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125)

< 06-07시즌 - 9 >

물론 다른 선수들도 열심히 뛰었다. 

존 테리, 램파드 등 무리뉴에게 의구심을 품고 있는 선수들도 사적인 감정에 상관없이 매 경기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태업 같은 막장 짓은 저지르지 않기로 한 듯. 

만약 그런 징조까지 보였다면 호날두는 정말 첼시에 있기 싫었을 것이다. 

"오늘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호날두 선수는 무려 2골을 집어넣으면서 대활약을 펼쳐 MOM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프리미어 리그 7경기 연속골을 넣으면서 다시 연속 득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발렌시아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도 이

런 대단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발렌시아는 강팀이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단단한 방패와 날카로운 창을 가지고 있다 자부합니다." 

단단한 방패는 첼시 특유의 단단한 수비력이었고 날카로운 창은 호날두 자신을 뜻한다. 

자화자찬이지만 오늘 보여준 경기력은 위와 같은 발언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해주었다. 

“첼시 초창기 시절에 비해서 수비가담이나 라인 아래로 내려오는 빈도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플레이도 훨씬 공격적이면서 득점 지향적으로 바뀐 것으로 압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문전 앞에서 슛을 자주 때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요.” 

“아, 그건 감독님의 지시 하에 이뤄진 행동입니다. 감독님께서 저의 공격적인 능력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가지고요. 저도 공격적으로 나가는 것이 경기를 주도하는데 편하기도 하고요. 아, 물론 팀의 밸런스 생각하지 않고 냅다 뛰면 혼나겠

죠.” 

하하하하! 

"호날두 선수는 인사이드 포워드지만 중앙 공격수 이상의 득점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호날두 선수를 보고 ‘공격수와 윙어로서 필요한 모든 재능을 갖춘 선수’라며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트트릭 횟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잉글랜드에 온지 어느덧 세 시즌 째인데 해트트릭 횟수는 2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만 하더라도 결코 적다 볼 수 없습니다. 호날두 선수보다 훨씬 오랜 뛴 스트라이커도 리그에서 해트트릭을 하지 못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다만 지지난 시즌 23골, 지난 시즌 35골, 또 올 시즌 23골을 넣고 있는 호날두 선수의 득점 페이스에 비

하면 이것은 확실히 적은 수치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호날두 선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와우, 오늘은 정말이지 좋은 질문들이 많이 나오네요? 제가 좋아할만한 질문만 쏙쏙 해주시네요. 항상 인터뷰 룸이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하-! 

이상한 사생활에 대해서 캐묻거나 또는 근거 없는 소리를 지껄이거나, 논란이 될 수 있는 질문으로 이슈거리를 노리는 기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정상적인’ 질문을 하는 기자들이 참 반가웠다. 

호날두는 적당한 유머러스함을 보이면서 기자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해트트릭은 그 날 최고조의 활약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몰아치기'라는 뜻도 됩니다. 사실 2:0으로 이기던 4:0으로 이기던 승점 3점을 얻는 것은 똑같죠. 한 경기에 해트트릭 할 득점을 다른 경기에 나눈다면 질 경기를 비기게 만들고, 비

길 경기를 이기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해트트릭 횟수가 낮은 대신 연속골 기록을 이어가는 게 더 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기록보다 더 많은 경기의 승점을 챙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 그것은 마치 카드 게임에서처럼 득점을 분배할 수 있을 때의 일이겠죠. 그냥 해트트릭이 어렵다고 하시는 건 어떨까요?" 

"하하하! 제가 졌습니다. 네, 맞아요. 해트트릭은 정말 어렵네요." 

하하하하-! 

“변명하지 않고 더 넣을 수 있는 경기는 더 넣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화기애해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잉글랜드 스포츠 기자들은 정말 극성인 편이었고 특히 여러 번 데인 호날두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살짝 겉도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그의 적응력은 어디가지 않았고 이제는 농담 따먹기도 하면서 잘 지내는 호날두였다. 

허나 어딜 가나 좋은 분위기를 흐리는 미꾸라지는 있는 법이다. 

"첼시의 선수진들과 감독 사이의 불화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당사자인 호날두 선수가 생각하기에는 이들 중 누구에게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까?" 

"? 금시초문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요." 

"에이~ 알거 다 알면서 이렇게 빼시깁니까?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존 테리 선수가 무리뉴 감독에게 폭행을 하려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만약 사실이라면 팀 내 기강의 문제인지 아니면 감독 인성의 문제인지..." 

"전혀 그런 적 없습니다. 정상적인 인터뷰들은 다 끝난 것 같으니 저는 이만 들어가 보죠.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 

잡소리 떠드는 기자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건 말건 호날두는 웃는 얼굴로 인터뷰 룸을 나섰다. 

=== 

어쨌거나 저쨌거나 난세의 영웅 호날두와 그 외 선수들의 협력으로 호조를 이어나가는 첼시. 

그런 첼시와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 마주하게 된 팀은 발렌시아였다. 

