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125)

< 07-08시즌 - 6 >

"지난 원정 경기는... 솔직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론에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지는 모두 알 거다.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리옹 정도 되는 클럽은 간단히 꺾을 수 있어야 해! 우리는 너무 소극적으로 경기했고 골 결정력도 좋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잘하면 된다. 우리의 본 실력을 보여주면 돼! 너희들이 잘하는 거 있잖아? 기세로 찍어 누르자고! 이곳 올드 트래포드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경기장인지, 레드 데빌즈들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보여주자고! 반드시 멘탈에서 먼저 바닥을 드

러내는 놈들이 나올 거다. 가서 그 놈들부터 족쳐! 그러면 이겨." 

선수들에게 ‘오늘 경기는 반드시 이길 수 있다!’ 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 

그것만큼 선수들의 사기를 드높이고, 그들의 잠재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일이 없다. 

선수단 전력의 100%, 120%를 쏟게 만드는 퍼거슨만의 지략. 

  

퍼거슨은 주문한 이번 경기의 테마는, 속공으로 풀어가는 화끈한 공격 축구. 

최근 리옹이 마르세유에게 패배한 경기를 분석한 퍼거슨의 나름대로의 해법. 

그는 상황에 따른 전술 변화를 물 흐르게 전개하는 것을 선호하는 감독이었고, 당연히 선수들도 복잡한 상황 변화 속의 모든 대응 유형들에 대해서 훈련하고 숙지해야 했다. 

그것은 분명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견디고 나면 자신의 실력이 성장했음을, 팀의 전력이 강해졌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퍼거슨은 '퍼거슨'인거다. 

나니-루니-호날두 

안데르손-캐릭-플레처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브라운 

반 데 사르 

4-3-3 포메이션의 우측 인사이드 포워드로 자리 잡은 호날두는, 퍼거슨의 조언을 잊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며 리옹의 선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호날두. 

살짝 어색해하며, 몸을 움츠리고, 얼굴빛이 좋지 않은, 한마디로 의기소침해 보이는 선수들이 과연 있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큰 경기에 천성적으로 약한 이들. 

괜히 육체가 정신의 창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바로 오늘 경기, 맨유의 주요 공격루트가 될 것이다. 

'특히 나니를 상대해야 할 풀백이 좀 겁을 먹은 것 같은 걸?' 

먹이를 노리는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다. 

이곳은 전장이고, 약하면 먹힌다. 

만약 스위칭 플레이를 하게 되면 필히 그곳을 후벼 파리라 호날두는 다짐했다. 

삐이익-! 

경기 시작하기가 무섭게 맨유는 리옹에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홈경기의 이점을 노린 빠른 볼 탈취 후 역습 전술은, 올드 트래포드의 맨유가 즐겨 사용하는 트레이드마크. 

그 중에서도 잔상이 보일만큼 빠르게 돌진하는 선수는 바로 호날두였다. 

"나니! 이쪽으로!" 

맨유가 포백진을 가동해서 수비라인을 갖추는 사이, 호날두가 볼을 가진 선수에게 달려들어 위협하고 나니가 그 뒤를 감싸면서 공을 탈취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맨유 전방 압박의 풍경이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리옹의 선수가 급하게 횡 패스를 하려다 호날두의 긴 다리에 걸려서 공을 놓쳤다. 

그것을 뒤에서 달려오는 대런 플레처가 잡아채면서 경기 시작 20초 만에 턴 오버가 일어났다. 

선축을 잡았건만 제대로 된 공격조차 하지 못한 채 볼을 빼앗긴 리옹 선수들은 벌써부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속공은 늦었어! 볼 돌리면서 천천히 공격해!"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는 퍼디난드의 말에 플레처는 템포를 늦추면서 천천히 공을 앞으로 당겼다.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맨유 선수들. 

리옹의 선수들도 압박을 통해 공을 낚아채려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기량 차이가 있었으며, 이곳은 맨유의 홈인 올드 트래포드다. 

경기 극 초반부터 리옹은 맨유에게 끌려 다녔다. 

맨유의 최근 분위기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는 장면. 

선수들이 실수해도 바로바로 다른 선수가 달려와서 빈자리를 메워주었다. 

안데르손이 공을 뺏길 뻔하던 것을 비디치가 세컨 볼을 따내면서 지켜냈다.  

드리블이 끊긴 루니가 공을 놓쳤어도 호날두가 바로 달려와서 볼을 따내면서 공격권을 이어갔다.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동료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공의 궤적 방향의 숫자 우위를 지킨 맨유는, 경기 초반부터 압도적인 점유율과 공격 선택권을 가져갈 수 있었다. 

[루니의 실책을 감싸면서 공을 챙기는 호날두! 루니가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역시 대단한 선수입니다. 맨유 선수들은 이 선수와 함께 뛰는 것이 정말 든든할 것 같아요!] 

[리옹을 숨도 못 쉬게 압박하는 맨유! 이들의 기세가 정말로 무섭습니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이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군요. 이것은 퍼거슨의 매직인가요, 아니면 맨유 선수들의 기량인가요?] 

