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08시즌 - 8 >
얼마 전, EPL 선수들의 유니폼 판매 실적에 대한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인기 리그인 만큼 EPL 선수들은 타 리그 선수들에 비해서 많은 주목을 받았고 그것은 유니폼 판매량에서도 드러난다.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그 중에서도 비교대상이 없는 압도적인 1위다.
포르투갈 국민들이라면 호날두의 유니폼은 무조건 하나씩 구비해야하는 필수용품이었고 잉글랜드 내에서도 그의 인기는 자국 스타 선수들을 능가한다.
북미, 동아시아에서조차 호날두는 유명했으며 특별한 취급을 받았고 그것은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맨유 내에서 유니폼 판매 2위부터 10위까지 다 합쳐도 호날두 하나에 못 미칠 정도라고.
물론 유니폼을 아무리 많이 팔아치워도 유니폼 메인 스폰서인 아디다스가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기 때문에 맨유 측에는 남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위와 같은 판매 실적과 시장에서의 파급력, 영향력은, 글로벌 기업들이 상업적 가치로서의 축구 선수 호날두를 다시 보게 만들어 준다.
물론 이것은 호날두를 소유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도 밝은 소식이다.
호날두의 상업적 가치가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인정받은 이상, 다음 시즌에는 훨씬 더 높은 단위 금액의 스폰서 계약 갱신이 가능해 질 것이다.
물론 올 시즌 맨유의 성적에 따라서 그 금액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보드진들은 지금쯤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겠지?"
"이를 말씀입니까. 밀려드는 스폰서 제안에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합니다. 아마도 맨유 역사상 최고의 스폰서 수입액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지금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이번 시즌이 끝난 이후로 계약을 미뤄달라고 전해."
"그... 말씀은...?"
"트레블. 충분히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가 아니라 충분히 노려볼 수 있겠다고?
지미 라이언은 멍한 표정으로 퍼거슨은 바라보았다.
[골입니다, 골!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오늘 경기에서 자신의 두 번째 골을 쏘아 올립니다! 볼튼 원더러스를 침몰시키는 호날두입니다!]
[이로써 리그 30골의 고지에 올랐습니다! 정말 리그 신기록을 갈아 치우려나 봅니다!]
[미쳤습니다! 이 선수는 정말로 미쳤습니다!!]
[맨유를 상대하는 팀들은 모두 공통된 고민거리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저 선수를 어떻게 막느냐?’ 과연 이것을 해결하는 팀이 있을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 스폰서든 광고든 일단 계약들을 미뤄. 되도록이면... 오, 그래! 5월 21일 이후로 하자고."
5월 21일은 바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퍼거슨의 표정에 지미 라이언은 얼빠진 얼굴로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맨유는 분명 최고의 구단이지만... 템포가 너무 빨랐다.
특히 퍼거슨과 호날두의 주변은 더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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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튼을 꺾은 맨유는 리버풀을 자신들의 홈으로 불러오게 된다.
물론 볼튼과 리버풀은 차원이 다른 팀이다.
게다가 지난 라운드에는 자신의 안방인 안필드에서 맨유에게 깨지기도 했던 리버풀인 만큼 독니를 제대로 갈고 나왔을 것.
이미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맨유 홈에서 그들을 박살냄으로서 제대로 된 복수를 꿈꿨다.
[라파엘 베니테즈, '17라운드의 복수를 위해 3달을 기다렸다. 올드 트래포드에 리버풀의 깃발을 꽂아 서포터들의 한을 풀겠다.']
[스티븐 제라드, '이번 시즌 우리가 우승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하지만 맨체스터의 우승을 저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제이미 캐러거, ‘크리스티안 호날두를 막을 수 있다. 나는 한 번 그것을 보여줄 것이다.’]
리버풀 감독과 주장 등의 발언에 퍼거슨은 무시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알렉스 퍼거슨, '한번 이겼던 클럽은 충분히 또 이길 수 있어. 지금 리버풀은 우리의 안중에도 없다.']
호날두에게 하도 인터뷰 해달라고 들이대는 요청들이 많았다.
퍼거슨도 이 참에 한마디 하라고 웃으면서 마이크를 넘겨줬다.
어차피 맨유로 이적하면서부터 리버풀 팬들에게 자신은 찍혔다.
굳이 그들에게 잘 보여 봤자 맨유 팬들에게 사랑받는 것보단 못하다는 생각에 호날두는 한 마디 하기로 했다.
"리버풀을 상대로 승리할 것입니다. 최대한 빨리 리그 우승을 확정 짓고 싶거든요. 그리고 남은 대회에 집중할 것입니다."
“팬들이 저에게 거는 기대치를 알고 있습니다. 제 가치를 라이벌과의 경기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마 내일이면 '호날두, 리버풀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호날두, 프리미어 리그 우승은 당연한 것!' 이라고 기사가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이 바로 EPL 최고 선수, 세계 최고 선수가 견뎌야하는 관심의 무게인 것을.
‘이제는 즐길 때도 되었지.’
기계처럼 축구만 하던 과거 호날두의 모습은 지금 찾아보기 어려웠다.