나중에 발렌시아는 심각한 부채와 연이은 이적 시장의 실패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팀이 되지만, 지금의 발렌시아는 정말로 라리가 양강(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에 도전할 정도의 강팀으로 첼시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팀이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만 25골을 박아 넣으며 사무엘 에투에 이어서 리그 득점 2위에 랭크된 다비드 비야는 당연히 발렌시아의 슈퍼 에이스. 

그 외에도 라울 알비올, 비센테 로드리게스, 호아퀸, 다비드 실바, 다비드 알벨다 등의 대단한 선수진을 보유하고 있었다. 

"군말 안 하겠다. 우리는 반드시 이겨서 준결승전에 진출할 거다. 그것만 생각하고 뛰어라." 

“.......” 

“지금이 우리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는 최적기라는 것을 잊지 마라.” 

선수들의 시선이 흘깃 호날두에게 쏟아졌다. 

그들도 듣는 귀가 있으니 호날두가 첼시에 남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무리뉴와 존 테리의 대립, 선수단의 혼란 속에서도 좋지 않은 꾸역꾸역 연승을 이어나가고 있는 첼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들 무리뉴 감독의 능력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지 않았다. 

감독에게 인격적인 결함이 있건 뭐건, 축구 감독의 가장 큰 덕목은 경기를 이기게 하는 능력이다.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들은 무리뉴의 지시를 충실히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툭, 툭, 툭, 툭 

호날두의 ‘온 더 볼’ 능력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는 중이다. 

잉글랜드를 처음 밟았을 때와 비교해봤을 때, 축구 선수로서의 모든 능력이 상승했지만, 공을 지키는 발재간 테크닉과 드리블 능력은 특히 더 발전했다. 

이제는 완전히 수비모드로 나오는 상대의 대치상태를 깨고, 혼자 힘으로 경기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기량을 갖추었다. 

명실상부한 이 시대 최고의 크랙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호날두였다. 

뻐엉-! 

촘촘한 발렌시아의 수비망을 향해 볼을 들고 살살살 들어가서 급격하게 공을 차고 침투하는 움직임으로 발렌시아 수비수들을 바보로 만드는 호날두. 

램파드와의 2대1 패스플레이로 다시 한 번 수비진들의 압박을 벗겨낸 호날두는 골키퍼가 막기 힘든 곳을 정 조준하여 중거리 슛을 강하게 쏘았다. 

빠르게 날아간 공이 발렌시아의 골 망을 시원하게 가르면서 선제골을 뽑았다. 

이예예예예예-!! 

함성을 지르면서 환호하는 스탬포드 브릿지의 블루스들. 

호날두는 주먹에 키스하고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는 세레머니를 펼치면서 챔스 우승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1:0, 가뿐하게 리드를 챙기는 첼시였다. 

발렌시아의 에이스는 누가 뭐래도 다비드 비야였지만 그의 원맨팀은 절대 아니었다. 

리그 최정상의 수비수인 라울 알비올과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듯 대회를 가리지 않고 대활약하는 호아퀸, 여전히 노련하고 까다로운 다비드 알벨다 등이 철저하게 비야를 보조했고, 팀 조직력이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돌아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

다. 

따로 동 떨어져있는 다비드 비야는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무리뉴는 선수들에게 최대한 비야에게 가는 공을 끊어내서 그를 고립시키라고 주문했다.  

호날두도 가끔씩 수비가담을 할 때 비야에게로 보내는 패스 경로를 끊어내곤 했다. 

[잔디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면서 공을 건드려 빼돌리는 크리스티안 호날두! 또 발렌시아의 공을 끊어내는데 성공합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호아퀸!] 

[이 선수를 보면 볼수록 반칙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측면 공격수로서의 재능이나 능력은 두말할 것 없이 세계 최고인데 공을 끊어내는 수비적인 재능도 충분히 이렇게 저희를 놀랄 만 합니다. 물론 공격과 수비를 둘 다 잘했던 선수가 축구사에 존재하긴 

했습니다. 흔치는 않았지만요. 하지만 저 선수처럼 어린 나이에 두 상반되는 분야의 기량을 갖춘 선수는... 제가 봤을 때는 없었거든요.] 

[마치 프리킥도 잘 차는 골키퍼를 보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첼시를 넘어서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된 호날두! 그의 활약이 이번에도 발렌시아의 핵심 주포인 다비드 비야를 꽁꽁 묶어두는데 성공시킵니다!] 

"나중에 폼 떨어지면 풀백으로 전향해도 되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진짜야. 네 태클은 내가 봐도 월드 클래스 감이라니까?” 

애슐리 콜의 농담 아닌 농담에 코웃음을 치며 맞받아치는 호날두였다. 

과거에는 서로 다른 팀으로 만나서 뚫느냐, 뚫리지 않느냐를 두고 라이벌리를 세웠던 두 사람이지만 한 팀에서 다시 만나니 그 이상의 친근함을 느끼는 중이다. 