[레알 마드리드의 저승사자라고도 불리는 올랭피크 리옹을 이렇게 압도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골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이 정도 경기력이라면 득점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죠!] 

마침내 기회가 왔다. 

툭, 툭, 툭, 툭. 

퍼거슨에게 ‘속공을 자주하라!’ 라는 주문을 받았지만 그것을 적절할 때에 잘 풀어내는 것은 선수들의 몫. 

가볍게 공을 돌리는 맨유 선수들은 서로 사인을 주고받으면서 기회를 엿본다. 

살짝 다리가 꼬인 리옹 선수 한명이 실수를 하자 대런 플레쳐는 전방의 크리스티안 호날두에게 바로 공을 보냈다. 

이윽고 일제히 상대 진영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 

공을 잡은 호날두의 전매특허 돌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빈 공간을 향해 공을 차고 전력 질주하는 호날두를 잡아챌 수 있는 리옹 선수들은 그라운드 내에서 없었다. 

안간힘을 써도 호날두의 꽁무니조차 닿을 수 없었다. 

리옹 선수들은 불공평하다 못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전력질주를 함에도 불구하고 공을 몰고 달리는 호날두보다 느리다니! 

[맥기디 턴! 맥기디 턴이 터집니다! 역시나 놀라운 개인기를 선보이면서 리옹 선수들을 제치는 호날두! 대단한 탈 압박 능력!] 

[개인기를 부려야 할 정확한 타이밍에 딱 그것을 사용하는 호날두 선수입니다! 위험지역까지 공을 끌고 들어갑니다!] 

돌파는 성공적. 

어느새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접근할 수 있었던 호날두. 

리옹의 원정 팬들이 자신의 허벅지를 쥐어뜯으면서 제발 골만은 터지지 않아 달라며 기도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날두는 아주 잠깐 동안 전진을 멈추며 템포를 조절, 최선의 판단을 뽑아내는 중이었다. 

이미 중앙에는 떡대 좋은 리옹의 선터백들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호날두를 노려보고 있었다. 

‘중거리 슛? 득점 확률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으니 제외. 그렇다고 스루 패스를 날릴 공간도 없고, 중앙 수비가 두터워서 저걸 다 뚫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네.’ 

전성기의 메시가 자주 보여주는 미꾸라지처럼 파고들어서 골을 만들어내는 드리블을 상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호날두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그처럼 수비 틈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내는 드리블 돌파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어쨌든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가장 합리적인 공격 루트를 파악한 호날두는 바로 그것을 이행했다. 

왼쪽 사이드에서 기웃거리는 나니에게 망설임 없이 살짝 높은 패스를 주는 호날두. 

호날두의 사인을 받은 나니가 공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슛을 때리는 나니! 

하지만 리옹의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고 세컨 볼을 리옹 수비수가 챙기면서 맨유의 공격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도 좋은 시도였다며 맨유 선수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선수들의 몸이 전체적으로 가벼워 보여.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나니의 반응속도도 그렇고 루니, 플레쳐 등의 몸놀림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방심은 금물이다. 

경기 시작 후 약 25분간은 오로지 맨유의 공세만이 계속되었다. 

리옹도 적극적으로 달라붙어서 볼 탈취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그 역습은 맨유의 철벽같은 수비진에 막히며 계속 무산되었다. 

믿음직스러운 수비진이 경기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 

그 덕분에 호날두를 비롯한 공격진들은 뒷공간 털릴 염려 없이 계속해서 파상공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계속 두드리면 언젠가는 열리는 법이다. 

리옹 수비진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는 칭찬받을 만 했지만 맨유는 끝끝내 기회를 만들었다.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낮은 강슛을 때려 넣은 호날두. 

시야가 가려진 리옹 골키퍼는 절대로 이것에 반응할 수 없었다. 

[크리스티안, 슈우웃! 들어갑니다! 골입니다! 골!! 크리스티안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챔피언스 리그 8강에 한 발 올려놓는 골을 결정적인 넣습니다!] 

[저런 식으로 낮게 들어가는 공은 오히려 골키퍼가 막기 정말 힘들죠! 설령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저 슛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맨유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 내는가 싶었는데 결국 뚫리고 말았습니다. 리옹에게 남은 것은 연장승부라도 벌일 수 있도록 한 골을 넣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넣었던 호날두의 다른 골들이 기술적으로 대단한 골이었다. 

하지만 지금 골은 상대 선수들의 심리적인 사각을 이용한 센스를 발휘한 것.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움직임에 만족스러운 골이었다.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호우-!' 세레머니가 나온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골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면서 득점의 여운을 느끼는 호날두. 

매 경기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더, 조금 더. 

호날두는 차근차근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직 경기 끝난 거 아니다! 저쪽에서 한 골 넣으면 바로 연장 승부야!“ 

“진짜 방심하다가 한 골이라도 먹히는 날에는 나한테 뒤지게 쳐 맞을 줄 알아!" 

