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25)

< 위대한 도전 - 4 >

퍼거슨의 맨유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역전을 잘하는 팀이었다.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동점이 된 상황에서 선수들이 굉장한 집중력을 발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양측 다 패배를 절대 생각하지 않았을 터.  

경기는 점점 더 거칠어졌고 파울이 빗발쳤다. 

이쪽에서는 마이클 캐릭이 옐로우 카드를 받았고, 저쪽에서는 윌리엄 갈라스와 골키러 옌스 레만이 카드를 적립했다. 

맨유와 아스날의 팬들은 결코 이 경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팀에게 힘을 싣기 위해 살벌한 응원전을 펼치면서 승리를 종용했다. 

라이벌인 퍼거슨과 벵거 역시 마찬가지다. 

난전, 혼전이었다. 

빠른 템포의 공수 전환과 짧은 시간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턴 오버 상황은 너무도 빠르고 급한 축구다. 

하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맛이 있는 축구였다. 

수준 높고 위협적인 슈팅과 돌파, 연계 플레이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주심이 휘슬을 불면서 파울을 선언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빠르고 강하며 터프하고 직선적인. 

전형적인 EPL식 축구는 경기를 지켜보는 수많은 축구팬들을 만족시켜주기 충분했다. 

양 팀 서로 득점은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르센 벵거가 자신을 잔뜩 경계하고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집중적으로 마크하는 선수들과 호날두를 고립시키기 위한 특정 전술, 그리고 매 경기마다 뚫어질 듯이 노려보는 시선까지. 

맨유에서 가장 싫어하는 선수를 뽑으라면 벵거는 주저없이 자신을 뽑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그가 싫어하는 감독 밑에서만 뛰었구나.’ 

주제 무리뉴부터 알렉스 퍼거슨까지. 

전부 벵거의 숙적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다. 

그들의 지휘를 받아 그들의 팀에서 공격의 첨병으로 활약했다. 

벵거가 자신을 볼 때마다 눈에 불길을 세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절대 못가!” 

가엘 클리시가 호날두의 허리까지 붙잡으면서 막았다. 

주심이 휘슬을 불려했지만 호날두는 힘으로 클리시를 질질 끌면서 나아갔다. 

“제기랄! 누가 저놈 좀 막아!” 

“완전 괴물이야!” 

붙잡고 늘어지던 클리시는 호날두의 힘과 속도에 따라붙지 못하며 결국 자빠졌다. 

덕분에 호날두는 우측면 끝 쪽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툭, 툭, 툭, 툭. 

드리블을 가볍게 치면서 골문 목전까지 진입한 호날두. 

콜로 투레가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면서 그를 밀쳤지만 등을 지고 공을 지키면서 버텨냈다. 

그대로 슛을 쏘긴 힘들 것 같아서 버티는 와중에도 주변을 살폈다. 

‘오웬!’ 

‘맡겨둬!’ 

눈빛으로 하그리브스와 의견을 교환한 호날두는 즉시 측면으로 공을 보내면서 자신에게 집중된 아스날의 수비진들을 헛되이 만들었다. 

하도 2대1 패스 플레이에 많이 털리다보니 하그리브스에게 공이 넘어갔음에도 이들은 호날두를 경계했다. 

하지만 호날두가 어디 막는다고 막히는 그런 선수던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는 한번 가속이 붙으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이다. 

하그리브스는 아스날 수비진들의 키를 넘어가는 로빙 패스로 호날두에게 창의적인 공격 루트를 제공했다. 

급히 호날두를 쫓는 송과 투레, 하지만 호날두는 이미 페널티박스 안쪽까지 진입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이런 호날두의 매우매우 위협적인 움직임은 아스날 선수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슛을 차기 위해 왼쪽 다리의 각도를 올리는 호날두에게 강력한 태클이 들어왔다! 

바로 아스날의 미드필더인 알렉산더 흘렙이었다. 

터억-! 퍽! 

휘청- 

흘렙의 발이 호날두의 다리를 쳤다.  

중심을 잃은 호날두가 휘청거렸다. 

호날두가 인상을 팍 썼다. 

‘이런 씨...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막을 수 없으니 다리라도 노리겠다는 심정으로 다리나 발목을 향해 태클을 날리는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아예 선수 생명 끝장내겠다는 ‘살인 태클’ 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는 충분히 호날두에게 위협적이었다. 

괜히 호날두가 발목보호대를 2개씩 착용하고 경기하는 게 아니다. 

다행이 어느 정도 예측을 하고 준비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다가는 부상을 당할 수 있었다. 

스터드가 다리를 향해 들어왔다. 

