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08시즌 - 7 >
삑-! 삐이익-!
와아아아아아-!!
경기가 끝났다.
스코어는 2:0.
1,2차전 총 스코어는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올랭피크 리옹을 꺾고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진출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아쉽게 준결승의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맨유.
하지만 지금의 맨유는 작년보다 더욱 강해졌고 더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과거의 영광을 향한 염원은 조금씩, 조금씩 타오른다.
이들의 비상이 어디까지 닿을지,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가슴 뛰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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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에서도 포츠머스를 꺾고 준결승전에 진출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그 테이블 1위,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 FA컵 준결승전 진출.
맨유 팬들 중 일부는 벌써부터 트레블의 기운이 보이기 시작한다며 호들갑을 떨다가 타팀 팬들에게 욕을 처먹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했으면 이런 말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맨유는 분명 ‘위대한 업적’에 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고 그것을 차츰차츰 키워나가고 있었다.
어쨌든 계속 이어가는 연승에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는 토너먼트까지.
지금 맨유의 분위기는 좋았다.
정말로 좋았다.
더비 카운티 원정에서는 시종일관 우세했지만 좀처럼 골이 나오지 않다가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벼락같은 결승골로 1:0 꾸역승을 거두는데 성공한 맨유.
이후 볼턴 원더러스와의 홈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만약 이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2위 아스날과의 승점 차를 8점까지 벌릴 수 있는 상황.
남은 리그 경기가 총 8경기인데 승점이 8점 차이면 거의 리그 우승의 7부 능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기에.
트레블이건 뭐건, 일단 지금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
상대가 약팀이라고 로테이션 돌릴 것이 아니라, 이럴 때는 아예 승기를 확 잡아채는 것이 중요했다.
시즌 초반부터 호날두를 비롯한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비축해 둔 퍼거슨의 혜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볼튼 원더러스의 30라운드 경기입니다. 이제 EPL도 서서히 막바지로 접어드는 가운데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맨유의 우승확률이 압도적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경기까지 만약 잡아낼 수 있다면 맨유의 승점 75점이 됩니다. 아스날, 첼시를 확실하게 제치고 선두권에 우뚝 설 수 있게 되겠지요. 보통 승점 85점을 넘으면 프리미어 리그 우승 안정권이라 합니다. 맨유는 10점만 더 따내면 우승이라 자신할 수 있
을 겁니다.]
[이제 맨유는 FA컵 우승이 확실하게 가시권 안에 들어왔습니다. 또 챔피언스 리그까지 남아있죠! 퍼거슨 경의 인터뷰대로라면 모든 대회에서의 우승을 위해 맨유는 도전할 것입니다. 주전 선수들의 체력 분배가 매우 중요합니다.]
[맨유는 위대한 도전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두 대회에 전력을 기울이고 싶겠죠! 하지만 그들이 영광을 재현하는 일을 눈 뜨고 그대로 보고만 있을 볼튼이 아닙니다!]
같은 리그일수록 구성 팀들 사이의 관계가 좋을 수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원칙.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맨유는 리그, 챔스, FA컵까지 노리고 있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싶지 않을 팀이 누가 있겠는가?
"더비 카운티도 그렇고 볼턴 원더러스도 그렇고... 왜 우리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맨유가 얼마나 착하고 합리적인 클럽인데!"
안데르손의 반찬 투정과도 같은 말에 동의하는 호날두.
맨유가 착하고 합리적이라는 부분에서는 살짝 기우뜽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늘 경기 볼튼의 선발멤버로 뽑힌 베스트 11의 눈빛에도 절대 질 수 없다는 투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질투심이 드러났다.
호날두는 첼시 선수로서 느꼈던 같은 리그 팀 선수들의 질투와 시기를, 맨유의 선수로서도 느끼게 되었다.
“크... 저 추악한 눈빛들 좀 봐라. 우리가 잘 나가니까 배가 아파 미칠 것 같다는 표정들이야. 멍청한 패배자새끼들! 그러니까 네놈들이 평생 중위권, 하위권인거다.”
“저 놈들의 팬들도 똑같아! 하나같이 질투와 피해의식에만 찌들어 있지. EPL이 이렇게 클 수 있었던 게 다 누구 때문인데!?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대놓고 눈을 부라려?”
오히려 저들의 투지 또는 질투에 불쾌해하는 맨유 선수들.
발걸음이 급한데 ‘무조건 물고 늘어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저들이 짜증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첨예한 대립이다.
마치 기득권과 비 기득권 사이의 갈등을 보는 것 같았다.
"챔스 결승전 진출은커녕 이제 겨우 8강에 올랐을 뿐인데 벌써부터 트레블이니 뭐니...“
“우리 데빌스들이 좀 극성이어야지. 하지만 이해해할 수밖에."
