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125)

< 해야 하는 일 - 2 >

이 거대한 여파는 미국 은행들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대륙에도 퍼져나갔고 곧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까지 심화될 낌새였다. 

미 행정부는 급하게 경기부양책을 만들어 파산 신청을 내건 중산층들을 도왔지만 이는 말 그대로 고육지책. 

미친 듯이 치솟는 유가와 박살난 부동산 시장에서, 경기부양 환급 비용은 용암에 던져진 얼음 몇 동이처럼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이 폭주기관차는 이제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구간을 향해 질주하는 중이었다. 

본래 모든 것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가는 것이 쉬운 법. 

대부분 기업의 주가는 지하를 뚫고 갈 기세로 하락했다. 

경기가 급속도로 불황 체제에 들어서니 소비가 줄어들고 수많은 거래가 끊겼다. 

전 세계의 경제는 급격히 침체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고 전진 하는 기업과 사람들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호날두는 자산 관리사 데이빗 젠킨스 말고도 투자 자문 겸 무형 자산 관리사로 에드워드 팔소를 고용했다.  

그는 현금, 석유, 금 등의 현물 자산 관리 일을 맡은 톰 할리에 이어, 호날두의 세 번째 자산 관리 인사였다. 

에드워드 팔소를 고용하고 첫 번째로 지시한 일은 바로 위와 같은 부동산 자산들의 가치들의 폭락으로 인한 주가의 하락에 베팅하는 일이었다. 

여러 명을 고용하는 것은 역시 불필요한 의심은 피하기 위해서였고. 

어쨌든 호날두는 6400만 달러라는 돈을 3개월 동안 무려 네 배로 부풀리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돈은 모조리 애플의 주식에 부었다. 

아이폰은 출시 이후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중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애플의 주가는 큰 폭으로 뛰지 않았다. 

호날두는 많은 애플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다. 

호날두의 애플 지분률은 0.47%까지 높아졌다. 

이를 현물 자산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4억 6700만 달러였다. 

[대부분의 기업 주가가 폭락하는 와중에 애플은 현상 유지를 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도 애플의 미래 잠재가치를 알고 있다는 뜻이지요.] 

“애플의 주식은 웬만하면 매도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당신의 투자자문으로서 저는 그것을 추천합니다. 지금 아이폰은 고물 취급을 받지만 개량의 여지가 충분하거든요. 정말 잡스의 말대로 이것이 기존의 휴대전화를 대체할 수 있다면, 호날두 선수가 보유한 애플의 지분의 가치와 배당금은 하늘 높은 줄 모

르고 치솟을 것입니다.] 

에드워드의 말을 들으면서 호날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 

지금은 아이폰 반짝 효과 때문에 모기지 사태 속에서도 굳건하게 버티는 애플이지만, 그런 애플조차도 어쩔 수 없는 해일이 곧 다가오는 중이었다. 

모기지 사태가 원인이 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진도 6.0의 지진이라면 2008 세계 금융 위기는 진도 8.0의 대지진이다. 

그 때가 오면 페이스북의 지분을 제외한 모든 기업의 주식을 팔아치워야 할 것이다. 

"와우! 아주 훌륭합니다! 또 올랐어요!“ 

헉헉거리면서 숨을 가다듬고 있는 호날두에게 흥분이 가득 담긴 장 레쉬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거리 주파 속도가 더 늘어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단거리 육상 선수로 뛰어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서 기록은요?" 

"37.09 km/h입니다! 이건 정말로 놀라운 속도에요!" 

드디어 ‘37’의 벽을 돌파했다! 

이제 거의 한계에 이른 듯 싶었지만 호날두의 피지컬은 아직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여지를 발견한 것. 

무엇보다 그게 가장 만족스러웠다. 

“전성기 호나우두의 순간 속도는 약 36 km/h였습니다. 결국 그 단위를 깨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를 자랑하는 선수가 되었군요.” 

“더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제 몸은 그렇게 말하고 있네요.” 

앞으로 육상 신기록을 세우게 될 우사인 볼트의 최고 속력은 약 44.5 km/h라고 한다. 

육상선수와 축구선수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좀 가혹한 일이지만... 딱 ‘40’의 벽만 돌파해도 정말 그라운드에서는 적수가 없을 것 같았다. 

축구선수에게는 드리블치면서 달리는 속도가 더 중요하긴 했지만. 

"다음은 공을 달고도 그 속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게 목표입니다. 그에 대한 훈련이 필요해요. 그렇다면 명실상부하게 지구에서 가장 빠른 축구선수가 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축구 경기장이 아닌 CIA에게 끌려가서 외계인 자격으로 조사받아야 할 것입니다. 장담합니다." 

"와우, 장의 농담은 정말 재미없군요." 

"농담이 아니라 사실인걸요. 공을 몰고 37 km/h를 뛰는 선수는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단언하는 장 레쉬. 

