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125)

< 위대한 도전 - 3 >

“내가 지금까지 지도한 녀석들 중에서 가장 빛났던 녀석은 데이비드 베컴이고 가장 듬직했던 녀석은 폴 스콜스다. 역대 최고의 주장은 에릭 칸토나이며 라이언 긱스는 맨유의 성공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레전드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들은 모두 월드 클

래스다. 하지만 가장 특별했던 선수는 바로 크리스티안 호날두다. 그는 그 어떤 선수와도 달랐다. 누구보다 이질적이었고 역량의 끝을 측정할 수 없었다. 이런 선수는 내 생에 처음이었다.” 

- 알렉스 퍼거슨의 자사전, ‘나의 이야기’에서 발췌 - 

=== 

[프리미어 리그 34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의 경기입니다. 아스날은 올 시즌 자신들의 홈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맨유와 무승부를 거두었습니다. 사실상 우승은 매우 힘들고요.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오늘 경기에서 무승부 이상의 성적

을 거둬야만 체면치레를 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올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 경쟁은 끝났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곤 있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거든요. 아스날이 만약 오늘 맨유를 잡아낸다면, 첼시와 아스날은 커다란 희망을 품고 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맨유가 우승을 확정짓기 위해서는 일단 아

스날을 잡아야 합니다!] 

무시할 수 없는 강팀들의 숫자가 많은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의미 없는 대결을 찾기 힘들다. 

특히 아스날과 맨유처럼 과거 리그 우승권을 두고 오랫동안 다투었던 클럽이라면 더더욱. 

감독끼리 개인적인 악연까지 점철되었기에 이 두 클럽끼리의 대결은 언제나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아왔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오늘 아스날 전을 포함해서 5번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2위 첼시와의 승점 차이는 8점. 

작으면 작다고, 크면 크다고 할 수 있는 점수 차이. 

만약 오늘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첼시가 위건을 격파한다는 가정 하에 남은 경기는 4경기, 승점은 8점 차를 유지하며 전패하지 않는 이상 우승을 거의 확정지을 수 있게 된다. 

반대로 패배한다면 첼시에게 더없이 큰 희망이 되겠지. 

맨유는 트레블에 도전하는 중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절대 질 수 없는 중요 경기들이 몰려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베스트 11만 주구장창 돌릴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결국 주전 선수들의 체력 관리가 생명. 

퍼거슨이 시즌 초반부터 선수들 로테이션에 신경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지겹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하마. 리그 우승이 거의 확정됐다고 들뜨지 마라.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우리의 선결과제는 ‘거의 확정’이 아닌 ‘100%의 우승’이다.” 

위대한 업적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고참 선수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흔들리는 모습이 가끔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퍼거슨은 훈련 도중 이렇게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후딱 이겨서 리그 우승 트로피를 먼저 가져오자. 다음에 챔피언스 리그에 집중하는 거다. 나를 믿고 나만 따라와라. 너희들에게 클럽 축구의 가장 영광스러운 업적을 달성할 수 있게 도와줄 테니” 

퍼거슨은 노련했고 또 영리했다. 

그는 각기 다른 성향의 선수들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할지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퍼거슨은 호날두를 따로 불렀다. 

"요즘 너에게 로테이션을 통 못 시켜주고 있다. 미안하게 됐어. 오늘 경기도 풀타임을 뛰어야 할 거야." 

"웬걸요? 저는 오히려 경기에 많이 출전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체력적으로도 문제없고요." 

"그래... 그런 만큼 오늘 경기 반드시 이겨야 한다. 너만 믿는다, 크리스." 

퍼거슨은 결코 약한 모습을 선수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흔들리면 클럽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 최고의 감독이라는 퍼거슨이지만 그조차도 과거 영광의 재현을 바라는 수많은 팬들의 염원에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 ‘요즘은 월드 클래스의 기준이 너무 후하다. 파브레가스는 좋은 선수이지만 긱스와 스콜스, 그리고 호날두 같은 진정한 월드 클래스와 비교되긴 부족한 선수다.’] 

[아르센 벵거, ‘맨유의 선수들은 지나치게 노쇠화 되어 있다. 그들은 결국 끝까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맨유의 득세를 막아낼 수 있다.’] 

끝까지 서로에게 날선 설전을 벌인 퍼거슨과 벵거는 드디어 경기장에서 맞붙게 되었다. 

맨유 

박치성-루니-호날두 

하그리브스-캐릭-스콜스 

에브라-피케-퍼디난드-브라운 

반 데 사르 

아스날 

반 페르시-아데바요르 

흘렙-파브레가스-시우바-에부에 

클리시-투레-갈라스-송 

옌스 레만 

현 아스날의 주포는 바로 토고의 선수인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올 시즌 리그에서만 22골을 몰아넣은 이 선수는 페르난도 토레스와 함께 올 시즌 혜성처럼 등장한 리그 탑급 스트라이커다. 

미친 듯한 기세로 골을 폭격하고 있는 호날두만 아니었으면 충분히 득점왕을 노려볼 수 있을만한 성적이었다. 