키득거리면서 말하는 비디치.
실제로 맨유 팬들은 현재 어마어마한 설레발을 떠는 중이었다.
트레블이라는 엄청난 업적에 대한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그야말로 가능성일 뿐이다.
그런데 올드 트래포드에 내걸린 걸개를 보라.
‘For Treble!(트레블을 위하여!)’
호날두는 괜찮았지만 다른 맨유 선수들이 저걸 보고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저러다 대회 하나만 떨어져도 선수들의 사기는 급격히 추락하리라.
“그만큼 우리 맨유의 암흑기가 길었기 때문이야. 서포터들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는 거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위대한 업적’에 도전할지 알 수 없으니까.”
“...만약 이번에도 미끄러지게 된다면 그들의 실망과 분노는 상상을 초월하겠네요.”
“그렇지. 하지만 뭐... 그런 것을 견딜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우리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라고.”
반 데 사르의 말에 호날두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네요. 저희는 맨유의 선수니까.”
=
경기가 시작했다.
볼튼에는 딱히 호날두가 기억할만한 인상적인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원정 경기인 만큼 차근차근 볼 점유율을 끌어 올리면서 지공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제라르드 피케가 볼튼 선수들과 거칠게 경합하며 끝끝내 공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이 잘생긴 외모의 카탈루냐 청년은 모두가 알다시피 나중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본격적으로 월드 클래스 수비수로 자리매김한다.
퍼디난드-비디치의 라인이 너무 확고한지라 자주 경기에 나올 수는 없었지만, 피케는 이 때에도 큰 선수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피케가 뺏은 공은 곧바로 하그리브스에게 향했고, 턴으로 볼튼 선수를 제치고 치고 나간 하그리브스의 공은...
[하그브리스의 크로스-! 호날두에게 닿습니다! 높은 타점으로 공을 끊어내는 호날두 선수! 깔끔한 트래핑 기술로 발에 안착시킵니다!]
[큰 키와 점프력이 이 선수의 표면적인 무기지만 사실 공의 궤적을 예측하고 바로 아래 위치를 선정하는 능력이 진짜 보이지 않는 최대의 강점이죠! 그 아래에 대기하던 볼튼 선수는 공에 몸도 대지 못했습니다!]
호날두는 이렇게 신체적인 이점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알았다.
189cm에 이르는 큰 키와 높은 점프력을 가진 호날두는 공중 볼 싸움에서 누구보다 유리했다.
계속된 헤더 훈련은 그런 그에게 공중을 장악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능력들이 하나하나 개발되고 장착된다.
쌓이고 쌓인다면 결국 ‘완성’에 이를 것이다.
유려한 마르세유 턴으로 자신을 가로막는 선수들의 압박을 풀어헤친 호날두.
조금 먼 거리지만 슈팅의 각도와 ‘가능성’이 잡히자마자 바로 중거리 슛을 때렸다.
강력한 회전을 품고 날아간 공은 볼튼 골키퍼가 반응할 수 없도록 급격하게 휘어지면서 골문을 울렸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호날두의 중거리 골이었다.
[왼발로 강하게 감아 찬 공이 또 다시 골문을 울립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크리스티안의 활약으로 경기시작 10분 만에 선제골을 뽑아냅니다!]
[이게 몇 번째 연속골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두 시즌만에 프리미어 리그 득점 신기록을 수립할 것 같아요!]
[자신의 기록은 오로지 자신만이 갈아치울 수 있다는 뜻인가요? 위대한 발걸음을 내딛는 크리스티안 호날두입니다!]
호날두는 이렇게 맨유가 절실히 골이 필요할 때마다 반드시 그것을 이뤄주는 선수였다.
팀을 구원하는 에이스!
거기에 스타성 넘치는 플레이까지!
팬들이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울려퍼지는 응원가와 환호성도 호날두가 가장 컸다.
맨유 팬들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지표였.
세레머니를 하면서 관중석을 따라 달리는 호날두를 보고 퍼거슨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크리스티안을 사오려 했던 보스의 판단은 역시 틀림이 없었군요. 높은 주급 때문에 많은 임직원들이 반대했었던 것이 이젠 무색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가 맨유에 없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지미 라이언.
맨유의 1군 코치가 한 말에 퍼거슨은 껌을 짝짝 씹으면서 대답했다.
"‘크리스를 사오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다.’ 라고 주장했던 놈들이 오히려 현실감각 없던 놈들이지. 저런 선수가 한 시대에 몇 명이나 등장할 것 같아?“
“글쎄요... 분명한 것은 아마 이 시대에서는 더 나오지 않겠죠?”