하지만 그는 알까. 

지금은 살짝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아르옌 로벤이라는 선수가 2014 월드컵에서 공을 몰고 37 km/h 속도를 주파했다는 것을. 

물론 일반적인 드리블이 아닌 공을 뻥 차놓고 그것을 쫓아가는 속도였지만, 현대로 들어서면서 축구 선수들의 피지컬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표가 될 수 있었다. 

지금 현재에는 33, 34 km/h만 넘어도 정말 빠른 축구 선수로 취급받지만 나중가면 그 이상 가는 괴물들이 빅 리그에는 적어도 10명씩은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호날두는 신체적인 능력을 키우는 훈련에 몰두하는 것이다. 

다른 기술적인 센스나 개인기, 또는 축구 지능에 관련된 분야는 나중가도 성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피지컬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크리스티안의 플레이 스타일을 고려한다면 이제 이 이상으로 몸을 불리는 것은 외려 독이 될 겁니다. 상체 근육은 적정 수준까지는 스퍼트에 도움이 되지만 그 이상부터는 몸을 무겁게 만들죠. 부상의 위험도 생기고요." 

"웨이트는 이제 적당히, 이 근육 상태를 유지하는 선에서만 해야겠군요."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호날두 선수의 키는 이제 더 클 일이 없어 보입니다. 지난달, 지지난달과 비교해보니 달라진 것이 없네요.“ 

“이제 그만 자랄 때도 됐죠. 이 이상 자라면 곤란하기도 하고요.” 

현재 호날두의 키는 189.2cm.  

원래의 호날두보다 4cm 더 컸다. 

이는 균형 잡힌 식습관과 성장 판을 자극하는 꾸준한 운동, 밤 10시 이후에는 무조건 잠을 자는 생활 리듬 덕분이었다. 

사실 축구는 키가 큰 것이 무조건 좋다고는 볼 수는 없는 스포츠다. 

하지만 호날두의 플레이스타일과 포지션, 팀 내에서 맡는 역할 등을 따져보면 키가 큰 것이 더 유리했다. 

일단 공중 볼의 타점이 높아지고 몸싸움에 좀 더 유리해질 테니까. 

"헤딩으로 골을 넣는 연습들을 조금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지난 경기들을 분석해보니 제 헤더 슛의 정확성이 살짝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안 그래도 그것이 바로 제가 추천하는 방향이었습니다. 호날두 선수는 어떤 클럽을 가던, 가장 많은 임무를 부여받고 골도 많이 넣게 될 것입니다. 정확한 헤더는 더 많은 공격 옵션을 제공하게 되는 일이죠. 측면에서 패스, 크로스도 잘 올리면서 드리블 

돌파도 잘하고, 골 결정력에 헤더까지 갖추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무서운 측면 공격수가 또 있을까요?" 

호날두 선수의 미래가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웃으면서 말하는 장 레쉬의 말에 호날두 역시 ‘그 날’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었다. 

‘피지컬을 더 끌어올리고, 축구 기술과 지능도 보완하면서 헤딩에 대한 정확성까지 장착한다... 이거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걸?’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기뻤다.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확실히 했기 때문에 이제 그 길로 힘차게 달려 나가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 종착역에 다다른다면.... 머릿속으로 상상만 할 수 있었던 '완전체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탄생하는 것도 꿈이 아닐 것이다. 

“돌이켜보면 호날두 선수의 트레이너가 된 것이 제게는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장 같은 훌륭한 트레이너를 두게 된 것이 행운이죠.” 

“저 같은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호날두 선수처럼 이미 세계 최고 그 이상의 레벨에 올랐음에도, 자만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가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선수는 거의 없습니다.” 

“저 역시 축구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주목을 못 받고 3부 리그의 문턱에서 관두고 트레이너가 되었죠. 처음에는 제게 재능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한탄했습니다. 하지만 호날두 선수를 보며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 빛나는 재능을 가진 사

람도 끔찍한 식이요법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독할 만큼 노력하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나...’ 하고 말이죠.” 

갑자기 장 레쉬의 고해성사가 되었지만 호날두는 지루해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저는 호날두 선수가 지금보다 더 성공하고 더 위대한 선수가 되는 것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재능이 없다 생각하지만 마지막 머리카락 한 올까지 쥐어짜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제 욕심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연습에서 흘린 땀은 배신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호날두가 멈출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쓸데없이 감상적인 생각에 빠졌었군요. 어쨌든... 호날두 선수는 이제 몸이 다 자란만큼, 트레이닝 플랜을 다시 짤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축구 선수들은 체력이나 기량저하보다도 무릎의 연골 때문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하루 종일 훈련에 평가전, 공식 경기 등을 치르다보면 무릎 연골은 빠르게 마모되어 갈려나가죠.” 

