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125)

< 위대한 도전 - 1 >

이번에도 호날두는 퍼거슨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 최고의 크랙으로서 역량을 제대로 폭발시켰다. 

선제골에 흔들리고 있는 로마의 수비진을 뒤엎으면서 우측라인을 박살내는 호날두. 

엄청난 달리기 속도에 로마 선수들과의 거친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강력한 피지컬! 

이 자체로도 가히 뛰어다니는 탱크나 마찬가진데 유려한 개인기와 볼 컨트롤, 공격 템포 조절 능력까지 갖춘 그야말로 사기적인 크랙. 

피지컬 싸움도 밀리지 않고, 발재간 기술도 밀리지 않는 이 크랙은 양심도 없이 강력한 중거리 슛까지 장착했다. 

때문에 경기 내내, 어디서든 그의 슈팅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상대할 수 있을만한 선수도, 전술도 로마에게는 없었다. 

[오늘 팍은 매우 놀랍습니다!] 

[윙어가 이렇게 많이 뛰면서 포지션 숫자 싸움에 가담하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덕분에 호날두를 비롯한 맨유 선수들은 자유를 얻었어요!] 

[퍼거슨에게 자신이 중용 받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팍입니다!] 

설사 가끔 공격권이 로마에게 넘어가더라도 그것을 되돌릴 카드. 

등번호 13번의 박치성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유감없이 펼치는 중이었다. 

넓은 활동 반경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몸을 사리지 않는 그의 축구는, 맨유의 탄탄한 수비진과 미드필더진과 함께 로마의 역습을 철저하게 봉쇄하도록 만들었다. 

그 뒤를 스콜스-캐릭-플레쳐의 삼각 미들진이 단단히 받치면서 키 패스 등으로 공격진들에 힘을 실어주었다. 

마지막 포백 라인과 반 데 사르라는 월드 클래스 골키퍼는 맨유의 뒷 공간을 단단히 걸어 잠그며 로마에게 일말의 희망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언제나 공격은 맨유였고, 로마는 수비였다. 

로마 선수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걸레 수비로 어찌어찌 이런 파상 공세를 막는 것도 한두 번이지. 

로마 수비진들의 집중력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실책이 발생했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틈만 노리던 맨유 선수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호날두가 골대 문전 앞에서 슛을 때리는 듯 페이크를 치면서, 능청스럽게 더 좋은 자리에 있던 루니에게 킬 패스를 날렸다. 

로마의 수비진들은 이 속임수에 그대로 속아 루니에게 터무니 없는 공간을 내어줬다. 

루니가 그 기회를 그대로 받아먹으면서 맨유의 두 번째 골이 터트렸다. 

멧돼지처럼 뛰어다니는 루니와 호날두를 보면서 로마 선수들과 경기장의 팬들은 또 다시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삑-! 삐이익-! 

0:2. 

스코어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제대로 된 공격조차 해내지 못했다는 것. 

치욕스러운 홈 경기장에서의 완패였다. 

패배한 팀에게는 언제나 모든 것이 가혹했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그러했다. 

로마의 서포터들은 결국 눈물을 보였고 선수들 역시 눈물을 글썽였다. 

부상으로 빠진 프란체스코 토티만 있었더라면 최소한 지지는 않았을 텐데 라며 절규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기에서 진 팀은 참 초라했다. 

그것이 홈이라면 더더욱. 

“잘들 봐둬. 이게 홈팬들을 실망시킨 팀의 모습이니까.” 

울고 있는 팬들과 그 모습에 더욱 가슴이 찢어지는 로마 선수들. 

동정이 갔다. 

그리고 비참했다. 

만약 호날두가 저들 중에 한명이었다면... 아무리 멘탈 튼튼한 그라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동정어린 시선을 보낼 것 없다. 그것은 오히려 저들을 비웃는 행동이야. 담담하게 인사해라. 그리고 이 비참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펼쳐질 수 있음을 기억해. 아직 8강전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제가 이곳에서 뛸 때만큼은 절대로 우리의 팬들이 이런 슬픔을 겪지 않도록 할 겁니다.” 