이대로 넘어지면 아마 높은 확률로 페널티 킥이 선언될 것이다. 

하지만 호날두는 끝내 넘어지지 않았고 다시 중심을 잡자마자 바로 슛을 찼다. 

옌스 레만이 다리를 뻗어보았지만 끝내 닿지 않는 곳으로 호날두의 슛이 날아갔다. 

호날두와 맨유의 두 번째 골이었다. 

[날카로운 돌파!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또 다시 맨유의 공격 찬스를 만듭니다! 하그리브스에게 패스! 와우! 하그리브스 로빙 패스! 호날두...! 오오오!!] 

[언블리버블!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골이 터졌습니다! 저 상태에서 슛을 차는 게 가능합니까!?] 

[판타스틱한 골입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라는 이름과 명성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클래스의 놀라운 골입니다!] 

스코어 1대1 상황에서 경기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골. 

그 의미 있는 골이 이루어지는 과정까지 정말 볼만 했다. 

해설진들이 앞 다투어서 극찬을 쏟아낼 만 하였다. 

[흘렙 선수가 호날두 선수의 다리를 향해 태클을 했습니다. 고의는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저때 주심은 페널티를 불만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호날두 선수는 끝까지 공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골을 성공시키네요!] 

[하하하! 페널티킥으로 골을 넣기보다는 필드골로 넣겠다는 의지의 표명인가요? 그리고 주심이 태클을 건 흘렙에게 옐로우 카드를 꺼내네요. 뭐, 골은 골이고 판정은 판정이죠!] 

호우-!! 

처음에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던 호우 세레머니. 

하지만 이제는 수많은 맨유 팬들도 그의 세레머니를 따라하면서 같이 기뻐해주었다. 

오히려 독특한 셀레브레이션이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니 호날두는 이제 이 세레머니를 자의로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스콜스의 교체 선수로 들어온 안데르손이 호날두의 세레머니를 따라했다. 

공중에 뛰어올라 몸을 돌리는 특유의 자세, 그리고 ‘호우-!’ 소리까지! 

호날두는 웃으면서 그의 머리를 흐트려주었다. 

맨유의 코치석을 바라보았다. 

퍼거슨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예상보다 그의 반응은 훨씬 더 격했다.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박수를 치는 퍼거슨. 

그는 호날두를 향하여 양 손의 쌍따봉을 들어주었다. 

호날두 역시 맞따봉... 으로 화답했다. 

[퍼거슨 감독과 호날두 선수의 사이가 아주 돈독해보입니다. 하긴, 감독으로서 저런 선수를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선수로서 저런 대단한 감독을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맨유의 ‘친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퍼거슨 감독이 호날두 선수를 그렇게 아낀다고 합니다. 거의 뭐 할아버지가 손자를 대하듯이 호날두 선수를 예뻐해 준다고 하더군요.] 

[같은 축구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어쨌거나 퍼거슨 감독이 저렇게 환하게 웃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말이죠!] 

2:1 상황이 되자 팽팽한 무게추는 급격히 맨유 쪽으로 기울었다. 

벵거 감독의 표정은 심란, 그 자체.  

하지만 그보다 아스날의 선수들이 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벵거는 이에 대한 대처를 확실히 하고 있지 못했다. 

선수들의 의욕이 떨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끌어 올리는 퍼거슨과 비교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스날이 급격히 흔들리는 틈을 맨유는 놓치지 않았다. 

오늘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하그리브스가 루니의 키 패스를 이어받아 슈팅, 그대로 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3:1 

맨유가 앵간한 삽질을 하지 않는 이상 거의 뒤집히기 힘든 스코어. 

게다가 퍼거슨은 호날두를 교체하면서 긱스를 집어넣고 잠그기에 들어갔다. 

일말의 희망조차 주지 않기 위해서. 

아스날은 무기력했고 맨유의 수비를 뚫을 수 없었다.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경기 종료 후, 올드 트래포드는 기립박수의 행렬이 이어졌다. 

1:0으로 지고 있다가 내리 3골을 집어넣으며 3:1,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게다가 그 상대가 라이벌 팀인 아스날! 

레드 데빌즈는 오늘 보여준 선수들의 좋은 경기력과 역전승에 기립박수를 치고 환호를 아끼지 않으며 이들에 대한 감사를 드러냈다. 

자신의 팬들이 기뻐하는 모습은 선수들에게도 더없이 커다란 정신적인 만족감을 선사한다. 

맨유 선수들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한 가득이다. 

멋진 경기와 멋진 승리로 서로를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프로스포츠의 묘미가 아닐까. 