“끔찍한 일이군요. 왠지 나를 저격하는 말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하하하, 맞습니다. 호날두 선수의 성장도 끝났으니 이제 훈련의 양을 적당히 줄여야합니다. 특히 무릎 연골에 무리가 되는 훈련들은 최대한 적게 해야죠.” 

이미 장 레쉬를 고용하고서부터 호날두는 과한 드리블 동작이나 스프린터 등의 무릎에 무리가 가는 동작들을 훈련 중에는 자제하고 경기에만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 레쉬는 그것을 더 줄이라고 말하면서 무릎 주변 근육을 끊임없이 단련하라고 조언했다. 

“호날두 선수의 몸 상태는 더없이 좋습니다. 제 생각에는 최소 35살까지 정상급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큰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요.” 

“결국 부상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군요.” 

“부상을 아예 안 당할 수는 없습니다. 최대한 위험한 행동을 삼가면서 부상의 빈도와 강도를 억제하는 방법뿐입니다.” 

호날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지우’의 우상인 그 호날두 역시 끔찍한 무릎 부상 때문에 그의 장기인 드리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오프 더 볼' 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면서 다시 제 2의 전성기를 열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더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편이 좋다는 건 분명한 사실. 

그와 같은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메시도 다른 선수도 아닌 바로 부상이었다. 

‘확실히 경기 중에도, 훈련 중에도 무리하면서까지 뛴 적이 있었지.’ 

이미 호날두의 기량은 시대의 정점에 올랐다. 

그 상승폭이 조금은 감소하더라도 몸을 아끼면서 축구하는 법을 새롭게 배울 필요가 있었다. 

=== 

호날두의 대한 이적설이 유럽 축구계를 정말 뜨겁게 달구는 가운데 클럽끼리의 협상은 물밑으로 긴밀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첼시에게 가장 높은 이적료를 제시한 팀은 단연 레알 마드리드. 

갈락티코 멤버들은 노쇠화와 부상, 스쿼드 불균형 문제로 사실상 해체되었다. 

새로운 스타 영입에 목말라 있던 레알 마드리드에게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현존하는 그 어떤 선수보다도 군침이 당기는 타겟이었다. 

이들이 제시한 금액은 무려 65M, 6500만 유로였다. 

호날두의 스타성, 그의 전율적인 기량을 생각하면 그래도 아쉽다.  

하지만 이만한 금액은 계약기간 1년을 남긴 호날두를 넘기는 데는 정말 감지덕지.  

당연히 첼시는 이를 승인했고 이적 협상을 진행했지만 문제는 멘데스와 호날두의 의사였다. 

"오랜 고민 끝에 저희는 레알 마드리드로 가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아니.... 불과 1주일 전만하더라도 레알과 가장 가까워보였는데 왜 마음을 바꾸셨습니까?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 최고의 클럽이고 호날두 선수는 거기서도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저희가 바라는 초상권 최저 65% 보장을 거부했습니다.“ 

그랬다.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의 주요 이적 협상 내용인 초상권 65%를 고심 끝에 거절해버렸다. 

월드컵 이후로 정말 전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되면서 엄청난 대중적인 인지도와 파급력을 얻게 된 호날두는, 초상권 50% 조항 때문에 첼시에게 반절을 떼어주고서도 작년 스폰서와 광고 수입으로만 2000만 유로 가까이 벌어들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월드컵 프리미엄 스폰서가 대거 체결된 올해부터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예정이다. 

그렇기에 주급, 계약금, 인센티브 등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초상권만큼은 제대로 챙기고 싶었는데 레알 마드리드가 그것을 끝끝내 거부한 것이다. 

사실 레알 마드리드는 전임 회장인 플로렌티노 페레스의 영향을 받아 스타 선수들을 영입하면 무조건 50% 이상의 초상권을 확보하는 이적 스탠스를 취해왔다. 

데이비드 베컴,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호나우두 등의 인기선수들의 초상권을 보유함으로서 클럽의 재정을 충당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 구단주도 없는 주제에 갈락티코 멤버들에게 어마어마한 주급을 퍼주면서도 연이어서 빅 사이닝을 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계약상의 이유로 거의 성사될 것만 같았던 딜은 파토가 났다. 

모든 걸 다 들어줄 것처럼 보였던 레알도 전례를 깨는 65% 초상권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 

첼시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지만 호날두 측이 그들의 상황을 고려해줄 필요가 있겠는가? 

그 다음으로 높은 이적료를 제시한 외국 팀은 5400만 유로를 던지면서 자신들의 클럽 영입 레코드를 깨려한 바르셀로나였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와의 이적 협상 역시 결렬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주급과 초상권을 수용하길 거부했습니다. 다른 팀을 알아봐주시길 바랍니다." 

"......" 

피터 캐넌은 혈압약을 두고 온 것을 후회했다.

< 해야 하는 일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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