“좋은 다짐이야. 아주 멋진 선언이었다, 크리스! 야, 이놈들아! 이게 바로 진짜 프로의 자세다! 니들보다 크리스가 훨씬 낫다!” 

그렇게 소리친 퍼거슨은 호날두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오늘 경기, 잘했다.’ 따로 칭찬해주었다. 

그의 특별한 신뢰와 대우가 고마웠다. 

울고 있는 로마 선수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하는 호날두. 

슬픈 경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스포츠는 즐거워야 스포츠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잘해야 하다. 

당장 자신부터가 잘하면... 적어도 이런 치욕적인 패배는 겪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07-08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 

AS 로마 0 VS 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위대한 업적’에 다시 한 번 도전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 첫 번째 관문은 바로 FA컵 준결승전이 될 것!] 

맨유는 로마의 심장에 데빌즈의 깃발을 꽂으며 자신들이 어떤 팀인지를 증명했다. 

원정에서 2:0, 이 점수 차는 정말 웬만큼 대패하지 않는 이상 극복하기 힘들었고, 현재 맨유의 기세를 생각해본다면 로마가 이를 뒤집기란 요원한 일. 

현재 맨유는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진출을 거의 반 정도는 결정됐다 볼 수 있다. 

또한 프리미어 리그 1위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위 첼시와의 승점 10점의 차이를 벌려놓았다. 

남은 경기가 6경기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맨유의 우승은 거의 확정적. 

남은 것은 바로 FA컵이다. 

지구상에서 개최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축구 대회이기도 한 FA컵은, 한 때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보다도 더 높은 권위를 가졌던 유서 깊은 대회다. 

지금은 그보다는 훨씬 못 미치지만 상징성은 뒤지지 않는다. 

특히 리그와 챔스 둘을 모두 노리는 팀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모든 축구 클럽, 축구 감독, 축구 선수 그리고 축구 팬들까지 누구나 한번은 꿈꾸는 신기원의 목표, 트레블. 

FA컵은 리그나 챔스보다 당연히 못하지만 트레블이라는 업적을 연결할 수 있는 작은 조각이다. 

당연히 이 대회의 결승전 진출을 해내야 트레블이라는 대업적의 조각을 맞출 자격을 얻게 되는 셈. 

단순히 트레블의 도전권이 아닌, 선수들의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FA컵의 선전은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 지나친 긴장감으로 대업을 망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FA컵 준결승전 상대는 바로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이다. 

다행인 점은 이들은 고작 2부 리그의 팀이라는 것. 

맨유에 비해서 정말 약체인 팀이지만 공은 둥글다. 

어떤 이변과 변수가 나타날지 모른다. 

위대한 업적에 도전하는 만큼 지금의 맨유에겐 모든 팀이 적이었으며 다함께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다. 

맨유는 그것을 넘어서야 진정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그 결과가 어떨지 다가올 경기를 확인하자. 

댓글 

- 나는 우리의 선수들을 누구보다 믿고 있다. 2부 리그라고 방심하지 말고 그들은 최선을 다할 거야! 

- 아직도 설레발을 자제하고 있어. 정말 힘든 일이지만... 가시권에 들 때까지 최선을 다해 자제해야지... 

- 맨유가 만약 트레블을 이루게 된다면 잉글랜드에서 2번의 트레블을 이룬 최초의 구단이 되는 것인가? 

 ㄴ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2번의 트레블은 전 세계에서도 최초야. 

 ㄴ 너무 멋지군~ 당연히 우리 맨유가 그 수식어를 가져가야 하지 않겠어? 