나중에 그 이상의 포텐과 실력을 보여주게 될 로빈 반 페르시는 현재 처진 스트라이커로 아데바요르를 서포트 해주는 중이다. 

따라서 이 둘의 연계플레이를 잘 끊어낼 수 있다면 공격진의 위력을 대폭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아스날의 진짜 핵심은 바로 세스크 파브레가스지.’ 

고개를 좌우로 꺾은 호날두는, 그라운드로 들어오는 파브레가스를 쳐다보았다. 

파브레가스는 맨유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호날두보다 무려 2살이나 더 어렸다. 

이렇게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2006 UEF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된 적이 있는 파브레가스는 이미 검증된 월드 클래스 미드필더였다. 

특히 공간을 격하고 라인을 붕괴시키는 스루 패스와 키 패스는 정말 최고 수준. 

여기에 침투 플레이도 상당히 좋아서 마치 예전 폴 스콜스를 연상케 했다. 

괜히 '만약 파브레가스와 반 페르시가 같이 포텐을 터트렸으면...' 같은 가정을 하면서 미래 아스날 팬들이 아쉬워하는 게 아니다. 

빈약한 선수진을 이끌고도 리그에서만 30골을 박던 전성기 반 페르시와 수많은 득점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전성기 파브레가스의 조합은 아마 타 팀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고 파브레가스만 꽁꽁 묶어두면 된다. 

지금의 파브레가스는 준수한 탈 압박 능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맨유의 압박을 다른 팀들과 같은 수준으로 보면 곤란하다.  

퍼거슨은 캐릭과 피케가 협력하여 파브레가스를 고립시킬 것을 주문했고, 상황에 따라 호날두나 박치성도 가담하여 패스 동선을 끊을 것이다. 

삐이이이익-! 

와아아아아~! 

아스날은 초반부터 득점을 노리고 온 것인지 원정경기임에도 라인을 올렸고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공격적이었다. 

단단한 피지컬로 무장한 아데바요르의 슈팅력은 매서웠고 가끔씩 보이는 반 페르시의 천재성은 날카로웠다. 

무엇보다도 파브레가스의 패스 루트를 끊어내지 못한다는 게 아스날의 공격을 계속 허락해주는 일이 되었다. 

‘원정인데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공격적으로 나서는 거야?’ 

웃기는 건 그게 통하고 있다는 거다. 

당황한 맨유 선수들은 몰아치는 아스날의 파상공세에 분명히 흔들리는 중이다. 

"마이클! 조금 더 강하게 압박해! 공간이 자꾸 벌어지잖아! 제라르드는 실책 좀 줄이고 침착하게 해!" 

리오 퍼디난드의 외침이 그라운드에 울렸다. 

피케와 캐릭의 조합은 호날두가 보기에도 썩 좋지 않았다. 

캐릭은 파브레가스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을 잘 해내지 못했고, 피케는 파브레가스의 패스 줄기를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커버해줘야 하는데 손발이 맞지 않아 단점만 부각되는 꼴. 

결국 파브레가스를 막기 위해 박치성까지 내려와서 수비 가담을 해주었지만, 솔직히 박치성은 호날두와 함께 스위칭 플레이를 하며 역습을 준비하는 게 낫다. 

“잠그는 경기도 아닌데 굳이 한 사람에서 세 명이 달라붙어서 인력 낭비 할 필요가 있나요?” 

“그러게. 뭔가 조오끔~ 안 맞는 기분이네.” 

전체적으로 비효율적인 경기 운영이 되고 있었다. 

결국 그것은 실점의 빌미가 되었다. 

파브레가스의 스루 패스는 맨유의 포백을 뚫고 반 페르시에게 닿았고, 반 페르시는 놀라운 턴으로 퍼디난드를 제치고 슛을 때렸다. 

그것을 용케 튕겨내는 맨유의 수문장, 반 데 사르. 

하지만 그 뒷공간을 파고든 것은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그의 헤딩은 세컨 볼을 골로 연결시켰다. 

으와아아아아!! 

두 팔을 벌리면서 짐승처럼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데바요르. 

원정 온 거너스들은 그에게 열화와 같은 환호를 보냈고 벵거는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전반전이 끝났다. 

웬일인지 오늘 퍼거슨은 라커룸에서 헤어드라이기를 켜지 않았다. 

대신 호날두와 박치성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호날두는 왼쪽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박치성은 오른쪽의 윙어로 뛰게 만들었다. 

이는 박치성에게 보다 적극적인 파브레가스에 대한 견제를 맡기고 호날두를 공격에만 전념시키려는 전술적인 의도가 담긴 것. 

또한 그는 쿨하게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오늘 경기의 전반전 실점은 내 전술적인 실수에서 비롯된 거야. 거기에 대해서 너희에게 사과한다. 니들은 잘못이 없어.“ 

“제라르드는 파브레가스의 마크를 그만 둬라. 네 피지컬을 그런 식으로 낭비하는 것은 아쉬워. 아데바요르와 반 페르시 사이를 오가면서 둘의 연계 플레이를 견제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보스.” 

“그리고 리오, 제라르드가 전반전에 맡았던 역할은 네가 대신하는 거다. 너의 우수한 수비 지능이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야." 

