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125)

< 07-08시즌 - 1 >

후반전에 들어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매운 맨유 팬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서 맨유 선수들은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더 힘을 내는 듯했다. 

만시니가 거의 숨도 못 쉴 지경으로 거친 견제와 압박 받아 지워지는 사이, 호날두는 로마의 왼쪽 라인을 거의 붕괴시키는 중이었다.  

‘세리에 A의 호날두라고? 헤이! 진짜 호날두를 만나 보고서 하는 소리야?'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축구팬들에게 호날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로마 선수들 3~4명씩 끌고 가면서도 끝끝내 공을 뺏기지 않고 강력한 슛을 날리는 장면은, 비록 골을 넣지 못했지만 이번 경기의 하이라이트에 들어갈 정도로 대단했다. 

캐릭의 패스를 이어 받은 루니의 추가 골까지 터지자 경기는 그대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호날두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게 만들어 팬 분들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그 유명한 크리스티안 호날두와 처음 경기를 해보았다. 내 감상은 흠... 그를 상대하는 막스와 필리프가 안타까워 보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충분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너무 빨리 팀이 무너진 것이 아쉽습니다. 호날두의 맨유는 정말 강했습니다.] 

3:0, 4:0 이런 식의 압도적인 경기 결과는 아니었지만 경기 내용적인 측면에서 로마는 맨유에게 완전히 압살 당했다 볼 수 있었다. 

데 로시와 만시니가 완전히 꽁꽁 묶여있는 사이에 호날두를 위시한 맨유 선수들은 로마를 가둬놓고 패다시피 경기를 이끌어갔기 때문이다.  

완벽한 경기 내용도 화제가 되었는데 로마 선수들과 감독의 ‘호날두에 대한 칭찬 일색’인 인터뷰 역시 많은 반향을 몰고 왔다. 

첼시에 이어서 로마전까지. 

자신들의 팀이 펼친 압도적인 경기력에 맨유의 팬들은 크게 고무되었다. 

그들은 '모든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다.' 라는 퍼거슨의 다짐이 어쩌면 실현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세리에 A의 호날두? 미안하지만 진짜 호날두는 만시니 따위와는 차원이 달라! 오늘 제대로 그것을 증명했군! 

- 오늘 경기는 정말 판타스틱 했어!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골을 넣었을 텐데, 그건 아쉽네. 

- 나는 퍼기와 크리스가 좋은 성적을 내줄 것이라 믿어. 지금 맨유는 베컴, 긱스, 스콜스, 네빌 등의 황금세대 이후 정말 최고라고! 

 ㄴ 이 경기력과 기세라면 그 때처럼 트레블이 가능할 지도? 

 ㄴ 오, 그건 정말 꿈만 꿔도 행복한 소리라고, 친구. 

- 설레발은 금물이야, 친구들. 시즌 시작한지 이제 겨우 한 달 반밖에 안 됐다고. 지난 시즌에 당해 놓고도 몰라? 

- 분명한 것은 호날두를 팔아버린 첼시가 현재 땅을 치며 후회할거라는 사실이지. 그들이 너무 불쌍해~ 

 ㄴ 이미 블루스들은 피터 캐넌과 프랭크 아르네센을 천하에 둘도 없는 쓰레기라고 욕하고 있던데ㅋㅋ 

 ㄴ 우리에겐 둘도 없는 ‘친구’지만ㅋㅋ 

- 맨유의 부활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중! 나는 그 가능성을 믿어! 

- 영감님...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어요...! 

=== 

[한껏 치열해진 EPL의 우승 경쟁! 이번 시즌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은 누구?] 

어느새 프리미어 리그는 16라운드 경기를 맞이하고 있다. 

각 구단들의 순위 경쟁이 무척이나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득점왕 경쟁은 어떨까? 

맨유를 제외한 타팀 팬들(특히 첼시 팬들)에겐 안타깝지만 거의 한 명이 독주를 하고 있는 중이다. 

