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도전 - 6 >
경기가 시작되었다.
루니와 테베즈를 투톱으로 내세운 4-4-2 포메이션에서 오른쪽 윙어로 출전한 호날두.
하지만 역습을 취할 때나 맨유가 공을 보유할 때, 즉 맨유에게 공격권이 있을 상황에서는 그는 더 앞으로 치고 나갔다.
따라서 보통 때의 포메이션이 4-4-2였다면 맨유가 공격할 때는 호날두가 전진, 마치 4-3-3의 포메이션처럼 움직였다.
호날두의 넓은 활동량과 전술 이해도를 이용한 이런 하이브리드식 전술 운영은 효과를 보지 못한 적이 드물었다.
덕분에 바르셀로나의 실점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삐이익-!
밀리토의 파울에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문제는 그 파울이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서 벌어졌다는 것.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주심에게 거칠게 항의했고 누 캄프의 꾸레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욕설과 고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심의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페널티킥이었다.
"크리스. 꼭 넣어."
"오케이."
박치성에게 공을 받은 호날두는 조용히 그것을 페널티 지점에 찍었다.
개인적으로 호날두는 페널티킥 차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유 선수 중에서 성공률이 가장 높았다.
그래서 퍼거슨으로부터 페널티킥 키커로 임명받게 된 것이다.
누 캄프의 시선이 모두 이곳을 향했다.
삐익-!
주심의 콜이 울리자 망설임 없이 달려간 호날두.
발데스가 움찔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호날두는 차분하게 공을 반대편으로 차 넣으면서 PK 골을 완성시켰다.
[올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만 11골을 집어넣으며 정말 압도적인 득점력을 보여주는 호날두 선수입니다. 이번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 12골입니다.]
[도움닫기 후 슛! 들어갔습니다! 크리스티안 호날두! 골키퍼를 속이고 넣는 멋진 골이었습니다.]
[올 시즌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이 거의 확실시 되는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12번째 골입니다!]
참고로 현재 챔스 득점 공동 2위는 메시와 제라드였고 각각 6골을 넣었다.
득점 공동 2위 두 명의 골수를 더해야 1위와 동률이 되는 상황.
호날두가 올 시즌 얼마나 많은 골을 폭격하면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는지 알 수 있는 부분.
꾸레들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고 누 캄프 3층 원정석 귀퉁이에 있던 맨유 팬들만 신나서 환호했다.
원정에서 가볍게 앞서나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
맨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수비위주의 전술을 유지했다.
일단 저 바르셀로나로부터 득점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사비-투레-데쿠로 이어지는 무지막지한 미드필더 라인은 맨유의 중원을 압도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찬스 메이킹, 패스 숫자, 드리블 돌파 등의 수치 등은 전부 바르셀로나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여기에 홈 버프가 더해져 볼 점유율마저 극단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정말 무리뉴 식의 선 수비, 후 역습 전술밖에 답이 없었다.
"나이스, 치!"
“훌륭해!”
메시와 경합하여 그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박치성을 보며 맨유 선수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큰 경기에 강하고, 뛰어난 선수에 강한 박치성의 성향은 오늘 경기에서도 잘 드러났다.
자신을 믿고 기용해 준 퍼거슨의 믿음에 보답하며 리오넬 메시를 꽁꽁 묶어두고 있는 박치성.
적어도 아직까지는 메시에게 슛할 기회조차 주고 있지 않았다.
'역시 박치성이야. 저 메시를 틀어막다니.'
제 2의 호날두라는 전혀 공감안가는 별명으로 불린다지만 사실 그의 진짜 별명은 제 2의 마라도나.
20세의 쌩쌩한 지금의 메시는 정말 미친 드리블러였다.
좁은 측면을 파고드는 드리블적인 부분에서는 호날두 자신보다 나으면 나았지 절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메시를 상대로 저렇게 압박을 줄 수 있는 것은 박치성의 맨 마크 능력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뜻.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오늘 호날두는 무리한 움직임을 자제했다.
괜히 턴 오버 상황 때문에 역습 맞는 것보다는 최대한 경기의 흐름을 읽으면서 기회를 엿봤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넓은 시야에서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슬금슬금 메시 쪽으로 다가가는 이니에스타의 모습을 호날두는 캐치했다.
‘볼을 돌리겠네. 그렇다면 그 쪽으로 가줘야지!’
박치성을 비롯한 맨유 선수들의 집중견제에 고립을 피하지 못한 메시.
호날두는 스퍼트를 밟았고 결국 메시는 반대편 이니에스타에게 크로스를 올리면서 공격권을 돌렸다.
이니에스타가 공을 받자 맨유의 풀백인 웨스 브라운이 전진했고 호날두는 이니에스타의 후방을 점하면서 협력 수비에 나섰다.
압도적인 중원 지배력의 도움을 받아 닥공 체제로 나서는 바르셀로나를 막기 위해, 맨유는 현재 루니와 테베즈를 제외한 전 선수들이 중앙선 아래 수비에만 신경을 쏟는 중이었다.
호날두의 수비 센스와 타고난 피지컬이 이럴 때 큰 역할을 했다.
