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25)

< 07-08시즌 - 5 >

이미 완벽하게 무너진 뉴캐슬이었지만 프로의 세계는 생각보다 더 잔인하고 냉정한 법. 

퍼디난드의 헤더 골로 스코어는 5:0, 루니의 발리슛이 터지며 6:0. 

뉴캐슬 팬들과 선수들에게는 가히 지옥으로 기억될 하루가 분명했으리라.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기 종료 3분전, 먼 거리에서 찬 프리킥까지 골로 연결시킨 호날두는, 선수생활 최초로 한 경기 네 골을 기록하고야 말았다. 

일명 ‘포트트릭’이었다. 

[오늘 맨유는 전체적으로 대단히 뛰어났고 대단히 강력했습니다. 마치 프로와 아마추어가 경기하는 것처럼 뉴캐슬와의 ‘격의 차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중 단연 넘버원은 크리스티안 호날두입니다!] 

[저희가 해설을 하면서도 몇 번이나 소리 지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려 4골 1어시스트입니다! 뉴캐슬의 지난 3번의 경기에서 넣은 골보다 호날두 선수 혼자서 넣은 골이 더 많습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클래스에요!] 

[이번 득점으로 무려 리그 23골의 고지에 오른 크리스티안 호날두!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페르난도 토레스, 로케 산타 크루즈 등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득점 선두의 자리로 치고 올라갑니다!] 

7:0, 역사적인 대승. 

그리고 이 대승의 주역에는 4골을 폭격한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있었다. 

오늘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다시금 실감했을 것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지금은 명실상부한 호날두의 시대였다. 

=== 

뉴캐슬 전의 대승! 

이렇게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상대팀을 떡 실신시킨 경기가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맨유 팬들은 행복감에 젖은 최고의 일주일을 선물 받았다. 

또한 대단한 경기력으로 대승을 이끈, 맨유 선수들에 대한 칭찬이 줄을 이었다. 

모든 잉글랜드 언론이 맨유의 대승을 이끈 선수들의 굉장한 활약과 완벽했던 경기에 주목했다. 

각 지역의 일간지들은 맨유의 승리를 극찬하며 대서특필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첼시가 대승을 거뒀을 때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정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지우, 뭐하니?" 

"음... 신문 읽어요. 아, 여기 크리스의 뉴캐슬 전 활약을 칭찬하는 글도 있어요." 

“윽, 그만해. 주변에서 하도 보여줘서 물렸단 말이야.” 

“대표적으로 케슬린이 있겠죠?” 

“정답!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있어.” 

눈가를 좁히면서도 호날두의 말에 제깍제깍 대답하는 지우였다. 

흘깃 바라보니 영어로 된 신문을 억지로 읽는 듯 살짝 끙끙댄다. 

아무리 스펀지처럼 외국어를 빨아들일 수 있는 나이라 해도, 어려운 단어들이 잔뜩 담긴 것을 읽는 건 힘들 텐데 내색 한번 없다. 

어린 지우의 모습에 옛날 생각이 났다. 

‘정지우’도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신문을 읽었지. 

보육원에서는 읽을 책이 부족했기 때문에 운동하고 남은 시간에 눈에 보이는 신문을 조금씩 읽었고 나중에는 그게 일상이 되었다. 

결국 꾸준히 신문을 읽었던 그 습관이 과거로 돌아간 자신에게 떼돈을 벌게 해주었지만 말이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왔는데 한번 보지 않을래?" 

"특별한 손님이요?" 

빠꼼히 고개를 든 지우.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눈 작은 사내와 시선을 마주했다. 

지우의 눈이 커졌다. 

"어? 박치성 선수!?" 

"너와 같은 나라인 맨유의 선수야. 당연히 알지?" 

"마, 만나서 정말 반가워. 와... 크리스가 했던 말은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네." 

호날두로부터 한국인 축구 유학생을 키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박치성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 때는 그냥 자신을 놀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더랬다. 

지금 와서는 살짝, 아니 상당히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호날두가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세상에! 한국말로 한국 소년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호날두라니? 

그것도 완전 네이티브한 발음으로! 

"크, 크리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 저 아이는 언제부터 입양한 거야? 아니, 아니... 너, 한국말을 이렇게 잘했어?" 

“하하하, 그 때도 내가 한국말 한마디 하자 깜짝 놀랐었는데 벌써 까먹은 거야?”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건 완전히 혼돈의 카오스야!” 

"혼돈이나 카오스나 같은 말 아닌가. 어쨌든 치성, 많이 혼란스러워 보이는데 일단 나는 지우를 입양한 게 아니야. 그저 지우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후원자의 형식으로 그를 데려온 거지. 한국말은 뭐... 예전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한테 배운 거고."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이는 박치성을 내버려두고 호날두는 지우의 팔을 이끌었다. 