1. 크리스티안 호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5골 

2.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아스날) : 10골 

3. 니콜라스 아넬카 (볼튼 원더러스) : 9골 

3. 로비 킨 (토트넘 핫스퍼) : 9골 

5. 로케 산타크루즈 (블랙번 로버스) : 8골 

5. 페르난도 토레스 (리버풀) : 8골 

...중략... 

3회 연속 발롱도르 수상자이기도 한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득점 행진은 놀랍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아직 프리미어 리그 경기는 23경기나 남아있는데 혼자서 15골을 몰아넣으며 압도적인 득점 1위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로테이션으로 빠진 경기들까지 계산에 포함시키면 최소 1경기당 1골을 집어넣는 득점력을 드러내는 중이다. 

다른 선수들이 전부 1골차 싸움을 할 정도로 득점 경쟁이 치열한데 나 홀로 신계에서 하계의 인간들을 근엄히 지켜보는 꼴이다. 

물론 아직 시즌은 끝나려면 멀었고 득점 개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왠지 다른 순위는 다 바뀌어도 1위 자리만큼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호날두가 장기 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중략... 

다른 득점왕 경쟁자들과의 많은 차이를 벌려놓은 호날두는 다가오는 16일, 리버풀 원정 경기를 떠난다. 

첼시 시절에도 다른 팀 상대로 다 잘했지만 리버풀에게는 특히 가혹했던 호날두. 

과연 맨유에서도 그 때만큼의 강력함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그는 맨유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 23경기 남았는데 2위랑 5골차... 시즌 종료되면 한 15골차 정도로 벌어지려나? 

- 와, 진짜 득점력이 미친(crazy) 수준인데? 첼시 시절보다 더 대단해진 것 같아. 

 ㄴ 실제로 그 때보다 더 득점 페이스가 올랐음. 

- 첼시서 뛰었던 세 시즌동안 05-06시즌의 득점기록이 가장 좋은데, 지금 호날두는 그 때보다 더 많이, 더 빠른 페이스로 득점을 쌓아나가고 있어. 

 ㄴ 와우... 설마 2년 만에 또 다시 EPL 득점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은 아니겠지? 

- 저 선수들 전부 원톱이나 투톱 스트라이커인데 호날두 혼자만 윙어야ㅋㅋㅋ 

 ㄴ 심지어 압도적인 득점 1위... 진짜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캐릭터라니! 

=== 

2007년 12월 16일은 맨유 팬들에게 아주 의미가 깊은 날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숙적이자 최고, 최악의 라이벌, 리버풀과의 경기가 있는 날 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팀에게 다 져도 리버풀에게만큼은 져서는 안 된다!' 는 문구는 맨유의 서포터, 레드 데빌스들의 상징과도 같은 것. 

최대 라이벌 전을 앞두고 클럽 전체에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꼴도 보기 싫은 리버풀의 입에 골을 처박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지기라도 한다면 온갖 욕을 다 먹을 것이다. 

승리한다면 최고의 영광을! 

패배한다면 최악의 치욕을! 

그야말로 선수로서 극과 극을 맞볼 수 있는 경기. 

맨유는 현재 12승 3무 1패로 승점 39점, 리그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언제나 우승후보로 뽑히지만 막상 우승은 하지 못하는 아스날이 승점 37점으로 2위, 무리뉴를 내쫓고 그나마 반등에 성공한 첼시가 승점 34점으로 3위였다. 

무리뉴의 뒤를 이어서 감독이 된 아브람 그랜트는 잉글랜드에선 거의 무명감독이었지만, 위기에 빠진 팀을 나름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면서 무패행진을 이어나가는 중.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의 해답이 언제나 감독 경질은 아니었지만, 희한하게도 첼시는 이런 식으로 감독을 교체하면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어쨌든 아스날, 첼시와의 승점 차가 크지 않은 만큼 무조건리버풀을 이긴 다음에 뒤를 생각해야 한다. 