화려한 발재간으로 공을 지키는 이니에스타였지만 결국 날두는 그의 공을 바깥으로 튕겨냈다.
이니에스타의 짜증 섞인 시선이 호날두를 즐겁게 만들었다.
[아주 열정적으로 메시를 막아내고 있는 팍! 드리블의 천재라고 불리는 메시를 통제하는데 성공합니다. 수비벽이 두터운 맨유. 메시는 반대편으로 크로스.]
[호날두도 질 수 없다인가요! 이니에스타의 공을 쳐냅니다! 이 선수, 골도 잘 넣고 드리블도 잘하지만 수비도 참 잘합니다! 다재다능한 완성형 윙어라는 말이 딱 어울리네요.]
"다들 잘 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티자! 오버페이스하고 있으니 반드시 녀석들이 먼저 초조해 질 거야!"
주장 완장을 찬 스콜스가 선수들을 격려하면서 더 힘낼 것을 종용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뚫으려는 바르셀로나와 악착같이 막으려는 맨유의 대결.
경기는 점점 치열해졌다.
그러던 와중 호날두는 메시의 앞을 가로막게 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경기 중, 게다가 앙 쪽 다 일촉즉발의 상황.
친근한 웃음을 보여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일단 다리를 벌려서 작은 메시가 횡으로 치고 나갈 공간을 막은 호날두.
자신의 피지컬을 최대한 이용해서 메시를 압박하여 공을 따내려는 움직임.
그러나 메시는 마치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수 있는 민첩함이 있었다.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내고 옆으로 돌아서려는 메시.
한시름 넘겼다며 작게 한숨을 쉰 메시였지만 그가 본 것은 살짝 웃고 있는 호날두였다.
호날두의 뒤에서는 어느새 스콜스가 등장해서 공을 잡아채고 있었던 것.
'일부러 알까기를 유도했지.'
“폴! 멋진 커버 플레이!”
“땡큐, 너도 잘했어.”
다리를 벌리고 있으면 메시가 알까기를 시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의 볼을 다루는 테크닉은 세계 최고 수준인 메시였지만 피지컬은 도저히 호날두와 볼 경합을 할 재간이 없다.
라 크로케타로 빠져나가려고 해도 호날두가 긴 다리로 제한을 걸고 있으니 결국 남은 것은 뭐, 알까기뿐.
다리 사이로 통과한 공을 뒤에 있던 스콜스가 재빨리 낚아챔으로써 공격권을 되찾았다.
‘완전히 속았다! 그래서 분하다!’ 라는 표정으로 호날두를 째려보는 메시.
호날두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맨유의 역습을 돕기 위해 뛸 뿐이었다.
역습은 루니의 홈런 볼 때문에 실패로 끝났지만 바르셀로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 게임은 단판이 아니다.
맨유의 홈에서 2차전을 치러야 하는데 만약 여기서 또 점수를 내준다?
그 때는 정말 극복하기 힘들어진다.
어쩔 수 없이 레이카르트 감독은 선수들의 공수를 다시 조율하며 템포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동점골보다 더 실점하지 않는 것에 무게를 둔 것이다.
“저놈들 지공으로 가기 시작하네?”
“이러면 우리가 더 막기 쉬워지죠.”
레이카르트의 결정은 안타깝지만 실착이다.
바르셀로나 선수들 중에서 피지컬 좋은 선수라고는 야야 투레와 에투 밖에 없었기에 힘으로 뚫어내는 플레이는 사실 힘들다.
게다가 퍼거슨은 지공 수비의 달인답게 수비수들을 지역방어 위주로 돌리고 두 줄 수비를 세워버렸다.
과거 그 강력했던 펩의 바르셀로나조차 첼시에게만큼은 힘을 쓰지 못했는데, 맨유의 현재 플레이는 그 당시 첼시의 플레이와 상당히 유사했다.
파울 감수하고 몸으로 막아내거나 적극적인 볼 경합을 통해서 시간만 끄는 식의 경기 운영.
결국 원정 득점에 성공한 맨유만 이득.
그렇게 득점 없이 전반전이 끝이 났다.
전반전의 승자는 당연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
[크리스티안의 페널티킥 하나의 득점이 스코어 전광판에 나타나는 득점의 전부입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초조해지는 것은 바르셀로나죠! 반드시 만회골을 넣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몰아쳤는데도 뚫리지 않는 맨유가 대단해보이네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챔스 원정 경기 기록이 정말 놀랍네요. 리옹 원정 경기도 그렇고, 로마 원정 경기도 그렇고, 토너먼트 원정에서 전부 승리했습니다. 호날두 선수도 반드시 원정경기에서 골을 넣었고요! 만약 여기서 바르셀로나를 꺾는다면 16강, 8
강, 4강 원정을 모두 승리로 이끈 클럽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만 총 12골을 기록하고 있는 호날두 선수입니다. 본인의 챔스 최다 골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물론이고 역대 챔스 최다 득점자인 AC 밀란의 조제 알타피니의 14골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연치 않게 대기록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은 호날두 자신도 알고 있다.