재밌는 축구, 그러면서도 압도적이 축구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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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의 장담과 호날두의 선언은 리버풀 팬들을 분노케 했음이 틀림없다.
비록 올 시즌에는 맨유와의 승점 차이가 16점이나 벌어져 있었지만, 지난 시즌에는 맨유를 상대로 더블(리그에서 2번 만나 2번 다 이김)을 해낸 리버풀.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오히려 더블을 당하게 생겼다.
그런 상황에서 명실상부한 최대 라이벌 팀이 자신들을 상대로 승리를 자신하는데 분노를 드러내지 않을 팬들이 어디 있을까?
현재 리버풀은 한 경기를 덜 치른 상황에서 5위 에버튼과 2점차를 유지한 4위였다.
최소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위해서라도, 입에 불을 품고 맨유를 저주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리버풀은 반드시 맨유를 거꾸러트려야 했다.
그러나...
[나니의 쐐기 골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최대 라이벌 팀을 상대로 3:0 스코어를 만들어냅니다!]
[호날두의 침투와 나니의 결정력이 또 다시 리버풀의 골문을 찢습니다! 포르투갈 콤비들의 대활약입니다!]
리버풀을 홈으로 불러온 맨유는, 자신의 최대 라이벌 팀을 완전히 박살내는데 성공했다.
호날두가 모든 리버풀 수비수들의 어그로를 끌다가 나니에게 패스하여 골을 만드는 장면은 클래스를 보여줬다.
이로써 리버풀은 올 시즌 맨유와 두 번 만나서 두 번 다 지는 굴욕을 경험했고, 콥들은 실망스러운 자신들 팀의 경기력에 울분을 토했으며 야유를 끼얹었다.
[캐러거 선수가 인터뷰에서 호날두 선수를 상대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며 도발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골에서는 호날두의 드리블을 허용한 그의 실책이 가장 컸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캐러거 선수입니다. 호날두 선수가 환한 웃음을 짓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네요. 호날두 선수는 오늘로써 다시 6경기 연속골 기록을 이어나갑니다.]
인터뷰를 통한 설전.
그 승패는 명확했다.
호날두는 이런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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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라드, ‘팬들께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드려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라파엘 베니테즈, ‘우리는 졌습니다. 제 잘못이 큽니다. 그것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제이미 캐러거, ‘......’]
올 시즌 맨유와의 성적은 2전 2패.
당연히 우승은 물 건너갔으며 그나마 라이벌을 꺾었다는 자존심조차 세우지 못했다.
리버풀 팬들은 그저 눈물만을 흘렸다.
이들이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은 벌써 18년째였다.
도합 3:0의 스코어로 리버풀을 가볍게 꺾은 맨유는, 리그 7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2위 첼시와 승점 10점 차, 3위 아스날과는 11점 차를 유지, 엄청난 뒷심을 발휘하며 압도적인 1위를 달리게 되었다.
알렉스 퍼거슨은 약속대로 이제 챔피언스 리그와 FA컵에 집중할 것을 천명했다.
명백한 ‘트레블’을 염두에 둔 행동.
아무도 그것을 부정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었다.
[모두들 오래 기다려 왔다. 이제는 맨유의 타임(Time)이다.]
맨체스터의 일간지, ‘맨체스터 이브닝’에서는 맨유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했다.
리버풀의 행보와는 너무나도 대비되었다.
그래서 리버풀 팬들은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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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톤 빌라에게 또 다시 승리한 맨유.
승점 81점!
이제 정말 리그 우승 매직넘버를 세고 있는 맨유에게 퍼거슨은 말했다.
이럴수록 정신 단단히 붙잡고 일체의 방심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한다면서 정신무장을 다시 시켰다.
어린 선수들에게 슬슬 자만심이 피어오르려 할 타이밍에 귀신같이 훼방을 놓는 퍼거슨은 정말 선수단 기강 관리의 달인이었다.
그러는 사이 4월 1일,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이 다가왔다.
상대는 조별리그에서도 맞붙었던 AS 로마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올랐었다.
다만 호날두가 없었던 맨유는 첼시, AC 밀란에 비해 약체로 여겨졌기에(심지어 리버풀보다도!), 많은 사람들은 당시의 맨유가 AC 밀란을 꺾고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 자체가 그 때와 달랐다.
스포츠 전문 베팅 사이트, '스카이 뱃'에서 뽑은 맨유의 리그 우승 확률은 89%였고, 남은 챔스 팀들 중에서도 우승 확률이 가장 높은 팀이었다.
올 시즌 맨유는 명백히 지난 시즌 맨유보다 훨씬 강팀이었다.
경기력과 선수층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것은 당연히 호날두라는 세계 최고 선수의 존재 때문.
첼시에서 호날두는 한 팀을 주도할만한 에이스였다면 맨유의 호날두는 혼자서 팀을 우승권으로 이끌 수 있을만한 선수였다.
이것은 분명 과거 펠레나 마라도나, 크루이프, 베켄바우어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에 비견될만한 존재감이라 할 수 있었다.
