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125)

< 해야 하는 일 - 8 >

[테베즈의 강력한 슈웃! 들어갔습니다! 고오오오올!! 테베즈 선수의 강슛이 첼시의 골네트를 흔듭니다! 야수처럼 환호하는 카를로스 테베즈!] 

[탱크를 연상케 하는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 후 강슛! 다시 봐도 기가 막히는 장면입니다! 퍼거슨 경이 이 선수를 영입할 때 다들 회의적이었는데... 역시 맨유에 관한 일은 무조건 입 닥치고 있는 게 상책입니다, 상책!] 

테베즈의 골 직후, 호날두는 애슐리 콜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표정에 애슐리 콜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직 언론 보도가 안 됐지만... 우리 팀의 상황은 일촉즉발이야. 캡틴을 지지하는 쪽과 보스를 지지하는 쪽으로... 선수단이 갈리고 말았어."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호날두는 한숨을 쉬었다. 

"크리스, 네가 있었으면 이 정도까지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텐데. 너는 그래도 둘 사이를 오가면서 잘 중재해왔으니까." 

"미안해요, 애슐리. 할 말이 없네요." 

"그럴 필요 없어, 이것이 절대로 너의 잘못은 아니야. 그저... 아우! 나도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요즘은 정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공을 차고 있다니까. 

머리를 북북 긁은 애슐리 콜은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마자 첼시의 라커룸으로 걸어 들어갔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던 그의 어깨는 오늘따라 유난히 더 축 쳐져 보였다. 

그 뿐만 아니라 첼시 선수들 전원이 다 그랬다. 

패배주의만이 감돌고 있었다. 

"경기하면서 다들 봤지? 저 놈들에게서 분열이 일어난 거? 팀워크, 조직력, 밸런스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지 않아. 전부 따로 노는 중이야." 

역시 퍼거슨은 간파했나. 

아니, 어쩌면 전반전 시작부터 첼시의 조직력 상태를 보고, 이들이 커다란 위기를 겪는 중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파악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첼시는 지난 시즌 막판부터 상태가 엉망이었어! 이 빌어먹을 놈이 멱살 잡고 끌어 올려준 덕분에 결국 우승할 수 있었던 거였지. 아니면 우리가 무조건 우승이었다고!" 

"보스, 이상한 얘기 좀 그만하세요." 

"입 다물어 봐, 임마. 너 때문에 내가 지난 시즌 말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크흠... 아무튼 지금이 적기다. 최근 3년간 첼시를 만날 때마다 시원하게 털렸다. 올드 트래포드의 참사도 그 중 하나야. 이제 그 복수를 해야지!" 

퍼거슨의 주문이 끝나자마자 맨유 선수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퍼거슨 밑에서는 기를 못 펴는 맨유 선수들이라 해도, 이들은 EPL 최다 우승 트로피와 유일한 트레블 기록을 가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팀의 선수들이다.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 팀에서 뛰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명문 팀인 맨유가, 무리뉴의 첼시 부임 이후부터는 상대 전적에서 거의 압살을 당하고 있었다. 

우승 트로피도 맨날 뺏겼다. 

허허허 웃으면서 속 좋게 넘어갈 선수? 

단언컨대 여기엔 없다. 

"아주 박살을 내버려. EPL의 진정한 제왕이 누구인지 똑똑히 알려주라고. 앞으로 우리와 붙을 때마다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말이야. 첼시만 박살내면 아스날, 리버풀? 걔들이 우리 경쟁자나 될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잘해, 임마! 그쪽 보드진 놈들이 너를 어떻게 취급했는지 잊지 말라고! 너만의 방식으로 복수해야 할 거 아니야. 슈팅 아끼지 말고 골 때려 박을 수 있으면 더 때려 박아!” 

마음이 꺾인 적에게는 적당히 상대하면서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 등의 실리를 취하던 퍼거슨답지 않은 말. 

하지만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만큼 맨유는 첼시에게 당한 것이 많았다. 

첼시를 거꾸러트려야 맨유는 우승할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무리뉴가 아예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는지 그래도 전반전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첼시. 

여전히 조직력은 잘 맞아 들어가지 않았지만 궁여지책으로 라인을 내린 채 역습만을 노리는 게 딱 보였다.  

하지만 무리뉴의 수비전술도 기세등등한 맨유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시종일관 몰아침을 당한 첼시의 수비진들은 거의 너덜너덜해진 몰골이었고, 각도 계산 잘한 호날두의 중거리 슛을 막아낼 여력이 되지 못했다. 

호날두가 찬 공은 땅에 맞고 튕겨지면서 체흐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빨려들어갔다. 

호날두는 쏟아지는 원정 팬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친정팀에 대한 예의를 지켜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 

경기가 종료되었다. 

스코어는 3:0. 

첼시는 이 경기에서 단 한 번의 유효슈팅조차 기록하지 못하고 맨유에게 아예 밀봉되어 압살 당했다. 

스코어나 경기 내용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맨유에게 발린 경기였다. 

