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125)

< 06-07시즌 - 5 >

무리뉴는 중앙 수비수를 세 명을 두는 쓰리 백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3-5-2 포메이션이다. 

존 테리, 카르발류, 페레이라가 중앙의 수비수를 맡고 마케렐레, 발락의 더블 볼란치에 중원은 램파드가 책임진다. 

윙어 겸 윙백으로 호날두와 애슐리 콜이 섰는데 호날두가 공격적인 롤, 애슐리 콜은 수비적인 롤을 맡아 비대칭 진형을 이루었다. 

마지막으로 투톱은 부상에서 회복된 셰브첸코와 드록바. 

지금까지 첼시와는 전혀 다른,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 난해한 포메이션에 해설자들은 난감한 기색이었다. 

[무리뉴 감독이 포르투갈에서는 아주 가끔씩 쓰리 백 전술을 들고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잉글랜드로 와서는 단 한 번도 쓰리 백 전술을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컵 대회에서나 프리시즌 경기에서도요. 그런데 올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중

요하다고 할 수 있는 맨유 전에 쓰리 백을 들고 나왔습니다. 굉장히 도박적인 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호날두 선수가 오랜만에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자리로 복귀했습니다. 스포르팅에서는 2선과 3선 사이의 측면 미드필더로 경기를 뛰었죠. 왼쪽 측면 공격수에서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라... 일단 첼시 선수들 중에서 가장 큰 포지션 변경을 했는데, 이 선수

라면 절대 기대 이하의 플레이가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기대가 되네요.] 

무리뉴의 전술변화에 당황한 것은 해설진 뿐만이 아니었다. 

퍼거슨 감독 역시 가자미 같은 눈으로 첼시의 선수진들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예상치 못한 전술에 퍼거슨은 어떻게 대응할까?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시선 속에서 우승을 노리는 두 팀 간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호날두는 왼쪽, 오른쪽자리의 윙어, 인사이드 포워드 모두 뛸 수 있다. 

윙백으로는 한 번도 뛰지 않았지만, '정지우'는 윙백으로 여러 번 뛰었다. 

챔피언스 리그 바르셀로나 전에서도 델 오르노가 퇴장 당해 혼자서 측면 라인을 책임졌던 적도 있는 호날두. 

무리뉴는 그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써먹는 것이다. 

이번에도 수비와 공격을 다해야하나 걱정하고 있는 호날두에게, 무리뉴가 지시한 것은 수비보다는 공격이었다. 

'애슐리는 수비, 크리스는 공격이다. 크리스는 스스로를 윙백자리에서 뛰는 윙어라고 생각해도 좋아. 가장 잘할 수 있는 공격에 치중하고 수비가담은 지난 경기들처럼 적당히만 해줘. 애슐리는 융통성 있게 오버래핑을 해주고.' 

'크리스가 치고 올라가면 빈자리는 존(테리)이 메울 거야. 그러니 수비걱정하지 말고 한 번 기회를 잡으면 끝까지 밀어붙여. 윙백이지만 윙어보다 더 공격적인 윙백을 기대한다.' 

수비를 중요시하는 무리뉴가 호날두에게 만큼은 적극적인 공격을 요구했다. 

그만큼 이번 전술에서 호날두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수비시에는 3-5-2지만 공격 시에는 호날두가 치고 올라가면서 3-4-3처럼 운용이 가능한 이중 포메이션이다. 

이런 하이브리드 전술 운용의 핵심 축은 바로 공수 전환 시 가장 많은 포메이션 위치 변동을 겪는 호날두 같은 선수였다. 

어지간한 전술 이해도와 타이밍을 읽는 능력, 그리고 개인 기량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흐지부지 될 것이다. 

하지만 호날두는 충분히 이 어려운 임무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애슐리 콜의 높은 크로스입니다! 쭉쭉 날아가는 긴 공을 받아내는 선수는 호날두! 아주 깔끔하고 간결한 터치입니다! 바로 역습!] 