적절한 퍼거슨의 호통은 맨유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퍼거슨이 존재하는 한, 맨유 선수들이 방심해서 털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진 리옹은 라인을 올리면서 공격적인 맨유의 공세에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1:0으로 지나 2:0, 3:0으로 지나 탈락하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리스크를 동반하는 법이고, 맨유는 그렇게 해서 노출된 리옹의 약점을 충분히 헤집을 수 있는 팀이다. 

호날두, 나니 같은 빠른 윙어들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니 쪽의 풀백이 오늘 잔 실수가 많았지.' 

경기 초반부터 리옹의 우측 측면 수비수가 살짝 얼어있는 것을 기억하는 호날두. 

거친 몸싸움 끝에서 공이 공중으로 튕겨져 나왔다. 

그것을 따내기 위해서 달려드는 선수들 속에서 가장 먼저, 가장 높이 뛰어서 머리로 받아낸 호날두. 

안 그래도 살짝 좌측에 치우쳐있던 호날두는 아예 그쪽 포지션의 윙어처럼 바로 돌파를 시도했다. 

 호날두의 피지컬을 당해내지 못해 리옹 선수들은 고무공처럼 튕겨져 나간다. 

역시 긴장했는지 리옹의 우풀백은 반응이 살짝 늦었다. 

그리고 그것은 호날두에게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호날두와 골키퍼 사이에는 단 한 명의 수비수도 없었다! 

물론 너무 좌측으로 치우쳐졌기에 바로 공을 찰, 각도도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호날두는 애초에 골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의 시야 안쪽에는 웨인 루니가 두두두 소리를 내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마음이 척척 맞는다. 

기다릴 것 없이 루니의 바로 발 앞까지 깔끔한 킬 패스를 날리며서 공을 배달하는 호날두. 

루니의 투박한 볼터치로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된 패스. 

루니는 그 공을 한번 터치한 다음 바로 걷어찼고, 리옹의 골 네트를 출렁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2:0이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면서 뛰어다니는 루니. 

맨유의 선수들이 그의 곁에 달라붙어서 같이 기쁨을 나누었다. 

이 플레이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감독 석에 앉아 껌을 쩍쩍 씹던 퍼거슨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너 주먹을 움켜쥐면서 포효를 내질렀다. 

이제 승리를 확신하는 레드 데빌즈들!  

올드 트래포드의 붉은 물결이 넘실거렸다. 

“크리스, 네 번호야.” 

“이제 들어갈 때가 된 것 같네.” 

“오늘도 정말 수고했어!” 

“멋졌어, 크리스!” 

1골 1어시를 기록하면서 오늘의 승리에 크게 기여한 호날두는 퍼거슨의 명령 아래에 교체되었다. 

그 대신 들어오는 선수는 바로 박치성. 

호날두와 박치성은 두 손을 마주하면서 동료애를 보였다. 

“잘해, 치성!” 

“고마워, 크리스.” 

교체석으로 들어온 호날두는 코칭 스텝들이 내어주는 수건으로 대충 땀을 닦고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퍼거슨은 잘했다 한마디만 하고 다시 터치라인에서 지시를 내리는 중이었다. 

정말 열정적인 양반이다. 

“너무 빨리 교체했다고 서운해 하는 거 아니지?” 

“그럴 리 있나요. 오히려 특등석에 앉아서 관람하는 기분인데.” 

게리 네빌의 말에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호날두였다. 

“역시 축구는 직접 보는 게 더 재미있네요. 박진감도 넘치고.” 

“뺀질거리기는! 경기나 똑바로 보면서 팀플레이나 익히라고.” 

“농담도 못합니까, 보스.” 

오늘도 영감이랑 투닥거리는 호날두였다. 

어쨌든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맨유의 경기를 지켜보는 호날두. 

그 중에서 호날두의 눈을 사로잡는 선수는 박치성이었다. 

박치성은 지금의 스코어를 지키려는 퍼거슨의 의도를 간파하고 골을 넣기보다는 탄탄한 수비를 위해 뛰었다. 

이후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똑같다는 심정으로 몰아치는 리옹에 대응하는 카드로 아주 제격이다. 

벤 아르파부터 카림 벤제마까지. 

넓은 범위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고 이들의 날카로운 공격을 전부 막아내는데 성공하는 박치성. 

맨유의 주전 선수는 아니었지만 퍼거슨이 자신을 믿고 기용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몸으로 보여주는 박치성이었다. 

“역시 치성은 잘하네요.” 

“잘하지. 그래서 내가 뽑은 거고.” 

흡족한 표정의 퍼거슨. 

많이 뛰고, 팀에 헌신적이면서, 감독의 바램을 100% 이해한다. 

거기에 중요한 경기에서도 잘하니, 저 고집불통인 퍼거슨조차도 그를 아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굳이 국뽕이나 사심 없이 생각하더라도 박치성은 분명 좋은 선수였다. 

                                                                

                               

‘그런데 왜 챔스 결승전에서는 그를 쓰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한 일이야.’

< 07-08시즌 -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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