무리뉴가 부임한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이겨보지 못한 퍼거슨은 제대로 된 복수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날. 

첼시의 감독, 주제 무리뉴의 사임 소식이 잉글랜드를 들끓게 만들었다. 

존 테리와의 힘 싸움에서 결국 물러난 쪽은 무리뉴였다. 

무리뉴의 사임! 

말이 사임이지 사실상의 경질이나 다름없었는데 이 소식은 전 세계 축구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비록 현 시즌의 첼시가 이전과는 달리 위태로워 보이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주제 무리뉴는 50년 만의 첫 리그 우승과 연이은 두 번의 추가 우승, 그리고 구단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뤄낸 명감독이다. 

이미 구단의 레전드 명단의 첫 번째에 올라도 손색없을 그런 감독이 이렇게 간단히 갈려나간 것이다. 

많은 축구팬들, 심지어 첼시의 팬들마저도 구단의 결정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화를 내는 중이다. 

"결국 그렇게 되었구만..." 

소식을 전해들은 퍼거슨은 굳은 표정을 풀지 않고 조용히 석양을 바라보았다. 

라이벌이 떨어져 나가는 일인데도 퍼거슨은 결코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퍼거슨과 무리뉴는 언론과 경기장을 통해 여러 번 대립하고 서로를 물어뜯었지만, 사적으로 만날 때는 항상 신사답게 대화를 나누었고 친분을 다져왔다. 

그는 단지 같은 직종의 동료로서, 마음에 맞는 친우가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퍼거슨은 결국 그가 떠나는 길에까지 배웅을 하러 가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다 쳐도 너에게는 주제가 은사 아니더냐? 가서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고 와. 특별히 오늘 훈련은 빼줄 테니." 

"그의 자존심은 보스만큼 높습니다. 떠나는 길을 지켜보지 않는 것이 주제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방법입니다." 

이미 통화로 무리뉴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첼시를 떠나게 되었음에도 무리뉴의 음성은 오히려 밝았다. 

특별한 휴가를 받은 기분이라면서 벌써부터 다음 시즌에 감독으로 복귀할 팀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호날두는 그에게 인테르를 추천하려다 말았다. 

멘데스와 본인 스스로가 알아서 잘 판단할 것이다. 

"어쨌든 그 짧은 경력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두 번이나 한 감독 아닙니까? 그를 찾는 팀이야 뭐, 넘쳐나겠지요." 

"하긴... 그러고 보니 그 놈은 나보다 챔스 우승컵을 많이 들었지. 빌어먹을.... 나는 뒤쳐지고 싶지 않다, 크리스." 

"?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지?" 

"네놈이 잘해서 내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 개수를 늘려 줘야하지 않겠냐? 배웅 갈 거 아니면 훈련이나 열심히 해라, 이 놈아!" 

또 성질부리기 타임이 도래했다. 

이럴 때는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낫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우친 호날두였다. 

"알아들었으면서 못 알아들은 척까지 하는 게 괘씸하니 오늘은 두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할 거다." 

"네에, 네에." 

=== 

맨유의 다음 챔피언스 리그 경기 상대는 바로 AS 로마. 

세리에 A에서 최고의 '콩라인'이라고 불리는 로마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무시할 수 없는 팀이다. 

지난 시즌, 지지난 시즌 모두 리그 2위를 기록한 AS 로마는, 등수만 나열해놓았을 때 지금의 맨유와 같다고 볼 수도 있다. 

명실상부한 세리에 A의 강팀.  

그래서 전문가들은 챔피언스 리그 F조에서 맨유와 함께 16강에 진출할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이는 팀으로 로마를 꼽았다. 

그렇기 때문에 맨유는 로마를 반드시 꺾어야 했다. 

"시즌 시작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의 목표는 챔스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하는 것이다. 괜히 2위로 올랐다가 토너먼트 초장인 16강부터 강팀들과 맞설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오늘 홈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주장 게리 네빌이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 아웃을 선언한 상태고, 긱스 역시 교체 선수로 오늘 경기에서 빠졌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주장을 맡은 선수는 바로 폴 스콜스. 

과묵한 스콜스였지만 한 마디 하면서 사기를 끌어올렸다. 

"지난 시즌 우리는 로마를 만나서 7:1, 역사에 남을만한 대승을 거뒀지. 지금은 그 전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호날두까지 더해졌다. 절대 질 이유가 없어!" 

"멋지게 싸워서 멋지게 이기는 거다! 그 역사를 재현해보자고!" 

맨유는 항상 경기 전에 이런 전통이 있었다. 

오늘 경기 주장으로 출전하는 선수가, 각 선수들에게 한 마디씩 하면서 격려해주는 것이다. 

퍼거슨이 장착시킨 것인지 아니면 자기들끼리 만든 것인지 몰라도, 이것은 선수들의 정신을 부여잡는데 퍽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느낌이 좋았다. 

07-08시즌이 개막한 이래로 맨유는 현재 리그, 챔스, 컵 가릴 것 없이 무패 행진을 달리는 중이다. 