[공을 몰고 질주하는 크리스티안 호날두! 에인세와 캐릭이 감히 쫓아갈 생각을 못합니다! 급속도로 치고 나갑니다!] 

호날두의 퍼디난드-비디치 라인 사이를 돌파하는 모험을 굳이 감행하지 않았다. 

함께 전방으로 달리는 드록바와 눈을 마주하는 호날두. 

마음이 통하자마자 바로 드록바의 발 앞을 향해 패스했고 자신은 그대로 달렸다. 

공을 받아든 채 단단한 피지컬로 버티는 드록바는 호날두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부수고 나가는 방향으로 공을 뿌렸다. 

패스가 살짝 어긋났지만 찰떡같이 받아든 호날두는 공을 받자마자 그대로 슛! 

대포알처럼 날아간 강슛을 반 데 사르가 팔을 뻗어 겨우 손에 닿았지만, 워낙 공에 실린 힘이 강한 탓에 그대로 골라인을 넘어가고야 말았다. 

[공을 몰고 질주하는 호날두! 엄청나게 빠릅니다! 맨유 선수들이 잡아끌어도 탱크처럼 돌진! 드록바에게 패스하고.. 다시 받고! 슈팅! 들어갑니다! 골입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전매특허 같은 강력한 슛으로 맨유의 골 망을 흔듭니다!] 

[드록바와의 기가 막힌 2대1 패스플레이! 골을 만드는 과정도 정말 품격이 있습니다! 올해도 발롱도르 수상이 매우 유력한 호날두! 이번 경기에서도 그가 흐름을 만드는군요!]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서 호날두는 더욱 빛납니다! 자신의 전용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면서 포효하는 호날두입니다!] 

호우 세레머니를 펼치는 호날두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는 무리뉴, 마구잡이로 호통을 치는 퍼거슨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초반에 선제골을 집어넣으면서 쓰리 백 전술에 당황한 맨유를 인정사정 보지 않고 밀어붙이면서 경기를 주도하는 첼시. 

지금 상황은 명백히 첼시의 페이스였고 맨유는 몸으로 공을 억지로 막는 걸레수비로 겨우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하지만 퍼거슨의 맨유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생소한 전술이지만 몇 번의 부딪침 끝에 약점을 파악한 퍼거슨은 그곳을 집중공략하기 시작했다. 

"치! 애슐리 콜을 꼭 붙들어! 그 새끼가 크로스나 롱 패스를 올리지 못하도록 강하게 압박해!" 

"호날두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라이언! 어차피 뒷공간 털리면 그 놈은 알아서 자기 집으로 기어들어가게 되어 있어! 뒤를 공략해!" 

"양 풀백들에게 내 말 똑똑히 전해. 수비라인 흔들려도 좋으니까 오버래핑 자주, 자주하라고!" 

"짧게 패스질 하지 말고 길게, 뻥뻥 차! 롱 패스로 단숨에 뒷공간을 털어버리라고! 몸 사리면서 공 돌리는 X같은 플레이 했다간...! 알아서 하라고 해!" 

언 듯 보면 단순히 막 내뱉는 것 같았지만 퍼거슨의 지시는 핵심을 찌르는 것들이었다. 

3-5-2 전술에서 양 측면은 호날두와 애슐리 콜이 각각 맡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해당 선수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된다. 

호날두의 경우는 활동량이 넓은데다 체력, 지구력 등이 타 선수에 비해 월등하고 존 테리가 뒤를 받쳐주기도 하니 좀 덜했다. 

애슐리 콜이 현재 전성기 기량으로 왼쪽 측면의 지배자 소리를 듣고 있지만, 수비할 범위 자체가 워낙 넓어 혼자서 커버할 수 없었다.  

전술상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런 애슐리 콜에게 박치성 등이 달라붙어서 성가시게 만들었다. 

끈질기게 압박하면서 공을 빼앗고자 들러붙었고, 크로스 올리는 행위 자체를 방해했다. 