"인사해. 내 동료인 박치성이야. 잘 알지?" 

"물론 알죠!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잖아요? 크리스의 단짝이고. 반갑습니다, 박치성 선수! 꼭 만나 뵙고 싶었어요." 

“어... 어...! 그래...!” 

지우는 분명 기뻐하고 있었지만 호날두가 생각했던 반응만큼은 아니었다, 

만약 지금 지우의 나이에 ‘정지우’를 대입, 박치성이 눈앞에 있었다면 정말 좋아서 까무라쳤을 텐데. 

"반응이 왜 이렇게 싱거워. 눈앞의 치성은 코리아의 우상이라고! 더 신나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지우는 그저 호날두를 힐긋 보다 말았다. 

이건 무슨 의미지? 

"내가 비록 지금은 너의 보호자역할을 맡고 있지만, 같은 국적의 사람이 아니다보니까 케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거야. 지우도 알다시피 여기 박치성은 내 가장 친한 동료이기도 해. 앞으로 가끔 와서 말동무도 되어주고 축구 실력도 봐주고, 여러 부분에

서 너의 멘토가 되어줄 거야. 안 그래, 치성?" 

"다, 당연하지. 지우라고 했지? 이렇게 먼 타지에서 같은 한국인을 보게 되니 너무 반갑다야! 혹시라도 어려운 일 있으면 형한테 말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도와줄 테니까." 

"형이라니? 치성. 지우는 너와 무려 16살 차이라고. 아저씨나 삼촌이 맞는 말이지." 

"제발 크리스...! 그런 단어까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야.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내뱉는 자신의 모습에 박치성이 기겁을 하건 말건.  

어쨌거나 지우와 박치성을 이어주는데 성공한 호날두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맨유에서도 근면성실함과 투철한 프로의식으로 인정받는 박치성은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 위치나 파워가 언터쳐블이다. 

국가대표팀의 주장이기도 했으며 ‘탈 아시아’적인 플레이로 수많은 한국 축구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만약 지우가 박치성과 아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박치성의 제자 또는 후계자 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적어도 지우가 한국 국가대표팀에 입성했을 때, 어느 누구도 그를 무시하거나 얕잡아 볼 수 없으리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축구를 대하는 마음가짐에서도, 박치성은 지우에게 더 없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호날두는 박치성을 끌어들인 것이다. 

자신이 겪었던 텃새나 여러 어려움들을 지금의 지우가 겪지 않고 꽃길만 걸었으면 하는 심정에서. 

하지만 왠지 지우는 그렇게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는데... 

"지우야, 왜 그래? 뭐 불편한 점이라도 있니?" 

"그게 아니고요... 박치성 선수와 만나는 것은 좋은데... 사실 그렇게 한국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없어서요. 보육원 친구들이라면 보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전화를 가끔 하니까..." 

그렇다. 

한식 요리사에 한국말 잘하는 호날두도 있다.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배움의 의지가 향수병을 막았다. 

지우는 지금 하루하루 실력 쌓는 재미밖에 모르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박치성 선수에게 제가 축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걸로 크리스와 축구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아, 그건 절대로 아니야, 지우야." 

혼란의 카오스(?) 상태에서 벗어난 박치성이 먼저 와서 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다정하게 지우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나는 그냥 지우가 보고 싶어서, 지우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온 거야. 그걸로 인해서 지우가 크리스와의 만남이 적어지는 것은 나도 바라지 않아. 내가 둘 사이에 어떻게 끼어들 수 있겠어?" 

"치성의 말이 맞아. 여기가 내 두 번째 집이고 네가 있는데 발걸음을 줄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호날두는 오랜만에 지우를 어깨 위로 올려서 무등을 태워주었다. 

옛날과는 확연히 달라진 무게가 느껴졌다. 

"치성은 나와는 여러모로 달라.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너를 봐줄 거야. 내가 가르치기 어려운 것들을 치성에게서 따로 배우렴. 열심히 배워서 쑥쑥 성장해야지. 그래야 나와 같은 그라운드에서 뛸 날이 오지 않겠어?" 

"물론이에요, 크리스! 저는 언제나 그 날을 바라고 있어요." 

호날두와 지우가 서로를 보고 씨익하며 웃었다. 

박치성은 두 사람의 웃음이 참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나... 누굴 가르치는 것은 딱히 자신이 없는데...”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 몰라? 다 열심히 하면 늘게 되어있어.” 

호날두의 말에 그저 머리만 긁적이는 박치성이었다. 

"크리스는 이제 첼시의 유니폼은 입지 않는 건가요?" 

"으음...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왜?" 

"그냥... 파란 유니폼을 입은 크리스가 더 보기 익숙해서 그런 거죠." 

박치성이 일이 있어서 떠난 후, 지우는 호날두의 앞에서 자신의 늘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중이다. 