왠지 오늘 경기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마하면 가장 유명한 선수는 아무래도 프란체스코 토티일 것이다. 

많은 선수들이 그의 낭만과 이름을 기억했고 로마의 심장이라 불리는 토티였지만, 사실 그보다 더 주의해야 할 선수들은 따로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오는 데 로시는 로마 볼 배급의 중추야! 이 놈, 딴 생각 못하도록 꽉 잡아서 묶어 놔라. 그게 바로 로마의 목줄 움켜쥐는 일이야.' 

'만시니라고 다들 들어봤을 거다. 이 놈이 바로 세리에의 호날두라고 불리는 놈이다. 너희들 호날두 실력 알지? 근데 겨우 이딴 놈이 세리에에서 호날두라고 불리는데 우리가 가만 놔둬야 할까?' 

‘경기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잘한다 싶으면 조지고(?) 보면 되는 거야. 눈에 띄는 놈들만 철저하게 마크하면 알아서 나가떨어지게 되어있다.’ 

'저 놈들이 같은 리그 2위라고 까부는데... 실력 차이를 깨닫게 해줘라. 무조건 이길 수 있으니까 격의 차이를 보여줘! 왜 EPL이 최고의 리그라고 불리는지 세리에 놈들은 깨달을 필요가 있다.' 

복잡한 전술지시 따위 던져버렸다. 

퍼거슨은 오로지 위 네 마디 말을 끝으로 선수들을 그라운드로 내몰았다. 

그리고 그대로, 경기를 압도했다. 

데 로시에게 밀착 마크를 하면서 볼 배급을 착실히 방해하는 마이클 캐릭, 마찬가지로 만시니를 집중 견제하며 태클로 드리블 루트를 끊는 에브라와 비디치. 

이 두 개의 숨구멍은 바로 최근 AS 로마가 공격을 전개하는 주요 루트였다. 

퍼거슨의 주요 전술 테마는 거친 압박과 프레싱 플레이를 이 두 개의 루트를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피지컬과 활동량으로 주요 선수들 간의 패스 경로를 다 끊어버리니 질식당하는 것은 로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로마의 감독도 바보가 아닌지라 그대로 갚아주기 위해 맨유의 가장 큰 '숨구멍'인 호날두에 대한 압박과 견제를 쏟아냈지만... 

데 로시, 만시니와 호날두의 차이점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압박을 벗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지의 여부였다. 

호날두의 탈 압박, 볼 간수 능력은 결국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런 X! 제기랄!” 

로마의 수비수인 필리프 멕세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호날두가 공을 잡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면서 돌았다. 

마르세유 턴! 

로마의 골문을 지키는 수문장이라고 평가받던 자신이 손도 쓸 수 없을 만큼 가볍게 뚫렸다.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호날두 전담 마크 선수들이 보였다. 

그들은 이미 호날두에게 한 번씩 털린 이후였다. 

필리프는 속이 터졌다. 

‘미안할 행동 자체를 하지 말라고!’ 

그래도 자신의 장기인 속도로 겨우 따라붙어 호날두를 물고 늘어지는 필리프. 

그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게 몸으로 밀치고 다리도 걸었지만, 뭔 놈의 몸이 이렇게 단단한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다 붙어!” 

‘절대 슛 쏠 각도를 내주면 안 돼!’ 

하지만 역시 세계 최고의 선수. 

마르세유 턴 다음에는 크루이프 턴이었다. 

급격한 방향 전환으로 필리프를 포함한 로마 선수들을 가볍게 무너트리는 호날두. 

슛의 각도가 잡혔다. 

필리프가 몸으로라도 막으려 했지만 이미 그가 때린 공은 골라인을 넘은 후였다. 

[호날두 슈우웃! 들어갔습니다! 정확하게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 

[기가 막힌 개인기들로 로마의 수비를 깨트리는 크리스티안 호날두! 정말 이 선수는 매 경기가 하이라이트군요!] 

[선제골을 뽑아내는 호날두! 11경기 무패 기록을 이어나가려 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필리프를 포함한 로마 선수들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재롱(개인기)을 무분별하게 보이는 선수라면 오히려 템포를 잡아먹는 특성을 이용해서 막을 수 있을텐데, 호날두는 마치 자로 잰 것처럼 수비수들이 반응하지 못할 타이밍에만 자신의 발재간 능력을 드러낸다. 

여기에 피지컬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 순간순간의 판단력은 극도의 효율을 추구한다. 

반칙이 아니면 도무지 끊어낼 수가 없는데, 페널티 박스 안쪽이니 또 그럴 수도 없다. 

도대체 이런 사기캐릭터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의문을 넘어 답답할 지경이었다. 

“카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필리프 외의 다른 로마 선수들, 그리고 앞으로 맨유와 싸울 팀의 선수들 역시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리라. 

펠레, 마라도나, 디스테파노 등이 그러했듯 이것은 세기의 선수를 감당해야 할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이다. 

이것은 호날두가 이미 그들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 해야 하는 일 - 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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