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125)

< 위대한 도전 - 2 >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교체투입으로 크리스티안 호날두 선수가 입장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호날두 선수에 대한 특별대우로군요.] 

[호날두는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세계 최고의 선수입니다. 아직 챔피언스 리그와 유럽 선수권 대회가 남아있지만 벌써부터 2008 발롱도르에 가장 가깝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죠.] 

전 세계 최초 4회 발롱도르 수상에 도전하는 스물 세 살의 크리스티안 호날두.  

이미 세계 최고를 넘어서 과거의 옛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맨유와 포르투갈의 보물. 

물론 이런 선수조차도 헤어드라이기를 쏟아내고 있는 퍼거슨의 라커룸에서는 입 다물고 피노키오 인형처럼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등번호 7번을 보이면서 웸블리 스타디움의 그라운드를 밟은 호날두는 웨스트 브롬위치 선수들과 서포터들의 긴장과 경계가 뒤섞인 눈빛을 받으며 사자처럼 걸었다. 

존재만으로도 상대팀에게 더없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선수,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표정에서는 자신의 팀이 질 수도 있다는 일말의 불안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도 너희랑 똑같은 선수일 뿐이야! 지금처럼만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설령 그것이 맨유라도! 너희들의 노력은 헛된 일이 아니란 것을 오늘 보여줘라!” 

“더 큰 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경기가 너희들의 축구 선수 일생에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 

웨스트 브롬위치의 감독은 노련한 모습으로 흔들리는 선수들을 진정시키고 의지를 북돋았다. 

지나가면서 그의 말을 들은 호날두는 살짝 눈을 빛냈다. 

웨스트 브롬위치의 감독 이름은 토니 모브레이. 

EPL의 수많은 스타감독들과는 비교대상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명성이 낮은 감독이었지만 호날두의 등장으로 급격히 긴장하는 선수들을 다독이는 장면은 그의 눈에도 인상 깊었다. 

‘선수들의 야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네.’ 

축구 선수를 업으로 정했다면 누구든 1부 리그에서 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과연 그것을 상기시키자 오히려 의욕이 상승하는 웨스트 브롬위치의 선수들. 

재밌어졌다. 

“네가 들어오니까 저 녀석들 눈빛이 장난 아니게 바뀌었는데? 역시 호날두는 달라도 달라.” 

“저 때문이 아니라 브롬위치의 감독이 바꾼 것이죠. 뭐, 더 재미있게 됐어요.” 

호날두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꼬랑지 내린 상대를 패는 것은 재미없거든요. 거칠게 반항해줘야 이쪽도 때려눕히는 재미가 있죠” 

토니 모브레이는 옅게 한숨을 쉬었다. 

붉게 빛나는 7번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젊은 선수.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경기장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떻게 저런 선수가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는 포르투갈에게 월드컵 우승을 선사한 세기의 선수니까요.” 

모브레이의 말에 브롬위치의 수석코치가 답하였다. 

경기 스코어는 1:0, 팽팽한 균형이 깨져버렸다. 

바로 저 호날두에게 말이다. 

“감독님이 오늘 경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결국 경기는 지게 생겼는데....” 

코치들의 위로에도 모브레이는 원망스럽다는 듯 우측면을 지배하고 있는 호날두를 바라보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웨스트 브롬위치와의 격차는 현격하다. 

여기에 대해서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맨유는 여러 강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힘을 비축해야 했고, 따라서 브롬위치와의 경기를 100% 주전 멤버로만 내보낼 수 없었다.  

옛 저녁부터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모브레이는 짜임새 있는 전술과 선수들 간의 조직력을 통해서 전반전 상황을 좋게 이끌었다. 

축구는 결국 기세 싸움이었고 이 흐름을 잘 탄다면 후반전 역습이나 세트피스 플레이로 1점차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저 호날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혼자 힘으로 경기를 뒤엎고 흐름을 이끄는 선수라니...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어떻게 해서든지 연장전까지 끌고 가서 컵 대회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 파고든다면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자신의 욕심이 과했던 걸까. 

모브레이는 씁쓸한 표정으로 FA컵 결승무대에 대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에 투입되자마자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답답한 공격 전개를 180도 바꿔버렸다. 

탄탄한 피지컬로 중무장한 그는 몸싸움 따위에 두려워하지 않고 시원스레 질주하며 수많은 드리블 돌파를 성공했다. 

처음에는 의욕 넘치게 달려들었던 웨스트 브롬위치의 선수들이었지만, 애초부터 그를 막아낼 수 있는 선수가 2부 리그에 있을 리가. 

의욕만으로 막기에 호날두는 너무 레벨이 다른 선수였다. 

흡사 동네축구에 나타난 국가대표 선수처럼, 호날두는 탱크처럼 질주해서 다 뚫어버리고 골까지 넣어버렸다. 