박치성은 이 한 경기를 위해 모든 것 쏟아 붓고 있었다. 

통상 한 선수를 마크하기 위해서는 그 선수보다 적어도 1.5배는 더 많이 움직여야 하지만 박치성은 충분히 그것을 해냈다. 

박치성의 장기를 한층 더 살릴 수 있는 전술지시였다. 

박치성으로 피를로를 봉쇄했던 그 레전드 경기 이전에, 퍼거슨은 이미 이런 식으로 박치성을 사용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특이한 장면이군요. 보통 윙어들이 돌파 이후 중앙으로 크로스나 패스를 올리고, 윙백들은 그것을 저지시키는 것이 보통이지 않습니까? 근데 저 두 선수는 서로의 포지션이 바뀐 듯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윙백인 콜을 꽁꽁 묶어두려고 안간

힘을 쓰는 팍의 모습입니다.] 

[덕분에 첼시가 왼쪽 측면으로의 공격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팍의 장점인 수비력과 활동량을 이용해서 첼시의 한쪽 팔을 마비시키는 것이지요. 이것 역시 퍼거슨 감독의 마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퍼거슨 감독은 풀백과 윙어에게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명령했다. 

이것은 3-5-2의 약점인 측면을 공략하는 아주 좋은 한 수였다. 

양 날개가 첼시의 부실한 측면을 잠식하며 감싸 안은 모양새가 되었다. 

터치라인 바깥에서 무리뉴가 소리 지르며 선수들에게 변경된 전술을 지시했지만 살짝 늦고 말았다. 

박치성이 애슐리 콜을 성가시게 하고, 호날두가 전진배치 되어 있는데다가, 존 테리와 발락이 그 빈자리 커버가 살짝 늦은 상황. 

그 틈을 파고든 선수는 바로 라이언 긱스였다. 

윙어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한 긱스는 그 곳에서 전성기 못지않은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오늘 경기에서도 그의 창조성과 돌파력이 빛을 발했다. 

가벼운 턴으로 카르발류를 제친 후 대지를 가르며 나아간 킬 패스는 웨인 루니의 발에 닿았다. 

이어진 루니의 다이렉트 슛을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막아낸 쿠디치니. 

하지만 튕겨나간 세컨 볼은 첼시의 수비진이 아닌 맨유의 왼쪽 윙어, 루이스 사하에게 넘어갔다. 

튕겨나간 세컨 볼은 조금 높은 위치였고 공은 사하의 팔에 닿고 말았다. 

존 테리를 비롯한 첼시 수비진들이 손을 들어 올리며 핸들링이라고 항의했지만 주심은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공을 잡은 사하는 바로 슛을 때리지 않고 한번 접은 후 공을 찼는데 존 테리의 발에 맞고 굴절되었다.  

아무리 단단히 준비하고 쿠디치니라 해도 굴절되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튕겨진 슛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1:1 

전반 종료 3분을 앞에 둔 맨유의 극적인 동점골이었다. 

와아아아아아-!! 

바로 그거야, 이 새끼들아!! 

Glory! glory, Man United! 

Glory! glory, Man United! 

올드 트래포드가 들썩였다.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한 사내의 고함과 응원가를 위시한 함성소리도 올려퍼졌다. 

핸들링이라며 붉어진 얼굴로 항의하는 첼시 선수들. 

하지만 주심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솔직히 고의적인 핸들링은 아니었지.’ 

오히려 핸들링 때문에 사하가 슛을 차는 타이밍이 늦어졌다. 

결과적으로 행운이 뒤따라서 득점에 성공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공을 받자마자 역습에 나서는 첼시였지만 드록바의 헤더가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면서 골을 넣는데 실패했다.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스코어는 여전히 1:1이었다. 

첼시의 과감한 쓰리 백 전환에 묻히긴 했지만 맨유도 나름 굵직한 전술 변화를 꾀했다.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4-4-2가 아닌 4-3-3을 들고 나온 것이다. 