공을 다루는 테크닉의 기본은 바로 볼 터치와 트래핑. 

어린 나이임에도 지우는 벌써부터 통통거리며 유연한 볼 컨트롤을 보여주고 있었다. 

“좋아하는 팀을 바꾼다는 게 쉽지만은 않지?” 

“...딱히 그런 게 아니라...” 

지금의 지우 역시, 자신과 만나기 전부터 호날두의 광팬이었다.  

같이 잉글랜드로 넘어가면서 더욱 호날두가 좋아진 지우는 자연스럽게 호날두가 뛰던 첼시의 팬이 되었다. 

근데 그런 호날두가 맨유로 이적했다. 

첼시의 팬이 된 지우는 그때부터 의무적으로 맨유를 응원하는 중이라는데... 썩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하긴, 나도 호날두가 맨유에서 레알로 갔을 때 많이 심란했었지. 어디를 응원해야 할까 하면서.' 

이곳 유럽에서는 응원하는 팀이 없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어린 나이들끼리는 더욱 그랬고. 

그래서 지우는 첼시를 좋아하기로 '정했고' 계속 첼시의 팬으로 생활해왔다. 

이는 학교와 축구 아카데미에 다니는 지우가 선택한, 집단과 어울리는 방법이기도 했다. 

"굳이 첼시를 좋아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맨유를 좋아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어. 어차피 지우는 나를 응원하고, 내가 잘하는 것이 첫 번째잖아?" 

"그건 당연한 말이죠. 저는 크리스의 가장 열렬한 팬이니까요." 

"네가 진짜 좋아하는 팀은 나중에 정해도 돼. 아니, 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나중에 뛰게 될 팀이 바로 네가 좋아하는 팀이 될 테니까." 

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구보다도 성실한 태도와 누구보다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재능과 여건의 차이를 뚫고 끝내 국가대표가 될 정도로 축구에 열정적인 지우다. 

다른 여러 가지 부족함이나 여건 등은 이제 자신이 채워줄 수 있다. 

호날두는 조언자로서, 후원자로서 지우의 뒤에 남기로 했다. 

그가 정말 자신과 같은 그라운드에서 뛰게 될지는 모르는 일. 

하지만 그 날을 끝까지 기다려 줄 것이다. 

=== 

맨유의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상대는 바로 올랭피크 리옹! 

올랭피크 리옹은 현재 프랑스 축구 리그인 리그앙을 대표하는 팀이었다. 

01-02시즌부터 무려 6시즌동안 리그 챔피언의 타이틀에서 내려오지 않은 리그앙의 절대강자. 

카타르 국왕의 엄청난 자금력을 등에 업은 파리 생제르망이 등장하기 전까지, 리그앙은 바로 리옹의 독주무대였다. 

리옹의 핵심 선수라면 단연 카림 벤제마. 

나중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는 그 벤제마가 맞다. 

그리고 그를 받쳐주는 킴 칼스트롬, 파비오 그로소, 시드니 고부, 벤 아르파, 마지막으로 리옹의 레전드이자 그 유명한 프리킥 달인, 주닝요까지 포진된 무시 못 할 클럽.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비교는 상대적인 거다. 

리옹이 강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면? 

백이면 구십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이미 맨유는 리옹의 홈 경기장인 파르크 올랭피크 리오네에서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제 맨유의 홈,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2차전만이 남겨두고 있는 상황. 

많은 사람들은 이번 챔피언스 리그의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후보 중 하나로 맨유를 뽑았다.  

그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일단 무조건 8강에 올라야 할 것이다.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서 맨유는 승점 69점으로 아스날과 4점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리그 경기는 10경기.  

후반기에 무너지지 않고 이 기세를 이어갈 수 있다면 맨유는 무려 4년이나 하지 못했던 리그 우승을 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지금 맨유의 목표는 겨우 리그 우승 트로피 하나가 아니다. 

'Again 1999!' 

위대한 트레블의 업적. 

그 때의 영광을 재현해내는 것이 목표. 

[모든 대회의 우승 트로피를 다 노리겠다! 알렉스 퍼거슨, 거대한 포부 밝혀.] 

퍼거슨을 제외한 맨유 관계자들과 팬들은 최대한 설레발은 자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기대감을 감추는 행위였다. 

이미 맨유는 FA컵 8강에 올라 우승까지 단 3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리그는 1위. 

오늘 리옹과의 경기는, 트레블이라는 엄청난 업적에 대한 가능성을 점지해보는 장이 될 것이다. 

                                                                                                           

“나는 이미 월드컵 우승을 해냈어. 이제 남은 것은 트레블이야.” 

                                                                          

월드컵 우승에 트레블까지 달성한다. 

이 정도라면 ‘크리스티안 호날두’라는 이름에 부족하지 않은 스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07-08시즌 - 5 > 끝

ⓒ 아이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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