[호날두 슈웃-! 들어갔습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0:0 상황을 깨트리는 멋진 선제골입니다!] 

[기회를 포착하면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골네트가 찢어질 정도로 부풀어 오를 만큼 아주 강력한 슈팅이었습니다!] 

[단 한 명의 선수가 답답한 경기를 이렇게까지 바꿀 수가 있네요! 와... 정말 이런 선수를 지휘하는 감독은 어떤 기분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호날두 선수라면 그야말로 만능키죠!] 

"2부 리그 팀과의 경기에서 골 하나 넣은 것 가지고 다들 오버하기는! 다들 똑바로 해!" 

산통 깨는 말로 선수들을 다시 쪼는 퍼거슨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이미 함박웃음이 지어져있었다. 

단 하나의 골이었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나마 0:0이라는 스코어에 힘입어서 투지와 열정으로 겨우 정신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웨스트 브롬위치의 선수들. 

호날두의 골 하나에 그들은 마치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촘촘하던 수비조직력에는 구멍이 뻥뻥 뚫렸고, 천신만고 끝에 볼 소유권을 따내도 어찌할지 모르는 한심한 모습만 연출됐다. 

반대로 이 하나의 골은 맨유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침착함을 되찾게 만들었다. 

플레이에 여유가 생겼고 움직임에 자유를 얻었다. 

호날두가 만든 변화였다. 

균형이 깨졌다. 

경기는 사실상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끝끝내 맨유는 후반 종료 직전, 마이클 캐릭의 중거리 골까지 추가로 넣으면서 2:0 승리를 완결 지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맨유의 승리를 예측했으니 지금의 결과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전까지는 웨스트 브롬위치의 서포터들도 희망을 가질 만 했거든요.]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선제골과 마이클 캐릭의 쐐기 골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들이 맨유를 FA컵 결승전으로 진출시킨 것이죠! 이제는 정말 트레블의 최저 조건 하나가 완성되었네요!] 

그라운드에서 휘날리고 있는 레드 데빌즈의 플래카드를 보면서 호날두는 감회에 젖었다. 

과거 크리스티안 호날두는 너무도 놀랍고도 경이로운 선수였고 수많은 트로피들을 들어 올렸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챔피언스 리그 2연패라는 굉장한 업적을 세우긴 했지만 끝끝내 트레블 만큼은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역사는 바뀌었고 사람도, 환경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과거 자신의, 우상의 한을 푸는 심정으로 호날두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오늘 호날두 선수는 가장 특별한 활약을 선보였고 맨체스터를 FA컵 결승전의 한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트레블이라는 업적을 입에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죠. 이에 대한 호날두 선수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기자의 질문에 호날두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이런 경험을 예전에도 겪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포르투갈이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일이라고 말해왔죠. 하지만 믿음직스러운 동료들과 함께 저는 결국 해냈습니다.” 

“......” 

“수많은 평론가들은 포르투갈이 월드컵에서만큼은 우승할 수 없을 것이라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결국 골든볼(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죠.” 

“맨유의 도전에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현명한 예언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웃음거리로 전락될 것인가. 선택의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런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습니다.” 

더없이 많은 반향을 몰고 올 호날두의 인터뷰였다. 

===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지는 로마와의 경기는 아주 보수적으로 진행된 경기였다. 

철저한 수비를 기반으로 한 맨유는 애초부터 무실점을 전술적 지향점으로 잡고 나왔다. 

많은 골은 터지지 않았다. 

테베즈의 골로 1:0 스코어를 만든 것이 전부. 

하지만 탄탄하고 질긴 수비로 로마의 공격을 모두 무산시켰고 안정적으로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우승을 노려볼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미들즈브러와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아쉽게 무승부를 거둔 맨유. 

승점 82점의 맨유는 2위 첼시와 8점의 차이가 있었다. 

무리뉴의 경질, 새 감독과의 마찰 등으로 휘청거렸던 첼시는 후반기에 무려 14연승을 달리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맹렬히 추격하는 중. 

하지만 벌어진 맨유와의 승점 격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사실상 우승은 힘들지 않을까 라며 평론가들은 예측했다. 

현재 맨유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진출 

FA컵 결승 진출 

프리미어 리그 1위 

트레블은 분명한 가능성이었다. 

맨유의 다음 리그 상대는 숙적인 아스날. 

맨유를 위협했던 우승후보 아스날은 4경기 연속 무승부에 이후 패배로 우승경쟁에서 사실상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라이벌 맨유를 상대로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들의 분전을 맨유는 경계해야 한다. 

[아르센 벵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은 불가능한 꿈에 가까워.'] 