 ㄴ 응, 안 돼. 그럴 일 절대 없어~ 

- 내가 예언 하나 하지... 맨유는 FA컵 결승전에 진출할거야. 챔피언스 리그도 그렇고, 프리미어 리그도 매직 넘버 1을 남겨두게 돼. 그러다가 FA컵 결승전에서 패배, 챔스 결승전에서 패배, 프리미어 리그도 첼시에게 역전당해 우승을 내주게 되면서 루저

(Loser)의 트레블을 하게 될 거야! lol! 

 ㄴ 첼시 팬들의 부질없는 희망사항 잘 봤다. 

 ㄴ 블루스 놈들은 일단 리그부터 신경 쓰는 게 어떨까? 6경기에 승점이 10점이나 차이 나는데? 

 ㄴ 호날두가 우리에게 온 이상 너희는 절대로 우승 못해. 

 ㄴ 첼시 팬들의 울부짖음이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이 놈들, 요즘 너무 설쳐. 그래봤자 호날두는 이제 우리 선수라고. 

- 여전히 우리 맨유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종자들이 많이 보이네~ 더러운 쥐새끼 같은 패배자 놈들! 

 ㄴ 3년 동안 챔스 1회, 리그 3회 우승한 첼시가 4년 동안 리그 우승 하나 없는 맨유에게 열등감을 느껴야할 이유가...? 

 ㄴ 그래서 그 대단한 팀 이번 시즌 성적이...? 리그 우승은 총 몇 번? 

 ㄴ 우리 첼시도 8강 진출했는데? 니들이야 말로 이제 겨우 4월인데 벌써부터 트레블 얘기하면 설레발 떠는 게 우습지 않아? 그러다가 떨어지면 어떡할 라고ㅋㅋ 

- 에휴. 여기도 곧 싸움판이 되겠네. 나는 잉글랜드 축구 팬들이 조금 더 건설적인 주제로 대화했으면 좋겠어. 

- 아무튼 맨유는 트레블을 향해 달려라! 리버풀이 더는 설치지 못하도록 과거와 현재 성적으로 눌러버리자고! 

- FA컵은 리그나 챔스보다 관심도가 떨어지는 편인데...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 않겠군. 웸블리 스타디움이 가득 찰 것 같아. 

 ㄴ 결국 진정한 승자는 FA컵 스폰서겠군ㅋㅋ 

=== 

로마 전에 대한 승리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FA컵 준결승전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와의 경기에 교체 멤버로 출전하게 된 호날두. 

2부 리그 팀에 호날두가 나서는 것은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이야기였지만, 트레블이라는 위대한 업적에 도전하는 맨유로서는 일단 모든 가용할 자원을 동원하여 승리를 따내는 것이 중요했다. 

현재 맨유의 모든 상황은 트레블을 위해서 달려가는 중. 

웨스트 브롬위치를 꺾고 FA컵 결승전에 진출할 수만 있다면, 이 위대한 업적은 단지 일장춘몽이 아니게 될 수 있다. 

근 10년 동안 이루지 못한 대업을 위해 퍼거슨은 기꺼이 온 몸을 내던져 도전할 준비가 되었다. 

"‘오늘 우리가 싸우게 될 팀은 2부 리그가 아니야. 아스날 못지않은 강팀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플레이하자. 지난 경기처럼만 해. 그러면 간단히 이길 수 있을 테니까." 

결국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부주장 라이언 긱스의 말이었다. 

프로의식이 투철한 맨유의 선수들은 알아서 정신무장을 한다. 

하지만 주장마크를 달고 뛰는 선수가 하는 말은 또 다르게 느껴지는 법. 

긱스의 리더쉽 아래에 맨유 선수들은 더 단단히 단결하여 그라운드에 나섰다. 

선수단의 기량 차이는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만큼, 경기자체는 반코트 경기였다. 

하지만 경기 시작 30분 동안 맨유는 골을 넣지 못했다. 

중요한 경기였지만 상대는 2부 리그였고 아직 끝나지 않은 리그와 챔스가 남아있는 만큼, 맨유는 1군 선수들과 2군, 유스 선수들을 섞어서 선발 명단을 꾸렸다. 