무리뉴는 퍼거슨의 4-4-2를 깨부수기 위해 변칙 쓰리 백을 준비했듯이, 퍼거슨 역시 무리뉴의 4-4-2 다이아몬드를 카운터 치기 위해 4-3-3을 선택했다. 

결국 서로가 비껴나가면서 복잡한 수 싸움은 무승부로 돌아갔지만, 이 감독들이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승부수를 던질 만큼 간담이 크다는 것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난적 맨유를 상대로 원정에서 무승부였으며 전반 마지막 5~10분을 제외하면 경기력 역시 첼시가 우위였다. 

그러나 라커룸의 분위기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아주 멍청하고 한심한 경기력 이었다! 우리는 변칙전술로 충분히 저들을 박살낼 수 있었어! 근데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 

무리뉴의 호통이 첼시의 라커룸을 가득 울렸다. 

그가 화난 주 원인은 바로 존 테리의 결정적인 수비 실책 때문이었다. 

"존! 네 실수가 실점으로 연결되었다! 너는 우측면의 스토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어! 크리스가 치고 나가면 빠르게 그 자리를 메워야한다고 나는 분명히, 그리고 누누이 말했다! 네 움직임과 대응속도는 너무 느렸어!" 

"......" 

지금까지는 무리뉴의 말에 대드는 선수가 거의 없었다. 

그가 워낙 카리스마 있는데다가 뛰어난 실적까지 받쳐주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무리뉴에게 라커룸에서 맞설 수 있는 선수는 극소수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유소년 클럽을 포함해서 10년 이상을 첼시의 선수로 뛰었으며 현재 첼시와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장 직을 겸임중인 존 테리였다. 

그리고 이 존 테리는 무리뉴의 비판에 참지 않았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실점은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로지 저로부터 발생했다는 보스의 주장은 불쾌할 뿐더러 타당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괜한 커버 플레이가 저희 팀의 동선을 비효율적으로 만들었고, 익숙하지 않은 전술 때문에 실점이 나왔다고 보

고 있습니다." 

라커룸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선수들과 코칭 스텝들은 할 말을 잃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무리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네가 실수하지 않았다고? 내 잘못이라고? 좋아! 하나하나 다 반박해주지! 실점 상황에서 쿠디치니의 선방은 더 없이 훌륭했다! 하지만 세컨 볼이 튕겨 나가는 위치에 존, 네가 있었지만 너는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지! 반칙 아니냐면서 손만 번쩍 들어 

올린 채로! 정상적 선수라면 일단 공을 걷어낸 다음에 항의를 하든 뭐든 해야 하는 법이야! 네가 안일하게 대처했고 압박도 커버도 모두 늦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 팀은 실점하고야 말았다! 그런데도 네 잘못이 아니고 내 실수라고!?" 

"쿠디치니의 선방 이후 공은 빠르게 튕겨져 나갔는데 그걸 어떻게 미리 감지하고 그쪽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까? 공이 흘러가는 라인에는 클로드와 히카르두도 근접해 있었습니다. 실수라고 해도 이것은 우리 모두의 실수, 더 나아가서는 전술적인 부조화

의 결과입니다. 핸들링 상황 역시 휘슬을 불지 않은 심판의 오심이 문제이지 제 잘못이 아닙니다. 이것을 오로지 제 실수로만 돌리려는 보스의 의중을 도무지 모르겠군요."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호날두는 자신이 나서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경기 중간 휴식 시간은 15분이고 이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변경된 전술을 지시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무리뉴는, 존 테리에게 나중에 따로 보자는 말을 남기고 선수들에게 개별적인 지시사항들을 설명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갈등은 억지로 봉합되었지만 결국은 수면 위로 드러나는 법. 

제발 그것이 이번 경기에서 드러나지 않기만을, 호날두를 비롯한 첼시 선수들은 바랄뿐이었다.

< 06-07시즌 - 5 > 끝

ⓒ 아이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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