 없는 고아 ‘정지우’는 그런 무수한 불합리함과 억울함에 직면하여 울분을 참아야 했다. 

기합이라는 명목 하에 선배들에게 끌려가서 집중적으로 야구방망이로 얻어맞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고아새끼라며 무시하고 괄시받는 것은 당연했고, 경기 중에 단 한 번도 패스를 받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감독과 코치들도 정지우를 무시했다. 

말했던 것처럼 돈도 빽도 없는 고아 ‘정지우’는, 자격미달의 감독, 코치들에게 엔트리 제외를 가장 자주 당하는 대상이었다. 

어떤 더러운 행위가 위에서 오가는지 그 때의 ‘정지우’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짐작이나 할 뿐이다. 

고아 주제에 축구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당시의 ‘정지우’. 

단지 축구를 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맞서야할 부조리들와 시련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때문인지 당시는 정말 누가 건들면 칼에 베일 것처럼 날카로운 소년이었던 ‘정지우’. 

나중에 성남 FC 스카우터의 눈에 띄고 국가대표에도 발탁되면서 조금 무뎌지긴 했지만... 

호날두는 자신의 분신에게 그 과정을 또 다시 겪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행복하게 축구할 수 있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제 슬슬 지우를 축구 아카데미에 입학시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아카데미에서 끝난 지우를 가르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허허, 정과 같이 뛰어난 아이를 계속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해고당하는 줄 알았거든요.”  

“하, 짓궂은 농담이시네요. 영어에도 많이 익숙해졌다고요?” 

“제가 정에게 회화를 가리키는 선생은 아니지만, 이제는 바디랭귀지가 아닌 영어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적응의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일단 대화가 통해야 축구든 뭐든 할 수 있으니까요.” 

축구는 결국 팀플레이. 

셰브첸코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선수와 선수 간에, 그리고 선수와 감독 간에 대화가 통해야 한다. 

축구 선수라면 의사소통 사이에서 해답을 찾아나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호날두는 지우가 무조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원래의 ‘정지우’보다 더 잘되어야 한다. 

그래야 호날두가 지우를 데려온 이유가 될 테니까. 

한국 축구의 병폐를 속에서도 꽃피운 재능을, 이곳에서는 더욱 크게, 밝게 피웠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 

11승 1무 1패 승점 34점의 첼시. 

마찬가지로 11승 1무 1패 승점 34점의 맨유. 

골득실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1,2위를 오가고 있는 우승경쟁 권 두 팀이 드디어 만났다. 

프리미어 리그를 즐겨보는 전 세계 축구팬들이 두 손을 비비며 기대감을 잔뜩 드러내는 중이다. 

지난 시즌과 지지난 시즌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첼시냐. 

EPL 최다 우승의 터줏대감이자 위대한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냐. 

그야말로 승점 6점, 더 나아가서는 우승까지 걸려있는 한판 승부. 

이 한 번의 승부를 위해 주제 무리뉴는 전력분석팀과 스카우트, 코칭 스텝들을 총 동원, 함께 밤잠을 설쳐가며 전략과 전술 등을 짰다. 

상대팀 맨유의 선수들에 대한 개별적이고도 철저한 분석들, 최근 맨유의 변화에 대한 카운터 전술 고안, 이쪽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획기적인 전략과 몸 상태까지 고려한 베스트 11까지. 

조금의 변수도 놓치지 않고 개미새끼 한 마리까지 살펴가며 꼼꼼히 분석했으며, 상대팀의 약점을 철저하게 후벼 팔 수 있도록 트레이닝 배치까지 전부 바꿨다. 

가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급의 준비성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아마 퍼거슨 역시 무리뉴 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경계와 분석의 대상은 바로 나겠지.' 

퍼거슨의 성격이라면 호날두 자신의 아주 작은 습관과 플레이 방식, 심리상태까지 아예 해부해버릴 기세로 지독히도 철저하게 분석해 올 것이다. 

맨유와 첼시는 지난 시즌에도 여러 번 맞붙었지만 그 때는 양 팀 사이의 승점 격차가 워낙 컸기에  그 한 번의 승부에서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팀이 나란히 선두를 달리면서 승점 동점을 유지, 우승을 노리고 있는 중. 

피 튀기게 맞붙을 것이다. 

“이번에는 맨유도 정말 진심전력을 다해서 맞붙겠죠?” 

“당연하지. 지난주 맨유 경기를 보니 정말 작심하고 우승 도전하고 있던데? 분위기 장난 아니야.” 

“걔네는 다 늙은 선수들과 어린 선수 몇 명밖에 없는데 뭐가 그렇게 강하냐.” 

“퍼거슨의 힘이지. 그 망할 노인네. 관 짝에 들어갈 나이에 아직도 쌩쌩해.” 

“또 지난 경기처럼 오심이 나오지 않겠지? 심판들과 협회는 전부 그 인간 눈치만 보고 있으니 믿음이 안가.” 

얼마나 매섭고 혹독한 경기가 될 것인가 자신들도 짐작이 가는지 첼시 선수들의 표정이 마냥 밝지 않았다. 

그러나 호날두는 자신 있었다. 

그 대단한 퍼거슨도 결국 메시를 막지 못해 두 번의 결승전에서 모두 패하고 만다. 

지금 호날두는 그 때의 메시보다 뛰어나다 단언할 수 있다. 

그러니 이긴다. 

반드시 이길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 'EPL의 첼시 독주 시대, 이제 곧 막을 내릴 것.'] 

[주제 무리뉴, '올드 트래포드에서 블루스의 파란 깃발을 꽂겠다.'] 

[개리 네빌, '우리는 호날두를 꽁꽁 묶을 방법을 찾았다.'] 

[존 테리, '반 니스텔로이 없는 맨유, 전혀 안 무서워.'] 

감독들과 주장들의 신경전 속에서 드디어 맨유와 첼시, 첼시와 맨유와의 경기가 막이 올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의 14라운드 경기! 두 팀 다 11승 1무 1패,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성적입니다. 여기서 승리하는 팀이 1위로 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승점 6점짜리, EPL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입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여기서 어떤 팀이 이기냐에 따라 올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팀이 갈릴 수 있는 그런 중요한 경기입니다. 앞으로 리그를 치름에 있어서 선수들 사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고요.] 

                                                                       

[무리뉴 감독과 퍼거슨 감독의 얼굴이 보입니다. 양 팀 감독 모두 표정에서 긴장이 묻어나오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감독들도 긴장감을 감출 수 없을 만큼 오늘 경기가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양 팀에 대한 선발 라인업 소개로 넘어가는 해설자들은 순간 말을 멈추고 말았다. 

바로 첼시의 포메이션 때문이었다. 

                                                                                                            

[오, 지져스! 무리뉴 감독이 이 중요한 경기에 정말 엄청난 변화를 주었습니다. 쓰리 백입니다!]

< 06-07시즌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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