아직도 호날두는 더 발전할 수 있고 더 강해질 수 있다.
단지 우승권 아니라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할 때까지.
호날두의 도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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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홈 경기장인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펼쳐지는 07-08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전.
오랜만에 호날두는 박치성과 같이 선발 멤버로 뛰게 되었다.
호날두는 공격력과 득점력으로 맨유의 원탑을 달리는 선수였고 박치성은 공수 균형 잡힌 재능과 팀워크, 헌신으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선수다.
그래서 퍼거슨은 호날두로 하여금 충분히 득점포를 뽑아 넣은 다음, 박치성을 내보내서 잠그는 전술을 지금까지 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둘을 같이 내보낸 것이다.
[8강부터는 슬슬 우승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단계입니다. 맨유와 로마 모두 그 자격이 있는 팀입니다. 두 팀 다 1차전을 대승으로 이끌어 손쉽게 2차전을 치를 생각이 있을 겁니다.]
[경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양 측 모두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군요. 로마는 홈의 이점을, 맨유는 선수진들의 역량을 믿는 것으로 보입니다.]
호날두가 공격롤, 박치성이 수비롤을 맡는다 쳐도 현대 축구 경기의 특성상, 반드시 역할이 분담되거나 바뀌는 시기가 찾아온다.
호날두가 데 로시를 압박해서 공을 따낼 때도 있었고, 박치성이 달려들어서 슛을 날릴 때도 있다.
이를 잘 조화하며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호날두와 박치성 콤비는 놀랍게도 그것이 가능했다.
국적도, 성향도, 외모도, 플레이 스타일도 전부 다른 이 두 선수는 찰떡궁합처럼 서로의 자리를 오가면서 상대팀을 파괴하고 자신의 팀을 지켰다.
해설진들이 이 둘을 콕 집어서 칭찬할 정도로 이들의 움직임은 인상 깊었다.
스콜스-캐릭-안데르손의 중원 3인방과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브라운 포백 라인은 역시 막강하여 일체의 틈을 내주지 않는다.
자신감은 최고조였고 선수들의 기세도 막강하다.
볼을 탈취하고 패스하는 빈도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점유율도 맨유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지공에서도 맨유가 우세를 점했으며 로마는 차츰차츰 뒤로 밀려났다.
그것을 보고 있던 호날두는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알렉스 퍼거슨... 역시 대단한 양반이야.”
로마의 핵심 선수들의 나이 대와 몸 상태를 고려한다면 속공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정석.
하지만 퍼거슨은 중원을 강고히 하면서 패싱 게임을 지시했는데. 이는 토티가 빠지고 데 로시를 고립시킬 수 있는 윙어(호날두, 박치성)들이 존재했기에, 상대팀 전술의 카운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선수단 장악 능력, 팀 리빌딩 능력, 선수 육성 능력 등에 비해서 전술적인 면이 저평가 받는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
하지만 실제로 그는 전술에서도 참 깔게 없었다.
어느 한쪽에도 빈틈이 없는, 완벽한 육각형 감독이었기에 오히려 전술적인 면이 저평가 당하는 아쉬운(?) 감독이었다.
[스콜스의 강력한 슛! 튕겨 나왔습니다. 호날두가 공 잡았어요! 슛! 들어갔습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세컨 볼은 바로 '크리스티안의 영역'이죠! 로마 선수들의 반응이 너무 늦었습니다!]
[아주 역동적인 슈팅이었죠! 로마의 골키퍼가 이것을 막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슛이었습니다.]
호오우-!!
로마의 홈 경기장에서 어김없이 호우 세레머니가 터져 나왔다.
그것 새 경기장에 자신의 존재를 표시하려는 호날두의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맨유 선수들이 호날두에게 달려들어서 네가 진정 인간이냐, 골 좀 작작 넣어라, 너 혼자 잘하지 말고 다 같이 잘하자 등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대며 축하를 해줬다.
퍼거슨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를 내질렀다.
역시 이번에도 선제골은 호날두였다.
"영감님! 한 골에서 절대 만족 못하시죠!?"
"골백번 죽어도 만족 못하지! 근데 너 이 새끼, 방금 뭐라고 했어? 영감님!?"
"골 더 넣는다고요, 보스! 하하하!"
해맑게 웃으면서 하는 호날두의 말에 퍼거슨은 결국 어이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보스를 웃게 하는 것은 크리스네요."
“우리도 크리스처럼 아껴주세요! 차별 금지!”
"다들 입 다물어. 저렇게 떠들어 놓고 이후에 똥 싸면 가만 안 놔둘 거야. 니들도 그럴 자신 있으면 저리 까불던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퍼거슨의 눈빛에는 호날두에 대한 신뢰가 가득했다.
코치들도 교체선수들도.
이렇게 떨어져있어도 서로를 단단히 믿는 두 사람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거슨과 호날두가 이후 더 많은 성공과 업적을 쌓아나간다면, 분명 두 번 다시없을 명콤비로 평가받으리라.
< 07-08시즌 - 8 > 끝
ⓒ 아이시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