"믿고 맡겨주십쇼. 그 애송이를 경기에서 그냥 지워버리겠습니다." 

자신들이 했던 실수에 혼쭐이 날까봐 벌벌 떨었던 맨유 선수들. 

생각지도 못한 따뜻한 격려와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물까지 글썽이는 이들도 있었다.. 

“좋아. 치와 크리스는 자리를 교체했다. 이 둘은 플레이스타일과 역할이 완전히 다른 선수다. 내가 풀백은 뭐라고 했지?” 

““윙어의 그림자입니다!!”“ 

“다들 잘 기억하고 있구만. 윙어가 달라졌으니 그에 맞춰서 풀백들도 달라져야겠지? 파트리스는 쭉쭉 오버래핑해서 호날두에게 볼을 잘 연결할 수 있도록 해라. 웨스는 조금 더 보수적으로 플레이하고. 여러 번 해본 움직임이니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다.” 

퍼거슨은 바뀐 전술과 포메이션에 대한 즉각적인 지시를 바로바로 내렸다. 

선수들이나 코치들이 보기에도 이러한 변경사항들은 충분히 아스날에게 통할만 해보였다. 

선수들의 특징이나 성향, 능력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유동적인 전술 변화는 꿈도 못 꿨을 일. 

과연 퍼거슨. 

예상치 못한 실점으로 낙담한 선수들은 이제 이곳에 없었다. 

"우리는 전반전에 제 실력을 발휘 못했을 뿐이야. 충분히 기량만 나온다면 골골거리는 아스날 따위 무조건 이길 수 있다! 너희들은 그저 골을 넣어라. 적어도 두 골 이상은 처박아서 요란스러운 거너스들을 잠재우도록 하자. 솔직히 저 놈들, 정신 못 차렸

던 우리에게 겨우 한 골 넣었을 뿐인데 너무 나댔잖아?" 

세상에 이런 감독이 또 있을까? 

놀랍기만 했다 

전반전과 180도 바뀐 퍼거슨의 전술은 바로 효과를 보았다. 

퍼디난드와 캐릭의 압박에 박치성까지 가담하자 파브레가스는 금방 지워졌다. 

그처럼 창조적인 패스를 할 수 있는 미드필더가 없는 아스날은 금방 움직임이 둔중해졌다. 

속도가 느려진 사냥감을 사냥하는 것은 발 빠른 맹수들이었다. 

하그리브스의 패스를 이어받은 호날두는 크루이프 턴으로 마크맨들을 저치며 왼쪽 라인 돌파를 시도했다. 

흘렙과 클리시가 몸싸움에게 패배하며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윌리엄 갈라스가 거친 태클로 호날두의 드리블을 끊어야 했다. 

파울성 플레이에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자빠진 호날두를 갈라스가 일으켜 세워주었다. 

"같은 동업자끼리 너무 강한 태클을 날리는 거 아닙니까? 우리 옛 정이 있잖아요. 살살 합시다, 윌리엄." 

"하지만 이란 태클이 아니면 도저히 너를 끊어낼 수 없으니까 그렇지. 누가 이렇게 잘 하래?" 

갈라스는 호날두와 같이 첼시에서 뛰면서 2번의 리그 우승와 1번의 챔스 우승을 이뤘다. 

둘은 여전히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 

"미안하지만 갈라스는 실수한 겁니다." 

"?" 

"제 프리킥 실력은 첼시 시절에 비해서 일취월장 했거든요." 

뻐엉-! 

강하게 후려갈긴 슛. 

무회전 슛도, 뱀처럼 휘어지는 슛도 아니다. 

다만 이것은 정말 ‘무지하게 빠른 강슛’이었다. 

아스날의 수문장 옌스 레만이 조금의 반응조차 하기 힘든 속도로 날아간 공은, 아스날의 골 망을 찢어질듯 부풀어 오르게 만들었다. 

  

[프리킥 준비하는 크리스티안. 이 선수의 프리킥 성공률은 맨유에 와서 더욱 진보했거든요. 도움닫기, 슛-! 고오오오오올!! 골입니다, 크리스티안!] 

[엄청나게 빠른 슛이었습니다! 아스날 선수들은 물론, 골키퍼마저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초스피드 슛!] 

[오 마이 갓! 방금 호날두 선수가 찬 공의 속력이 무려 118마일(190km/h)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슛을 사람이 어떻게 막습니까!?] 

                                             

[...그것보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슛을 찰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선수의 킥력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것인가요?] 

                                                                                                                   

                                                                                                                     

총알처럼 날아간 슛이 골로 인정된 것을 확인한 호날두는 그대로 맨유 엠블럼이 박힌 왼쪽 가슴을 두드리면서 맨유 팬들을 위해 특별한 셀레브레이션을 보여줬다. 

데빌즈의 환호와 고함이 올드 트래포드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머리를 감싸쥐는 아스날 선수들. 

멍한 표정의 갈라스에게 호날두는 짧게 윙크를 날렸다.

< 위대한 도전 - 3 > 끝

ⓒ 아이시루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