적으로서는 상당히 까다롭지만 동지로 만나니 그보다 반가울 수 없는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첼시의 수비수들이 다비드 비야를 잘 견제하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이끌어 나갈 때, 마케렐레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발락은 다비드 실바와 직접 맞붙고 있었다. 

2선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볼 터치와 패스 능력, 틈을 찾는 시야, 창조성, 개인기 등이 종합적으로 필요한 포지션으로 다비드 실바라는 어린 선수는 여기에 딱 맞는 유형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포지션의 선수들은 축구가 점점 선진화 과정을 겪으면서 살아남기 힘들게 될 전망이다. 

수비 전술이 발달하면서 공간을 찢는 스루 패스 성공 빈도가 감소했고, 2선까지 수비수들의 직접적인 압박이 심해졌기에 어지간한 탈 압박 능력 없이는 전부 버틸 수 없게 된 것. 

다비드 실바는 그 반례로 들 수 있는 충분한 선수다. 

월드 클래스 수준의 탈 압박 능력과 발재간 기술을 지닌 다비드 실바는, 이 포지션에서 자신의 화려한 전성기를 유감없이 선보이게 된다. 

이 어린 선수는 오늘 경기에서도 반짝이는 천재성을 감추지 않았다. 

발락의 우락부락한 피지컬에 밀려서 고전하던 실바는 단 한 순간, 발락을 속이며 마르세유 턴으로 높은 위치에서 공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중앙으로 돌파하는 실바는 오늘 첼시 수비진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던 비야에게 깔끔한 패스를 뻗어줌으로써 천금 같은 기회를 만든다. 

훌륭한 스트라이커인 비야는 좋은 기회가 왔음에도 슛을 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위치에 침투한 실바에게 패스하는 노련함을 보여줬다. 

실바가 찬 슛은 잔디를 가르며 체흐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1:1, 동점골이었다. 

[기가 막힌 2대1 패스플레이 입니다! 첼시의 득점 연계를 거의 똑같이 따라하면서 득점에 성공하는 발렌시아! 첼시의 저 단단한 수비벽을 허물어트리는 것은 역시 이런 놀라운 팀워크가 해답이었습니다!] 

[방금은 정말 대단한 전술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다비드 실바라고 했나요? 이 선수, 드리블 치는 센스도 그렇고 과감한 돌파와 슛까지...! 이거 발렌시아에 놀라운 신인이 나타난 듯 싶습니다.] 

[다비드 알벨다에 다비드 비야, 그리고 다비드 실바까지! 다비드 선수들의 활약이 아주 눈부십니다! 이들이 바로 발렌시아의 저력입니다!] 

발렌시아의 득점은 여기까지였다. 

동점골을 허용하자 분노한 첼시 선수들은 라인을 급격히 올렸다. 

홈경기임에도 무실점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럽게 경기를 진행하던 분위기를 버리고 적극적이면서 터프한 공세를 펼쳤다. 

압도적인 첼시의 피지컬에 발렌시아 선수들은 픽픽 쓰러지기 일쑤. 

거친 플레이였지만 홈 어드벤티지 때문인지 경고나 파울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발락의 패스를 받은 드록바의 골로 2:1, 첼시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경기가 종료된 후 무리뉴는 다비드 실바에 대해서 직접 인터뷰로 칭찬했다. 

[어린 선수가 재능을 꽃 피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축구계를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즐거운 일입니다. 오늘 다비드 실바가 그러했습니다. 그는 분명 좋은 선수로 성장할 것입니다.] 

무리뉴는 03-04시즌과 04-05시즌 연속으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세계 최고의 감독이었고 그런 그의 말이 갖는 파급력은 절대 작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비드 실바에 대해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근데 사실 이건 무리뉴 특유의 언론 플레이다. 

월드 클래스 감독이 이렇게 선수 한 명을 콕 집어 칭찬하면, 그 선수는 다음 경기에는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팀워크를 해치는 탐욕적인 플레이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 다는 것. 

또는 급격한 언론의 주목과 압박을 이기지 못해 자멸하기도 했으니 무리뉴는 분명히 이것을 노리고 어린 선수를 칭찬했으리라. 

어떻게 보면 치사하고 비열한 수작이었지만 그만큼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리뉴는 웃으면서 독 바른 사과를 실바에게 건넸다. 

                                                                                                                     

                                   

'저런 언론 플레이는 내가 제일 많이 당해서 잘 알지.' 

                                                                                                                 

                                                                                                                      

스포르팅에서 뛰던 시절 호날두는 포르투와의 경기 3일전부터 3일후까지 거의 통과의례처럼 무리뉴의 언론 플레이에 시달려야했다. 

멘탈이 워낙 튼튼하기도 했고 원래 무리뉴가 저런 감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데미지가 제로였지만, 다른 유망주였다면 아마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다비드 실바의 재능은 ‘진짜’였고 그는 분명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드필더 한 명으로 성장할 것이다. 

왠지 이번에는 무리뉴의 언론 플레이가 역효과를 볼 것 같았다.

< 06-07시즌 - 9 > 끝

ⓒ 아이시루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