“그건 모를 일이지만 월드 클래스, 그 단계조차 넘어서는 선수는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팀을 두어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거야. 얼마의 주급을 부르더라도,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데리고 있어야 해. 그게 맞는 팀의 운영이지. 저 녀석은 충분
히 오만할 자격이 있는 녀석이니까.”
알렉스 퍼거슨은 언제나, 늘 생각해왔다.
현재 맨유가 맞이하고 있는 이 기록적인 상승세.
여기에 호날두가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될까.
‘부정할 것 없이 가장 크지. 그것도 압도적으로!’
물론 퍼거슨 자신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호날두가 없었으면 지금의 성공도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대한 유형적, 무형적 가치가 호날두에게 퍼붓는 주급과 대우보다 클까, 작을까?
그것은 1초 만에 대답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첼시 놈들은 반짝 성공을 경험한 탓에 크리스 같은 선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희귀한지에 대해서 몰랐어. 뭐, 챔스 우승한 감독의 목도 날려버리는 클럽이니 그 근본이야 오죽하겠냐만... 단, 우리 클럽에서는 절대 그런 멍청이들이 존재해서는 안 될
거야.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에는!"
"하하하..."
“그런 놈들이 실제로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맨유의 보드진들을 한순간에 멍청이로 만들어버린 퍼거슨의 말이었다.
하지만 지미 라이언이 생각하기에 당시에 맨유 보드진들의 우려가 영 설득력 없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 때 책정된 호날두의 이적료가 그의 스타성과 실력에 비해 턱없이 낮다하더라도, 호날두의 요구 주급은 맨유의 엄격한 주급 체계를 단번에 깨트리는 것이었으니까.
만약 그 상태에서도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리즈 유나이티드 꼴 나는 거다.
물론 그 정도까지 폭삭 내려앉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퍼거슨이라도 자리보존을 못했으리라.
퍼거슨은 용기 있게, 또는 과감하게 질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다음과 같다.
그의 결단이 맨유를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이제 맨유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가 되었다.
맨유에서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120% 증명하면서 아무도 그가 최고의 주급과 대우를 받는 것에 불평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토록 불만이던 루니 등의 일부 선수들도 이제는 ‘호날두라면 그 정도 대우는 당연한 것 같다.’ 라고 수긍하고 있었으니까.
호날두는 첼시 시절보다 확실한 진보를 이루었다.
그 때는 자신의 커리어하이가 아니었다면서 이적하자마자 대폭발을 했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덕분에 맨유는 매 경기 굉장한 득점 페이스와 연승 행진을 해나갈 수 있었다.
이전 시즌까지의 답답한 맨유의 공격은 더 이상 없다.
EPL에서 가장 많은 골을 박고, 가장 공격적으로 임하는 팀.
그런 맨유가 되었다.
“크리스티안이 경기에 출전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맨유의 경기력은 천차만별로 갈리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너무 튀기 때문에 자칫하면 원맨팀 소리를 들을 만 하거든요.”
“그 놈의 원맨팀, 원맨팀...! 그딴 소리 지껄이는 평론가들은 그냥 병신들이라니까! 아니, 원맨팀 소리 안 들었던 팀이 있었기는 했나? 저 녀석이 뛰는 팀 중에서?”
“......”
할 말이 없긴 했다.
첼시도 그렇고, 마지막 시즌의 스포르팅도 그렇고.
결국 ‘호날두 원맨팀’ 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포르투갈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호날두가 뛰고 있는 팀은 반드시 그 오명 아닌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왜? 호날두가 너무 미친 듯이 잘하니까!
“원맨팀이라도 이기면 그만이야. 그리고 내가 있는데 그 놈 원맨팀이 말이 돼? 지금의 맨유를 만든 건 나야, 나.”
“하하하... 그, 그렇죠!”
지미 라이언이 땀을 흘리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뻥-!
묵직한 대포와도 같은 소리에 라이언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라운드 위의 호날두가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공이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비껴간 모양.
볼튼 팬들이 숨넘어갈 정도로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보였다.
“진짜 기가 막히긴 기가 막히네. 저 놈처럼 중거리 슛을 잘 때리는 선수는 내 평생 본 적이 없어.”
“지, 진심이십니까? 보스?”
“진심이지, 그럼.”
1941년생인 퍼거슨은 근 60년 동안 축구를 보아온, 그야말로 축구계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다.
그런 퍼거슨 최고라고 말한다는 것은... 60년의 세월 중 호날두만큼 중거리 슛을 잘 차는 선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미 라이언의 놀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저 녀석은 곧 다른 면에서도 최고가 될 거야. 언젠가는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모든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가 되겠지. 그를 잘 봐둬! 나중에 ‘나는 호날두의 플레이를 보았다!’ 는 것 하나만으로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을 날이 언젠가는 올 테니
까.”
< 07-08시즌 - 7 > 끝
ⓒ 아이시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