맨유에게 최선의 수는 당연히 베스트 11을 동원해서 전력을 다해 원정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야 하는 것. 

누구나 다 이런 식으로 전력분배를 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퍼거슨은 조금 달랐다. 

“설마 리버풀 전을 적당히 넘어가고 나중을 도모하실 생각이십니까?” 

“뭔 소리야, 당연히 그 놈들을 때려잡아야지!” 

“그런데 이 미드필더진은....” 

하그리브스-안데르손-긱스-호날두 

호날두는 핵심 멤버고 긱스 역시 주전 선수. 

하지만 안데르손과 하그리브스라니?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로테이션 멤버가 아닌가? 

전력분석 팀의 일원인 케일렙의 의문은 당연했다. 

누가 뭐래도 4-4-2에서 맨유의 최고 미드필더 라인은 긱스-스콜스-캐릭-호날두였으니까. 

“핵심이건, 로테이션이건 상관없어. 어차피 이기면 그만 아닌가? 오히려 스콜스, 캐릭을 바로 다음 경기에 써먹을 수 있으니 이득이지.” 

“하, 하지만...” 

“정 의심가면 이 놈에게서 확신을 얻으면 되겠지.” 

퍼거슨은 어딘가에 전화 걸더니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다. 

이윽고 매니저 룸에 한 선수가 찾아왔다. 

크리스티안 호날두였다. 

“이 멤버들을 이끌고도 이길 수 있겠지?” 

퍼거슨은 다짜고짜 다음 경기 선발 라인업을 호날두에게 들이밀면서 물었다. 

훈련하다가 뛰어온 호날두는 황당해했다. 

“왜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나요?” 

“빨리 말하기나 해. 이길 수 있어? 없어?” 

“...뭐, 못 이길 것까지는 없지만...” 

“거 봐, 이 녀석도 이길 수 있다잖아?” 

못 이기면 나 말고 이 녀석한테 따지면 되는 일이지. 

호날두가 코웃음을 쳤다. 

“감독 탓이죠.” 

“네놈 탓이지.” 

“뭐, 하실 말씀은 이게 다인 것 같으니 저는 훈련하러 가보겠습니다. 리버풀을 상대로 승리할 전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바로 나가버리는 호날두를 보면서 퍼거슨이 ‘건방진 녀석...’ 이라면서 욕을 한다. 

하지만 맨유의 독재자에게 버릇없이 굴어도 멀쩡한 사람은 호날두가 유일할 것이다. 

어쨌든 퍼거슨도 그렇고 호날두도 그렇고 리버풀 전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과 말투. 

케일렙은 더 생각하길 포기했다. 

역시 천재들 사이에 끼어든 일반인은 괴롭다. 

“보스가 무슨 일로 불렀던 거야?” 

“재밌지도 않은 농담 따먹기 하려고 불렀어. 그래서 그냥 무시하고 나왔지.” 

그러면서 늘어지게 하품하는 호날두. 

박치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버풀 전을 맞이하여 모든 맨유 선수들이 초긴장상태인데 호날두만큼은 전혀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온 몸이 간 덩어리로 이루어졌나? 

“아 참, 치성. 너 리버풀 전 교체 명단에 들었더라?” 

“응? 진짜!? 어떻게 알았어?” 

“영감이 보여줬어. 그러니까 괜히 안 나올 것 같다면서 자괴감 갖지 말고 열심히 하자고.” 

호날두, 테베즈 등이 새로 영입하면서 출전기회가 대폭 줄어든 박치성. 

백업멤버로 밀려나 컵 대회 위주로 출전하는 스스로에 대해 실망감이 들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 리버풀 원정 경기 명단에 포함이 되었다니! 

선발 명단은 아니었지만 거기까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던 박치성은 뛸 듯이 기뻤다. 

“뭐? 크리스가 리버풀 전 선발 명단을 알고 있다고!?” 

“진짜야? 나는 어때, 크리스!?” 

“나는 선발 명단에 있어? 빨리 말해줘!” 