아스날 팬들의 처참한 심정은 둘째치더라도, 이기다가 세 골을 먹히며 패배한 아스날 선수들은, 한눈에 보아도 크게 낙담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퍼거슨이었으면 있는 대로 고함을 지르면서 결국 기강을 바로잡고 저런 패배주의를 씻겨냈을 텐데. 

신사 같은 벵거가 그렇게 하리라고는 보기 어려우니, 아마 오늘 패배는 다음 경기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역시 너무도 잘하더라, 크리스. 이제는 정말 쳐다보기도 힘들어졌네." 

씁쓸함이 가득 담긴 갈라스의 말에 호날두는 말없이 그의 등을 쓸었다. 

"돌이켜보면 너와 같이 첼시에서 뛰었을 때가 내 선수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 같아." 

"답지 않게 왜 그래요? 지금도 잘하잖아요." 

"기량은 비슷하지.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네. 이곳에서는 자꾸 안주하게 돼. 그냥 첼시에서 너와 함께 한 시즌만 더 뛸걸 그랬어." 

갈라스는 원래부터 첼시를 떠나고 싶어 했다. 

첼시 보드진 역시 팀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지 않는 갈라스를 곱게 생각 안했고, 그의 등번호를 뺏어서 미하엘 발락에게 주기도 했다. 

그것은 선수로서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아마 갈라스는 그 때로 돌아가더라도 결국 이적을 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서 다른 선수들을 살펴보니 피케가 파브레가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장면이 보였다. 

피케와 파브레가스는 같은 바르셀로나 유스팀 출신이었고 나이도, 국적도 같았다. 

친분이 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맨유 선수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조용히 있던 피케였는데 파브레가스를 같이 있을 때는 입에 모터를 단 것처럼 신나게 떠들고 이쓰 중이다. 

사실 자신의 우상인 호날두에게 워낙 안 좋은 의미로 입을 턴 적이 많았던 피케인지라 자신 역시 별로 호감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팀 동료들과 있을 때는 눈치 보면서 조용히 있다가, 정작 친구를 만나고는 저렇게 신나하는 것을 보니,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챙겨주면 나중에 나한테는 입 안 털겠지?' 

사실 아래 이유가 더 클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중에 있을 호날두와 멘데스의 ‘큰 그림’을 위해서도... 

동점골, 역전골을 몰아넣은 호날두와 1골 1어시를 기록하며 오늘 정말 좋은 폼을 보여준 하그리브스가 경합했다. 

하지만 역시 임팩트 있는 장면을 많이 보여준 호날두가 약간의 차이로 이번 경기의 MOM에 선정 되었다. 

경기의 MVP로서 인터뷰를 하는 호날두. 

아니나 다를까 페널티킥 상황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아스날의 흘텝 선수의 태클은 명백한 반칙감이었습니다. 아주 좋지 못하 태클이었죠. 호날두 선수가 거기서 넘어지고 항의했다면 아마 좀 더 쉬운 득점(PK)을 가져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과적으

로 골을 넣기는 했지만 옌스 레만에게 막힐 수도 있었잖아요?" 

"페널티 킥의 성공률은 100%가 아닙니다. 아무리 잘 차는 선수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 자리에서 슛을 찼을 때 골문으로 들어갈 확률은 장담컨대 95%가 넘었습니다. 제 계산대로 라면요. 따라서 차는 것이 팀을 

위해서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페널티킥으로 넣은 골이 창피하다는 인식 때문은 아닙니까? 또 만약 거기서 넘어졌다면 ‘다이버’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으로 불리게 될 것에 대한 저항은 아니었나요?" 

"오, 절대 아닙니다. 실제로 그 장면은 명백한 반칙이 맞는데 제가 다이버라고 불릴 이유가 없지요! 다만 저는 언제나 실리에 가장 부합하는 축구를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제 판단에는 거기서 넘어져 PK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을 차서 골을 넣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댔다.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감독이 호날두 선수를 '신이 내린 선수. 내 평생 이런 선수를 본 적이 없다.' 라며 아주 극찬했습니다. 상대팀 감독에게 이런 칭찬을 듣는 것은 무척 고무되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여기에 대해서 한 마디 코멘트 해주신다면?" 

"벵거 감독의 칭찬에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보스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저는 그와 상관없이 벵거 감독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스날이 오늘 쓰라린 패배를 당했지만 빨리 극복하고 앞으로도 맨유와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길 바

랍니다." 

                                                                                                                        

물론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상, 아스날이 맨유를 제치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일은 결코 없을 테지만 말이다.

< 위대한 도전 - 4 > 끝

ⓒ 아이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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