오랜 기간 함께 훈련받고 뛴 선수들의 조합이 아니다보니 팀플레이가 살짝 삐걱거리는 것이 원인인 듯 싶었다. 

긱스가 한마디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몇몇 선수들은 긴장한 기색이 보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오늘 테베즈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네. 결정력이 너무하잖아.' 

유효슈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테베즈를 보면서 호날두는 혀를 찼다. 

지난 경기, 지지난 경기, 또 지지지난 경기까지. 

맨유의 상승세를 위해 요즘 들어서 거의 풀타임으로 뛰고 있는 호날두는 다음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이 확정되어 있다. 

벤치 멤버이긴 했지만 사실 자리만 지킬 예정이었던 호날두. 

하지만 퍼거슨의 표정이 점점 사나워지는 것을 보고 호날두는 슬그머니 몸 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반전은 그렇게 무득점인 상태에서 끝났다. 

성난 코뿔소 같은 모습으로 쿵쾅쿵쾅 라커룸에 들어가는 퍼거슨. 

호날두는 구단 버스 안에 있는 귀마개를 가져오지 않을 것을 조금 후회했다. 

라커룸의 독재자는 답답한 전반전 경기력에 대한 혹평과 분노를 가감 없이 쏟아냈다. 

팀이 좋은 분위기를 달리고 있고 위대한 업적에도 도전하고 있었기에 퍼거슨도 요즘은 호통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똥을 제대로 지리는 오늘 맨유의 경기력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 

고질라처럼 욕과 고함을 토해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 이 타이밍에 슛을 해? 머리는 뭐하려고 들고 다니는 거야!? 앙!?” 

“야, 이 새끼야! 내가 언제 크로스만 주구장창 올리라고 했어? 뒤질 때까지 크로스만 올리도록 해줘?” 

“볼 터치도 엉망이고 팀플레이도 하나도 안 맞고 있다! 계속 이딴 식으로 해. 영원히 1군 문턱도 못 밟고 선수생활 종칠 테니까.” 

선수 한명 한명을 우악스럽게 잡아끌어서 전반전의 실책을 들추는 퍼거슨. 

그래도 답답했는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아예 라커룸의 물건을 집어 던지고 깨트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노기를 분출한다. 

생각지도 못한 퍼거슨의 난동. 

이 와중에 대들 수 있는 담량을 가진 선수는 없었다. 

카를로스 테베즈는 진짜 성격 끝내주는, 전형적인 남미 멘탈의 선수다. 

다혈질이고 인내심이 없었으며 가끔은 제멋대로. 

하지만 지금 퍼거슨에게는 반발할 생각 전혀 못하고 있었다. 

테베즈 뿐만이 아니다. 

아직 성인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부터 최고참인 라이언 긱스까지 전부 얼어붙어 고개조차 들지 못했으니까. 

‘이게 진짜 퍼거슨의 헤어드라이기구나. 정통으로 맞으면 정신 안 나가는 게 이상할거야.’ 

특히 스코틀랜드의 거친 억양은 제대로 묻어나는 퍼거슨의 욕설은 잉글랜드인의 그것보다 더욱 사납고 날카롭게 들렸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경상도 남부나 전라도 남부처럼 억양이 가장 억센 사람들의 사투리 섞인 걸쭉한 욕설이랄까. 

보면서도 감탄이 나올 지경.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벌게졌는데 저러다 고혈압으로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몸 풀어라, 크리스티안! 아무래도 이 쓰레기들은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구나! 가서 진짜 맨유의 선수가 어떤 의미인지 똑똑히 보여줘라." 

"알겠습니다, 보스." 

“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는다. 가서 준비해.” 

“넵.” 

                                                                                                                  

                                                                                                     

호날두는 고분고분하게 답하면서 윗옷을 벗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이럴 때 깐족거렸다가는 진짜 박살난다.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은 더 잘해야 할 것이다.

< 위대한 도전 - 1 > 끝

ⓒ 아이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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