하지만... 뭐 별다른 감흥을 가지긴 어려웠다.
어차피 나중에 호날두에 의해서 챔스 최다 골 기록은 깨지지 않는가?
과거 자신의 우상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낫다고 생각하는 호날두였기에.
그의 마인드는 최다 골 등극이 조금 일찍 당겨지면 좋은 일이고 아니면 말고였다.
"득점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승 트로피다."
가끔 부리던 호날두의 골에 탐욕은 이제 트로피에 대한 탐욕으로 선회했다.
호날두는 아직도 첼시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었던 순간을 잊지 못했다.
반드시 영광의 자리에 다시 한 번 더 오르리라.
[메시! 공 잡았습니다! 캐릭을 제쳐내고! 박치성까지 벗겨냅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놀라운 돌파!]
[전반전의 부진을 씻어내려는 듯 날카롭게 몰아칩니다! 이것이 바로 바르셀로나 팬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장면이죠!]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도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리오넬 메시.
작은 키에 기가 막힌 균형감각, 민첩성,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최적의 볼 터치로 드리블치는 메시는 그 누가 오더라도 정말 막기 어렵다.
한번 발동 걸린 메시는 바로 이렇다.
그 하나를 막지 못해 맨유 선수들이 줄줄이 무너져 내린다.
반대쪽 디딤 발을 강하게 딛고 찬 메시의 왼발 슛은 분명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이었지만, 맨유의 수문장 반 데 사르는 놀라운 선방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막아냈다.
잔디를 쥐어뜯으며 안타까워하는 메시.
가슴을 쓸어내리는 맨유의 선수들.
그리고 탄식을 쏟아내는 누 캄프의 꾸레들도.
"크리스!"
긱스의 패스를 유려한 퍼스트 터치로 이어받은 호날두.
메시의 실력은 충분히 잘 봤다.
직접 두 눈으로 본 그의 재능, 아직 채 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맨유의 선수진들을 이렇게 농락하는 그의 재능은 진짜배기였다.
'메시가 아르헨티나의 호날두라고 불린다고?'
이제는 진짜 호날두의 실력을 이곳 누 캄프에서 보여줄 차례였다.
툭, 툭, 툭.
공을 잡자마자 공을 툭툭 밀어 치면서 육상선수처럼 질주하듯 내달렸다.
모든 축구 선수들의 개인플레이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화끈한 플레이라고 평가받는 '치고 달리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구 선수이자 그렇게 빨리 달리면서도 볼 간수 능력이 뛰어나다고 정평이 난 호날두는, 이 치고 달리기를 현재 카카 이상으로 잘한다고 칭찬받는 선수이기도 했다.
분명 처음에는 그와 비슷하게 혹은 먼저 달리면서 쫓아가는 바르샤 선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눈을 잠깐 감고 뜨니 어느새 그들은 뒤쳐져 있었고 호날두는 저 멀리 앞을 달려가고 있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겨지지 않을만한 속도.
"얼 타지 말고 막아!"
"제기랄! 뭐가 저렇게 빨라!"
스페인 어로의 욕설과 고함이 뒤에서 들려왔지만 호날두는 멈추지 않고 쭉쭉 올라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미터를 주파한 호날두는 체력적으로 달리지도 않는지 숨조차 거칠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바르셀로나의 골문과 호날두 사이에 남은 선수는 골키퍼 빅토르 발데스와 풀백인 에릭 아비달 두 명뿐.
호날두의 어깨를 잡아끌면서 속도를 늦추려는 아비달이었지만 호날두는 그의 장기인 마르세유 턴으로 가볍게 그를 제쳤다.
발이 미끄러지듯 그라운드에 쓰러지는 아비달.
이제 남은 사람은 한명!
바르셀로나의 골키퍼인 빅토르 발데스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두 팔을 벌리며 뛰쳐나왔다.
호날두는 그의 정면에서 공을 차려는 모션을 취했다.
오른발 인사이드 슛.
거기에 낚인 발데스는 그쪽으로 방향으로 점프했다.
하지만...
‘됐어!’
그것은 바로 페이크였다.
호날두는 바로 오른발을 접었다.
발데스가 점프한 방향까지 눈으로 끝까지 확인한 다음, 그 반대편으로 공을 찼다.
가볍게 찬 호날두의 슛은 그대로 바르셀로나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두 번이나 호날두에게 속은 발데스의 얼굴이 울듯이 일그러졌다.
[고오오오오올-!! 크리스티안 호날두--!!! 들어갔습니다!!]
[마지막에 발데스 선수를 속이는 페이크 모션이 주효했습니다! 이 선수, 정말 역사를 만드나요!?]
와아아아아아!!
관중석의 맨유 팬들이 자지러질 듯 소리를 질렀다.
가슴이 뻥 뚫리는 역습의 정석, 치달의 정석.
호날두는 자신의 장기를 100% 살려서 두 번째 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바로 원정팀의 지옥이라는 이곳 누 캄프에서 말이다!
< 위대한 도전 - 6 > 끝
ⓒ 아이시루스