“나는? 나는!?” 

“나머지는 영감님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좀비처럼 달려드는 맨유 선수들을 피해 달아나는 호날두였다. 

어쨌거나 박치성은 눈빛이 바뀌었다. 

원래도 절대 소홀히 팀 훈련에 임하는 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마음가짐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교체선수로 들어오더라도 반드시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퍼거슨의 눈 안에 들어가리라 다짐하는 박치성이었다. 

=== 

[두더지 같은 레드 데빌스에게 독 바른 창칼을!]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빨간 물의 애송이들아!] 

[발모가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크리스티안.] 

[노망난 영감탱이가 묻힐 곳은 바로 이곳 '안필드'.] 

확실히 첼시 시절보다 맨유의 선수로서 맞이하는 리버풀의 홈 경기장은 훨씬 더 험악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였다. 

유독 호날두 자신을 욕하고 조롱하는 걸개들이 많이 보였다. 

그만큼 자신이 리버풀에게 위협적인 선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호날두. 

이 분위기에 골이라도 한번 넣어주면 다들 좋아서 자지러지겠지? 

그런 호날두에게 콥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헤이! 크리스티안! 왜 하필 쓰레기 팀인 맨유로 간 거야? 리버풀이 더 좋은 클럽이라고, 이 등신 같은 새끼야!" 

"클럽 고르는 선구안도 없는 멍-청-한 새끼! 오늘 맨유와 함께 처절하게 몰락할 준비나 하라고!" 

"얼빠진 포르투갈인의 얼빠진 플레이를 한 번 지켜보겠어!“ 

“겁도 없이 맨유 유니폼을 입고 안필드에 들어와? 제대로 된 야유가 뭔지 보여주지! 리버풀 엠블럼만 보면 오줌을 지리도록 말이야!" 

"그 다리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호날두! 우리 선수들은 아주 투쟁적인 파이터들이니까!" 

호날두가 지나갈 때마다 모욕적인 언사들과 욕설, 야유가 쏟아졌다. 

과연, 이게 바로 진짜 라이벌전인가. 

첼시 선수로 뛰었을 때 토트넘, 아스날과도 치열한 더비전을 치렀는데 맨유-리버풀은 역시 차원이 달랐다. 

호날두는 야유하는 관중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줌으로써 화답을 해주었다. 

리버풀 관중들은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빙빙 돌리면서 쟤 미친 거 아니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라운드의 반대편에 리버풀 선수들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은 단단히 굳어있었고 그만큼 절대 질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중이었다. 

만약 오늘 경기에서 패배한다면 저 관중들의 야유와 욕설, 조롱은 자신들을 향할 테니까. 

스티븐 제라드, 페르난도 토레즈, 페페 레이나, 제이미 캐러거,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알바로 아르벨로아, 다르크 카윗 등등. 

거를 타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바로 지금의 리버풀을 이끄는 역전의 멤버들. 

괜히 ‘이 시절 리버풀의 유일한 약점은 바로 구단주.’ 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조지 질레트와 톰 힉스라는 무능하고 욕심 많은 인간들이 아니었으면, 리버풀은 정말 우승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 두 개의 눈을 뜨고 내가 하는 패스들을 잘 봐. 그리고 너는 바로 그것들을 차서 득점으로 연결하는 거야! 그러면 이길 수 있을 거야... 그렇지." 

"그래, 그래, '빌드다운'이나 '팀킬타카' 같은 짓만 하지 마라." 

안데르손이 하는 말에 적당히 대꾸해주는 호날두. 

아직도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문맥상 이상한 말들을 내뱉는 재주가 있는 안데르손은, '빌드다운? 팀킬 타카?'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중에 너의 스페셜 영상을 채울 묘기들이라며 호날두는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삐이익-! 

안필드에서 펼쳐지는 리버풀 VS 맨유. 

드디어 그 경기가 시작됐다!

< 07-08시즌 - 1 > 끝

ⓒ 아이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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