맨유와 아스날의 프리미어 리그 34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맨유가 트레블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맨유가 98-99 시즌에 트레블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기적과 행운이 겹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적이 또 다시 맨유에게 찾아온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라며 맨유가 트레블 도전 도중에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어서 그는, ‘미들즈러버와의 33라운드 경기와 로마와의 챔피언스 리그 2차전 경기가 그것을 시사한다. 맨유의 상승세는 확실히 꺾였으며 한 선수에게만 너무 많은 기대가 집중되고 있다. 이런 팀은 종국에는 무너지는 법이다.’ 라고 답했다. 

아스날은 현재 82점인 맨유와 74점인 첼시의 뒤를 이어 리그 3위에 올라있다. 

또한 팀의 주포이자 전설인 티에리 앙리를 바르셀로나로 이적시킨 후 리그에서 20승 11무 2패, 승점 71점을 기록하였다.  

댓글 

- 퍼기와 벵거가 참 앙숙은 앙숙인가보네. 남 잘 잘되는 꼴 절대 못 보는 거 보니. 

 ㄴ 아스날 무패 우승 때도, 챔스 결승전 진출했을 때도 퍼거슨은 입을 엄청 놀렸었지.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ㄴ 다 늙은 노인 분들이 지치지도 않나봐. 

- 나는 다른 팀은 다 잘 되도 맨유 만큼은 절대로 잘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우승을 많이 했는데 지겹지도 않나? 얘네 우승하는 걸 우리가 또 봐야 돼? 

 ㄴ 너는 지금까지 충분히 많이 숨을 쉬었을 텐데 지겹지 않아?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인데 라이벌이 잘 나가니 얼마나 배가 아플까~! 

- 벵거가 처음 EPL에 오고 나서, 나는 벵거가 퍼거슨보다 더 클래스 높은 감독인줄 알았지. 그런데 지금은... 

 ㄴ ? 벵거가 여태껏 퍼거슨을 넘어 본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릴. 

 ㄴ 챔스 우승컵도 못 들어본 벵거가 트레블한 퍼기보다 윗 급인 줄 알았다고? 눈이 상당히 침침한 듯? 

- 그러게 눈 딱 감고 호날두 지르지 그랬어. 찔끔찔끔하지 말고 화끈하게 확 질렀어야지. 

 ㄴ 벵거도 호날두 노렸었어. 하지만 호날두가 거부한 거지. 

 ㄴ 정확히 말하면 스포르팅 때는 호날두 측에서 거부했고 첼시 때는 구단에서 거부했지. 라이벌 팀이라고. 

 ㄴ 아스날에서 뛰는 호날두의 모습도 참 궁금한데. 

- 진짜 트레블 이루면 얼마나 조롱당하시려고 이러시나ㅋㅋ 

 ㄴ 일단 트레블 먼저 해놓고 이런 댓글 다시는 게... 

  

"보스, 벵거 감독과는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나요? 볼 때마다 싸우시는데." 

"너 같으면 친하게 지내겠니? 도저히 사이가 좋아질 래야 좋아질 수가 없다! 그 노린내 나는 프랑스 놈이 지껄이는 걸 너도 봤잖아?" 

"주제와는 서로 디스해도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하게 지내잖아요." 

"그는 조지 클루니처럼 잘 생겼잖아. 벵거는 노망든 스크루지처럼 생겼고." 

"......" 

벵거도 젊었을 때는 잘생긴 얼굴 아니었나? 

아무튼 아르센 벵거에 대한 퍼거슨의 앙심이 대단히 깊다는 것만 재확인했다. 

퍼거슨이 베니테즈 다음으로 싫어하는 감독은 바로 벵거일 것이다. 

"이제는 그냥 그가 뭐라 지껄이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스날은 이번 시즌도 무관 확정이고, 지금 나는 내 갈 길도 바쁘니까." 

                     

“팀 운영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쳐졌어. 그런 식으로 우승은 무리지. 더 이상 그는 내 라이벌이 아니다.” 

                                                                                                                

                                                                                                                      

과거의 아스날과 달리 지금의 아스날은 여전히 우승 후보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팀이었고, 전설적인 무패 우승을 이룩한 지 4년도 채 지나지 않아 쌩쌩한 우승 DNA가 있는 팀이다. 

아스날은 나중가도 여전히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유지하는 팀으로 남지만, 우승은 절대 못하는 그런 팀이 되어 버린다. 

미래의 기억이 있었던 호날두는 그래서 벵거의 이적제안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래에서 온 것도 아닌 퍼거슨은, 아스날의 미래와 벵거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말 감탄이 나온다. 

이 영감, 이젠 신기까지 있나? 

                                                                                                                   

                                                                                                                    

“불손한 생각을 품고 있는 거 다 보인다.” 

“킁... 훈련하러 가겠습니다.”

< 위대한 도전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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